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해골(乞骸骨) -해골을 돌려줄 것을 청하오니 이제 초야에 묻힐까 합니다. 이상호(소소감리더십연구소 소장) 1. 권력은 무상한 것 상식을 아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권력은 무상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권력의 마력에 이끌리어 권력의 자리와 권력의 주변에서 떠나기를 싫어한다. 그것은 오랫동안 권력의 욕망에 사로잡혀 살았기에 권력이 자기의 정체성인 것 같은 자기도취적 착각에 빠져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력이든 부귀던 모두 때가 되면 부질없는 것이 된다. 그것을 알고 정리하면서 초연하게 늙음을 맞이할 수 있음은 나와 나의 명예를 지켜 삶의 향기를 더하는 일이다. 그런데 권력이든 부귀든 떠밀려 떠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박수받으며 떠나는 사람이 있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 있듯이 기왕에 떠날 것을 감지하였다면 박수받으며 떠날 줄 아는 것도 매우 지혜로운 삶의 방식이라 여겨진다. 떠나라 하는데도 자존심과 자리 욕심에 휘말려 떠나지 못하고 권좌를 지키려 드는 사람은 어쩌면 소중한 자기 실존보다는 외형에 사로잡힌 불쌍한 영혼인지 모를 일이다. 중요한 것은 자기 실존이며 자기의 삶을 스스로 받아들이고 정리할 줄 아는 것이리라. 그 이치를 적시(適時)에 알고 떠날 수 있는 사람은 현명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지금도 많은 사람이 나이가 들어서도 권력의지를 버리지 못해 자리 지키기를 희망하며 안간힘을 쓰다가 쫓겨나다시피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것으로 인해 그동안 쌓았던 그의 인덕(人德)마저 모조리 무너뜨리는 사람도 있어 안타깝다 2. 범증과 항우 그리고 걸해골(乞骸骨) 범증(范增 B.C 278년 ~B.C 204년)은 초한지에서 매우 중요하게 활약한 인물로 알려진 사람이다. 그의 작위는 역양후(歷陽侯)였으며 항우로부터 아보(亞父-아버지 다음으로 존경하는 사람이라는 뜻)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래서 최종직위로 대장군(大將軍)에 올랐다. 팽성 거소현(居鄛縣) 사람이라 무덤도 거소현(居鄛縣) 곽동(郭東)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범증은 초한 전쟁 때 항량과 항우를 극진히 모셨던 초나라의 최고의 책사이자 전략가였다. 항량과 항우의 신임을 받았던 그는 초나라의 승상을 역임했다. 진시황이 죽고 항우의 초나라와 유비의 한나라가 각축전을 벌이며 항우의 숙부인 항량이 대세를 장악하던 시절이었다. 원래 범증은 젊은 시기에 벼슬에 뜻을 두고 춘신군의 식객이 되었다. 그러나 춘신군 황헐의 숙청사건(기원전 244년) 때 춘신군과 같이 실각 되었다. 그후 그는 매우 신중한 사람이 되어 나이가 70이 되도록 초야에 묻혀 독서하면서 선도(仙道)를 배우며 신선(神仙)이 되기를 꿈꾸던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 운명을 점칠 줄도 알았다. 나이 70이 되었지만, 아직 속세에 나갈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은둔해 있었다. 그때 계포가 찾아와 항량의 책사가 되어 줄 것을 간곡하게 부탁했다. 범증은 계포와 항량의 부탁에 감동하여 항량을 따라나서게 되었다. 그는 짐을 꾸리다가 항량과 항우에게 천명이 있는지 살펴보지 않았음을 깨닫고 몰래 점을 쳐 보았다. 그 둘에게 굵고 짧은 왕운(王運)은 보였으나 결국 순리를 거스르는 명운이 나왔다. 범증은 마음속으로 크게 후회하여 이렇게 말했다. “아뿔싸! 내가 경솔하여 사사로운 감정으로 뛰어들고 말았구나. 미리 하늘의 뜻을 헤아려야만 했거늘...” 그러나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범증은 항량의 소중한 책사가 되었다. 항량의 책사가 된 범증은 항량을 찾아가 천하를 얻을 수 있는 책략을 제안하였다. ‘천하의 대세를 잡으려면 제후들이 따르게 하여야 합니다. 그러려면 명분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옛 초나라(진시황이 전국을 통일하기 전의 초나라)의 왕족을 왕으로 옹립해야 합니다. 초의제를 왕으로 옹립하면 명분을 충분히 얻고 제후들이 따르게 될 것입니다’ 항량은 범증의 제안이 매우 옳다고 여겨 적극 받아들여 초의제를 왕으로 세우고 널리 알렸다. 그리고 왕족을 우대하면서 옛 초나라의 영광을 회복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그것은 항량이 이끄는 초나라 군벌이 진나라에 대항하는 반군의 핵심 역할을 하게 하기에 충분하였으며 뒷날 항우가 대세를 장악하는 기틀이 되었다.( 사마천 『사기』 항우본기) 범증은 매사에 훌륭한 책략으로 항량과 항우를 보필하였다. 그러나 항량은 일찍 죽었다. 항량이 죽고 항우가 초나라를 통솔하게 되었다. 범증은 항량의 뒤를 이은 항우를 적극 보필하였다. 항우는 거록대전에서 범증의 장계취계(將計就計 : 상대방의 전략을 역이용하는 전술)를 받아들여 진군(秦軍)을 무너트리고 전국의 패자가 되었다. 그러나 처음엔 항우는 범증을 아보(亞父-아버지 다음으로 존경하는 사람이라는 뜻)라 부르며 범증을 존경하고 범증의 계책을 적극 받아들여서 성공적으로 진(秦)나라를 멸망시켰다. 하지만 패왕의 자리에 오른 항우는 점점 독선적으로 변하여 범증의 조언을 따르지 않기 시작했다. 패왕의 자리에 오를 때도 범증은 기존 초나라 왕족을 왕으로 섬기며 명분을 확보해야 한다고 끝까지 주장했지만, 항우는 듣지 않고 초의제를 살해하고 스스로 왕좌에 올랐다. 결국 항우의 초나라는 통일 국가의 도읍을 함양이 아닌 팽성으로 천도한 후 범증과 사이가 틀어지고 민심을 잃어갔으며 제후들의 분노를 사게 되었다. 그 이전에도 범증은 유방을 처음 본 순간부터 초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항우에게 유방을 없애버려야 한다고 조언하고 홍문연까지 열어 유방 암살을 모의하였다. 하지만 유방을 얕잡아 본 패기 넘치는 항우는 범증의 주장을 끝내 따르지 않는다. 그리고 유방이 함곡관을 봉쇄하자 항우는 분노하여 길길이 날뛰며 장작을 모아 불바다를 만들겠다고 협박해 수비병들이 알아서 문을 열게 했다. 다시 범증은 한신이 크게 능력이 있는 것을 알고 항우에게 몇 번이나 중용해서 크게 쓸 것을 추천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이에 범증은 한신을 쓰지 않을 거면 죽이는 것이 후한(後恨)을 없애는 것이라고 하였으나 항우는 한신을 우습게 여겨 홀대하기만 하고 그냥 내버려 두었다. 왕위에 오른 항우는 점점 독선적으로 변해 갔다. 그러나 범증은 여러 가지 조언을 하면서 항우를 설득하고 달래려 했지만, 성미가 급하고 과격한 항우의 심기만 건드렸다. 항우는 날이 갈수록 범증의 간언은 한 귀로 흘려버리고 부드럽고 말재주가 좋았던 장량의 말만을 듣기 시작했다. 범증은 점점 항우에게서 멀어졌다. 범증은 곧고 바른말을 잘하는 충직한 신하였으나 결국은 밀려나게 되었다. 유방은 항우가 출병한 사이인 B.C 203년 항우가 반란을 일으킨 것(초의제를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 것)을 응징한다는 명목으로 팽월(彭越) 전영(田榮) 등을 치기 위해 초나라의 도읍인 팽성(彭城)을 공격했다. 그러나 항우의 반격을 받고 겨우 영양(榮陽)으로 도망쳤다. 유방은 수개월이나 고전하다가 군량 수송로까지 끊겨 지탱하기 어렵게 되자 항우에게 휴전을 제의했다. 항우는 즉각 응할 생각이었으나 범증이 휴전 반대를 주청하며 항우를 설득하는 바람에 휴전 협상은 질질 끌리고 유방의 고전은 계속되었다. 그때 항우와 범증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유방의 책사 진평(陳平)이 첩자들을 풀어 진중(陣中)에 ‘범증이 항우 몰래 유방과 은밀히 내통하고 있다.’는 헛소문을 퍼뜨렸다. 이에 화가 극도로 난 항우는 범증 몰래 유방에게 휴전을 제의하기 위해 사신을 보냈다. 본래 진평은 항우를 섬기다가 유방의 책사가 된 사람인 만큼 누구보다 항우를 잘 알았다. 성급하고 단순하며 우발적인 항우의 성격을 겨냥한 진평의 이간 책략은 딱 맞아떨어졌다. 진평은 장량 등 여러 중신들과 함께 항우가 보낸 사신을 정중하게 맞아들이며 물었다. “아부(亞父-범증)께서는 잘 계십니까? ” 이에 사신은 불쾌한 어조로 “나는 초패왕의 사신으로 온 사람이오. 그런 것을 왜 물어보시오.”라고 말했다. 그러나 진평은 사신을 조롱하며 “뭐요. 초패왕의 사신이라고요. 나는 아부의 사신인 줄 알았는데..” 진평은 짐짓 놀라는 눈치로 사신을 조롱하며 잘 차려진 음식을 소찬(素饌)으로 바꾸어 들이게 한 후 말없이 방을 나가 버렸다. 진평의 푸대접을 받은 사신은 항우에게 돌아가 사실대로 고하였다. 항우는 범증이 실제로 유방과 내통하고 있었다고 여기며 그동안 범증에게 주었던 모든 권리를 박탈했다. 범증은 크게 노하였으나 이미 때가 기울었음을 직감하였다. 그래서 항우에게 이렇게 고하였다. “이미 천하의 대세는 결정된 것과 같사옵니다. 뒷일은 대왕께서 알아서 처리하소서. 원컨데 신은 이제 대왕께 바친 제 해골을 구걸하오니 제 해골을 돌려주시어(걸해골 乞骸骨)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여 주소서. 초야에 묻힐까 하나이다.” 항우는 범증의 청을 허락하였다. 범증은 짐을 꾸려 항우의 곁을 떠났다. 항우는 어리석게도 진평의 모략으로 유일한 모신(謀臣)을 잃고 말았다. 범증은 고향인 팽성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등창이 터져서 죽었다. 그때 나이 74세였다. (項羽欲廳天之 歷陽侯范增曰 “漢易與耳 令釋弗取 後必悔之” 項王乃與范增急圍榮陽. 漢王患之, 乃用陳平計閒項王. 項王使者來 爲太牢具 擧欲進之. 見使者 詳驚愕曰 “吾以爲亞父者 乃反項王使者.” 更持去, 以惡食食項王使者. 使者歸報項王, 項王乃疑范增與漢有私, 梢奪之權 范增大, 曰 “天下事大定矣 君王自爲之 願賜骸骨歸卒伍” 項王許之 行未至彭城 疽發背而死 -司馬遷 『史記』 項羽本紀) 항우는 범증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하루 종일 대성통곡하고 울었다. 항우는 자기가 독선적인 언행을 일삼을 때도 대장군으로서 모든 계책을 해결하던 범증을 잃자 주변에 제대로 된 책사가 없었다. 거기다가 한나라 유비의 책사인 장량과 진평에 의해 이리저리 휘둘리게 되었다. 항우의 군대는 점점 사기가 떨어지고 흩어지기 시작했다. 항우는 곤란한 상황을 겪을 때마다 범증을 그리워하며 “아보께서 살아계셨다면...” 하고 후회하였다고 한다. 3. 걸해골(乞骸骨)의 고사가 주는 의미 걸해골(乞骸骨)의 고사에서 우리는 세 가지 의미를 새겨볼 수 있다. 첫째는 항우의 언행이다. 항우는 젊은 패장으로서 욕망이 명분보다 앞섰다. 항우는 항량과 천하를 누빌 때는 패기 왕성한 명장이었다. 리더십과 기개와 무술이 뛰어났다. 그러나 항량이 죽고 난 후 욕망이 앞서 명분을 버리고 스스로 초왕이 되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등으로 돌리게 했다. 그런데다가 항우는 성급하고 독선적이며 의심하는 성정으로 지략을 가진 부하가 하나둘 떠나게 하고 최종적으로 가장 유능한 책사인 범증까지 잃게 된다. 따라서 리더는 명분보다 욕망을 앞세워서는 결코 안 된다. 그리고 자기의 성정을 잘 다스리지 않으면 결국 무너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주변에 인재를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중한 인재를 잃어서는 안 된다. 리더는 제대로 된 인재를 구하는 것이 곧 성공과 승리의 길이다. 둘째, 모든 일에는 역량도 중요하지만, 그 역량을 넘어설 수 있는 지략이 필요하다. 유비는 항우보다 열세였지만 진평의 지략을 받아들여 이간질로 항우가 범증을 잃게 했다. 전쟁 등에서 이간질 등 모략 또한 중요한 지략의 하나이다. 정치에서나 인간사 모든 일에 이간질이 나타난다. 그 이간질을 간파할 줄 아는 지략 또한 중요하고 이간질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능력도 중요하다. 인류의 전쟁사 이면에는 언제나 첩자의 활약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지금도 정보와 첩보의 전쟁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남과 북이 대치해 있는 현재의 우리는 간첩들의 활약을 간과해서는 결코 안 된다. 셋째, 떠나는 지혜이다. 어쩌면 걸해골(乞骸骨)의 주인공인 범증도 떠날 시간을 놓쳤다고 할 수 있다. 범증은 이미 자기의 몸을 항우에게 바친 이상 죽는 순간까지 항우를 위하여 죽기로 작정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항우의 의심을 받게 된 범증은 더 이상 항우에게 필요한 존재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래서 초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너무 늦었기에 고향까지 가지도 못하고 도중에 죽었다. 출사할 때도 때를 잘 알아야 하지만 물러날 때도 때를 잘 알아야 한다. 때를 알고 떠날 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삶의 지혜이다. 퇴계 이황은 수없이 사직서를 내었다. 그래서 당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았다. 지금도 권력과 그 주변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나이 든 사람이 무엇인가 한 자리를 가지기 위해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구차한 언행을 일삼는 사람들을 보면 불쌍하기도 하다.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람도 있다. 물론 자존심과 명분이 허락하지 않아 그럴 수도 있겠으나 내 자리가 아님을 깨달았을 때는 떠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더 이상 욕됨을 겪지 않는다. 그것이 세상살이의 이치의 하나이다. 걸해골(乞骸骨), 그것은 떠날 줄 아는 지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