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대한민국 화해 프로젝트 <용서>
오해와 불신의 8년, 배구의 전설 이인과 장윤창
*방송일시: 2014년 1월 23일(목) 오후 9시 50분
*연출: 토마토미디어 권성윤 PD / 글·구성: 정성해 작가 / 내레이션: 성우 정형석
1978년 방콕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78년 로마 세계선수권 대회 4위
1979년 멕시코 유니버시아드 대학 선수권 대회 1위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예선, 일본에 첫 승리
한국 배구를 세계에 알린 주역 이인과 장윤창
이인은 대표팀의 주장으로, 장윤창은 막내로서 만난 두 사람은
해외에서 같은 방을 쓰며 돈독한 사이가 되었다.
힘든 훈련을 함께하고 승리의 감격을 공유했던 이인과 장윤창
하지만 대한배구협회를 전무와 이사로서 함께 이끌어가면서
두 사람은 등을 돌리게 되는데....
2006년 대한배구협회는 장윤창의 주도로 한강 비치발리볼 대회를 추진하게 된다.
하지만 이인이 한강 비치발리볼 대회 한 달 전
또 다른 비치발리볼 대회 인준을 이사회에 요구하고 나선다.
바로 대한배구협회의 산하인 비치발리볼연맹이 개최하는 해운대 비치발리볼 대회였다.
심지어 그것도 한강 비치발리볼 대회보다 3일 전에 하자는 것이었다.
한강 비치발리볼 대회에 고춧가루를 뿌리는 격이라고 생각한 장윤창과 이사진들
대회는 자주 개최해야 더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는 이인
계속해서 견해차는 좁혀지지 않았고 결국 해운대 비치발리볼 대회는 무산되었다.
하지만 대한배구협회는 이 사건으로
상임이사의 집단 사퇴라는 사상 초유 사태를 맞이하게 된다.
결국 모든 책임은 전무이사인 이인에게 돌아오게 되고
이인은 임기 1년 만에 사퇴라는 불명예를 얻게 된다.
“장윤창이 중심에 있던 이사 집단 사퇴로 인해 제 배구 진로가 완전히 막혀버린 거죠”
한국 배구를 주름잡던 ‘명 센터’.
국가대표팀의 사령탑으로도 활약했던 카리스마 리더 이인.
해운대 비치발리볼 대회를 개최하는 것이
한강 비치발리볼 대회의 홍보 효과를 더 높일 수 있다고 이인은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인의 주장에 끝까지 반발한 상임이사들의
집단 사퇴는 결국 이인이 전무 자리에서 내려오게 하였다.
그리고 그 집단 사퇴의 중심에는 장윤창이 있었다.
전무이사 사퇴로 인해 행정가로서도, 감독으로서도 설 곳이 없어진 이인.
아꼈던 후배 장윤창이 자신을 배신한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다.
이번 여행을 통해 후배의 죄송하다는 한마디만이라도 꼭 듣고 싶다.
“갑자기 서류를 던지고 나가버렸어요. 돌이키기엔 너무 늦어버린 거죠”
최연소 국가대표. 최장수 국가대표.
배구계의 살아있는 전설 장윤창.
대표팀 막내로 들어온 장윤창에게 리더인 이인은 좋은 선수의 본보기였다.
장윤창은 자신에게 들어온 대한배구협회 전무 자리를
이인에게 추천할 정도로 이인은 존경하는 선배였다.
하지만 이인은 대한배구협회가 모르게 비치연맹과 손을 잡고
해운대 비치발리볼 대회를 추진하였다.
이인과 더는 일을 함께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장윤창은 사퇴를 결심하게 되었다.
넉 달 전 첫째 아들을 심장마비로 잃은 슬픔에도 불구하고
장윤창이 주도하여 상임이사들이 단체 사퇴를 했다고 믿고 있는
이인의 오해를 꼭 풀어주고 싶어 여행길에 올랐다.
서로 간의 팀워크와 배려가 중요한 운동인 배구.
하지만 지금은 각자의 주장만 내세우고 있는 이인과 장윤창.
배구가 국민 스포츠라는 캄보디아로 떠난 두 사람은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던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첫댓글 아~! 이런일이 있었군요....
이인이라는 실존인물에 대하여는 잘 모르지만 장윤창은 잘 알고 있지만요....
오해가 불러일으킨 비극 화해로 잘 매듭짓는 과정을 꼭 봐야겠네요.
시간을 놓처 방송을 못봤는데 재방은 언제하는지~~~
아쉽네요~~~
어렴풋이 기억나네요.배구연맹한참 시끄러웠지요.VOD라도봐야겠네요.
학찰시절에 기억에 고려증권하면
장윤창선수 인기짱입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