往者不可諫(왕자불가간) 來者猶可追(내자유가추)
논어(論語) 미자편(微子篇)에 나오는 말로서 ‘이미 지난 일은 돌이킬 수 없지만,
앞으로의 일은 오히려 쫓아갈 수 있다, 즉 고칠 수 있다’는 뜻이다.
공자는 자신의 정치이념을 받아 줄 군주를 찾아 주유열국(周遊列國) 하였으나
많은 군주들로 부터 외면 당하였고 초야에 은둔한 현자라는
은자(隱者)들로 부터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어느 날 공자가 제자들과 초나라로 가는 도중에 초나라의 광인(狂人) 접여(接輿)
라는 사람이 그를 향해 ‘봉황이여 봉황이여 어찌 덕을 쇠퇴하게 하는가?’
라고 말했다. 여기서 덕은 봉황과 같은 공자의 높은 덕을 의미한다.
봉황은 태평성대에 나타나고 난세에는 숨는다고 알려졌는데 이런 난세에 어찌
봉황과 같은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는가 하는 뜻으로 왜 이곳 저곳 다니며
벼슬을 구걸하는가 하고 공자를 비판한 것이다.
그는 이어
지나간 일은 바로잡을 수 없으나 (往者不可諫/왕자불가간)
장래의 일은 그래도 따를 수 있지 않은가(來者猶可追/내자유가추)
그만 두시오. 지금 세상에서 정치를 쫓는 것은 위태로울 뿐이오’라고 말했다.
접여광가도/接輿狂歌圖, 명나라 때 그림
초나라의 광인 접여가 제자들과 지나가는 공자에게 말하는 장면
이는 공자에게 혼탁한 세상을 떠나 은거하는 것이 어떤가 하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
또다른 은자인 걸익(桀溺)이라는 사람이 밭을 갈다가 공자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에게 ‘도도한 대세에 순응하는 사람이 세상에 가득한데
누구와 함께 세상을 개혁하겠는가? 차라리 속된 세상을 피하여 은거하는
우리같은 사람을 따르면 어떤가?’라고 말했다.
접여와 걸익은 장차 다가올 속세의 화를 피하기 위하여
현실에 도전하기 보다는 은둔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공자는 현실도피 보다는 혼탁한 세상을 인(仁)에 바탕을 둔 정치로 바로 잡기 위해
고민하고 제자들을 가르치며 자신의 뜻을 받아 줄 군주를 찾기 위해 주유(周遊)하였다.
이러한 공자의 의지는 이를 시기하고 경계하는 군주 주위의 대부(大夫)들에 의하여 결국
펼져지지 못하였고 그는 마침내 그 뜻을 접고 후학들을 가르치는 일에 여생을 바쳤다.
이 말은 그후 후인(後人)들에 의해 널리 회자(膾炙)되고 인용되었다.
4-5세기 도연명(陶淵明)의 그 유명한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이미 지난 일은 탓해야 소용없음을 깨달았고 /
앞으로의 일은 아직 쫓을 수 있음을 알았네 /
내가 인생 길을 잘못 들어 헤매었지만 아직 그리 멀지 않았고 /
이제야 오늘이 맞고 어제가 틀렸음을 깨달았네’
라는 구절이 있다.
‘천 번 생각에 한번 실수한다’는 뜻의 천려일실(千慮一失)
은 아무리 신중한 사람이라도 실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사람이 항상 옳은 판단을 할 수는 없고 크고 작은 실수를 하게 되지만 옛 성현들은
과거의 실수나 잘못으로 부터 배움으로써 앞으로는 똑같은 잘못을 하지 않는
지혜를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철을 밟지 않는다’는 부답복철(不踏覆轍),
‘앞에 간 수레를 거울 삼는다’는 전거지감(前車之鑑)
역시 과거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고 장차 같은 실패를 하지 않도록 대비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과거의 일로 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고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한다는 뜻으로 중도복철(重蹈覆轍), 즉 ‘뒤집힌 수레 자국을 다시 밟는다’는 말이 있다.
지금 시대의 사람들은 이중 어떤 말을 따르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