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리즘의 늪에 빠지다
影園 김인희
내 안에서 더 이상 길어 올릴 샘물이 없는 것일까. 내 마음의 옹달샘이 메말라 버린 것은 아닌가 하고 자책한다.
‘엄마, 엄마의 글은 소재가 한정되어 있어요. 엄마의 추억이나 책이나 전시회에서 보고 느낀 것이 주류를 이루지요. 해외여행을 시켜드리고 싶어요. 엄마가 집을 떠나 시작 노트 한 권 들고 국내 여기저기 여행했으면 좋겠어요. 글을 쓰면서 실컷 즐기다 왔으면 좋겠어요.’ 내가 쓴 글을 읽고 날카롭게 충고하는 문학 지망생이다.
메모가 빼곡하게 적힌 탁상용 달력이 컴퓨터 앞, 책상, 주방 식탁, 사무실 책상 등 내가 머무는 공간 곳곳에 놓여있다. 컴퓨터 앞에 있는 달력에는 평생교육사 수강 시간과 대학원 박사과정 학사 일정이 메모되어 있다.
주방 식탁에 있는 달력에는 우리 가정사와 시댁과 친정 행사들을 메모해 두었다. 내 책상에 있는 달력에는 문학회 원고 마감 일정과 총회 날짜 등 행사를 적어 두었다. 사무실 책상에 있는 달력에는 업무 일정이 날마다 기다리고 있다. 유명 연예인 일정에 지지 않을 스케줄이다.
몇 주 동안 사업 공모 작성하면서 온통 컴퓨터 앞에 사로잡혀 있었다. 더러는 화장실 가는 것도 잊고 업무에 매달렸다. 하나씩 완성하고 스스로 대견해하며 나르시시스트가 되었다. 일이 밀려 있을 때 바쁜 일정에 대하여 불만이 없다. 그러나 마감 시간이 임박하면 하나님께서 시간을 더 주셨으면 좋겠다고 독백하곤 했다.
구약 성경에 여호수아가 아말렉 군과 전쟁할 때 여호수아가 시간이 좀 더 하락된다면 아멜렉 군을 이길 수 있겠다고 하늘에 대고 외쳤다. “태양아, 하루만 멈추어라!” 여호수아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는 정말 태양을 하루 멈추게 하였고, 결국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군이 아말렉 군을 이겼다.
혹자는 얼토당토않은 일이라고 말할 것이다. 더러는 신화라고 일축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 과학자들이 시간의 역사를 연구하다가 인류 역사상 하루의 공백이 있다는 것을 찾았다고 한다. 과학적으로 아무리 연구해도 해답을 찾을 길이 없었는데 구약성경 여호수아와 아말렉 군의 전쟁에서 원인을 찾았다고 했던 글을 읽었었다.
내가 사업 프로프잘을 작성 하면서 “주님, 여호수아에게 태양이 멈추었던 것처럼 제게도 태양이 하루만 멈추게 하소서!” 황당한 외마디였다. 절로 실소가 터진다.
업무를 하나씩 매듭짓고 매너리즘의 늪에 풍덩 빠져 도돌이표를 연주하고 있다. 나의 일상은 집에서 사무실 다시 사무실에서 집으로 오가는 단상이다. 차라리 산더미 같이 쌓여있는 일이 있을 때가 좋았다.
나의 시심이 샘솟을 수 있도록 옹달샘을 파내야 한다. 밤하늘 헤치면서 우두망찰 별을 찾아야 한다. 세파에 시달리더라도 순수한 마음 변치 말자고 스스로 다짐했던 날을 기억하고 자조한다.
훌쩍 떠나고 싶다!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가 한적한 곳에 들러 얼마 동안 쉬고 싶다. 작은 손에 움켜쥐고 있는 것들 모두 풀어주고 책 한 권 품에 안고 노트북 챙겨 무작정 떠나고 싶다.
산속에 들어가서 나무들의 호흡을 들어도 좋다. 바닷가에서 깊은 밤 외로운 등대를 주시하고 끝없이 백사장에 밀착하는 파도소리를 듣다 잠들어도 좋다.
몇 날 며칠을 노트북 열고 글을 쓰다가 쓰러져 잠들어도 좋다. 휴대전화 전원을 끄고 오롯이 홀로 문학 삼매경에 들고 싶다. 아, 꿈이여! 별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