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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주현우씨가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후문에 붙인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시작으로, 대학가를 중심으로 안녕하지 못한 세태에 안녕을 외치고, 시대와 사회라는 동일한 원인이 만들어낸 각자의 ‘다양한 곤란’을 담은 대자보를 붙이는 문화가 전파되고 있다.
혹자는 이들이 대자보를 붙이는 것에서 운동이 끝난다고 지적하거나, 대학을 중심으로 파급되어 졸업생들이 자신의 삶터가 아닌 학교에 대자보를 붙이러 간다는 점들을 비판하며 이 운동이 엘리트적인 단발성 해프닝에 그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대자보들을 통해 그 일차적 원인이었던 철도노조 파업을 지지하는 세력이 힘을 받고 지난 12월 28일에는 총파업 집회 등으로 이어지는 등, 지금까지 쉬이 묻지 못했던 ‘진짜 안녕하느냐?’ 라는 문제는 많은 국민의 가슴속을 파고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안녕하십니까’ 사태를 직접적으로 촉발한 것은 수서발 자회사 설립을 통한 민영화에 반대하는 철도노조의 파업이었고, 더 자세하게는 파업에 돌입한 지 며칠도 지나지 않아 참가자 사천여명에게 직위해제를 단행한 최연혜 사장의 ‘집 나간 자식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에 대한 반발이었다. ‘수서발 KTX 자회사’가 과연 민영화인지, 아닌지 자체에 대해서도 서로의 주장은 엇갈린다. 하지만 민영화가 아니라면 왜 자회사를 만들어 경쟁을 해야 하며, 왜 저수익 노선이 아니라 고수익 노선이어야 하는가? 과연 경쟁을 도입하면 저수익 노선이 고수익이 되며 고수익 노선이 비용 절감을 통해 더 수익을 얻도록 거듭나는가?
철도사업이 국영으로 운영되었던 이유는, 말 그대로 국가기간산업으로서, 민간 수송과 산업의 인프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지역의 시립 의료원도, 학교도 그렇다.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을 무상으로 교육하는 것은 미래를 운영할 인재들을 위한 국가의 구조적 투자이며, 시립 의료원은 빈곤이 의료 접근 실패로 연결되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안전망이다.
만약 이런 일들에서 국가가 투자한 만큼 얻지 못해도 그 이득은 국민과 산업이 얻게 된다. 철도가 처음부터 민영으로 운영되고, 투자한 기업이 투자한 만큼 혹은 그 이상 얻어가려고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철도 비용이 비싼 것은 물론이고, 온 곳에 광고가 즐비하고, 철도회사에 돈을 낸 상인들이 비싼 물건과 밥을 팔며, 작은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몇 시간 동안 최대한의 수익을 다양한 주체들이 탑승자에게서 얻어내기 위해 경합을 펼쳤을 것이다.
철도역의 멀티플렉스나 기차 내의 쇼핑 카탈로그는 아무리 국영이라 해도 이런 유혹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데, 민간 운영이라면 어떠할 것인가. 아마 철도가 처음부터 민영이었다면, 현재처럼 수도권에 국민의 반이 모여 살고 있는 모양새가 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철도 운영에 한 푼 보태기보다 지역 안의 경제를 살리는 데에 유인을 느껴서 지역이 골고루 발전하는 더 좋은 대한민국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
민영화는 그렇게 찾아온다. 처음부터 민간인 것을 국영으로 운영하다 다시 민간에 돌리는 것도 아니고, 국영으로 한참 운영하여 국민들과 산업이 그 기능이 그에 의존하기 시작할 때 쯤, 세금으로 운영하던 사업을 분리하고 갑자기 적자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며 소리친다. 민영화는 언제나, 민간으로 돌리면 경쟁을 통해 더 ‘효율적’이고 ‘수지맞는’ ‘장사’가 가능하다는 논리를 가지고, ‘이미 수익이 잘 나고 고수익이 보장되며’ ‘없으면 안 되는’ 것들을 대상으로 삼는다.
2012년도 중반에 올해까지 동구 송림동에 있었던 박문여중과 여고가 내년, 그리고 내후년에 송도로 이전하는 안이 인천교구에 의해 제출되었고 3개월만에 시교육청의 승인을 받았다. 박문여중고가 옮겨갈 연세대학교 송도개발주식회사의 부지는 원래 해당 주식회사에서 공립학교를 지어 기부채납해야 할 땅인데, 천주교 인천교구에는 원가의 각 20%와 30%에 할인해서 판다고 한다. 올해 들어 청라지구로 이전 신청을 준비하고 있는 광성고의 경우, 이전 예정 부지는 원래 공립학교 신축 예정 부지라고 한다. 왜 사립학교들이 줄줄이 이전하는 것일까? 2010년대 들어 개정된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시행령 개정안에 의하면 사립학교가 이전할 경우 교육부에 의해 그 건축비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되어 있다. 공립학교를 세울 돈이 사립학교에 지원되는 것, 민영화는 이렇게 다양한 형태로 갑작스럽게 찾아오고 심지어 민영화인 줄도 모르게 처리된다. 운영부터 이전까지 국가의 허가와 지원을 받아서 하는 사립학교지만 이전 문제에는 ‘사유재산권 침해’라며 시민들의 의견이 묵살당한다. 심지어 동구의 모든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그런 ‘사유재산’인데도 말이다. 어디까지가 공공이고 어디까지가 사적 소유일까?
경제를 움직이는 수많은 기업들을 보면 민간이 운영하는 것 자체가 나쁠 리 없다. 하지만 공적 목적을 지닌 기관을 민간이 운영하는 데에 있어서 우리가 느끼는 뿌리깊은 불신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민영화를 하는 것 자체가 문제일까?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민영화를 하는 목적이 합당한지, 과정에서 절차적 민주주의가 지켜졌는지, 또한 그 결과에 국가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지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민영화 논의들은 조건들을 조금도 만족시키질 못한다. 국민들은 국가가 지키려 하는 이해관계자들에게 지갑을 열어줘야 하는 소비자가 아니라 이 땅 안에서 계속해서 자신의 일을 하며 작은 삶을 살아가려 하면서 자신의 권리를 위임한 국가를 냉정하게 지켜보고 있는 감시인들이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깃대와 횃불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와 “그동안 안녕하셨냐?”며 당신들을 재판할 진짜 주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