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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장산술(九章算術)Ⅰ |
동양 최고(最古)의 수학서인 구장산술은 진한 시대의 산술서를 계승하고 후한 시대가 되어서 비로소 본 모습을 갖추게 된 옛 산술서이다. 이 책을 집필한 사람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263년에 삼국시대 위나라의 유휘(劉徽)가 뛰어난 주석을 붙여 펴낸 것으로 되어 있다. 중국에서는 당나라 시대에 수학교육이 제도화되었고, 나라에서 '산학(算學)'이라 불리우는 학교를 설립하였다. 그 학교에서는 다음과 같은 10종의 수학서가 교과서로 사용되었다.
구장산술의 제 3장 쇠분장(衰分章) - 비례 배분을 계산하는 법을 다룬다. 여기서 '쇠분'은 '차(差)'라는 뜻으로 차등을 두면서 비례적으로 골고루 나누는 계산법을 말한다. 먼저 쇠분장의 제 1번 문제를 예로 들어보면 [문제]지금 대부, 불경, 잠뇨, 상조, 공사 모두 다섯 사람이 있다. 이들이 공동으로 수렵을 하여 사슴 다섯 마리를 포획했다. 이 사슴들을 작위의 순서에 따라 나누려고 한다. 그렇다면 각각 몇 마리씩 갖게 될까? 로 되어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대부, 불경, 잠뇨, 상조, 공사는 진나라 시대부터 존재하던 작위제도인데 한나라 초기에도 이와 같은 작위가 주어졌다. ≪구장산술≫이 진나라에까지 거슬러 올라가 전승되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구절이다. 이 작위제도에 의하면 작위는 20등급으로 나뉘고, 가장 말단이 공사, 그리고 순차적으로 상조, 잠뇨, 불경, 대부로 올라간다. 따라서 문제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대부를 5, 그 이하 작위에는 4, 3, 2, 1의 비율로 다섯 마리의 사슴을 나눠 준다. 이러한 간단한 비례 배분에 비해 좀더 복잡한 다음과 같은 문제도 있다. [문제]베를 잘 짜는 처녀가 있다. 매일 짤 때마다 숙련도가 높아져 전날보다 두 배씩 더 짜, 5일동안 5자의 천을 짰다고 하면 매일 얼마의 천을 짠 것인가? 이것은 공비가 2이고, 항수가 5인 기하 급수의 합이 5척인 경우로 그 각 항을 계산해 내는 문제이다. 이것을 대수적으로 푸는 대신 1, 2, 4, 8, 16을 공차로 하는 비례 배분에 의해 풀고 있다. 이러한 해법은 고대 이집트나 인도, 아라비아 수학서에도 보이고 이러한 계산법을 가정법이라 부른다. 소광장(小廣章) - 넓이 또는 부피를 구하는 문제를 다룬다. 소광장은 방전장과 같이 주로 넓이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마지막 6개의 문제는 부피를 구하는 문제이다. 방전장과 다른 점은 먼저 넓이(혹은 부피)값을 준 다음 , 변의 길이를 구하는 문제가 많은데, 말하자면 방전장의 역산(逆算)으로 처리된다. 이제 그 중 1번 문제를 설명해 보자. [문제]지금 가로가 1보반, 넓이가 1무인 경작지가 있다. 세로는 얼마인가? [답] 160보 [해설]1무는 240평방보이고, 이것을 가로의 길이 1보반으로 나누면 전답의 세로의 길이를 구할 수 있다. 1번 문제부터 11번 문제까지 모두 같은 유형의 문제지만, 어쨌든 세로의 길이에 비해 넓이가 매우 작다. 그래서 이자(李藉)의 ≪구장산술음의≫에는 '소광'이라는 명칭이 거기서 생겨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23번 문제를 보면 [문제]지금 부피가 4,500척인 구가 있다. 그 지름은 얼마인가? [답] 20척 으로 되어 있다. 즉, 부피가 4,500입방척이면 그 구의 지름은 20척이라는 답을 얻는다. 24번 문제 뒤에 '개립원(開立圓)' 즉 구의 지름을 구하는 계산법이 나오는데 그에 따르면 지름을 d라고 할 때 구의 부피는
중국에서 구의 부피를 정확하게 계산해 낸 것은 6세기 초엽이다. 즉, 양나라에서 활약하던 조항지가 구의 부피를 계산해 내기 전까지는 근사계산법 밖에는 알지 못했다. 개평(제곱근을 구하는 것) 또는 개립(세제곱근을 구하는 것)은 2차 및 3차식의 간단한 경우이다. 중국에서는 고차의 숫자방정식이 일찍부터 연구되어 13세기 중반 진나라 구소(九昭)는 ≪수서구장(數書九章≫ 에서 10차방정식을 풀었다. 그 방법은 19세기 초 영국 수학자 호너법과 같다. 이 호너법의 맹아가 이미 소광장의 개평과 개립 계산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상공장(商工章) - 토목공사의 공정(工程) 문제를 다룬다. 상공장에는 다양한 토목공사의 공정을 계산하는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상(商)이란 도(度:계산)하는 것"이라는 것이 이자(李藉)의 설명이다. 성을 축조하거나 도랑을 파거나 하려면 우선 토사의 양, 즉 각종 입방체의 부피를 계산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입방체의 종류는 원통, 원기둥, 원뿔, 사각뿔, 각뿔대 등 여러 가지 모양이고, 그들 부피는 모두 정확하게 계산되고 있다. 7번 문제에서는 먼저 하천을 만들 때 파내야 할 흙의 부피를 구하고, 그것을 파는 데 고용되는 사람 수를 계산한다. 이러한 토목공사는 주로 가을에 행해졌던 것으로 보이고 한 사람에게 가을철에 부과되는 할당량은 3백 입방척으로 간주되고 있다. 토목 공사를 할 때 몇 사람이 필요한지를 미리 계산했다는 추정을 가능케 하는 문제들이다. 이것은 중국의 관료제의 기초로서, 당시 매우 주도 면밀한 계획 하에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균균장(均輪章) - 조세의 운반과 관련된 문제를 다룬다. 균륜장에서는 백성에 대한 부역을 어떻게 공평하게 부과할 것인가를 고려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장의 문제를 보면 중국 관료제가 백성를 심하게 혹사시켰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를 수학서에 다룬 것은 우리 나라 수학서에도 없고, 유럽의 책에서도 보이지 않는 드문 일이다. 간접적으로 균륜장 1번 문제에서 4번 문제를 보면 몇몇 현에서 정해진 창고로 쌀을 운반할 때 각각의 현의 호수(戶數)와, 창고까지 걸 리는 날짜를 고려하여 공평한 부담을 부과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문제가 다뤄지고 있다. 전한(前漢)의 무제 시대에 균륜관이라는 관직이 만들어졌는데 균륜관이 일하던 관청에서 실제로 이러한 작업이 행해졌던 것 같다. 물론 이러한 공평성이 실제의 반영인지 아니면 실제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어떤 당위를 제시한 것인지는 문제로 남는다. 수학서의 예제 가운데 얼마간은 허구(虛構)라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장산술≫이 소설책이 아니라 당나라와 송나라 시대 관리들의 교과서였다는 점에서 보면 그 당시 상황을 추정하는 지표라고 보아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더욱이 세관마다 세율이 정해져 있는 것으로 볼 때 이 문제는 의식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 한나라 시대 관세가 어느 정도였는가는 달리 열거할 자료가 없지만 이 문제에서 보이는 숫자가 그대로 봉건 사회의 실제를 반영하고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영부족장(盈不足章) - 과부족(過不足) 문제를 다룬다. 영부족장에서는 남거나 부족한 것을 가정할 때 맞는 수를 구하는 계산법이다. 1번을 예로 들자면 [문제]지금 공동으로 물건을 구입한다고 할 때, 각 사람이 8전씩 내면 3전이 남고, 각 사람이 7전씩 내면 4전이 부족하다고 한다. 사람 수와 물건 값은 각각 얼마인가? [답] 사람은 7인, 물건 값은 53전 원문에 있는 문제의 글 중에 영, 부족이라는 말을 따서 장의 제목을 여부족장이라고 했다. 대수적으로는 미지수가 2개인 일차연립방정식으로 풀지만 구장산술에서는 산술로 푼다. 즉 각 사람이 내는 돈 8전과 7전, 그리고 부족인 수 4전과 3전을 순서대로 곱하여 나오는 32와 21을 더한 수 53을 내는 돈의 차(이 경우는 1전)로 나누어 물가(物價:물건의 가격)로 하고, 과부족의 수의 합 7(4+3)을 내는 돈의 차 1(8에서 7을 뺀)로 나누어 사람 수를 구한다. 이 방법은 아라비아의 수학서에서 보이는 것과 동일하고, 복가정법( method of double false position)이라 부른다. 8전과 7전으로 가정을 했을 때의 수치이기 때문에 이런 명칭이 생겨났다. 방정장(方程章) - 다원(多元) 방정식 문제를 다룬다. 방정장에서는 다원 1차 연립방정식으로 해를 구하는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 2번 문제를 보자 [문제]지금 상급벼가 7단 있다. 거기서 나오는 벼의 양을 1말 줄이고, 여기에 하급벼 2단으로 채우면 벼의 양이 모두 10말이 된다고 한다. 또 하급벼가 8단 있다. 거기에 벼 1말과 상급벼 2단을 섞으면 벼가 모두 10말이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상급벼와 하급벼 1단에서 각각 얼마의 벼를 낼 수 있는가? 이 문제를 식으로 고치면
현재 우리가 쓰는 연립방정식과는 좀 다르지만 이것을 푸는 방법은 동일하다. 예를 들면 위의 2원 1차 연립방정식에서 한 개의 미지수를 소거하여 미지수가 하나인 1원 1차 방정식으로 고쳐서 해를 구하는 것이다. 이 방정식을 계산할 때는 양수음수계산법을 쓰고 있는데 양수 및 음수의 덧셈뺄셈 문제를 다룬다. 단순히 계산과정에 대해서만 쓰이고 있지만, 음수를 다룬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유럽에서 음수가 정수 및 영과 함께 숫자 속에 들어오게 된 것은 17세기 데카르트 이후이다. 중국에서는 음수를 숫자로 음수를 다루지 않고, 방정식의 근을 구할 경우도 제곱근만 취하긴 하지만 음수의 표시와 양음 상호간의 덧셈뺄셈법칙은 이미 ≪구장산술≫의 시대부터 알려져 있었던 것이다. 6번 문제의 경우도 현대 수학으로 풀 때는
라는 연립방정식으로 해를 구한다. 두 식에서 y를 소거할 때는 양수와 음수의 덧셈 법칙이 쓰인다. 구고장(句股章) - 피타고라스 정리의 응용 구장산술의 마지막 장인 구고장에는 피타고라스 정리를 응용하여 푸는 문제들이 나온다. 피타고라스 정리는 직각삼각형의 세 변 a, b, c 사이에 성립되는
이 장에는 직각삼각형의 두 변을 알고 다른 한 변의 길이를 구하는 문제가 많고, 이들은 제곱근을 구하는 방식으로 푼다. 그러나 지나치게 복잡한 문제는 2차방정식의 해를 구하는 방식으로 풀기도 한다. 20번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문제]한 변의 길이를 알 수 없는 정사각형의 마을이 있다. 그 마을의 네 개의 성벽 중아에는 문이 나 있다. 북문을 나와 20보가 되는 지점에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남문을 나와 14를 걸은 다음 방향을 바꿔 서쪽으로 1,775보를 갔더니 그 나무가 보였다. 그렇다면 마을의 한 변의 길이는 얼마인가? [답]250보 이 문제를 현대 수학으로 정리하면
이러한 숫자방정식을 일찍부터 풀었던 것은 중국 수학의 커다란 성과이다. 구고장에는 멀리 떨어져 있는 나무를 보고, 그 나무까지의 거리를 측정한다든지, 산의 높이를 측정한다든지 하는 문제도 있는데 이들은 측량술의 발달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계산법이다. 이상이 ≪구장산술≫의 개요이다. 구장산술은 당시 중국에서 일상적으로 부딪혔던 실용상의 문제와 그것을 푸는 계산법을 거의 망라하고 있다. 그 때문에 당대의 산학 교과서 가운데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했을 뿐아니라 송나라 말기 이래 원나라, 청나라를 관통하여 조선과 일본에 까지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당시 조선에서는 구장산술의 영향을 받아 남병길이 주석을 달고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펀집한 ≪구장술해≫가 나왔다. 구장술해는 모두 9권 2책으로 이뤄져 있는데 책머리에 ≪구장산술≫의 편자 유휘의 서문이 붙어 있고, 말미에는 남병길(南秉吉, 1820-1869: 조선 시대 말기인 순조때 대표적인 수학자이자 예조판서를 지냈다. 천문학에 정통하였는데 그는 중국의 앞선 수학을 보급하기 위해 조선의 실정에 맞게 구장산술을 풀이하여 ≪구장술해≫라는 이름으로 책을 펴냈다.)의 발문이 나온다. ≪구장산술≫에 대한 유휘의 주석은 삼국 시대 위나라 경원 4년(263년)에 쓰여졌다. 유휘에 대해서는 3세기에 활약한 수학자라는 것 이외에는 거의 아무 것도 알려진 것이 없다. 그는 ≪구장산술≫읭 주해 이외에 ≪해도산경≫을 저술하였는데 이 책은 주장산술 <구고장>의 보충이라고 할 수 있고, 계산법의 측면에서 크게 새로운 것은 없다. 특히 그가 <상공장>의 주석을 붙이면서 여러 가지 입체의 부피 계산에 상세한 설명을 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구장산술에는 계산식만 있고, 어떻게 해서 이러한 식이 도출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유휘는 붉은 색과 검은 색으로 색깔이 구분된 여러종의 입체동형을 사용하여 각각의 입체를 이러한 도형으 집합으로 증명하고 있다. 그 방법은 직관적인 기하학적 방법이다. 이러한 증명보다도 그의 수학적 업적으로 더 높이 평강되는 것은 원주율의 계산법이다. 우선 ≪구장산술≫에서 사용된 원주율 3은 원지름과 원에 내접하는 정육각형의 둘에 길이 사에서 얻어진 관계에서 시작하였다. 이 내접다각형의 변의 수를 두 배씩 늘려서 이러한 정다각형의 극한으로 원주의 길이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원의 반지름을 1척으로 하고, 외접 및 내접하는 정 192각형의 둘레 길이를 계산으로 구한 다음 원주율의 값을
구장산술은 당나라, 송나라에서는 산학 교과서로 사용되었고 명나라에 이르러서도 이것을 모범으로 한 수학서가 몇 권 만들어졌다. 유명한 명나라 정대위의 ≪산법통종(算法統宗)≫등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청나라 초에는 ≪구장산술≫의 완본은 존재하지 않았다. 남송시대에 포한지가 간행한 ≪산경십서≫가운데 ≪주비산경≫을 포함한 6부와 ≪구장산술≫9권 중 5권이 급고각의 모이가 소장하고 있었다. 건륭 38년(1773년)에 사고전서관이 개설되었는데 이 일에 참가한 대유 대진은 계산법 책들을 널리 찾아서 명나라 시대에 편찬된 ≪영락대전≫ 속에서 ≪구장산술≫ ≪해도산경≫ ≪오경산술≫등을 뽑아 기록할 수 있었고, 처음으로 ≪산경십서≫(이 가운데 철술은 일찍이 소실되었다)가 만들어졌다. 이들에 대해 대진은 교정을 보고 그것은 곡부(曲阜:중국의 지명)의 공계함에 의해 간행되었다. 이것이 바로 휘파사본 산경십서이다. 그 이후 여러 차례의 간행이 이워졌고 또 당시의 복고적 기운에 편승해서 구장산술을 중심으로 뛰어난 연구가 진행되었다. 특히 구장산술의 연구서로서는 가경 25년(1820년)에 간행된 이황의 ≪구장산술세초도설≫ 9권이 유명하다. 구장산술 연구서들이 이처럼 많이 간행되었지만 최근에는 전보종씨가 교정을 보고, 1963년에 북경 중화서국에 의해 간행된 ≪산경십서≫본이 편리하다. 여기에는 다른 산경십서본과 같이 유휘 주, 당나라 이순풍 주석 이외에도 전보종씨 자신에 의한 상세한 주해가 있다. 이미 구장산술에 대해서는 송나라 이자에 의한 ≪구장산술음의≫가 있지만 이것은 전보종의 책에 비해 내용의 질이 떨어진다. 과거에 상무인서관에서 국학기본총서의 한 권으로 간행된 것에는 이것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도 비교적 손에 넣기 쉬운 것 중에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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