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가계부’ 미리 쓰고 노후 대비 나서라
퇴직
후 수입 한정되지만
지출은
좀처럼 줄지 않아
90세까지
예상흐름 적으면
현실
직시, 동기부여 커져
요즘엔 가계부를 적는 사람이 많지 않다. 가계부란 한 식구의 수입과 지출을 적는 장부로 얼마나 돈이
들어오고 나가는지 현금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수단이다. 현금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부자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아무리 소득이 높아도 늘 돈이
부족한 사람은 자신의 정확한 수입과 지출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지출 규모를 기록하면 스스로 씀씀이를 되돌아보고 불필요하게 새나가는 지출을
자제하게 된다.
구멍가게를 운영하거나 기업을
경영해도 마찬가지다. 돈이 어디서 들어오고 어디에 쓰이는지 모르면 아무리 부지런히 일을 해도 독에 밑이 빠져 있는 것처럼 재산이 불지 않는다.
그래서 기업이 자리를 잡으면 전사적자원관리(ERP)같은 전산시스템을 통해 철저한 재무관리에 나서게 된다. 언제 돈이 들어오고 어디로 나가는지
한눈에 알아야 빈틈없이 회사를 경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치를 알고 가계부를
적으면 노후준비의 기본자세가 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같이 매일 쓰는 ‘일일 가계부’보다 더 중요한 가계부가 ‘30년 가계부’다. 매일
쓰는 일일 가계부는 과거의 기록이라 미래의 현금흐름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다. 과거에는 미래의 현금흐름을 알 필요가 없었다. 환갑을 쇠고
10년만 대비하면 됐기 때문에 쌈짓돈처럼 목돈만 있으면 노후를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백세 가깝게 사는
지금은 달라졌다. 노후자금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길게 30년 늘려 쓸 수 있도록 준비해 놓아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30년 가계부는 아직
경험하지 않은 미래의 가계부다. 만드는 법은 간단하다. 종이나 엑셀을 이용해 쉽게 만들 수 있다.
30년 가계부는 퇴직 후
예상 수입과 지출을 기록하는 공간이다. 우선 왼쪽에는 60세를 기준으로 연령을 쭉 적어 넣는다. 기대수명은 90세로 잡는 게 좋겠다. 둘째
칸에는 수입을 적고 셋째 칸에는 지출을 적는다. 매년 예상 수입과 예상 지출을 60~90세까지 적는다는 얘기다.
이렇게 해보면 의외로 큰
충격을 받게 된다. 막상 퇴직해 60세부터 노후생활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확실하게 손에 쥐는 수입은 연금밖에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공무원연금·사학연금을 받는 교사를 기준으로 할 때, 1인당 평균 수령액인 200~300만 원은 회사원·자영업자가 가입한 국민연금보다 여유가
있지만 은행·증권·보험사에서 판매하는 개인연금이 따로 없을 경우 충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재 자신의 지출 수준을 점검해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월 생활비 250만원이
충분하다면 문제가 없지만 대부분의 경우 60세가 넘어서도 한동안 지출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공부를 마치지 못한 자녀의 교육비를 지원해야 할
수도 있고, 결혼자금 지원으로 목돈이 들어가는 바람에 빚을 질 수도 있다. 여기에 대출이자를 낸다면 순수한 생활비는 훨씬 줄어들 공산이 크다.
친구들과 여행을 가거나 크게 아프기라도 하면 더 부담이 된다. 관리비와 통신비를 비롯한 기본 생활비와 재산세·자동차세 같은 고정경비도 무시할 수
없다. 이같이 은퇴 후에도 지출은 좀처럼 줄지 않는다.
30년 가계부는 하루빨리
작성할수록 좋다. 노후준비의 허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배우자와 함께 만들어보라. 현실을 직시하게 되면서 노후준비의 동기부여가
강화된다.
김동호
중앙일보경제연구소장 /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