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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모퉁이 오솔길
 
 
 
카페 게시글
─‥[자료 ♡ 연습방] 스크랩 시인은 어떤 사람인가?(시인의 기질)
peter 추천 0 조회 4 24.06.15 14:08 댓글 7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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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4.06.15 14:09

    첫댓글 한국 시단의 시의 전성기로 보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시인의 수효가 5만 명을 헤아리는 데에 이르렀고 수많은 시집과 詩誌
    시동인지 들이 매일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시인다운 시인이 얼마나 되고 시다운 시들이 얼마나 생산되고 있는가를
    살펴본다면 긍정적으로만 평가하기는 어렵다.
    나는 요즈음 별로 시를 읽지 않는다.
    게을러서라기보다는 시를 읽는 것이 즐겁지 않아서이다.
    아니 즐겁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시를 읽는 일이 오히려 싫증이 난다.
    시가 설령 재미있다손 치더라도 거의 매일 우송되어 온 적지 않은 시집이나 잡지들을
    섭렵한다는 것은 여간한 인내와 노력이 요구되는 일이 아니다.
    하물며 재미없는 경우라면 그 작품들을 위해서 소중한 시간을 할애할 마음이 선뜻 생기겠는가
    처음 몇 줄 읽어서 재미가 없으면 읽지 않고 넘어간다.
    난해하거나 답답한 것도 외면한다.
    평소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소수의 시인들 위주로 작품을 골라 읽게 마련이다.
    오늘의 시라는 글이 어떻게 해서 이렇게 난삽하고 골치 아픈 글이 되었는가?

  • 작성자 24.06.15 14:09

    어떤 사람이 이상한 악기를 하나 만들어냈다고 가정하자.
    새로운 그 악기는 물론 음악을 다채롭게 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악기가 모든 음악을 연주하는데 최상의 악기라고 잘못 판단하고
    이를 고집하는 무리들이 횡행한다면 이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시의 경우도 이와 같아서 하나의 새로운 유형의 출현은 그 가치가 인정되지만
    그것을 마치 시의 전범인 것처럼 여기고 이를 모방하는 것은
    개인이나 문단의 불행이 아닐 수 없다.
    效顰이라는 말이 있다.
    越나라의 미인 西施가 얼굴 찡그리는 것을 보고 한 醜女가 이를 부러워한 나머지
    흉내 내다 웃음거리가 되었다는 고사인데 이와 다를 바 없다.

  • 작성자 24.06.15 14:09

    누가 뭐라고 해도 시는 정련 된 언어 예술이어야 하며
    정결한 시 정신을 담고 있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다.
    시를 하찮은 말장난쯤으로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색다른 시를 만들어 주목의 대상이 될 것인가 보다는
    어떻게 감동적인 시를 낳아 긴 생명을 갖게 할 것인가 하는 데로
    시단의 관심이 되돌아왔으면 싶다.

  • 작성자 24.06.15 14:09

    시는 음악이나 미술 무용과 같은 예술의 한 영역입니다.
    하지만 시는 음악이나 미술 무용 등을 소재를 채택하여 형상화할 수 있습니다.
    시와 미술 혹은 음악이나 무용의 상호 텍스트성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인간은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방황하는 것이라고 괴테는 말했다.
    언뜻 들으면 모순된 말 같지만 결코 모순된 표현이 아니다.
    방황한다는 의미는 쓸데없이 헤매며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것을 찾아서 모색하는 것이며 어느 한곳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탐구하는 자세를 말하기 때문이다.
    일생 동안 시 창작의 길을 걸어와 그쪽 분야에선 제법 달인의 경지에 섰을 법한
    시인들도 한결같이 시는 쓰면 쓸수록 어렵다라고 말한다.
    지나친 겸손 같기도 하고 엄살을 떠는 것 같기도 하지만
    이 말은 괴테의 그것과 같은 의미로서 시 쓰기 역시 죽을 때까지
    부단한 자기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말일 것이다.

  • 작성자 24.06.15 14:10

    시인은 따뜻한 가슴으로 사물을 보라
    시인은 꾀꼬리처럼 어둠 속에서 그 고독하고 감미로운 목소리를 부르며
    사람들을 위로 해준다라고 영국의 시인 셸리는 말했다.
    우리는 셸리의 이 말 속에서 시인의 가슴이 어떠해야 하며
    시의 자리가 어디에 있는가를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다.
    아마도 그것은 세상과 인간을 향한 따뜻한 사랑과 위로로써
    우리들의 아픔과 슬픔을 어루만지는 자리에 시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나시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그 밑바닥에 깔려 있는 사랑을
    모성적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다.

  • 작성자 24.06.15 14:10

    論語의 陽貨편에 보면 시에 대한 정의가 나온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너희는 왜 시를 읽지 않느냐고 물으며
    시의 기능을 여러 가지로 설명하는데 그중에 가장 중요한 개념이 可以興과 可以群이다.
    조금 변형시켜 해석한다면 가이흥은 시가 삶을 활기 있게 만들어준다는 뜻일 터이며
    가이군은 사람으로 하여금 더불어 살게 한다는 뜻일 터로 시의 본질을 정확히 간파한
    아포리즘으로 여겨진다.
    시는 죽음과 똑같이 모르는 사이 우리를 엄습한다
    시와 죽음은 의미의 틈새의 침묵에 의해서 잉태되는 것
    비로소 꽃이 피고 고기가 헤엄치고 짐승이 어슬렁대고 사람들은 진정된다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 작성자 24.06.15 14:10

    오늘날 현대사회는 과학과 물질만이 지나치게 발달한 반면 정신문화의 총체적 부재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인간이 인간다우려면 물질과 정신의 조화로운 관계가 유지되어야 함에도 오늘날의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언젠가는 썩어 문드러지고 벗어 던져야 할 육신의 살만 찌우고 고고한 인간정신은 사라지고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의 평가 잣대는 경제적 척도가 기준이 되고 인간관계는 투쟁의 연속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우리는 정신문화의 총체인 문학과 예술을 이해하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
    오늘날 우리는 문학과 예술을 경원시하는 참담한 시대에 살고 있다.
    문학 그 중에도 시 문학이 인간정신의 정수인데 이러한 시 문학이 홀대받는 이유는
    시인들의 자신에게서 기인하는 원인이 더 크다.
    독자를 의식하지 않는 시인의 시 쓰기와 기본이 갖추어 있지 않는 시인의 대량 양산이 지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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