기포의 새벽 편지1638
잠시 쉬어가기9
동봉
긴 이별 노래/永訣辭
가믈가믈한 하늘이 열리고
붉고 검은 땅이 생기고
하늘과 땅 사이에 틈이 생기며
그 틈 사이에 숱한 생명이
생주이멸生住異滅을 반복하였나니
아, 숭엄하여라 삶의 무대여!
한 생명이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인연이
서로 만나고 또 흩어지고
흩어지고 또 새롭게 만났으리이까
산과 들을 품은 이 광활한 대지가
초림 선생, 그대의 살결이었고
그 대지 위로 시원스레 감싸 흐르는
내와 강과 호수와 바다의 하얀 물거품이
초림, 당신의 피요 땀이었나이다
낮이면 밝고 찬란한 태양이
밤이면 차가운 달과 숱한 별들이
대지와 바다를 알맞게 조절하였나니
이 또한 당신의 체온이었고
대기는 곧 당신의 숨결이었나이다
이처럼 흙과 물과 불과 바람이
서로 만나고 흩어지고
흩어지고 또 서로 만남에는
커다란 힘이 3가지가 있었나이다
첫째는 공간으로서의 하늘과 땅이요
둘째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나
늘 공간과 동시에 작용하는 시간이며
셋째는 이 시공간을 바탕으로 하여
멋진 하모니를 이끌어 내어
관계를 맺어주고 동시에 풀어주는
소중한 인연의 끈이고 마디였나이다
초림 김수창 선생님,
꼬박 예순다섯 해를 소요한 세상
어찌하여 당신의 셈법에는
불혹不惑과 지천명知天命과
이순耳順까지는 분명 있으시면서
산수傘壽와 미수米壽
백수白壽는 또 그렇다 하더라도
그 흔하디흔한 종심從心과
더불어 희수喜壽는
어디에 꼭꼭 숨겨 두신 채
끝내 활짝 펼치지 않으셨습니까
선생公의 본관은 선산이요
성씨는 김金씨며
초림初林은 호號요
자字는 수창壽昌이셨습니다
알봉돈장지세閼逢敦牂之歲(甲午年)
유화월流火月(음력7월)
길일吉日(초하루)에
첫 고고지성을 울리신 뒤
기해 유월 초엿새 한낮에 이르러
경상대학교병원에서 숨을 멈추시니
예순다섯을 다 채우지 못하셨습니다
선생의 부친은 김문이 공이시고
모친은 전태순 이달모 여사시며
사랑하는 가족으로는
아내 고인엽 여사와 더불어
영식 김성윤 김성필과
영애 김성지 김성아를 두셨습니다
자부는 심민주이고
사위는 손제곤이며
김채원 구유림을 손녀로 남기셨지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는 제자리로 돌아가고
사대를 이끌던 마음 세계는
본디 이 땅에 오시기 전 머물던
정토淨土 세계로 되돌아가셨습니다
당신께서 삶을 마감하시자
인제대학교에서 취득한 의학박사와
대전대학교에서 취득한 서예미학박사
시인이자 남강문학회 회원은
그저 이름으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청남 오제봉 선생에게서 이어온
서예 화필의 힘찬 맥박이며
학정 이돈흥 선생에게서 사사한
행서行書와 초서草書의 세계
한국미술협회 초대작가와
국전심사위원도 명예만 남을 뿐입니다
진주시민들의 온갖 아픔을 위로하고
당신의 인의仁醫를 펼치셨던
대한당한약방은 주인을 달리하리니
세간의 영욕榮辱은 세간에 맡기시고
말끔하고 깔끔하게 다 접으소서
선생께서 평소 그토록 아끼고
사랑을 쏟으시던 초림문중
제자들이 뒤를 받치리니
이는 선생께서 뿌리신
가장 인간다움의 씨앗이십니다
하오니 부디 다 내려 놓으시고
서방정토에 왕생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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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겨 가로되/銘曰
이미 떠나간 옛 벗님이시여
앞으로 언젠가는 만날
미래 벗님이시여
검은 대지
하얀 구름
푸른 하늘 가운데
초림 선생, 그대 모습은
검은 대지일까
하얀 구름일까
푸른 하늘일까
벌써 이들을 초월하셨을까
그대 가시는 길에
갈증을 푸시라며
반야주般若呪
한 자락 올리리이다
이르신 이여
이르신 이여
저 언덕에
이르신 이여
저 언덕에
온전히 이르신 이여
원컨대 깨달아지이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제사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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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대지, 하얀 구름, 푸른 하늘의 하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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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0/2019
종로 대각사 봉환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