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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우리의 사명
1971.10.09 (토), 한국 중앙수련원
[기 도]
아버지, 당신께서 한 아들을 이끌어 나오시기에 얼마나 수고하셨고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르셨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그것은 저희가 개인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범위내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저희들은 엄중한 섭리적 사명을 해야 할 시대에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여기에 모인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한 아들의 성상을 그리워하시는 아버지의 슬하에 모인 저희들은 아버지 보시기에 염려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찾아 나오시는 아들 그 자체가 되어야 되고,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본성의 심정에 화(化)한 미(美)의 실체가 되고 사랑의 주체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에, 오늘날 타락한 세계에서 습관화된 저희 자신들을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버지의 표준은 저희 같은 사람들을 찾아오는 것이 아님을 느끼면 느낄수록, 저희들은 부족한 것을 자각하고 미래의 사명을 촉구해야 할 입장에 서서 아버지의 위신과 체면을 세워 드리지 못하는 미급함과 부족함을 자탄할 수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해야 되겠습니다.
저희 자신들이 당신을 얼마나 사모하고, 당신을 얼마나 흠모하며, 당신의 뜻의 길에 대해서 얼마만큼 간곡한 자세를 지니고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 저희가 처해 있는 이 자리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는 자리에 서 있어야 할 모습인 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오늘의 미급한 자신을 아버지 앞에 드리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당신의 긍휼과 자비와 용서를 바라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당신은 이러한 개인들을 합하여 가지고 찾고자 하시는 선한 가정을 찾아왔고, 선한 종족을 찾아왔습니다. 선한 나라와 선한 세계를 이루고자 하는 노정을 두고 볼 때, 여기에는 복잡다단한 사회의 여건들이 방패가 되고 울타리가 되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도리어 이것을 이루지 못하게 방해하는 요소가 연결되어 가지고 세계화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아버지께서 과연 6천년 동안 수고하시지 않을 수 없었다는 기막힌 사실을 알게 됩니다.
전능하신 아버지의 권한을 가지고도 그렇듯 오랜 시간을 거쳐오신 소망의 기준을 저희들이 맞아 생애노정에서 해결해야 할 입장에 서게 될 때, 그것이 저희들의 힘만으로는 절대 될 수 없다는 것을 느끼옵니다.
아버님은 책임할 수 있는 인간이 없어서 그 한 날을 맞지 못하신 것임을 느끼면 느낄수록, 저희들은 아버님을 모시는 자리에서 아버님과 하나되지 못하면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오니 당신의 긍휼의 마음이 저희의 심정에 사무칠 수 있고, 본성의 자리에 다시 자리잡게 하여 주시옵소서. 본향 땅을 그리워하는 마음, 본성의 심정을 찾아 가고자 하는 마음, 본연의 아버지의 품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무엇보다도 강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이것이 저희들이 생사의 기로를 가려낼 수 있는 표준이 된다는 것을 이 시간 다시 한 번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저희들 가운데는 남다른 이 길을 따라오기 시작한 지 10년 이상이 되는 식구도 있습니다만, 지내 온 그 연한이 문제가 아니라 그 연한을 따라 아버지와의 관계가 어떻게 되어 있으며, 그 인연이 어떻게 설정되어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아들이라는 명칭은 좋은 명칭임과 동시에 지극히 두려운 명칭이요, 딸의 자리라는 것은 지극히 좋은 자리 같지만 무서운 자리인 것을 알게 되옵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바라보고 기뻐하실 수 있는 본연의 기준이 어떠한 것이며 딸을 바라보고 기뻐하실 수 있는 본연의 기준이 어떠한 것이냐, 사랑하는 자녀들을 놓고 훈시하고 싶어하시고 최후의 소망을 걸어 놓고 모든 것을 상속하고 싶어하시는 아버님의 심정이 어떠한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때, 당신이 그리워하시는 자녀의 심정을 저희들은 모르는 자리에 있사옵니다. 저희들은 당신이 자식을 위해 싸워 나오신 역사적인 과정을 모르는 자리에 서서 습관화된 그냥 그대로의 모습으로 생각하고 혹은 느낄 수 있는 감정의 한계권내에 속해 있는 인간들이옵니다. 저희들은 당신이 지녀 오신 심정적 깊은 한계선 이상의 자리를, 혹은 높고 높은 한계선 이상의 자리를 알지 못한 인간들이옵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저희들은 당신의 깊고 높고 귀하신 그 한계선 이상의 심정을 어떻게 해서도 그려 낼 수 없는 모습들이오니, 아버지께서 저희를 자극시켜 주시고 책임져 주셔야 되겠사옵니다. 저희가 저희의 사명을 감당한다 하더라도 아버지께서는 저희가 사명을 감당한 그 자리보다 한 차원 높은 한계선 이상의 심정을 연결시키기 위해 또다시 싸우셔야 한다는 것을 저희들은 생각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불초하고 부족한 자신을 탓하면서 내일의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거룩한 승리의 아들딸된 모습을 그리워하면서 이 자리에 참석하였사오니, 이 자리에 참석한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나'라는 아무개가 심정세계에 있어서 아버지를 그리워하기 전에 아버지께서 그리워하실 수 있는 자신이 되었고, 제가 아버지를 생각지 않더라도 아버지께서는 저를 생각하실 수 있는 자리에 서 계신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저희는 전체를 바쳐서 그 은혜를 갚아 드리고 거기에 하나되고자 하는 사무친 염원의 심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사오니, 저희들을 그냥 그대로 버려 두지 마시옵소서.
저희들은 통일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통일교회가 이렇다 하는 기준을 나름대로 알고 있사옵고, 하나님은 이렇다고 하는 자기 나름대로의 신앙을 갖고 측정을 하고 혹은 체험하여 인정하는 자리에 있사오나, 아버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한계권내에 계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저희가 그것을 알면 알수록 불쌍하신 분이 아버지이시요, 저희들이 불쌍하다고 말할 수조차 없는 불쌍한 자리에 계시는 아버지이십니다. 또 수난길을 극복하는 노정에서, 치열한 투쟁의 전선에서 책임을 지신 분도 아버지이심을 생각하게 될 때, 그것은 저희들이 알고 있는 비참 정도가 아니요, 극복 정도가 아니요, 투쟁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인간대 인간을 중심삼고 생활무대를 삼고 있으되, 영계가 있는지 없는지 감지하지 못할 때가 많사옵니다. 아버지가 계시는데도 불구하고, 저희의 마음이 아버지와 더불어 깊이 속삭일 수 있는 심정의 인연을 찾지 못할 때가 많사옵니다. 아버지가 그리워 심정이 사무친 자리에서 흠모하는 마음을 가지면서도 아버지의 품에 품기고자 하는 느낌 가운데서 자기 일신의 인식을 초월할 때가 없는 자신인 것을 생각할 적마다, 이러한 아들을 찾아 나오시는 아버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님께서 저희를 대신하여 얼마나 사모하고 얼마나 간곡한 심정을 기울이고 계신가를 저희들은 미처 몰랐사오니, 알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반면에 사탄이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말로는 했지만, 체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좋은 것을 바라보고 선한 말과 선한 행동을 하고자 할 때에, 그 길을 막고자 하는 원수가 있는 것이요, 복병하여 있다가 저희가 가고자 하는 길을 막고 저희를 끌고 가려 하는 원수가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최후의 담판을 지어야 하고, 혈투전을 해야 할 행로를 거치지 않고는 아버지의 품에 돌아갈 수 없는 비운의 역사를 거쳐 태어난 저희들인 것을 깨달으면서도 저의 앞을 막고 있는 원수와 어느 한때에 판가리를 지어야 한다는 것을 저희들은 잊어버린 때가 많사옵니다. 내 개인을 두고 그러해야 되겠고, 가정을 두고, 종족을 두고, 민족을 두고, 국가와 세계를 두고 그러해야 되겠습니다. 공중권세 이하의 이 지상 세계권내에 머물러 있는 악의 세력을 타파하고 가야 할 수난 도상에 서 있는 자신들임을 다시 한 번 자인하게 되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가 안 계신다면 불쌍한 무리이옵니다. 아버지가 안 계신다면 몸 둘 곳을 찾을 수 없는 무리이옵니다. 아버지가 안 계신다면 살겠다는 그 마음조차 허무한 마음이 되고 만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무지한 저희를 둘러싸고 있는 원수의 세계적 권한을 누가 책임지겠느냐 할 때에, 타락한 저희들은 책임질 수 없음을 자인하게 되옵니다. 그러면 저를 이 환경에서 구해 줄 사람이 누구냐 할 때에, 저를 낳아 준 부모도 아니요, 형제도 아니요, 스승도 아니요, 나라의 주권자도 아닌 것을 생각하옵니다.
땅과 평면지상에 있는 세계를 향하여 바라볼 수 있는 것이 휘하에는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 오로지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아버지의 흠모의 심정을 대신하여, 보이지 않고 알 수 없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간곡한 자세를 갖추어 가지고 심각한 심정의 고독을 느끼며 한숨과 더불어 `아버지시여! 어서 오시옵소서. 이 모습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라고 절규하는 것 외에는 원수권을 타개할 수 있는 방안이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생활을 통해 알게 되옵니다.
저희는 생활 가운데에서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친구인 줄 알았고, 어제 모시고 살던 부모가 오늘의 부모인 줄 알았고, 어제의 인연을 따라 살던 부부와 자식이 본연의 부부와 자식인 줄로 알았사오나 아니었습니다. 어제의 부모가 오늘의 원수요, 어제의 처자가 오늘의 원수요, 어제 사랑했던 나라가 오늘의 원수가 되지 않고서는 이 길을 타개할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생각지 못할 때가 많사옵니다. 왜냐하면 이 세계가 사탄의 혈통의 인연을 가진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끊으려면 먼 자리에서 끊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서부터, 내 피살에서부터, 내 심정에서부터 끊어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네 집안 식구가 원수라는 말이 사실 그대로인 것을 느끼옵니다.
부모를 잡아 제사를 드려야 할 길이 이 길이요, 처자를 잡아 제사를 그려야 할 길이 이 길이요, 사랑하는 것을 전부 다 바치고 나서 하늘을 위해 자신까지도 죽음의 자리에 내놓지 않으면 안 될 길이 이 길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과연 이 길을 가겠노라고 다짐하고 실천하여 사망권을 제압하고 승리의 일로를 개척하는 길에서 개인은 가정을 희생시키지 않고는 안 되는 것이요, 가정은 종족을 희생시키지 않고는 안 되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나아가 종족은 외적인 민족을 희생시켜야 되겠고, 외적인 민족은 외적인 국가를 희생시켜야 되겠으며, 외적인 국가는 외적인 세계를 희생시켜야 된다는 것도 알고 있사옵니다.
이것이 가인 아벨의 원통한 투쟁의 행로였던 것을 생각할 적마다 이 심각한 사망권을 해방할 수 있는 직행 통로가 이 지구성의 누구를 통하여 개척될 것인가를 생각해 볼 때, 보잘것없는 저희들 외에는 없다는 것을 진정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관념적으로 알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지, 하늘땅을 대신하여, 만민을 대신하여 홀로 생사의 판가리를 짓겠다고 다짐하는 엄숙한 순간이 여기에 모인 자녀들에게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그러한 자리로 몰아넣어야 되겠습니다. 세 가정을 대신하여 자기의 가정을 이끌고 사탄가정을 대하여 싸울 수 있는 판가리의 전쟁터가 이들에게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개인이 그러하고 가정이 그러하고 종족이 그러하고 민족이 그러하고 국가가 그러하고 세계가 그러하기 때문에, 저희들은 개인의 승리의 터전을 확대시켜야 되겠습니다. 가정의 승리적 터전을 넓혀서 종족 편성을 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마음과 몸이 하나된 가운데 이 민족의 운명을 걸고 싸워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남북으로 갈라진 이 비운의 국가를 붙안고 하늘 앞에 책임과 사명을 다하겠다고 다짐해야 되겠습니다. 이 자리가 저희들이 원해서 나온 자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불러 세우셔서 온 자리보다 저희가 자원해서 찾아온 자리에 서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 앞에 `이제 저희가 싸우러 가는 이 길을 당신이 승리의 길로 맡으시옵소서'라고 보고하고 가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가야 할 것이 타락한 인류가, 타락한 인간의 후손된 무리들이 가야 할 길인데도 불구하고 매양 아버지께서 선두에 서서 수고하는 놀음을 지금까지 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비통한 사실이요, 저희에게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승리의 한날을 맞기게 하기 위해 용허할 수 없는 하나의 사실인 것을 자각하는 무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아버지, 당신의 남북한의 정상(情狀)을 아시고, 통일가와 기성교회의 한계선을 아시옵니다. 아버지께서 통일교회를 기점으로 해서 기성교회와 대한민국과 이북을 중심삼고 사위(四位)를 일주하시지 않으면 이 나라는 구원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것은 제물의 길이요, 투쟁의 길이요, 원수들이 참소하는 길임을 아옵니다. 이 제물된 길은 그 무엇을 합할 수 없는 길이기 대문에 그냥 그대로 몽땅 주어야만 되겠습니다. 나에게 사탄이 참소할 여건이 있어서, 이것을 쪼개는 자리에 서 가지고는 이 길을 가지 못한다는 것을 저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완성시대를 바라보는 이때에 몽땅 아버지 앞에 드려지는 아들이 되지 않고는 기성교회와 연락지을 수 없고, 그 아들이 서 있는 자리가 하늘적인 탕감의 조건을 중심삼고 승리의 기반을 닦은 자리가 아니고는 가인적인 교단을 굴복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저희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아버지편에 서서 공고한 터전을 다지기 위해 이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수고해 나왔습니다. 그것은 핍박의 길이요 수난의 길이었지만, 그 수난이 문제가 아니옵니다. 수난길이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가중된 수난의 길이 민족을 거치고 세계를 거쳐 나가는 데에 남아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지금까지의 행로는 저희가 미래에 더 큰 전쟁 마당에 나갈 수 있는 용사가 되기 위한 훈련시대의 노정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더듬어 살펴보게 될 때, 출발하던 때보다도 결실할 때가 더 심각한 것을 느끼게 됩니다. 누구든지 출발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망의 자리에서 출발한 인간이라면 사망의 세계 이상으로 심각하지 않고서는 생명의 결과를 가져 올 수 없다는 것이 필연적인 결론이 아니겠습니까? 사망의 세계에서 출발한 저희들은, 생명의 세계를 기원하며 출발한 저희들은 사망의 세계를 떼어 놓기 위하여 생명의 세계가 사탄의 세계보다 가중되게 하기 위한 분별의 투쟁과 싸움을 하여야 할 입장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저희들, 과연 아버지가 그리워서 눈물이 앞설 수 있는 개개인이 되었으며, 통일가의 번성을 위해 자기 일신을 스스로 제물 삼겠다고 허덕이는 생활을 하고 있는 무리가 되었는가 하는 것을 반성해야 되겠습니다. 오고 가는 인생 행로에 있어서, 먹고 자고 하는 일상 생활환경에 있어서, 좋고 나쁘고 하는 감정생활에 있어서 좋은 것은 아버지로 말미암아 좋고 나쁜 것도 아버지로 말미암아 나쁘고, 오고 가는 것도, 먹고 사는 것도, 인생살이 일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되어져야 하옵니다. 아버지를 빼놓고는 내 자체가 있을 수 없다는 자리에서 살아야 할 것이 우리의 일생인 것을 생각할 때, 저희들은 너무나도 나를 중심삼고 소유권이 컸던 것을 잘 아는 바입니다.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매양 아버지의 채찍을 맞아야 할 자식이라는 것을 느끼며 당신의 동정이라도 받을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갖추어야 된다는 것을 깨닫게, 이제 아버지께서 직접 나타나시옵소서.
예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을 모아 놓고 그들을 대표할 수 있는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는 물음을 두 번 세 번 거듭하실 때, 베드로가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했던 그 자리는 예수님이 묻는 도수를 가함에 따라 베드로에게 자신이 강한 입장에 서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부족함을 자책시키고 새로운 결심을 다짐시키려는 타이름의 자리였다는 것을 아옵니다.
이제 저희 자신들에게 아버지께서 그렇게 묻게 될 때에, `제가 아버지를 사랑하고 뜻을 사랑하는 것을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고 대답할 수 있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께서 그것을 묻고 묻고 또 묻게 될 때에 자신 있게 `예, 당신을 사랑하고 있나이다'라고 대답하며, 그 물음 앞에 눈물을 흘리면서 과거에 부족했던 나 자신을 생각하고 왜 저렇게 물으실까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자리에 섰다면 `이 모습으로 아들의 도리를 다할 사람이 되겠습니다' 해야 되겠고, 혹은 나 자신이 미급하기에 완성을 바라보시며 염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께서 묻게 될 때, 아버지께서 저희들을 완성을 바라고 세우셨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저희를 부르시어서 `너는 하늘의 아들로서 세계를 대표하여 책임을 다하여 달라'고 부탁하실 때, 아버지를 사랑하고 아버지의 명령을 바라는 아들의 입장에서 그날이 오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당신이 원하시는 것을 이제야 성취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천만번 죽음이 엇갈리더라도, 제물로 희생되는 행각의 노정이 연결되어 있더라도 아들의 운명을 갖지 못한 자신이 가야 할 필연적인 운명길로 알고 가야 되겠습니다.
쓰러지는 자리에서도 아버지의 동정의 손길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탄의 조롱을 받지 않기 위해 아버지 앞에 충효의 도리를 다하겠다고 다짐하고 `아버지여 염려하지 마시옵소서. 아버지께서 협조하시지 않아도 제 개체는 사탄의 인연을 넘을 수 있는 자신이 있습니다. 어떠한 수난이 있더라도 당신의 협조를 필요로 하지 않고, 그곳을 저 스스로의 책임권을 알고 사수하겠습니다'라고 결의해야 되겠습니다. 동정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하늘을 위로할 수 있는 아들이 되겠다고 몸부림친다면 피를 토하고 쓰러지는 운명에 이르렀다 할지라도 그는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저희들은 확실히 아옵니다. 그런 아들이 있거들랑, 그가 쓰러진 자리가 원수의 진영이라 할지라도 아버지께서 서슴지 않고 달려와 위로하시게 될 때,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승리의 권으로 남아진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저희의 손이 얼마나 아름다웠고, 저희의 이목구비가 얼마나 아름다웠고, 저희의 오관을 통하여 느껴지는 감각이 얼마나 아름다웠고, 마음으로 그리는 심정의 인연을 따르고자 하였던 것이 얼마나 아름다웠사옵니까? 질식할 것밖에 없는 과거지사, 간사하고 추악한 자기 자신이 어떠한 폭탄이 있다면 일시에 폭발시켜 버려도 아깝지 않을 증오의 자체임을 발견할 때가 얼마나 많았는가를 생각해 볼 때, 감히 거룩하신 주체의 손길 앞에 성스럽게 바쳐질 수 없는 모습들이옵니다.
아버지께서 이와 같은 저희들을 찾아오시다니, 이와 같은 못난 것들을 바라보시다니, 이와 같은 수치의 대상을 그리워하시다니…. 그것이 웬 은사이옵니까?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자신을 증오해야 되고, 당신 앞에 부름을 받을 수 없는 자신을 무시해야 된다는 것을 심정적으로 느끼고 필연적인 운명으로 알면서 그런 가운데서 감사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이 분별된 자리에 왜 저를 세우시어서 하늘의 소유로 하시고 하늘의 선물을 남기고자 하셨사옵니까? 하오나 저희들은 아들딸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서 그 얼마나 많은 날들과 세월을 지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이것은 과연 심각한 문제이옵니다. 여기 서 있는 이 자식도, 아버지, 당신의 고통을 알고,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슬퍼하신 아버지이심을 알았기 때문에, 저희들이 지금까지 책임을 지고 나온다고 하면서도, 오십년, 반세기의 연령을 지내고 나서도 이렇게 한 나라 앞에 버젓한 자세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을 생각할 때에, 아버지. 책임 못한 이 자식은 잠시도 편히 쉴 수가 없습니다. 영광의 연한으로서 당신의 칭찬을 받을 수 있었던 한때를 흠모하는 마음이 크면 클수록, 응당히 당하여야 할 시련무대를 스스로 찾아가서 시련을 받지 않으면 이 나라를 수습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행복의 길이 내 앞에 오기를 바라는 것보다도 민족의 행복의 길을 어떻게 개척할 것이냐 하는 것이 하늘이 바라는 것이요, 하늘의 책임을 짊어진 자가 가야 할 길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자기의 행복이라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 복귀의 길인 것을 다시 느끼게 되옵니다.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은 그래도 통일가에 있어서 선두에 섰다는 무리요, 통일교회의 식구를 대표했다는 무리이옵니다. 당신이 기뻐하실 수 있는 아들이 있으면 여기 서 있는 이 자식이 받은 축복의 몇만 배라도 사랑해 주고자 하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이요, 이 자식이 받은 마음인 것을 이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극히 사랑하는 종들을 죽을 입장에 내몰았던 아버지, 지극히 사랑하는 아들을 십자가에 내몰았던 아버지, 그 아들이 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할 때에 대답도 못 하고 눈을 감고, 흑암을 대상으로 맞이하여 바라보는 억울하셨던 아버지이심을 아옵니다. 그러한 대가를 치러 나오신 아버지이시기에 끝날에 그 이상의 책임을 할 수 있는 종들을 바라셨던 것이요, 그 이상의 책임을 할 수 있는 아들을 바라신다는 것을 생각하오니, 여기 불러 모으신 자녀들에게 그 이상의 높은 책임을 맡겨주시옵소서.
생각하면 서러운 자식들이옵니다. 아침이 되면 저희가 수저를 들고 대하는 식탁이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식탁이 되어야 하는 것이요, 먹고 입는 그 모양이 아버지께서 소망을 주실 수 있는 모양이 되어야 할 것이요, 누워서 자는 그 자리가 자기 일신의 행락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안식할 수 있는 보금자리요, 당신이 발판을 넓히기 위한 자리가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그야말로 심각한 생명의 길을 저희들에게 허락하여주시옵소서.
아버지, 저희들은 교회를 수습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한 무리이옵니다. 교회를 키워서 아버지 앞에 바쳐야 할 책임을 지고도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한 무리이옵니다. 이제 저희들은 내적인 세계를 대신하여 새로운 하나의 당신의 형상을 이루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를 사랑하옵니다. 하오니 하늘편에 서서 사탄과 대결할 아버지의 아들의 권위를 가지고 딸의 권위를 가지고 이 자리에 임할 수 있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에게 다시 한 번 반성의 기회를 주시옵소서.
이번 기간에 이렇게 모인 저희들은 승공이념과 사상을 무장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재 비판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아버지의 소원을 등에 지고, 아버지의 희망을 앞에 놓고, 아버지의 승리적 제물의 기반을 밑에 깔고 이 나라를 업고 책임을 다하여야 할 입장인 것을 이 시간 다시 한 번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앞으로 국가를 대신해야 하는 저희들은 저희들이 찾는 나라가 이 나라가 아닌 것을 알고, 저희들이 찾는 세계가 이 세계가 아닌 것을 압니다. 하오니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나라를 가리고 세계를 가릴 수 있는 책임을 하기 위해 이런 행로를 가고 있는 저희 자신들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은 하늘의 공의의 심판자와 같은 입장에서 선악을 분별하는 주체적인 사명을 다할 수 있게끔 아버지의 심정과 사정을 이어받기 위해 믿고 움직이는 무리가 되겠다고 전체를 새로이 각오할 수 있는 이번 기간이 되게 하시옵소서.
겉으로 움직여 가지고 겉으로 결실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것보다도 먼저 내적으로 공고한 정초석(定礎石)을 놓고 그 터전 위에 세워진 확고한 기반을 갖고 외적인 환경의 인연을 따라 나설 수 있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후의 기도 내용은 녹음이 되어 있지 않아서 정리하지 못했음)
말 씀
사람은 누구나 하늘이 바라는 터전을 갖지 못하게 되면 작아 보이는 것입니다. 불쌍해진다는 것입니다. 이때 불쌍하다는 기준은 천태만상으로 다를 것입니다. 어떠한 개인을 중심삼고 볼 때 그에게는 아버지가 있고, 어머니가 있고, 형님이 있고, 동생이 있을 것입니다. 또 형제가 없고 부모가 없지만, 세상적으로는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물질이면 물질을 풍부히 갖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요, 반면에 물질을 풍부히 갖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그 기준은 각양으로 다른 것입니다.
누가 제일 불쌍한 사람인가
그러면 불쌍한 사람 중에 어떠한 사람이 제일 불쌍한 사람이냐? 그 모든 것을 하나도 갖지 못한 사람입니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고 형제도 없고 친척도 없거니와, 자기가 외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그런 사람이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러한 불쌍한 자리에 처해 있는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랄 때, 그 행복은 어디에서 찾을 것이냐? 자기 개인을 중심삼고 기뻐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았다고 해서 행복할 것이냐 하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자기를 불쌍하게 느끼게 했던 요건들을 전부 다 이루어 놓고, 그 가운데에서 자기가 갖고 싶었던 것들과 더불어 기뻐할 수 있는 자리를 찾기 전에는 행복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행복하다 하더라도 그 행복은 무엇인가 모르게 일면의 불행의 여념에서 벗어날 수 없는 행복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조건적인 행복은 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전체를 대표한 중심적인 행복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결론입니다. 자기와 가까운 것을 놓고 볼 때도 그러한 불행의 자리도 있지만, 거기에 가중하여 그 개인을 중심삼은 나라마저 없다면, 나는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입장에 있다면 그는 더더욱 불행한 사람인 것입니다.
고아일지라도 사회환경이 잘 갖추어져 가지고 자선사업을 하는 단체라도 있는 국가가 있다면 그 고아를 국가에서 맡아서 키워 줄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인데, 고아로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국가마저 없다 할 때 그 나라도 없는 고아는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나라가 없고 종족이 없고 친척이 없고 부모가 없고 형제가 없고 혹은 가진 것이 없다면 이런 사람의 신세야말로 불쌍한 신세입니다. 그런 사람은 날 때도 불쌍한 사람이요, 자랄 때도 불쌍한 사람이요, 살 때도 불쌍한 사람이요, 죽어 가는 그날까지 승리라든가 영광이라든가 행복이라든가 하는 것을 자기 일신에 남길 수 없는 비통한 사람이 아니겠느냐. 이런 문제를 우리는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사람은 인연을 가지고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인연을 찾을 수 없는 사람이요, 태어난 자리는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서 자기의 자주적인 입장이나 존재로서의 주체성을 세울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세웠다 하더라도, 그 자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는 무시당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아무리 존재가치를 존중시하려 해도 그 가치가 설정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불행한 사람 중에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렇다면, 그런 사람에게 소원이 있다면 그 환경을 박차고 다른 세계에 가서 그 모든 것을 보충받을 수 있는 길이 있느냐? 그런 길이 있다면 소망이라도 가질 수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잃어버린 부모를 찾을 수 있는 소원이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잃어버린 형제를 찾을 수 있는 소원도, 잃어버린 국가를 찾을 수 있는 소원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그렇듯 고독한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만일 부모를 찾을 수 있는 길이 있고, 형제를 찾을 수 있는 길이 있고, 나라를 찾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에 죽음과 어떠한 환경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몇천만 번의 희생을 각오하고라도 그 길을 갈 것입니다. 이왕에 비참한 고아의 몸이 되었으니, 그 몸을 몇백 번 투입시켜서라도 찾을 수 있는 길만 있다면, 그 길을 아니 갈 수 없을 것입니다. 죽더라도 그 길을 아니 갈 수 없다고 결의를 할 것입니다.
우리의 환경은 과연 행복의 터전인가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여러분이 자고 깨고 하는 그 환경과 여러분이 대하고 있는 심정의 대상권을 바라볼 때, 과연 여러분이 지니고 있고 여러분의 울타리처럼 보이는 그것이 과연 여러분을 보장시켜 줄 수 있는 울타리가 되고 스스로 자인할 수 있는 그런 소망의 상대적 여건들이냐, 또 현재 여러분이 서 있는 그 자리가 과연 내일의 행복의 터전이 될 수 있는 그런 무엇이 되겠느냐를 생각해 볼 때, 자신의 습관성을 두고 볼 때는 그런 것 같고, 혹은 오늘날의 어떠한 관계와 인연을 통해서는 그런 것 같지만, 그 내용을 헤쳐 가지고 분석해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이 슬픈 운명을 갖고 태어난 후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또 인간이 있는 자리가 진정한 행복의 길이 못 된다는 것과 행복이 결실된 자리가 못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가까운 것이 행복의 요인이 되지 못하고, 그것이 도리어 내 자체가 가까이할 수 없는 그 무엇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런 것을 느낄 수 있는 자리에 서 있다면, 그것이 내가 남겨야 할 것이요 내가 지녀야 할 것이라면 좋겠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지닐 수 있는 것이 못 되고 남길 수 있는 것이 못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니고 남길 수 있어야 되는데, 내가 오늘의 환경에서 새로운 환경을 가릴 수 있는 그 무엇이 될 수 없다면, 그 환경과 싸워야 합니다. 환경과 싸울 길이 있다면, 내가 지금 가진 환경을 넘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현재 갖추어진 환경을 중심삼고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있는 사람도 역시 불쌍한 존재입니다.
우리가 인간 조상이 타락했다는 것을 공인하는 자리에서 볼 때, 타락의 동기도 우리가 원치 않은 것이요, 타락의 과정도 우리가 필요로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의 결과도 우리가 상관할 수 없는 것입니다. 태어나고 보니 이미 그러한 인연의 세계였고, 태어나고 보니 이미 죽은 존재였고, 태어나고 보니 이미 결과의 세계에 포위되어 있었습니다. 그 포위된 권(圈)을 두고 보니 세계권이 있고, 국가권이 있고, 민족권이 있고, 종족권이 있고, 가정권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또 그 가정권 가운데에는 내가 피살을 이어받은 어머니가 있고 아버지가 있으며, 내가 피살을 이어 놓은 처자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문제가 심각해요.
그러면 그것을 어디서부터 처리할 것이냐? 먼 곳에서부터 처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가 문제가 아니요, 국가가 문제가 아니요, 친척이 문제가 아닙니다. 제일 가까운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예수님은 이러한 역사성을 뚫어 보고 그 최고의 귀일점과 최고의 출발점, 그 키 포인트가 되는 곳이 자신과 제일 가까운 곳이라는 것과 그것을 살려 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절절히 느끼신 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죽어야 합니다. 너도 죽도 나도 죽고 다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다 쓸어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남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죽을 바에는 어떤 자리에서 죽어야 할 것이냐? 그냥 이 자리에서 죽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죽는 데는 어떠한 자리에서 죽을 것이냐? 이 타락권을 벗어난 자리에서, 그 동기의 인연을 탈피한 자리에서, 그 결과권을 타파한 자리에서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길이 있다면, 죽을 바에는 그것이라도 탈피한 자리에서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선이 출발할 수 있는 자리
그러면 그런 자리는 어디일 것이냐? 천주를 창조한 창조주가 있다면 그 창조주가 경계선을 넘어서서 바라보는 자리일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선할 수 있는 본연의 기원이 되는 자리일 것이요, 죽어지지 않을 수 있었던 본연의 인연이 깃든 곳일 것입니다. 그곳은 창조주가 계시는 경계선 너머,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경계선 저 너머의 창조주가 바라는 터전, 악이 깃들지 않고 선의 기원이 출발할 수 있는 터전인 것입니다.
그 터전에 창조주와 하나된 선한 부모가 있을 것이요, 선한 자녀가 있을 것입니다. 또한 거기에 선한 종족이 있을 것이요, 선한 나라가 있을 것이며 선한 세계가 있을 것입니다. 이 타락된 자리에서 혼자라도 그런 자리를 모색하고 싶어하는 현재 우리 인간이 아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필시 그러한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 이 땅 위에 오셨던 분입니다. 그는 오되 혼자 온 것이 아닙니다. 태어나되 혼자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선한 인연의 주체 되시는 하나님과 더불어 인연이 되어 태어났고, 하나님뿐만이 아니고 선한 부모의 인연을 통해 태어났던 것입니다. 선한 부모의 인연을 통해 선한 부부와 선한 자녀, 그리고 선한 종족과 선한 민족과 선한 세계를 대신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 절대적으로 자각할 수 있는 자리에 오셨던 분이 예수라는 거예요.
그러면 예수가 죽을 때는 어떤 자리에서 죽었어야 되느냐? 여기에서, 이 사망세계에서 죽는 것이 아니라 그런 자리에 가서 죽었어야 합니다. 그 자리를 살아서 못 가게 되면 죽어서라도 가야 합니다. 그 자리가 이 세계에서 찾아야 할 자리일진대, 이 세계에서 그 자리를 찾을 수 없거들랑 이 세계에 그러한 소원의 터전을 깔아 놓고 죽어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죽을 때는 하나님이 눈물을 짓고, 본성의 세계와 인연된 종족이 있으면 그 종족이 눈물짓고, 나라가 눈물짓고 세계가 눈물짓는 자리에서 죽어야 한다. 종족의 기원을 확고히 세워 놓고 죽어야 되겠다'고 하는 마음을 갖고 이 세계에서 출발하는 자리가 있어야 될 것이 아니겠어요? 오늘 우리가 그런 자리를 닦아 놓지 못하게 되면, 인간 가운데서 누구라도 그런 자리를 닦기 위해 싸우고 몸부림치며 죽어 갈 수 있는 역사적인 내연이 남아져야 되는 것입니다.
사탄에 대해 원수 갚는 방법
싸우는 것은 무엇 때문에 싸우느냐? 그 세계 때문에, 그 나라 때문에, 그 종족 때문에, 그 가정 때문에, 그 부모 때문에, 그 형제 때문에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형제와 부모와 처자가, 혹은 그 종족, 민족, 국가가 나와 인연되어 있는 이 세계에 그냥 그대로 연결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우리는 사랑의 원수의 족속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가까운 것을 쳐 나가야 됩니다. 탕감원칙으로 보면 그것은 이미 빼앗긴 터전 가운데서 맺혀진 결과들인데, 그것을 하나님은 그냥 그대로 이어 주시려니 그런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빼앗겼으니 다시 빼앗아 오라는 것입니다. 빼앗아 오는 데는 그 세계를 대표한 자로서 빼앗아 오라는 것이요, 그 나라를 대표한 자로서 빼앗아 오라는 것이요, 그 종족을 대표한 자로서 빼앗아 오라는 것이요, 그 가정을 대표한 자로서 빼앗아 오라는 것입니다. 남편이자 가주(家主)요, 가주이자 종주(宗主)요, 종주이자 나라의 주권자요, 나라의 주권자이자 세계의 통치자로서 그러한 권한을 가지고 하나님 대신, 세계 대신, 나라 대신, 종족 대신, 가정 대신, 아들 대신, 전체를 대표하고 대신하는 자리에서 빼앗아 오라는 것입니다. 빼앗아 오는 데는 그 세계의 사상을 집어 넣고, 그 나라의 사상을 집어 넣고, 그 종족의 사상을 집어 넣고, 그 가정의 전통적 사상을 집어 넣고, 그 가정의 가장이면 가장, 아들이면 아들의 사상을 일목요연하게 집어 넣어 가지고, 이 세계와는 완전히 상관없는 사람을 만들어 가지고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사탄이 하나님의 아들딸을 빼앗아다가 자기의 아들딸로 만들었으니, 사탄세계의 아들딸을 빼앗아다가 색다른 하늘편의 아들딸로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명을 갖고 이 땅을 책임진 입장에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싸움의 길을 개척해 나오는 분이 메시아입니다. 그러한 사상을 가지고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대표자가 하나님이 첫번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겠어요?
그러면 어떤 것을 빼앗아 와야 하느냐? 빼앗아 오는 데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사탄이 제일 사랑하는 것, 사탄이 자랑하는 것을 빼앗아 와야 합니다. 사탄이 자랑하는 것을 빼앗아 오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탄이 자랑하던 것으로 사탄을 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수갚는 방법입니다. 사탄의 아들을 데려다가 사탄을 치게 하는 것입니다. 원수의 자식을 데려다가 그 자식으로 하여금 원수를 갚게 하는 것입니다. 그 자식이 원수를 갚는 데는 그 원수가 자기의 아버지인 줄 알고 갚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아버지인 줄 모르고 원수를 갚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타락한 인류가 사탄의 아들딸로 태어난 근본을 탕감하기 위한 제1차적인 노정입니다. 이건 틀림없어요.
그러면 이 시대에 태어난 나 자신이 이 환경을 붙안고 그냥 연결될 수 있으면 좋을 것인데 이 환경을 어느누군가가 분별시켜 놓은 역사적인 터전이 없는 한 천국은 나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이 역사노정을 가려 가야 할 섭리의 출발 기점인 것을 아시기 때문에, 지금까지 빼앗아 오는 놀음을 해 나오시면서도 대번에 아들을 빼앗아 오시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탄에게서 아들을 빼앗아 오려면, 에덴 동산에서 종을 잃어 버렸으니 잃어버린 그 종을 찾아 세우는 일부터 해야 되는 것입니다. 원통한 것은 양자라는 명사가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영계로 보면 중간영계와 같은 것입니다. 양자라는 것은 본래 없었습니다. 양자라는 것은 하나님이 오늘날 구원섭리라는 것을 들고 나오시는 데 있어서 다리를 놓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좋을 아들의 자리에 세워 대(代)를 잇게 하는 법은 없습니다. 종을 세워 대를 잇게 하면 거기에는 무엇인지 모르게 후회를 남기게 됩니다. 대를 잇는 데에는 종보다는 양자가 조금 나을 것이 아니냐, 이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종보다는 양자가 나아야 됩니다. 또 양자보다는 아들이 나아야 되는 것입니다.
양자가 가져야 할 마음 자세
그러면 어떻게 해서 단계를 이루어 발전시켜 나갈 수 있겠느냐? 종 중의 종이 아들을 위해서 죽을 수 있는 계통을 들고 나왔을 때에는 아들대신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기 때문에,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 아들 대신 죽음의 자리를 거쳐갔다 할진대는, 그의 제사를 아들의 제사와 같이 지내 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그렇잖아요?
종이 주인의 사랑하는 아들과 같이 싸우는데 아들을 앞세우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싸우다가, 아들과 같이 싸우지만 그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중적인 싸움을 하는 마음을 갖고 싸우다가 아들보다 먼저 맞아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그 부모가 자기 자식이 죽은 날 제사를 지내고 그날을 추모하게 될 때, 자기 자식의 제사만을 지내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식의 제사를 지내기 전에 종의 제사상을 차려 놓고 같이 제사를 지낸다는 것입니다. 또 제사를 지낼 때는 그 종에게 `오늘은 너도 기념하는 날이다. 오늘은 너도 내 마음 앞에 잊혀질 수 없는 날이 아니냐'고 하며, 자기 아들과 같은 입장에 세워 놓고 아들 이상의 부모의 심정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그런 종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 온다면, 아들은 살아 오지 못하고 그 종이라도 살아 온다면 부모는 그 종을 세워서 양자로 책정할 것입니다. 그런 심정적 터전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종의 자리에서 어떻게 해야 양자의 자리로 올라가느냐 할 때, 아들보다 먼저 죽지 않고는 못 올라갑니다. 종에서 양자로, 아들을 위해서 진짜로 죽어야 아들이 없는 자리에서 아들의 자리를 이어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들 대신 대를 이을 수 있는 중간 계층을 찾아 나서게 될 때는 양자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양자의 종자를 어디에서 찾을 것이냐? 아들이 없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종 가운데에서 찾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양자라는 말은 심정적으로 아들을 대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복귀의 노정에서 보다 가치 있는 것을 위해 선두에서 싸우고, 보다 가치 있는 중심을 보호하기 위해서 자기가 깎이고, 자기가 희생되더라도 중심을 책임질 수 있는 이중적 투쟁의 보호권을 가지고 생명을 바치는 데서만이 복귀의 운명은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여러분이 성경 역사를 두고 보면 잘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이 세계에 있어서 한 나라의 주권자가 되는 것도 그렇습니다. 밖으로는 원수들을 대해 싸우고 안으로는 백성을 위해 싸우며, 죽을 고비를 넘어가는 것을 당연한 생애의 노정으로 알고 싸워 나가 가지고, 죽지 않고 남아지게 되는 그 자리가 나라가 망하지 않는 자리가 되면 그는 그 나라의 주권자가 되는 것입니다. 틀림없다구요.
이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타락한 세계라 할지라도 그러한 터전을 갖고 나오면…. 하나님이 찾아 나오는 복귀노정이 그러함으로 말미암아 상대적 세계에서도 그런 내용을 갖추고 나올 때는, 반드시 중심자가 되고 고차적인 권위의 자리를 차지하는 데 아무런 이의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복귀의 노정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양자는 직계의 아들과 다른 것입니다. 양자는 만약 직계 아들이 오게 되면, 밤이나 낮이나 어느 때나 서슴지 않고 자기의 모든 전체를…. 아기인 직계 아들이 태어나게 되더라도 자기의 모든 소유물을 직계 아들에게 갖다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소유물이 자기 것이 아니거든요. 그렇잖아요? 양자의 입장에 서 가지고도, 양자로 책정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직계의 아들이 태어나게 되었을 때에 `요놈의 자식이 왜 태어났노?' 이러면 안됩니다. 이것은 사탄의 근성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지을 때 천사장이 그 아담을 보고 좋아해야 하는 것입니다. 좋아해야 할 텐데 `왜 태어났노?' 이랬다가는…. 양자는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양자는 아들을 보호해야 되는 것입니다. 직계 아들이 복중에 있을 때에도 `아이구 안 태어났으면 좋겠는데…' 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부모로 모시지만, 그 양부모가 나를 맞음으로써 심정과 뼛골에 사무치게끔 할 수 있는 행복의 자리요 희망의 결실체로서 바라볼 수 있겠느냐?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럴 수 없는 거라고요.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봐도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자들은 절대적인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 앞에 `나 말고 직계 아들을 보내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해야 됩니다. 그러한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이러한 인연의 도리를 남기기 위해, 양자권을 이어받을 수 있는 입장에 있었건 유대교는 하늘을 향해 `아들을 보내 주시옵소서' 하고 바란 것입니다. 그 아들이 오게 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 우리 모두 영접할 것이라고 하면서 이스라엘 나라에 어서 오소서 하고 간구했던 것입니다.
양자는 아들이 태어난 줄을 알았다면, 아들이 왔다는 것을 알았거들랑, 소문만 듣고도 달려갈 수 있는 마음에 언제나 사무쳐야 됩니다. 아들이 왔다는 것을 틀림없이 알았으면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리고도 서슴지 않고…. 그것이 유대교와 이스라엘의 선민이 해야 할 책임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그러한 분이 지상에 태어나게 될 때는 양자가 직계 아들의 인연을 이어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게 오늘 우리 원리에서 가르쳐 주고 있는 가인 아벨의 문제입니다.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그게 가인 아벨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양자의 책임을 해야 했던 유대교와 기독교
예수라는 분은 아버지로부터 받으려고 오는 것이 아니라 누구한테 받으러 오느냐? 양자에게서 받으려고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수 천년 동안 수고하신 것이 뭐냐 하면 양자권을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준비하신 이스라엘권, 양자들은 전부 다 내가 복받겠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복받겠다고 하는 것은 망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복받겠다고 하는 패는 망하겠다는 패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복을 받겠다고 할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갖고 있는 복을 오시는 주님 앞에 넘겨 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이 이어받아 해야 할 책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유대교는 그들의 자리를 그냥 그대로 사수하려고 야단했고 이스라엘 나라도 그냥 그대로 사수하려고 야단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빼앗으려고 하는 예수 앞에 사탄 세계가 막고 있었던 것입니다. 알겠어요?
양자의 권을 사탄세계가 막고 있으니 다시 빼앗아 와야 됩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 앞에….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 앞에, 즉 양자에게 그 축복을 넘겨 맡긴 것이 한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한이라는 거예요. 요놈의 자식들…. 그래서 그들이 2천년동안 수많은 민족의 총칼에 쓰러지고 말굽에 짓밟힌 역사적인 줄거리를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비사가 아니라 사실이예요.
그러다가 비로소 1948년을 기해서 이스라엘 국가가 독립을 했는데, 독립을 했다 하더라도 자주적인 독립을 한 것이 아닙니다. 전쟁 마당에서 독립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역사가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국민이 해야 할 것은 무엇일 것이냐? 이제부터 다시 세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세계의 부를 가진, 세계의 권한을 가진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이스라엘은 그 후손을 중심삼고 해원성사의 때를 못 갖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외적인 나라가 되었기 때문에, 국제정세를 중심삼고 외적인 나라가 되었기 때문에 외적인 경제권을 부여받는 것입니다. 그것이 물질 축복이예요. 그래서 지금 외적인 세계의 권세를 가진 자들이 대개, 세계적인 책임자들 가운데 3분의 2가 유대 계통의 핏줄을 받고 태어난 자손이라는 거예요. 역사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떡 버티고 나가다가는 큰일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는 하나되어 가지고 뭘해야 되느냐? 아들이 상속권을 찾으려 할 때에 반대하는 원수와 싸우기 위해 그 나라와 교회가 몽땅 동원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동원되는 데는 어떻게 동원되어야 하느냐? 오시는 아들을 위해 동원되는 것입니다. 아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자리가 있거든, 자기가 피해를 입으면서라도 내적으로 그 아들을 보호하고 외적으로 투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때 싸우는 것은 주기 위해서 싸우는 것입니다. 이 싸움은 달라요. 옮겨 주기 위해서 싸우는 거예요. 옛날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옮겨 주기 위해서, 옮겨 주는 전통을 세우기 위해서 싸우는 패가 가인인 동시에 양자권에 있는 패입니다.
옛날 종으로서 싸운 때는, 즉 종에서 양자가 되기 위해 싸울 때의 목적은 받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입장이 달라졌습니다. 지금 때는 양자가 아들을 위하여 주기 위한 싸움을 하는 때입니다.
그러면 종은 어떤 자리에 있는 것이냐? 종과 양자가 다른 것은 무엇이냐? 종은 죽더라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있지만, 양자는 자연히 받았기 때문에 죽더라도 옮겨 주어야 됩니다. 다르다구요. 어느 쪽이 낫느냐면 그래도 양자가 종보다 낫습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나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싸우고 유대교가 싸우고 기독교가 싸우는데, 싸우는 패가 복을 받기 위해 싸우는 게 아닙니다. 알겠어요? 그런데 지금까지도 예수 믿고 천당가겠다고 합니다. 이것이 믿는다는 패들의 사상이라구요. 그것은 끝날에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 기독교는 다 망한다구요.
본질적인 원칙을 따져 볼 때에, 양자는 이미 받았기 때문에 줘야 되는 것입니다. 전부 다 줘야 돼요. 자기 생명도 아들 앞에 줘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복을 받게 하기 위해서 믿는다고 해야 될 게 아녜요?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의 신앙은 뭐냐 하면, 내가 구원받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다는 거예요. 이거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의 뜻을 이루게 해줘 가지고 예수가 기뻐한 후에 그가 나를 기쁘게 해주면 나도 그때 기뻐하겠다는 게 아니예요.
로마제국을 대신하는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권을 대해 가지고 생사의 결단을…. 천만 명이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예수가 죽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그 길을 막기 위해서 싸워야 했습니다. 주기 위해서 싸우는 자리에 섰더라면, 양자가 만약 아들에게 완전히 다 주었다면 그 후에는 어떻게 될 것이냐? 다 주었다면 어떻게 될 것이냐? 그 아들이 쫓아낼 것이냐? 결국 양자가 아들에게 다 주었다고 해도 그것이 다 옛날의 아들의 것이기 때문에, 평면적으로 볼 때 아들이 받긴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되돌려 받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물론 양자가 줘서 받긴 받았지만 근본적으로는 아들의 것이라는 거예요.
그렇지만 아들이 양자에게 `이것을 관리하기 위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렀느냐? 개인이 희생되고, 가정이 희생되고, 종족이 희생되고, 민족이 희생되고, 국가와 세계가 동원되어 희생되면서 이것을 이렇게 관리해 가지고 나에게 넘겨 준 은사를 무엇으로 갚아야 하느냐?'라고 할 것입니다. 아들이 그것을 모르겠어요? 안다는 거예요. 그러니 `너하고 나하고 같이 살자. 네가 북쪽에 있거든 나는 남쪽에 있고, 네가 동쪽에 있거든 나는 서쪽에 있겠다'고 할 것입니다.
이럼으로 말미암아 원수권내에서 내 편과 네 편으로 나누어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편 끝에 원수가 있을 텐데 하나님이 내 편에 계시기 때문에, 사탄은 네 편 뒤에 있을 것이 아니냐.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하나님과 사탄이 같이 있을 수는 없거든요. 그렇잖아요? 사람을 놓고 서는 데는 내 편 네 편권에 서는 것입니다. 만일에 양자가 없었다면 아들 뒤에 설 것 아닙니까? 그런데 양자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양자 나라가 있다면 양자 나라 끝에 사탄이가 선다는 것입니다. 또한 양자 세계가 있다면 그 끝에 사탄이는 설 것입니다. 그것이 가인의 입장입니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겠다고 하며 나선 이유
우리 통일교회는 무슨 일을 하자는 단체냐? 줘 가지고 후회하는 것이냐? 주어 가지고 고맙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보시게 될 때 이들을 갈라놓을래야 갈라놓으실 수 없는 것입니다. 갈라놓게 되면 아들이 죽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생사의 문제를 중심삼고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아들만 데려갈 수 없는 것입니다. 좋게 하더라도 아들만 좋게 할 수 없다구요. 살리더라도 아들만 살려 줄 수 없는 것이요, 죽이는 데도 아들만 죽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인연이 설정되어야 할 원칙적인 기대가 이스라엘권이었던 것입니다. 예수가 죽을 때 72문도도…. 그렇지요? 예수가 죽게 될 때 이스라엘을 대표한 베드로 야고보 요한 등 열두 제자도 죽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가 죽은 후 열두 제자는 욕살박살 다 죽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가운데 한 사람은 남았습니다. 사랑을 대표한 요한만 남고 다 학살당한 거예요. 그렇지요? 그러면 왜 사랑의 대표인 요한만 남았느냐? 사랑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마저 없어지면 기독교는 남아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믿음의 조상이요 야고보는 소망의 조상이요 요한은 사랑의 조상이지만, 그 중에 예수 앞에 사랑의 제자였던 요한만이 자기의 생애를 다 마치고 갔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역사를 거쳐왔어요.
이처럼 둘이 깨져 나갔기 때문에 다시 이것을 회복해야 됩니다. 예수 앞에 반기를 드는 유대교를 바라볼 때, 예수는 홀로 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종의 역사도 깨져 나갔고 양자의 역사도 깨져 나갔습니다. 그러니까 종의 역사의 터전을 누가 닦느냐? 이것을 닦기 위해서 베드로 야고보 등 발판을 만들어 봤지만 그들이 제멋대로 놀아나 버린 것입니다. 그렇게 제멋대로 놀아난 터전 위에 하나님의 영원한 주초(柱礎)를 놓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할수없이 예수 자신이 그 놀음 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놀음을 하려고 했는데, 그것을 하라고 놔 두지 않고 죽여 버렸습니다. 죽여 버렸지만, 예수는 그런 사상을 가지고 죽어 간 것입니다. `내가 죽되 종의 전통을 대표한 자리에서, 양자의 전통을 대표한 자리에서, 또한 아들의 전통을 이어받아 그것을 대표한 자리에서 죽어 가야 되겠다. 뿐만 아니라 부모를 대표한 자리에서, 하나의 주권자를 대표한 자리에서, 세계의 통치자를 대표한 자리에서 죽어 가야 되겠다'고 한 것입니다.
전체를 대표한 자리에서 심정적인 일치점을 귀결시켜 가지고, 이 땅가운데서 죽지만 이 땅을 벗어난 입장에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었다는 그 결정을 지어 놓고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재출발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예수가 십자가에 나선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지요? 이것이 예수가 십자가에 나선 이유인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전부다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종의 자리에서 양자의 자리를, 양자의 자리에서 아들의 자리를 이어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순교의 종교가 된 것입니다. 그거 알겠지요?
이렇게 수천년 동안, 기독교는 지금까지 예수의 사상을 중심삼고 싸우면서 따라 나온 것입니다. 예수의 사상은 무조건 희생하라는 것입니다. 무조건 희생하라. 희생을 하는데 조건적인 희생을 할 수 있어요? 무조건적인 희생의 기준을 세우지 않고는 종의 자리, 양자의 자리, 아들의 자리를 거쳐 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조건을 세울 때는 양자의 자리로 갈 수 있는 조건을 세우려고 하지, 누가 종의 자리로 가는 조건을 세우려고 하나요? 또 아들의 자리로 나갈 수 있는 조건을 세우려고 하지, 누가 양자의 자리로 나가는 조건을 세우려고 하겠어요? 그러니까 무조건 내려가라는 것입니다. 무조건 내려가라는 것은 밑바닥, 종의 자리에서부터 터전을 닦아 세우라는 것입니다. 조건을 세우기 위한 복종이 아닙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죽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한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볼 때, 이 답변이…. 예수가 한 말의 표준이 무엇이냐?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것입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는 베드로와 야고보 등, 제자들을 대해 수건을 동여매고 발을 씻기는 등 종 노릇을 했던 것입니다. `내가 섬김을 받으러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했으니 그게 종 아니예요? 그 기반이 안 닦아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원칙은 마찬가지입니다. 주인을 위해 죽는다는 마음, 그 마음만 철저하게 개인적이요, 가정적이요, 종족적이요, 민족적이요, 세계적이요, 기독교권이 되면, 오시는 주님 앞에 예수가 올 때 반역하던 이스라엘 민족과 같은 민족은 안 될 것입니다. 현재에 남겨야 할 터전도 그런 자리면 안 될것이요, 미래에 있어서도 예수님을 쫓아낸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권과 같은 터전을 만들어 놓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 사상이 일념화하고 일치화하고 세계화한 기독교권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조건 희생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희생하는 데는 하나님한테만 희생하면 돼요? 무조건 희생하는 것이 하나님한테만 희생하는 거예요? 사탄한테도 희생하는 겁니다. 희생당하는 거예요. 그러한 사상의 모체가 기독교라구요. 만일 기독교 자체가 그러한 자세만 가졌으면 앞으로 오시는 주님 앞에는 핍박의 길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는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습니다. 기독교 자체가 망하고자 하면 기독교는 발전하는 것이요, 기독교 자체가 흥하고자 하면 기독교는 망하는 것입니다. 자주적인 입장에 선 기독교는 망하는 것이요, 순응적인 입장에 선 기독교는 흥하는 것입니다. 또 봉사적인 입장에 선 기독교는 흥하는 것이요, 대접받고자 하는 입장에 선 기독교는 망하는 것입니다. 틀림없어요. 이 원칙에 따라서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복귀의 길에서는 자기 집안식구가 원수
그 다음엔 뭐라고 했느냐면, `네 집안식구가 원수다'고 했지요. 왜 집안 식구가 원수냐? 자, 보라구요. 주님은 세계시대에 오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시는 건 가정시대에 살려고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민족시대나 국가시대에서 살려고 오시는 것이 아니라 세계시대에서 살려고 오시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분을 맞으려면 가정시대에서 세계시대까지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주님이 국가시대에 오시는 것이 아니라구요. 이스라엘 국가의 기준을 중심삼고 예수가 와서 실패했기 때문에, 다시 오시는 주님은 더 큰 세계적인 기대를 중심삼고 복귀해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영적으로 승리한 그 국가기준을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계시대까지 나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니 기독교가 집시의 종교가 된 것입니다. 방랑의 종교라구요. 정착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정착을 요구하지 않는 거라구요. 보따리를 싸 가지고 가야 되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세계까지 가려면 국경을 몇 개 넘어야 되느냐? 섭리역사가 오늘날 이 세계까지 나오는 동안 수많은 사탄 국가와 싸우고 수많은 국경을 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국경을 넘어야 됩니다. 아브라함 같은 양반은 몇 나라의 국경을 넘나들었습니다. 그처럼 국경을 넘어야 되는 것입니다.
가야 됩니다. 죽음의 위협을 받더라도 가야 되는 거예요. 그러려니 자리를 잡고 살아서 되겠어요? 죽을 각오를 하고 가야지 가만히 있어 가지고 되겠어요? 길을 떠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길을 떠나는 데는 그 길이 잘사는 길인가요? 그 길은 제일 가까운 사람이 원수가 되는 길입니다. 여편네가 원수이고, 자식이 원수이고, 친척이 원수입니다. 그들을 짜르고 나서야 돼요.
그래서 아브라함도 갈대아 우르를 떠났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환경을 쳐라. 환경을 잘라라. 이것을 못 하는 사람은 망합니다. 이것을 못 하는 사람은 전통적 사상의 길 앞에 배치되는 사람이예요. 이것은 선생님 말이 아니고 사실이 그렇다구요.
아브라함이 떠나자고 할 때 어서 가자고 했던 사라 같은 사람을 생각해 보세요. 아브라함이 사라에게 바로 앞에서는 남매 사이라고 하자고 했을 때 사라가 어떻게 했겠어요? `이놈의 영감, 그렇게 고생을 시켜서 끌어내더니만 이제는 여편네는 그만두고 오빠라고 부르라네' 이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길을 가다가 소나기가 와도 그냥 갔을 것입니다. 집시의 무리가 된 그들에게 누가 밥 한 그릇이라도 갖다 주었겠어요? 오늘은 이쪽으로 내일은 저쪽으로 돌아다니는 그런 생활을 했는데, 그렇게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사라는 아브라함을 대해 `이놈의 영감, 밤에 보나 낮에 보나 아침에 보나 재수없는 영감이 됐어. 그런 주제에 또 남편인 자기를 오빠라고 부르라니…' 이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 임자네 여편네들 같으면 다 도망쳤을 거라구요.
그러한 수난을 거쳐 나오는 가운데서도 사라는 아브라함의 소망의 길과 일치될 수 있어서, 아무런 상충도 않고 하나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상적인 주체가 있을지라도 이상적인 상대가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상적인 주체인 아브라함 앞에 이상적인 상대가 나왔는데 그 이상적인 상대를 치려고 할 때는, 완전한 이상적인 주체 앞에 완전한 이상적인 상대형이 있는데 이것을 치려 할 때는 하나님께서 `야 이놈!'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바로의 궁중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바로의 행동을 막으시게 됐느냐? 절대적인 중심 주체 앞에 있는 절대적인 상대는 보호해 주어야 할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바로가 접근하려 할 때 `이놈!'하며 제지시켰던 것입니다. 이상적인 남편을 갖고 있으면 손해보는 게 아니예요. 거기에 관계되어 있는 만큼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관계되어 있다 하면 빼앗아 오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시합을 해서 지는 날에는 지금까지 닦아 놓은 승리의 기준도 빼앗기는 거예요. 빼앗겨요, 안 빼앗겨요? 그냥 있을 수 없습니다. 지게 되면 내려가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바로도 지게 되면 내려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가 갖고 있던 것을 다 가져 가야 된다구요. 그래 가지고 그가 좋아하려다가 섭섭함을 느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 가지고 하늘은 길을 닦아 나온 것입니다.
그래 여러분, 지금까지 나온 걸 생각해 보면 집안식구가 원수예요, 원수 아니예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내가 옛날에 삼팔선을 넘어올 때, 다리 부러진 큰 녀석을 업고 나오면서 `이것이 집시의 길이구나. 오늘은 이 골짜기를 지나 저 산정을 넘어야 되는 것이다. 넘기 싫다고 안 넘으면 망한다. 귀찮다고 해서 버리고 갈 수 없다. 죽어도 같이 죽어야 된다' 그런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6.25 동란 때 삼팔선을 넘어 피난 길 가던 그것…. 만약에 우리가 피난을 가야 한다면, 공산당에게 밀려 통일교회 패가 피난을 가야 한다면 어디로 갈 것이냐? 선생님은 그것도 생각하고 있는 거라구요. 만약에 공산당이 우세해서 우리를 치는 날에는 우리 통일교회 패는 어디로 피난을 갈 것이냐, 그것 생각해 봤어요? 뭐 남한내에서 어디라도 가지. 저기 설악산으로 가지…. 그런 것을 생각해 봤어요? 어디로 갈 거예요? 뭐 무주 구천동으로? 뻔하다구요.
여러분, 보라구요. 한국을 중심삼고 사탄세계의 소생 장성 완성권이 다 달라붙어 있습니다. 김일성이가 있는 북한이 있지요? 소련이 있지요? 중공이 있지요? 세 원수가 다 우리 한국에 붙어 있다구요. 또, 중공을 중심삼고 아시아 전역이 연결되어 있고, 지금은 인도까지 소련과 손을 잡고 불가침 조약을 맺고 나오는 판입니다. 이렇게 공산권이 만들어져 있는데 어디로 피난 갈 거예요? 그거 생각해 봤어요?
만약 망하는 날에는 세계의 통일교인은 비참해지는 것입니다. 통일교인은 어디로 갈 것이냐? 미국에 가도 거기에 공산당이 있으면 있을 수 없는 것이요, 어떤 섬나라에 가 있더라도 통일교인이 거기에 살고 있는 줄을 알면 공산당들이 습격해 올 것입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할 것이냐? 그것 심각한 문제라구요. 그런 것을 생각하면 여러분이 뭐 여편네, 자식을…. 그런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미국도 우리들의 친구가 아니라구요.
그러니 집안식구가 원수예요. 원수예요, 친구예요? 떠나야 할 입장인데도, 판세는 이미 틀렸는데도, 빨리 보따리를 싸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베드로가 `선생님이여, 선생님이여, 그러지 마옵소서' 했을 때, 예수가 `사탄아, 물러가라'고 한 말이 맞는 말이예요, 안 맞는 말이예요? 예수는 보따리를 싸매 가지고 문제를 해결짖기 위한 조약을 세우고 하나님 앞에 약속을 했는데, 베드로가 수작을 하려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이놈아, 역사적인 원통한 사연을 안 네가 반역의 깃발을 들어? 이 때려잡을 녀석아'라고 했던 거예요. 예수의 그 마음을 알겠지요?
거기서부터 기독교는 세계적인 유랑의 노정을 출발한 것입니다. 로마가 들이치니까 살려면 도망을 가야지요. 그리하여 기독교는 세계적으로 퍼졌던 것입니다. 사탄은 그것을 때려잡으려고 자기 본바탕을 넓게 만들었지만, 기독교는 세계에 퍼지며 커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나라에 가 보게 되면, 지금도 기독교인이 13 퍼센트밖에 안 됩니다. 로마도 기독교 국가가 되었고, 세계의 다른 많은 나라도 기독교 국가가 되었지만 이스라엘 나라에는 아직까지 기독교인 13 퍼센트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에는 아직까지 유대교가 갈 길을 가로막고 있는 거예요. 지금도 그들은 `예수는 이단의 대표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보다 나을 수 있는 자리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 법입니다. 또 내 집안 식구가 원수라는 것입니다. 선생님 자신도 거기에 딱 부딪히는 거예요. 최후에 어떤 결론을 지어야 하느냐? 내가 아브라함보다 낫지 못하면 안 되는 것이요, 모세보다 낫지 못하면 안 되는 것이요 또한 노아보다 낫지 못하면 안 되는 거예요, 예수보다 낫지 못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보다 나을 수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냐? 그걸 생각해 보라구요. 내가 세계를 몽땅 잡아 한꺼번에 제물 드릴 수 있는 자리에 서면 나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의 길입니다. 그 다음에는 예수가 하나님 앞에 어머니 아버지를 제물로 못 드렸고 처자를 제물로 못 드렸는데, 그걸 해야 되는 겁니다. 예수보다 나을 수 있는 길은 하나님 앞에 세계를 몽땅 제물로 바치는 길과 자기의 아들딸과 어머니 아버지를 절대 순종하는 자리에서 잡아 제물로 바치는 길, 이 두 길밖에 없습니다.
예수보다 나을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처자와 부모를 따로따로가 아니라 한꺼번에 제단에 붙잡아 놓고…. 어머니와 아버지, 또 자기 아내와 아들까지, 나아가 자기 자신까지 뜻을 위해서 하늘 앞에 바쳐지기를 바라야 됩니다. `하나님이여, 저희가 뜻을 위해서 이렇게 제물로 바쳐지고자 합니다'라고 해야 됩니다. 바치는 데는 누가 바치느냐? 어머니 아버지를 잡고 아내를 잡고 그 다음에는 아들딸까지 잡아서 제물로 바치고 나중에는 어떻게 하느냐? 자기까지 제물로 바쳐야 됩니다. 제물은 오시는 주님의 길을 닦아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어머니 아버지 자식을 모두 칼로 찔러서 제사지내 놓고 그 다음에는 자기까지도 예수의 해원성사를 위해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 제사는 오시는 주님이 하늘 앞에 드려야 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것 이상으로 드려야 합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부모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하늘나라의 부모를 칼로 찌르지 않았느냐, 하늘나라의 낭군을 칼로 찌르지 않았느냐, 하늘나라의 아들딸을 칼로 찌르지 않았느냐, 그것을 내 일생에서 탕감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찌를 수 있는 길을 자처하는 것이 하늘 앞에 죄지은 것을 탕감받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속죄의 길이 아니겠느냐….
`하늘의 원한을 알았기에 나는 쓰러지더라도 꼭 그 원한을 푼 자리에서 죽고 싶어서 나는 이렇게 가나니' 하면서 자기 배를 찌르려고 하면, 하나님은 `야 임마, 그래서 안 돼. 배를 찌르게 되면 큰일나지' 하실 것입니다. 사탄은 배를 찌르라고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못하십니다. 왜? 땅 위에 양자가 없으면 안 되는 것이요, 땅 위에 종이 없으면 복귀의 길이 안 닦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기반이 없으면 아들이 제물을 바칠 수 없게 되므로 하나님은 그러한 자리에 선 사람을 붙들고 그러지 말라고 사정하시는 것입니다. 그 기원이 풀려야 복귀의 세계적 운세의 출발기반이 닦아지는 것입니다. 원리가 그렇습니다.
오늘 이 길을 가는 선생님은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아브라함보다 나아야 됩니다. 자식을 잡아 제물로 드리고 아내 하나쯤 희생시키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고요. 나 자신까지도 한칼에….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가 옥중에 찾아왔을 때도 `저 여편네' 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맞을 때가 많았어요. `내가 혈족을 중심삼고 눈물 흘리고 가슴 아플 수 있는 내용을 남겨서 뜻길을 가는 데 주저하게 만들지 말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 심정을 지니고 나온 거예요. 기가 막히지요? 우리 어머니는 나를 참으로 사랑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나는 통일교회 사람들에게는 정성을 다해 옷도 해주고 내가 굶으면서라도 먹을 것을 주고 했지만, 어머니 아버지한테는 옷 한 벌 안 해주었습니다.
성진이 어머니가 성진이를 낳았을 때도 `목숨을 빼앗기겠으면 빼앗기고, 늑대가 물어 가겠으면 물어 가라. 내 손으로 찌르지 않고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얼마나 고맙겠느냐'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죽으면 안 되겠기에, 그런 길을 통해 가지고 탕감노정에서 가정을 버린 것입니다. 아벨의 가정을 살리기 위해선 가인의 가정을 먼저 복귀해야 되기 때문에, 그 길을 가려 가기 위해 심각한 싸움을 해 나왔어요. 지금까지 뜻길을 찾아 나온 여러분들, 지금 여러분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지금은 전세계 통일교회가 하나되어야 할 때
기독교가 이 길을 반대하지 않고 우리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도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해방시대가 되는 것입니다, 해방시대. 알겠어요? 해방시대라는 거예요.
이때는 1945년도, 2차대전 직후의 해방시대와 같은 시대권입니다. 그때에 선생님이 기독교를 중심삼고 출발해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예요. 그때는 완충시대였습니다. 그 무엇도 제일 높다고 할 수 있는 때가 아니예요. 얼룩덜룩한 때라구요. 오늘날 민주세계도 그 무엇이 높다고 할 수 없습니다. 종교계도 지금 완충시대권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포화상태에 있어서 내려갈 수 있는 기운이 감도는 시기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세계적인 해방기가 올 것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구요. 그때는 국가적인 해방기였지만, 이제는 세계적인 해방기라는 것입니다.
통일의 운세를 중심삼고 70년대에 탕감노정을 거치는 권내에서, 한국과 일본과 중국을 중심삼고 세계의 정상 국가들이 이마를 맞대고 부딪히는 것입니다. 부딪히면 부딪힐수록 하나로 통일되는 것이 아니라 부딪히면 부딪힐수록 갈라지는 것입니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중공의 주은래를 만났는데, 더 좋아질 수 있는 세계의 길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국가들이 서로 점점 멀어지는 것입니다.
중공이 그렇게 나왔기 때문에 소련과 중공이 더 가까워진 것이 아닙니다. 또, 북괴와 중공과 소련이 더 가까워진 것이 아닙니다. 외형적으로는 중공이나 소련이 군사동맹이니 뭐니 하고 있지만 가까워진 것이 아니라구요. 내용적으로는 점점 멀어진다는 것입니다. 또 미국과 한국이 가까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가까워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또 일본과 미국이 가까워진 것이 아니라 전부 다 멀어진 것입니다. 서로가 가까이 가는데 내용적으로도 가까워지는 거예요? 더 멀어진다는 거예요.
이때를 중심삼고 통일교회는 하나되어야 합니다. 이런 때가 되면 될수록 한국에 있는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일본에 있는 통일교회하고 중국에 있는 통일교회가 합해야 합니다. 그래서 1970년도부터 선생님은 일본의 간부들을 전부 인사이동을 했습니다. 전부 다 경제문제를 중심삼고 발령을 했습니다. 거기서 2차 7년노정의 반을 넘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이 1971년도이니까 7년노정에서 3년 반의 고비를 넘어서 가지고 움직이는 거예요. 이제 날이 새야 되는 거라구요.
우리가 `요이 땅!' 하고 출발해서 3년노정을 넘어서 4년노정에 접어들면 세계적으로 바람을 피우던 녀석들은 전부 모가지 짤리는 것입니다. 김일성도 갈 날이 멀지 않았고, 모택동도 갈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세계적인 뜻의 노정에 있어서, 뜻과 반대적인 입장에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내가 높다 하는 녀석들은 모가지가 날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녀석들의 모가지를 잘라 버리고 쳐 버릴수록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느냐? 하늘편이 머리를 들고 올라오는 때가 되는 것입니다. 제2의 해방이 필요할 때가 오는 거예요. 여기에서 제일 문제가 뭐냐? 남한의 삼팔선을 해결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그렇지요? 남한의 삼팔선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남북한의 삼팔선도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개인의 삼팔선, 몸과 마음의 삼팔선을 해결하지 못하면 가정의 삼팔선을 해결 못 시키는 것입니다. 가정의 삼팔선을 해결하기 전에 사회단체간의 삼팔선을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사회단체간의 삼팔선을 해결하기 전에는 민족의 삼팔선을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는 거예요.
한 국가를 중심삼고 세계의 운세를 이어받을 수 있는 국가적 기반이 조성되면, 거기에서 국가 기반은 물론 민족 기반, 종족 기반, 가정 기반, 개인 기반이 한꺼번에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안 되었기에 오늘날 재탕감노정에서 선생님의 가정을 중심삼고 그 싸움을 다시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이것은 말만이 아닙니다. 사실 그렇게 된 거예요. 이것이 안 맞으면 통일교회 원리는 거짓말이 되고, 통일교회는 사기 단체가 되는 거예요.
사탄보다 나은 사람이 되라
이러면서 종을 불러 세우고 양자를 불러 세우고 아들을 찾아 나오는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사탄보다 나은 자리에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사탄보다 못하면 안 돼요. 사탄보다 나아야 합니다. 사탄보다 나아야 하는 그 최고의 기준이 무엇이냐? 세계가 아닙니다. 물론 세계에는 백 개가 넘는 국가가 있지만 그 국가가 문제가 아닙니다. 세계 국가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 많은 국가 가운데 사탄이 제일 자랑할 수 있는 한 나라가 문제입니다. 사탄이 자랑할 수 있는 하나의 권이 뭐냐 하면 세계적 공산주의권입니다. 이렇게 된 거라구요.
공산주의라는 사상을 중심삼고 그 체제 위에 형성된 한 국가가 문제입니다. 소련이 문제고 중공이 문제고 북괴가 문제입니다. 그 가운데 제일 문제가 어디냐? 제일 악랄한 북괴입니다. 때가 되면 사탄세계는 망할 운세에 놓이기 때문에 보따리 쌀 준비를 해야 됩니다. 도망을 간다면 어디로 갈 것이냐? 공산권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딴 나라로 가야 됩니다. 민주세계의 끄트머리에 가 붙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련이나 중공에 민주화 경향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와 더불어 하늘편에서는 이념의 기반을 닦아 가지고 소생적 기반을 마련해 나오는데, 여기에 비례해 가지고 상반되는 결과의 세계적인 움직임이 벌어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김일성이와 통일교회가 맞서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것이 사상적으로 맞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사상적 기준에 있어서 이념이 우세한 입장에서 나왔지만, 앞으로 점점 대주관권을 중심한 민족적 사상체제를 강화할 수 있는 시대만 되면 그것이 올라와야 되는 거예요. 그때가 되면 내적인 기반이 닦아지기 때문에, 외적인 기반은 무너져야 됩니다. 그러면 그때 국가가 가야 할 길이 어디겠느냐? 북괴가 가야 할 곳이 어디겠느냐? 만주로 들어가야 될 것입니다. 지금이 그런 때입니다.
그렇게 되면, 혼란된 그 가운데서 하나님은 무엇을 하시느냐? 가족찾기운동을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해서 나라를 찾으시느냐? 먼저 가족을 찾으실 것입니다. 그렇지요? 복귀의 가족찾기운동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적십자운동이라는 것이 뭐냐 하면 복귀 국가의 가족찾기운동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그 적십자운동을 통한 가족찾기운동이 벌어지고 있잖아요? 그것이 판문점을 중심삼고 벌어지는 것입니다.
판문점(板門店)은 금문점(金門店)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금문점이 되어야 할 텐데, 널 짜박지 문이 된 것입니다. 어느 때인가 이것을 쳐부숴야 됩니다. 세계는 이 문을 중심삼고 벌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가족찾기운동이 벌어지는데, 동독과 서독에서는 서로 나라를 인정하는 놀음도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자유통로를 만들어 개방하자고 했잖아요. 역사상에 없었던 새로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전세계를 중심삼고 새로운 운세가 싹트고 있어요. 사탄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뚫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의 갖추어진 실력권을 중심삼고 개인과 개인이 대결했을 때 공산주의 사상에 침식당하는 통일사상권내의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에 승공사상을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종교를 대표해서는 민주세계가 있는 것이요, 사상을 대표해서는 공산 세계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종교를 대표해서 하나님의 심정을 들고 나오는 것이요, 사상을 대표해서는 승공이념을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이 승공이념이 종교를 중심한 심정적 사상과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상응적인 입장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출발은 하나님에서부터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내적이요, 하나는 외적인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있는 현실입니다.
예수가 찾던 국가 세계를 찾아야 할 우리
시간이 많이 갔지요. 시간이 다 됐구만요. 몇 시부터 식사 시간이예요? 밥 먹어야지요. 밥 먹겠어요? 말씀을 더 듣겠어요? 밥 먹을래요?
오늘 제목이 `국가와 우리의 사명'인데 우리는 국가를 찾기 위한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찾던 국가, 예수가 찾던 세계를 찾으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찾으려는 국가 세계는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를 보장할 수 있는 민족이 형성되지 않고는 국가가 안 나오는 것입니다. 또 그 민족도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의 수많은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민족이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종족 가운데 일등 되는 종족이 모여야 합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여러 국가 가운데 사탄이 자랑하는 국가는 수백 개가 있지만, 그 가운데 제일 대표적인 나라는 한 나라입니다. 악착같은 한 나라. 공산권 세계에서 악착같기로는 김일성이가 대장이지요? 세계 공산권 가운데서도 가장 악랄하게 사상적으로 무장하고, 공산권 나라를 건국하는 전통적 사상을 세계에 고취시키고 있는 나라가 북한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브라질에서 공산당들을 훈련시키는 등, 공산당을 세계에 수출하고 있잖아요?
이런 걸 볼 때, 국가가 문제입니다. 우리는 공산국가 중에 제일인 북한의 김일성 이상, 김일성의 사상 이상의 사상을 가져야 합니다. 공산당은 생명을 위협해 가지고 그렇게 만들지만 하나님은 자유로운 환경 가운데서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복귀의 길은 틀리다구요. 거기에서는 탄압과 위협과 공갈 협박을 통하여 강제로 죽을 길로 몰아 가지고 생명선을 넘는 자리를 거쳐가게 함으로 말미암아 발전이 벌어지지만 여기에서는 자진해서 하나님 앞에 생명을 바치고 죽고자 하는 실체적인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자진해서 공산당 이상의 자세를 갖춰야 됩니다.
그래, 여러분은 공산당 이상이 되었어요? 여러분의 사고방식과 사상적 관념이 공산당 이상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제 북한으로 출동하라' 하게 될 때 안 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안 가면 죽는 거예요.
여러분이 하늘의 명령에 따라 출동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사탄세계에서는 일시에 육이 죽지만 하늘세계에서는 영과 육이 영원히 죽는 것입니다. 이게 원리입니다. 그런 거 알아요? 그래서 사탄세계보다도 나을 수 있는 한 나라, 조국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까 말했듯이 만약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게 되면…. 극복해 낸 자리에서 죽을 수 있는 길을 찾게 될 때는 그런 자리에서 죽어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주로 한 소망적인 세계, 소망적인 나라, 소망적인 종족, 소망적인 가정, 소망적인 남편과 소망적인 아들의 자리에서 죽어야 됩니다. 뜻을 못 이루었거든 죽을 자리에서는 그렇게 죽어야 됩니다. 그런 신념을 나 혼자 들고 나온 것입니다.
`나는 나라를 대표한 사람이요, 민족을 대표한 사람이요, 종족을 대표한 사람이요, 가정을 대표한 사람이요, 전인류를 대표한 개인이다. 남자를 대표할 사람은 나 이외에는 없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의 씨와 같이 심어지면 거기에서 본질적인 가정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거기에서 본질적인 종족이 나오는 것이요, 본질적인 민족이 나오는 것이요, 본질적인 국가가 나오는 것이요, 본질적인 세계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이것을 쭉 뽑으면 저 밑에 있는 개인의 마음의 핵심이 쑥 뽑아져 나가요. 그렇게 돼 있어요? 그걸 뽑으면 거기에 세계가 달려 나오고, 나라가 달려 나오고, 종족이 달려 나오고, 가정이 달려 나오고, 개인이 달려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것을 풀어 놓게 되면 ―이게 가르쳐 주면 별것 아니지요?― 사탄만 남을 수 있는 권내가 됩니다. 그런 국가가 형성되게 되면 사탄을 보고 `이 자식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육을 중심삼고 완전한 주체가 되면 상대권을 놓고 `이 자식아' 할 수 있는 거예요. 거기에 하나 안 되는 상대는 처단당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어요? 원리는 그걸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자, 임자네들은 그렇게 돼 있어요? 선생님이 `자 너희들 가정을 끌어내라' 할 때 끌어낼 거예요? 여러분, 환영할 거예요? 끌고 남으로 가든, 북으로 가든, 동으로 가든, 서로 가든 그것은 내 마음입니다. 유랑민이 된 이스라엘 민족이 천막을 치는 데 있어서 이스라엘 민족 마음대로 쳤나요, 모세 마음대로 쳤나요? 대답해 보라구요. 모세 마음대로 쳤나요, 이스라엘 민족 마음대로 쳤나요? 이스라엘 민족 마음대로 쳤다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북으로 가자면 북으로 가고, 남으로 가자면 남으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그렇게 되어 있어요? 노골적으로 얘기해 보라구요? 그렇게 돼 있나, 안 돼 있나.
여기에 순응치 않으면 칼을 빼 가지고 쳐야 합니다. 그 왼손을 쳐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왼손. 여러분이 알고 있는 선생님이 그렇게 흐지부지한 사람이 아닙니다. 지독한 사람이라구요. 여러분이 알고 있는 선생님이 그런 사람이라면 빵점 선생님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선생님과 여러분이 알고 있는 선생님은 다릅니다. 하나님이 알고 있는 선생님과 여러분이 알고 있는 선생님이 다르다구요.
그러니 보따리를 싸 가지고, 지갑에 돈이 있거든 자식을 먹여 살리겠다고 하는 그런 놀음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사상이 끊어지지 않는 한 통일교를 믿는 여러분이 가는 길은 언제나 고생스러울 것입니다. 한번은 처단을 해야 됩니다. 선생님도 그 길을 가지 않았습니까?
핍박받는 자리에서도 나라에 충성하고 죽는 자리에 가려 했다
선생님이 뜻을 알고 나서 성진이 어머니와 결혼한 것도 내 맘대로 한 것이 아닙니다. 영계에서 지시가 있어서 한 거예요. 그 사람도 영계의 지시하에서 만난 거라구요. 그 사람 이름 최선길입니다. 높은 최(崔), 먼저 선(先), 길할 길(吉)자예요. 여자로서 그런 이름은 팔자 사나운 이름입니다. 이름의 뜻으로 보면 세계에 없는 이름이라구요. 그렇잖아요? 그러나 이치에 하나되지 못하면 잘리는 것입니다. 성진이 어머니가 여자로 서는 굉장한 여자요, 훌륭한 여자였습니다. 어느누구도 갖지 못한 특성을 가진 여자예요. 옳다 할 땐 천하의 그 누가 반대를 하더라도 당당코 싸워나갔습니다.
이런 얘기가 있어요. 자기가 성진이 데리고 혼자 살고 있으니까 어떤 남자가 혼자 사는 과부 취급을 해 가지고 농조로 대했는데, 인권을 유린했다고 해서 재판에 걸어서 배상금을 받은 여자라구요. 알겠어요? 자기가 옳다 할 때는 이 박사고 무엇이고 무서워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런 성격에 자기가 옳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통일교회 반대하는 데 있어서 전통적인 조상이 되었지요. 선생임을 망하게 하기 위해서 형사들에게 돈을 주어 가면서, 자기가 그때까지 벌어서 샀던 집까지 팔아 가지고 형사들과 교섭을 했어요. 그 여자 덕택에 나도 많이 배웠습니다. 통일교회를 반대하기 위해서 자기 소유를 전부 희생했다구요. 그렇게 악착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어떤 생각을 했느냐? `아, 여자와 남자간의 사연을 중심삼고, 그 사랑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엮어진 비운의 역사가 얼마인가? 또 그 인연을 따라 태어난 한을 가진 민족과 국가와 족속들이 얼마인가? 그것 때문에 아랍권이니, 공산권이니, 무슨 민주세계권이니 하는 것들이 생겨난 것이 아니냐' 이런 생각을 했다구요.
역사과정에서 여자가 반대하는 날에는 비참해집니다. 남자가 비참해지는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비참해진다구요. 남자는 여자한테 넥타이로 목을 졸려 봐야 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얼굴도 긁혀 봐야 됩니다. 여자가 남자를 밤에도 때려죽이고 싶고, 아침에도 때려죽이고 싶고, 낮에도 때려죽이고 싶고, 저녁에도 때려죽이고 싶고 칼로 가슴을 찌르고 싶다고 하는 마음을 갖게끔 되어야 돼요. 그것이 사탄입니다. 그래 가지고 세계적으로 탕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3년이상 내모는 거라구요.
여자의 신발은 재수 없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군인이 출동하는 행로에 여자가 지나가게 되면 총살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성진이 어머니가 그 신발을 거꾸로 들고 때리는데, 왼편 뺨을 맞고 바른쪽 뺨을 맞으면서도…. 이 길을 가려면 그런 길을 거치는 거라구요. 그러면서 오늘의 통일사상의 기반을 닦아 나온 것입니다. 그런 전통을 닦아 나온 거라구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선생님을 따르고 있는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 할머니면 할머니들이 어떻게 되었느냐? 똥바가지를 뒤집어 쓰기도 했습니다. 똥바가지를 가져다가 아가리를 벌리라고 해 가지고 입에다가 똥을 처넣는 거예요. 여러분이 모르는 그런 비참한 행로를 거쳐 나온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 처음 듣지요? `이 원수' 하면서 머리채를 잡아 쥐고 흔드는 일을 처녀들도 당하고 할머니들도 당하고 아주머니도 당하고 소녀들도 당해야 했습니다. 남자로 말하면 영감도 당해야 했고, 장년도 당해야 했고, 청년도 당해야 했고, 소년도 당해야 했습니다. 장난이 아니라 그랬던 거라구요. 탕감복귀가 나를 통해서 되어야 되기 때문에 그런 기운이 통일교회를 찾아 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차라리 감옥에 가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차라리 감옥이 피난처라는 거예요. 그런 놀음을 해 가지고, 천신만고의 수난길을 거쳐 가지고 1960년도에 성혼식이 있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성진 어머니가 반대했기 때문에 그 터전을 중간에서 누가 이어받은 것이냐? 그가 희진이 엄마입니다. 그 사람은 국경을 넘나들어야 했습니다. 마리아와 같은 사명을 가진 입장에서, 예수를 밴 마리아가 그런 것처럼 희진이를 배 가지고 배가 이렇게 나왔는데도 밀선을 타고 일본으로 간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인연을 중심삼고 뜻을 출발했던 것이 깨져 나가게 되었으니, 새로운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의 여성을 중간에 다리 놓아 가지고 그것을 이어받을 수 있는 터전을 가리지 않고는 살 길이 없었습니다.
그때는 대한민국에 요동이 벌어지고 있던 때입니다. 그때는 경찰에서 자꾸 사건 때문에 선생님을 부르게 되어서, 내가 감옥에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희진이 엄마를 밀선에 태워 일본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나는 감옥길을 갔습니다. 성진이 어머니가 기반을 다 까먹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대상으로서의 가정기반을 다 까먹고 나라를 다 까먹고 교회도 다 까먹고, 자식이고 뭐고 다 까먹었다구요. 자식을 키울 입장이 못 된 것입니다. 모든 것을 까먹고 나라의 기반까지 다 까먹어 버렸기 때문에 선생님이 감옥길을 가야 했던 것입니다. 좋아서 그렇게 했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원리의 길을 아는 사나이로서 가는 길은….
그렇다고 해서, 내가 민족 앞에 몰리고 교회 앞에 몰리고 처자한테까지 몰렸다고 해서 `이놈의 나라야, 이놈의 교회야, 이놈의 여자야. 저주를 받을지어다' 이럴 수 있어요? 그렇게 못 하는 것입니다. 사랑해야 할 나라와 사랑해야 할 교회, 사랑해야 할 사람이지요.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 이상으로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원수에게 공인을 받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인연을 맺기 위한 길로 알고 그 길을 달갑게 갔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눈물을 흘리는 자리에서 나라를 사랑하지 못했으니, 이 자리에서 나라를 사랑하는 정성어린 심정을 가지고 그 나라를 위해 마음으로 충하고 죽을 수 있는 자리에 가고자 했던 것입니다. 마음으로 말입니다. 알겠어요? 예수가 죽은 것은 마음으로 그 나라와 그 백성과 그 가정과 그 자식을 사랑하면서 홀로….
통일교회의 전통사상
하나님의 심정의 인연을 거쳐 하나님의 보증자가 되고, 사탄의 공인을 받고, 주님 앞에 책임을 할 수 있는 하나의 자리까지 개척하기 위해 통일가가 출발한 것입니다. 이것은 그 누구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 배후에는 비참한 길이 무척이나 많습니다. 알겠어요? 내가 왜정 때부터 감옥에 들락날락했습니다. 피를 토하는 자리에서, 열 손가락에 피를 내는 자리에도 이것이 10개 국가의 피를 대신하고 10개 민족의 피를 대신하는 제물로 바쳐질 수 있다면 얼마나 영광이겠느냐고 기도하였습니다. 내가 구원받는 것보다 나 하나 죽어 가지고 나라가 해원성사되고 나라가 해방된다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생각했던 거예요. 이것이 통일교회의 전통적 사상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있다면 통일교회 문선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거예요. 만약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하나님은…. 보라구요, 종을 잃어버리고, 양자를 잃어버리고, 아들까지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서러움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 종의 나라와 양자의 나라와 아들의 나라가 어디 갔느뇨?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셋을 대표한 한 아들로 예수가 왔던 것이 아니냐? 그래서 예수가 세 교단을 세우고자 한 것이 아니냐? 구교, 신교, 통일교가 그래서 나온 것이 아니냐? 이런 문제를 생각하면 기가막힙니다.
그러기에 반대받게 되는 날에도 세 나라의 반대를 받아야 되고, 세 교파의 반대를 받아야 되고, 세 종족의 반대를 받아야 되고, 세 가정의 반대를 받아야 되고, 세 아들딸로부터 반대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 길을 찾아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유협회장이 여기에 있었지만 유협회장은 이런 내용을 몰랐습니다.
이런 등등의 노정을 거쳐 가지고, 통일가를 세우게 됨으로 말미암아 오늘 축복받은 여러분들이 있게 된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을 공산당 사상을 가진 직속 고급 당원들과 비교할 때 여러분이 나으냐 하는 문제를 놓고 밤낮으로 생각해 봤지만, 내가 부끄러워서…. 여러분들을 그냥 그대로 가치적인 존재로 대했다가는 여러분도 망하고 선생님도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때려잡는 것입니다. 고생시키는 것입니다. 치는 거예요.
그래서 이번에 여러분의 가정을 중심삼고 출발하게 한 것입니다. 이때를 타고 넘어가야 하겠기에, 하늘의 운세를 타고 넘어가야 되겠기에, 여러분이 이 힘든 광야시대를 따라가면서 그런 심정적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이 민족 앞에, 국가 앞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놀음을 해야 할 때가 지금입니다.
여러분이 이북 공산당보다 나아야 되겠어요, 못해야 되겠어요?「나아야 되겠습니다」그래서 하나님이 선생님에게 삼팔선을 넘게 하신 것입니다. 선생님이 삼팔선을 넘을 때 하나님이 보호하신 것입니다. 옛날에 모세가 애급을 나올 때 불기둥 구름기둥이 인도해 주었다고 했지요? 선생님 앞에는 무지개가 서 가지고 갈 길을 인도해 주었습니다. 내가 삼팔선을 넘을 때 하나님의 뜻을 품고 넘은 거라구요.
그러기에 내 가는 길에는 아무리 수난길이 있더라도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감옥을 찾아갔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감옥에 있기 때문에 감옥을 찾아 들어간 것입니다. 만약에 그런 사람들을 나라에서 못 찾게 되면 종족에서 찾아야 되고, 종족에서도 못 찾거든 가정에서 찾아야 되고, 가정에서도 못 찾게 되면 개인에서 찾아야 되고, 개인에서 못 찾게 되면 감옥에서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의 길입니다.
여러분들이 갖고 있는 그 가정이 이상적 가정입니까? 그 자식들이 이상적 자식이예요? 앞으로 이런 원칙을 중심삼고 여러분들 앞에 세밀히 교육을 할 때가 올 것입니다.
나라를 찾지 못한 입장에서 자기를 생각할 수 있느냐
자, 그러면 오늘 제목이 `국가와 우리의 사명'인데, 우리의 신세는 지금 고아와 같은 불행한 신세입니다. 부모도 없고, 자녀도 없고, 형제도 없고, 나라도 없고, 머리 둘 곳조차 없는 고아의 입장에 있는 사람을 그 누가 동정해 줄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할 때, 우리는 불쌍한 사람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불쌍한 우리를 동정할 사람이 이 인간세계, 평면세계에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을 대하여 `하늘이여 저를 도와주시옵소서. 부모를 찾고, 형제를 찾고, 가정을 찾고, 종족을 찾고, 나라를 찾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이 고아의 신세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운명을 가진다면 저는 천만 번 죽더라도 한이 없겠습니다' 하고, 바라는 소망의 나라가 있고 소망의 세계가 있고 그런 길로 인도하는 주체적인 절대자가 있다면 `절대자여! 저에게 한번 그런 곳에 갈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없겠습니까?' 하면서 울부짖고 나선 걸음이 종교의 길이더라는 것입니다.
종교는 뭘 하자는 것이냐? 이 사망의 세계, 불행의 권을 넘어서고자 해서 나온 것이 종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양자로서 모인 무리요, 하나님의 종으로 모인 무리입니다. 이렇듯 종으로, 양자로 모인 전통적 사상은 무엇이냐? 주는 것입니다. 주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녹음이 잠시 중단되어 정리하지 못함)
아직은 때가 안 되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어느 단체의 사장이니 이사장이니 무슨 지구장이니 하는 명분을 내세워 가지고 꺼덕거리는 사람은 졸장부입니다. 나는 아직까지 그런 자리에 가지 않은 사람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내가 이 단체의 장으로서 하나님의 권위와 위신을 가질 수 있는 주체적인 입장에 섰다 하더라도 상대적 터전을 갖지 못해 가지고 하늘 앞에 나서기가 부끄러운 것이요, 사탄 앞에 자세를 갖추어 가지고 팻말을 꽂고 나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주제에 풀썩거리고 다닐 수 없다는 거예요. 심각해야 된다고요.
여러분이 단에 서서 대중을 교육하게 될 때 자기가 말 잘한다고, 그래서 사람들이 감동 받는다고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열 번 맞고 백 번 좋을 수 있다면 백 번 이상이라도 그 일을 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선생님은 그런 일념을 가지고 있다고요.
내가 얘기라면 누구한테 지지 않는다구요. 그런데 내가 여러분에게 일을 맡겨 놓고 기가 막힌 놀음을 지금까지 하고 있는 거예요. 다 보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분석적인 머리를 가진 사람이라구요. 본래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이예요. 우리 아이들도 그래요. 과학을 좋아한다구요. 내가 이 나라와 내가 갖춘 관계를 확실히 기억하고 있어요. 여러분은 모른다구요. 내가 당하는 한 그 나라, 그 세계는 오지 않는다구요.
우리에게 우리 개인의 운명을 보장할 수 있는 종족적인 환경이 없다면, 나라가 없다면 우리는 비참한 무리가 아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을 내모는 것이 아닙니까? 알겠어요? 나라 없는 백성이 되면 보따리를 싸 가지고 사방을 떠돌아다니는 집시가 되기 때문에 언제든지 습격을 당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라고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 때가 바쁘다는 거예요.
이스라엘 나라를 못 찾았기 때문에 예수가 죽어 가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이 비운의 고개를 어떻게 넘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면, 잠을 자겠어요? 잠을 자고 살다가 저 나라에 가 보라구요. 여편네를 끼고 좋다고 살다가 저 나라에 가 보라구요. 내가 살아 온 생활이 참소할 것이고, 예수가 바라던 소원의 기준이 참소할 것이고, 하나님이 찾아 나오시던 나라를 중심삼은 모든 것이 참소의 조건이 되어 여러분 앞에 나타날 날이 올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라에도 죽을 길밖에 없는 것이요, 가정에도 죽을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잘 먹고 나서는 회개하는 걸음을 가야 됩니다.
넥타이 매고 양복 입을 때가 아니예요. 하나님이 소망하시는 국가 앞에 거듭날 수 있는 심정의 기준을 남겨 가지고, 남루한 옷을 입고도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고 미친 자식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 나라를 위하고 그 무리를 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잠을 자고 나서도 눈을 뜨게 되면 가야 되겠다는 거라구요. 잘 사이도 없이 기도해야 되겠다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입니다.
선생님은 자리에 눕지도 않고 기도하다가 엎드려서 잠을 잘 때가 많습니다. 근자에 어머니를 가까이 모시고 청평에 낚시질 다니면서 기도했어요. 이러다 보니 기도하는…. 이거 다 여러분이 배우라고 가르쳐 주는 거예요. 남편 노릇 하기 힘든 거라구요. 남편 노릇 하기 힘들어요. 역사적인 탕감의 노정에서 아내의 심정을 유린하는 사나이가 되어서는 안되겠기에 그러는 거예요. 참 눈물어린 사연들이 많습니다. 어머니도 이것을 알고 `나 하나를 고이 위해주고, 나 하나를 다스리기 위해서 저러는구나' 하는 마음을 가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가야 하느냐? 원수를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보세요. 야곱을 중심삼고 레아와 라헬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지요. 그것을 탕감복귀해야 되는 것입니다. 롯을 중심삼고 두 딸에게도 그러한 놀음이 벌어졌다구요. 남편이 아내까지도 몽땅 원수한테 상속해 줄 수 있는 심정의 기원을 찾지 못해 가지고는 참부모의 역사가 이 땅에 사직될 수 없는 것입니다. 기가 막힌 말입니다.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이 땅 위에 타락의 후손으로 태어나 양자의 자격밖에 없습니다. 양자는 주님 앞에 모든 것을 상속해 줄 수 있는 아량이 없어 가지고는 양자로서의 갈 길도 못 가는 것입니다. 전부 다 줘야 된다구요. 자기의 몸까지도, 가슴까지도 전부 다 줘야 돼요. 양자는 그렇잖아요? 핏줄의 기원을 전부 다 부정해야 새로운 인연이…. 여러분에게 이런 등등의 내용을 내가 세밀히 가르쳐 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사연이 있다구요. 여러분은 이와 같은 자리에서 얼마나 먼 자리에 있는가를 알고, 이번 기회에 이러한 자세를 확립해 주기를 바랍니다.
나라 없는 백성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나라 없는 시대를 살았습니다. 그때 내가 원수의 나라 일본으로 떠나면서 대한민국을 바라보고 눈물 흘리던 사실을 잊어버리지 않아요. 한강 다리를 지나면서 눈이 퉁퉁 붓고 코와 입술이 아프도록 울었어요. 관부 연락선을 타고 일본에 도착한 날이 3월 21일이예요. 그때서부터 나라를 중심삼고 일본에 가 가지고 별의별 일을 다 했습니다. 나라 없으면 못 삽니다. 여러분, 나라가 있어요? 원수의 나라에서 아내를 사랑할 수 있어요? 사랑했다가는 그 길을 망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명은 하늘나라를 건국하는 것
`조국과 우리의 사명'에서 우리의 조국이라는 것은…. 우리는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을 통일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오늘날 대한민국 어떠한 위정자보다 나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이념과 사상을 이 민족 앞에 어떻게 투입할 것인가? 그 전통적 사상을 어떻게 남길 것이냐? 선생님은 생각하고 있어요. 이 나라 주권자 앞에 가서 맞아라 이겁니다. 그 맞는 정도가 심할수록 이 편에 있는 우리의 일당과 일족은 단결하는 것입니다. 단결방법은 그것입니다.
그 책임자뿐만 아니라 아내가 있고 아들딸이 있거든 그 아버지가 고통당하는 것을 눈으로 보게 하라는 것입니다. `여편네야, 아들아, 눈으로 봐라' 이거예요. 아내와 아들은 모자협조 원칙에 의하여 아버지가 신음하는 그 기준을 배가하며 신음해야 합니다. 원수들의 채찍이 가해지고 그 채찍을 맞는 신음소리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여편네와 아들딸은 아버지를 놓고 원수의 세계를 파괴시켜야 할 책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몇백 번 희생하더라도 채찍을 받는 그 희생길을 뒤넘이치겠다는, 불타는 적개심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래 가지고 여편네가 자기의 남편을 그렇게 다룬다고 원수에게 반항하다가 죽임을 당하고 또 그 자식이 죽임을 당하게 되고…, 그 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 나라의 백성은 단결되는 것입니다. 이런 길을 다시 가겠다고 결의할 때가 되었기 때문에 선생님은 지금 결의했던 그 일을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단결시킬 수 있는 그 놀음을 해야 되겠습니다. 내가 또다시 발벗고 나서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가 갈 길이 어디냐? 통일교회가 갈 길은 기성교회를 통해서, 남한을 통해서 북한까지 가야 할 길이기 때문에, 우리가 고생해야 합니다. 선생님이 고생하는 것보다도 통일교회 교인이 더 고생해 가지고 기성교회의 갈 길을 닦아 주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살고 선생님이 살 수 있는 길을 마련하는 놀음입니다. 여기에 개인을 투입하고 가정을 투입하고 사위기대를 투입하자는 것입니다. 사탄세계가 치는 자리, 맞는 자리에 들어가자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고생하는 자리에서 어려움을 당하게 될 때에,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어렵다고 생각하지 말라구요. 통일교회에 들어왔기 때문에 어렵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통일교회의 갈 길을 가로막고 있는 이 나라와 이 민족을 복귀해야 될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아이구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고생하고 어쩌고'해서 되겠어요? 누구한테도 항거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에게도 항거 못 해요.
여러분은 흥부와 놀부의 얘기를 알지요? 국가적이고 민족적인 입장에서 가정을 중심삼고 인간적인 면에서 그런 일이 엮어질 것을 하나님이 미리 아시고 염려하셨기 때문에, 놀부와 흥부의 민화가 남아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천 번 맞고 백 번 맞더라도 부모 앞에 항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맞고 당하더라도 더 맞자는 것입니다. `칠 테면 쳐라' 하는 이 놀음을 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가자는 것입니다. 이제는 기성교회가 우리를 치지 않고 나라가 우리를 치지 않게 되었지만, 이 나라와 기성교회가 치지 않는다 하더라도 삼팔선 너머에 우리를 칠 패들이 있지 않느냐, 대한민국보다 더한, 기성교회보다도 더한 원수가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교육하고 단결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니 우리가 희생하자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가지고 민족과 국가도 희생하는 거기에 하나님께서 보시고 어찌하실 것이냐? 북한 땅을 위해서 희생시켜야 합니다. 맞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맞음으로 인해, 고생함으로 말미암아, 수난을 당함으로 말미암아 저 북한 땅의 양심적인 사람은 넘어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작전을 하는 것입니다. 기가 막히는 놀음이예요. 이것이 하늘의 작전이요, 선생님의 작전입니다.
우리에게는 세 원수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나라를 중심삼은 원수요, 그 다음은 저 삼팔선 너머에 있는 공산세계의 원수들이요, 또 그 다음에는 영적인 사탄이라는 원수입니다. 이 세 원수가 남아 있습니다. 그렇게 세 점을 거쳐 나오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결론을 짓자구요. 우리의 사명은 이 땅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사탄 앞에 참소의 조건을 남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내 아들딸들을 사랑하고, 내 아들딸들을 거느려서 종족을 만들고 민족을 만들고 나라를 만드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를 건국하는 데 있어서 선봉장이 되라
그 나라를 건국하는 데 있어서 개척의 용사가 되어야 할 선봉장군이 누구냐? 통일교회의 간부들입니다. 여러분이 지금은 교회장이지만, 옛날에도 책임자, 소위 지구장을 하던 패라구요.
그러면 그 나라를 이룰 수 있는 터전이 어디냐? 교회 외에는 없습니다. 교회 외에는 없잖아요? 교회 말고 뭐 어디에 있어요? 여러분의 소유가 뭐 있어요. 여러분의 소유라는 것은 교회밖에 없다구요. 그렇지요?「예」여러분의 소유는 나라에 흡수되는 것입니다. 하나의 민족의 터전이 될 수 있는 것은…. 한 나라를 이루려면 주권이 있어야 되고 국토가 있어야 되고 국민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하늘나라를 중심삼고 볼 때, 국토가 될 수 있는 터전은 무엇이냐? 그것은 교회에 재산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 다음에 하늘나라의 백성이 누구냐? 교인입니다. 또 주권자는 누구냐?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이 이장 대신자요, 면장 대신자요, 군수 대신자요, 도지사 대신자입니다. 여러분, 주체자 되었어요? 사탄세계에서 폭탄을 싣고 오거든 맨 먼저 뛰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럴 마음이 있습니까? 그리고 돈이 한푼이라도 있거든 교회를 넓히는 데 쓰는 것입니다. 그 나라의 판도를 넓히고 국민을 결집시키는 데 쓰는 것입니다. 교회 책임자는 주권자를 대신하는 것입니다. 이장을 대신하고, 어머니 아버지를 대신하는 것입니다. 이런 전통적 사상을 남겨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없는 거라구요. 안 그래요?
이제는 때가 되었기 때문에 금년 봄부터 선생님이 본부의 체제를 갖추게 했고, 그러고 나서 지방 교회의 체제를 갖추라고 한 것입니다. 이제는 그런 때가 왔기 때문에 비로소 내가…. 그런 것을 여러분이 다 마련해야 돼요. 기독교의 인연을 이어받으려면 주님 앞에 그런 터전을 만들어 가지고 바쳐야 돼요. 그런데 여러분이 그 일을 못 하니까 할 수 없이 내가 대신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사명을 못 했으니 고생해야 되는 것입니다. 얼굴을 못 드는 거예요. 외적인 승공연합이나 통일산업은 모두 얼굴을 들 수 없는 입장입니다. 교회에도 목표량을 할당시켜 주었는데 책임을 못 하고 제사를 잘못 드린 곳은 벌을 받아야 되는 거예요. 제물을 잘못 바쳤으면 자기 여편네와 자식을 제물로 바쳐야 됩니다. 그렇잖아요? 선생님 사상이 그것입니다.
외적인 환경을 중심삼고 가인 제물, 아벨 제물, 양자 제물, 세 제물을 못 바치면 자기 직계 아들딸을 제물로 바쳐야 됩니다. 이번에 내가 여러분을 도와준 것은 그걸 어기는 거라구요. 이스라엘권, 실체적 이스라엘권을 맞을 수 있는 때가 되었기 때문에 내가 돈을 내 가지고 교회를 사는데 협조한 거라구요. 전국적으로 3천만 원 이상 후원해 주었어요. 그렇다고 언제나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어림도 없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여러분은 고생을 지긋지긋하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고생시키는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통일교회 문선생이 잘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를 위해서, 하늘나라가 오는 데 있어서 궤도를 바로 놓기 위해서입니다. 사막도 좋다는 것입니다, 사막도. 궤도만 놓는 날에는 기관차는 달릴 것입니다. 내가 그 기관차 노릇을 해줄께요.
그러면 하늘나라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이냐? 그 나라가 이루어질 때까지 하늘은 수많은 나라를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그 국민을 찾기 위해서 수 많은 선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이요, 그 국가를 찾기 위해서는 수많은 가정을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그 열매가 되어야 할 여러분의 가정과 통일교단은 어떻게 되어야 할 것이냐? 쭉 빼내 보면 씨와 마찬가지로 거기에 전부 다 들어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 여러분이 6천년 역사의 열매라고 자부해 봤어요? 여러분의 가정을 해부해 보면, 가정은 가정입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국가의 씨가 들어 있고, 세계의 씨가 들어 있고, 천주(天宙)의 씨가 들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또 그 천주의 씨 가운데는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그렇게 되어 있어요? `아이구 교회고 뭣이고 생활이 어려우니 아들딸 먹여 살리기가 바빠서…' 이놈의 자식들. 이게 통일교회의 기준을 갖춘 패들이예요? 앞으로 이런 패들 가지고는, 이런 기반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보따리 쌀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1974년 2차 7년노정까지는 내가 책임져 주는 거라고요. 지금까지 한 나라를 중심삼고 싸워 나왔으니, 그때까지는 책임져 줄 테니까 예수의 한이 맺히게 했던 그 기준을 넘어서자는 것입니다.
3차 세계순회의 목적
3차 7년노정을 갈 때는 여러분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노골적으로 얘기하는 거라구요. 이번에 3차 세계순회를 가는 것은 무엇을 하기 위해서냐? 미국에 자리를 잡기 위해서입니다. 그 다음은 경제복귀를 위해서입니다. 이제 돈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돈만 갖추면 사람은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돈을 어떻게 벌 것이냐? 일본 식구들을 통해 가지고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4백 명을 세워야 할 처지에서 150명을 투입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4백 명 이상을 만들고 3천명까지 만들어서 사업을 하는 것입니다. 3천 명이 하루에 천 원씩만 해도 3천만 원이 들어오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1개월에 10억 원을 벌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내가 직접 코치해 가지고 전통적 사상을 이어 놓겠다는 것입니다.
임자네들이 생활하는 것은 문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임자네들, 뭐 쟁개비(남비) 짜박지, 방 짜박지 전체 해보라구요. 10년 후를 두고 보자는 거예요. 여러분이 정성껏 모아서 마련한 그 기반과 내가 갖춘 기반을 비교해 보자구요. 여러분이 대학을 가고, 어디를 가고 해 가지고 갖춘 기반과 선생님의 기반을 비교해 보자는 것입니다.
보라구요. 작년 일년만 해도 말이예요. 여의도 땅이니 뭣이니 해서 내가 한 11억 원을 썼습니다. 선생님이 그 땅 덩어리 사는 데 여러분이 헌금을 했습니까? 그렇다고 뭘 줘 봤어요? 선생님은 벌써 그것을 하기 위해서 몇년 전부터 계획해 나왔습니다. 그것이 요때에 들어맞지 않으면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지금 지방에서 초가삼간 그거 하나 갖고 따라지 같은 생활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통일교회 돈 없어서 저런다고 안 그러는 거예요. 어느 한날 둔갑하기 위해서 그런다고들 해요. 그때 사놓은 땅이 현재 시가로 한 18억 원이나 나갑니다. 일년 동안에 내가 그만큼 자리를 잡아 놓았다구요. 이런 놀음을 지금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르고 있다구요.
회사도 그런 거라구요. 내가 지금 한 달에 2천 5백만 원씩은 가져야 씁니다. 이제는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하는 일이 많아요. 돈 드는 일이 많다구요. 어떤 교단을 사야 되겠다고 했으면 당장에 그걸 타진해 보는 것입니다. `한 1억 원이면 나가 떨어지겠지' 하고 생각되면, 그 교단의 총회장이면 총회장, 총무면 총무와 교섭하는 거예요. 그러면 10억만 있으면 나가 떨어지는 것입니다. 몽땅 사는 거예요.
돈은 언제나 있는 것이지만 때라는 것은 한 번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2백억 정도만 가지고 있으면 정부의 어떠한 사람과도 안방에 같이 누워서 의논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나온다구요. 몇 해 동안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거라구요. 선생님이 생각하는 그 일이 가능할 것 같아요, 불가능할 것 같아요?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선생님이 허풍장이 사나이인 줄 알아요? 그러나 정성을 들이는 데 있어서 하나님이 책임 안 지시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만은 틀림없습니다.
보라구요. 공장도 내가 지금까지 끌고 나오는 데 있어서 정성을 들였다구요. 그 정성이 요즘에는 청평으로 간 것입니다. 이제는 국가와 민족을 중심삼고 일해야 할 때입니다. 때가 달라요. 때가 안 되면 청평에 머물게 되는 게 아니라구요. 때가 멀지 않았다구요. 이런 때에 여러분은 나서겠어요? 보따리를 싸 가지고 가자는 것입니다. 배후의 모든 계획을 우리 통일교회에서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서 앞으로 김일성이하고 담판을 해야 될 때가 올 것입니다. 싸움이 벌어질 거예요. 그때 문제되는 것을 해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일본 일만 해도 그렇습니다. 사또 수상이 이번에 중국을 지지하자고 결정한 것도 선생님이 후원한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5,6년 전부터 공작을 했습니다. 6년 전부터 기시하고 사또를 붙들고 일을 시작했어요. 그래 가지고 그것이 자민당에서 간사장을 하던 다나까(田中)를 갈아치운 제일의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들을 그냥 두면 일본을 팔아먹는다구요. 그래서 구보끼(久保木)더러 기시와 사또의 집에 가서 통곡하며 호소하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된 거예요.
이번에 저 미국 각료들이 후꾸다(福田)를 만나 가지고 약속을 받고 또 사또에게도 약속을 받은 것이 작년 7월인가 그렇습니다. `중국을 통하라. 상당히 지금 불리하다'고 지시했습니다. 그래서 작년 1월인가, 기시 수상이 선생님을 방문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중국의 장개석이도 선생님을 알고 있다구요. 레버런 문이 말하게 되면, 국가적 기준에서 한국과 일본의 승공연합이 뭐 어쩌고 하는데 무턱대고 그럴 것이 아니라 기반을 닦아 나가야 됩니다.
그래 미국은 어떻게 될 것이냐? 미국 상원의원을 중심삼은 행정부내에는 빨갱이들이 많습니다. 그것에 대비한 활동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미국에 그걸 닦기 위해서 어린이 무용단도 보낸 것입니다. 한국문화재단이 이제는 미국내에서도 주목받는 단체가 되었다구요. 거기에 현재 고정적으로 후원하고 있는 상원의원만 해도 52명인가 된다구요. 또 하원의원은 124명이 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월 10만 명 이상이 우리 한국문화재단의 고정 지원요원이 되어 있어요. 선생님이 이제 상류층에 속한다구요. 대학총장이 되면 주지사나 부지사 해먹는 것보다도 큰 가치가 있어요. 그래서 내가 이들을 중심삼고 앞으로 세계평화통일연합을 구성하려고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지금 영국이랑 불란서랑 짜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번 와클대회(WACL大會) 때에 왔던 세계적인 사람들을 전부 규합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등등의 문제를 놓고 생각해 볼 때, 이런 일이 당장에 될 것 같아요? 그러한 일을 해 가지고 나라를 살리기 위한, 여러분이 피난 갈 길을 닦아 놓자는 것입니다. 미국이 반대하게 되면 독일로 갈 것입니다. 거기서도 반대하면 불란서로 갈 것입니다. 우리의 길이 이런 길입니다.
세계적인 섭리에 보조를 맞추기 위한 심정적 기반을 닦으라
우리는 나라를 찾아야 됩니다.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그렇게 나와 가지고 독립된 나라를 찾았다고 하지만, 그 나라는 앞으로 한국이, 선생님이 해방시켜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민족은 하나의 아랍권을 중심삼은 민족적인 싸움터에서 몰리고 있고, 우리는 지금 세계적인 싸움터에서 몰리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싸움터가 깨져 나가게 되면 아랍권의 싸움터도 절단나는 것입니다. 공산당이 장악하게 되면 아랍권은 자동적으로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에 그런 모든 것을 걸어 놓고 이 나라를 찾기 위해 하나님이 지금까지 얼마나…. 선생님이 지금까지 싸워 나왔고 예수님이 지금까지 2천년 동안 싸워 나왔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은 모든 요인을 집결시켜 가지고 나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가야 할 길 앞에 국가적인 전통 사상을 어떻게 남길 것이냐? 그 나라를 찾아가는 길은 비참한 길이요, 피눈물 나는 길입니다. 거기에서 역사적인 선조들의 전통적 사상의 기원이…. 선생님 일대를 중심삼고 그것이 찾아진다구요. 6천년의 역사는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슬펐던 역사입니다. 선생님 일대의 역사도 슬펐던 역사지만, 여러분이 선생님을 중심삼고 기쁠 수 있는 역사를 만들어야 합니다. 내가 지금까지 여러분에게 고생하라고 했지, 언제 잘먹고 잘살라고 했어요? 그러나 언젠가는 잘먹고 잘 쉬며 살 때가 올 것입니다.
그래서 엊그제도 중고등학생들, 성화 16회 학생들 142명을 선발했습니다. 그들을 모아 놓고, `일선에 나갈 사람 손들어 봐라' 해 가지고, 개인 개인에게 `갈래, 안 갈래?' 해 가지고 안 가겠다고 한 사람은 빼놓고 가겠다고 한 사람은 전원 교육시키는 거예요. 출발해야 되겠다구요. 그래서 지금 청평에서 교육받고 있습니다. `매일 4시간은 노동이다' 이것을 공식으로 세워 놓았어요. 이제 3년만 있으면 농촌에 가서 4백 명 이상의 기관요원을 양성해야 되겠어요. 여러분을 선두에 세워 가지고 승공이념이라든가….
앞으로는 대학교를 중심삼고 우리 사상을 전체적으로 확대시켜야 합니다. 대학이 없으면 안 돼요. 그러니까 할 수 없이 이제 대학교를 하나 인수해야 되겠어요. 그런데 그 대학 인수하려고 하던 계획이 틀어져 가지고 티타늄 공장을 만들어야 할 형편입니다.
1971년도에는 그러한 큰 계획을 하고 있다구요. 경제적 지원을 위한 자금을 2천 5백만 원 이상 확보해야 됩니다. 이제부터 내가 5년만 손대면 2천 5백만 원이라는 돈을 한국에서 보급할 수 있습니다. 이 경제적 터전을 닦기 위해 현재 무리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 10월에는 모험을 하고 있는 거예요. 여의도 땅값 5천 8백만 원을 지불해야 되는데 돈은 한푼도 없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안팎이 다 깨져 나가게 되어 있어요. 내가 그렇다고 임자네들한테 돈 타령을 하게 돼 있어요? 잠이나 잘 줄 알고 밥 못 먹으면 배고프다고 나 할 줄 아는 임자네들한테 말이예요.
그렇지만 하늘은 비상작전을 하는 거예요. 12월 20일까지 4개월 동안에 2억 원을 지불해야 하는 거라구요. 2억원이란 돈을 선금으로 지불해야 된다는 거예요. 또 이달 21일에는 3천 5백만 원을 건네 주어야 돼요. 그런데 지금 내 지갑에는, 본부에는 만 원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모험을 하고 있는 거라구요. 선생님이면 다 된다고 생각 말라고요. 선생님이 누구 때문에? 누구는 누구예요, 임자네들 때문이지요.
앞으로의 사업계획을 중심삼아 가지고 보면…. 한국에서는 아직 화공업계에 손댄 사람이 없잖아요? 앞으로 무궁무진하게 발전할 수 있는 분야가 화공업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3,4년 전부터 여기에 손을 대기 위한 작전을, 생활을 중심삼고 거기에 관계된 것을 은밀히 연구해 나온 겁니다. `요럴 때가 올 것이다' 해 가지고 3년 전에 계획을 세우고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통일교회 간부들은 선생님이 뭐…. 내가 지금까지 고생함으로 말미암아 이런 회사를 만든 거라구요. 이제 한 2년만 있으면 이 회사는 우리 것이 됩니다. 또 그 회사는 앞으로 무궁한 발전을 할 것입니다. 제1, 제2, 제3, 제4, 제5공장…. 그 공장의 시설에 필요한 파이프를 우리가 만드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제2공장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6억원쯤 필요하지만 우리가 2억원이면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것을 내가 준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르지만 그런 일을 해온 거예요.
선생님이 이제 한국에 있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들을 그냥 내버리고 다 헐어 버리고 갈 수가 없기 때문에, 바쁘다구요. 1973년도까지는 대학교를 세워서 기반을 닦아야 되고 신문사까지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대학과 신문사만 만들어 놓으면 정부도 꼼짝달싹 못 하게 됩니다. 대학가에 있어서 원리운동을 중심삼고 지금 정보부에서 우리에게 학생지도를 의뢰하고 있는 판국인데, 대학교만 있어서 도장만 누르면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꿈이나 꾸고 있어요?
이것이 다 나라를 찾기 위한 준비과정인 것을 알고, 여러분은 여기에 보조를 맞추기 위한 심정적 기반을 닦아야 됩니다. 지금 교회를 중심삼고 전심전력을 다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갖추어야 할 자연적인 환경을 못 갖추었기에 그 일까지 선생님 자신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내적 분야를 등한시하고 외적 분야를 등한시할 때, 여러분이 그것을 하지 못하는 한 교회면 교회장이 파수꾼이 되는 겁니다. 전도를 못하게 되면 붙들고 눈물을 흘리고, 정성을 들이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크지 않아도 괜찮아요. 기성교회를 보면 교회들이 다 좋은데 뭐 하려고 우리가…. 그들은 어차피 우리 통일교회로 넘어오는 거라구요. 안 들어오게 안 되어 있습니다. 그것보다도 전체 국가와 민족을 위한 터전을 닦는 것이 더 시급합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교회를 위한다고 하는데 우리가 교회를 지을 때, 딴 데는 돈을 주면서 우리에게는 왜 주지 않느냐'고 할지도 모릅니다. 교회는 내 편이라구요. 알겠어요? 교회는 내 편입니다. 이 나라와 민족과 세계를 위해 염려하며 가는 길이 복귀의 길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라를 위하는 책임을 하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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