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십리(往十里) / 김소월
비가온다
오누나
오는비는 올지라도
한 댓새 왔으면 좋았지
여드레 스무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루 朔望(삭망)이면 간다고 했지
가도가도 왕십리 비가오네
왠걸, 저새야
울랴거던
왕십리 건너가서 울어나 다고
비맞아 나른해서 벌새가 운다
천안에 삼거리 실버들도
촉촉히 젖어서 늘어졌다네
비가와도 한 댓새 왔으면 좋았지
구름도 산마루에 걸려서 운다.
초혼(招魂) / 김소월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虛空中)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主人)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心中)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西山)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떠러져 나가 앉은 산(山)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음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음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진달래꽃 /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오는 봄 / 김소월
봄날이 오리라고 생각하면서
쓸쓸한 긴 겨울을 지나보내라.
오늘 보니 백양(白楊)의 벋은 가지에
전(前)에 없이 흰 새가 앉아 울어라.
그러나 눈이 깔린 두던 밑에는
그늘이냐 안개냐 아지랑이냐.
마을들은 곳곳이 움직임 없이
저편(便) 하늘 아래서 평화(平和)롭건만.
새들께 지껄이는 까치의 무리.
바다를 바라보며 우는 가마귀.
어디로써 오는지 종경 소리는
젊은 아기 나가는 조곡(吊曲)일러라.
보라 때에 길손도 머뭇거리며
지향없이 갈 발이 곳을 몰라라.
사무치는 눈물은 끝이 없어도
하늘을 쳐다보는 살음의 기쁨.
저마다 외로움의 깊은 근심이
오도가도 못하는 망상거림에
오늘은 사람마다 님을 여이고
곳을 잡지 못하는 설움일러라.
오기를 기다리는 봄의 소리는
때로 여윈 손끝을 울릴지라도
수풀 밑에 서리운 머릿결들은
걸음 걸음 괴로이 발에 감겨라.
개여울 / 김소월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 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 앉아서
파릇한 풀 포기가 돋아 나오고
잔물이 봄 바람에 해적 일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런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 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말라는 부탁인지요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런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 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말라는 부탁인지요
가을 아침에
어둑한 퍼스렷한 하늘 아래서
회색(灰色)의 지붕들은 번쩍거리며,
성깃한 섭나무의 드문 수풀을
바람은 오다가다 울며 만날 때,
보일락말락하는 멧골에서는
안개가 어스러히 흘러 쌓여라.
아아 이는 찬비 온 새벽이러라.
냇물도 잎새 아래 얼어붙누나.
눈물에 쌓여 오는 모든 기억(記憶)은
피흘린 상처(傷處)조차 아직 새로운
가주난 아기같이 울며 서두는
내 영(靈)을 에워싸고 속살거려라.
그대의 가슴속이 가볍던 날
그리운 그 한때는 언제였었노!
아아 어루만지는 고운 그 소리
쓰라린 가슴에서 속살거리는,
미움도 부끄럼도 잊은 소리에,
끝없이 하염없이 나는 울어라.
금잔디 / 김소월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산천에 붙는 불은
가신 님 무덤가의 금잔디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버드나무 끝에도 실가지에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심심산천에도 금잔디에
女子의 냄새 / 김소월
푸른 구름의 옷 입은 달의 냄새.
붉은 냄새 많은 그 몸이 좋습니다.
아니, 땀 냄새, 때묻은 냄새,
비에 맞아 추거운 살과 옷 냄새.
푸른 바다…… 어즐이는 배……
보드라운 그리운 어떤 목숨의
조그마한 푸릇한 그무러진 영(靈)
어우러져 비끼는 살의 아우성……
다시는 장사(葬事) 지나간 숲속의 냄새.
모래 둔덕 바람은 그물 안개를 불고
보드라운 그리운 어떤 목숨의
유령(幽靈) 실은 널뛰는 뱃간의 냄새.
보드라운 그리운 어떤 목숨의
생고기의 바다의 냄새.
늦은 봄의 하늘을 떠도는 냄새.
먼 거리의 불빛은 달 저녁을 울어라.
구름의 옷 입은 해의 냄새.
냄새 많은 그 몸이 좋습니다.
냄새 많은 그 몸이 좋습니다.
신앙 / 김소월
눈을 감고 잠잠히 생각하라
무거운 짐에 우는 목숨에는
받아가질 안식을 더 하랴고
반드시 힘있는 도움의 손길이
그대들을 위하여 내밀어지리니.
그러나 길은 다하고 날 저무는가,
애처러운 인생이여
종소리는 배바삐 은들리고
애꿎은 조가(弔歌)는 비껴 울 때
머리 수그리며 그대 탄식하리.
그러나 꿇어 앉아 고요히
빌라 힘있게 경건하게,
그대의 맘 가운데
그대를 지키고 있는 아름다운 신을
높이 우러러 경배하라.
멍에는 괴롭고 짐은 무거워도
두드리던 문은 멀지않아 열릴지니
가슴에 품고있는 명멸(明滅)의 그 등잔을
부드러운 예지(叡智)의 기름으로
채우고 또 채우라.
그리하면 목숨의 봄두던의
살음을 감사하는 높은 가지
잊었던 진리의 몽우리에 잎은 피며
신앙의 불붙는 고운 잔디
그대의 헐벗은 영을 싸 덮으리.
산유화 / 김소월
산에는 꽃이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큼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이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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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송하기 좋은 김소월 시 1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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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15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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