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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의 집은 예수께서 오신다고 해서 축제분위기이다.
기적을 행하신 혼인잔치 때에 있었던 것보다 별로 못하지 않은 축제분위기이다. 악사들이 없고, 손님들도 없고, 집은 꽃과 푸른 나뭇가지로 장식되지 않았다 그리고 많은 손님들을 위한 식탁들도 없고, 찬장들 곁에 주방장도 없고. 포도주가 가득 들어 있는 항아리들도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을 사랑이 능가한다. 그 사랑을 이제는 올바른 형태와 올바른 정도로 드린다. 즉 아마 먼 친척이기는 하지만 결국 사람에 지나지 않는 손님에게 드리는 사랑이 아니라, 그 참된 본질을 알고. 그분의 말씀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공경하는 선생님이신 손님께 드리는 사랑인 것이다. 그래서 가나의 사람들의 마음은 흰 아마포 옷을 입고 정원 어귀에 땅은 푸르고 하늘은 노을이 져 붉은 가운데 나타나셔서 당신의 존재로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시고, 인사를 하시는 사람들에게뿐 아니라 물건들에까지도 당신의 평화를 건네주시는 위대한 친구를 모든 힘을 기울여 사랑한다.
정말이지 그분의 파란 눈이 가는 곳마다 어디에나 장중하지만 명랑한 평화가 퍼지는 것 같다. 지식이 그분의 입에서 흘러 나오고 사랑이 그분의 마음에서 흘러 나오는 것과 같이 그분의 눈동자에서는 깨끗함과 평화가 흘러나온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말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예수께서 오시기 전에는 보통 장소이거나, 분주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소란한 일과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생각되는 평화가 용납되지 않는 장소인 같은 장소가, 그 장소가 예수께서 나타나시자마자 고귀해지고, 일 자체도 어딘지 모르게 질서가 잡혀서 육체적인 일과 혼합되는 초자연적인 생각의 존재를 배제하지 않는다. 내 생각을 잘 설명하는지 모르겠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당하시는 어떤 사건 때문에 매우 걱정이 되는 때에도 결코 얼굴을 찌푸리시는 일이 없고, 항상 위엄을 갖추시고 의젓하시고 그 초자연적인 품위를 당신이 움직이시는 주위에 전달하신다. 예수께서는 절대로 깜짝 놀랄 만큼 명랑하시지도 않고, 우는 체하지도 않으시고, 대단히 기쁠 때나 몹시 낙심되는 때에도 웃음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리시거나 침울한 얼굴을 보이시는 일이 결코 없다.
예수님의 미소는 흉내 낼 수 없다. 어떤 화가도 그 미소를 절대로 재현하지 못할 것이다. 그 미소는 예수의 마음에서 발산하는 빛과 같아서, 구속되는 한 영혼이나 완전에 가까이 가는 다른 영혼 때문에 더 기쁘실 때에는 빛나는 빛 과 같다. 예수께서 친구들이나 제자들의 자발적인 행동을 칭찬하실 때나 그들 과 가까이 계신 것을 기뻐하실 때에는 장미빛 미소라고 말하고 싶다. 어린이들의 말을 들으시고 그들을 가르치시고, 그들에게 강복하시려고 그들에게로 몸을 굽히실 때의 미소는 역시 빛깔로 표현하자면 천사의 미소와 같은 파란 미소라고 하겠다, 육체나 정신의 어떤 불행을 보실 때에는 동정이 섞인 미소이며, 끝으로 아버지나 당신 어머니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나 지극히 깨끗하신 그 어머니를 바라다보시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실 때에는 하느님의 미소이다.
지극히 큰 고통을 당하시는 시간에도 예수께서 침울하신 것을 보았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배반을 당하심으로 인한 고민 중에도,피땀을 흘리신 괴로움 가운데에서도, 수난의 고통 중에도. 혹 슬픔으로 인하여 예수님의 미소의 매우 기분 좋은 찬란함이 사라진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하여 주름 없는 그분의 이마에서 빛나는 천국의 보석으로 꾸민 왕관과 같은 그 평화, 그 빛으로 예수님의 숭고한 인격 전체를 비추는 그 평화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또 이와 마찬가지로 나는 예수께서 지나친 쾌활에 빠져들어 가시는 것을 본 일이 있다고도 말할 수 없다. 상황에 따라서는 터놓고 소리 내어 웃으시는 일도 없지 않으나, 이내 지극히 품위 있는 침착한 태도를 다시 취하신다. 그러나 예수님이 웃으실 때에는 스무 살 먹은 젊은이의 얼굴이 되실 정도로 젊어지시고, 그 분의 솔직하고 낭랑하고 뉘앙스가 있는 아름다운 웃음의 결과로 세상이 다 젊어지는 것 같다.
나는 또 예수님이 일을 급하게 하시는 것을 보았다고도 말할 수 없다. 말씀을 하시거나 움직이시거나, 항상 조용히 하시되 절대로 느리거나 맥없이 하시는 일이 결코 없다. 그것은 아마 키가 커서 먼 길을 위해서도 뛸 필요가 없이 성큼성큼 걸으실 수가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또 떨어져 있는 물건에 손이 닿게 하시려고 일어나시지 않고도 쉽게 손이 미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분의 동작에 있어서까지도 높은 양반다운 위엄있는 태도를 보이신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 목소리는? 자, 내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거의 2년이나 된다. 그런데도 어떻게나 예수님의 목소리를 연구하는데 골몰하게 되는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이야기 줄거리를 잃어버리는 일이 어쩌다 있을 지경이다. 그러면 친절하신 예수님은 인자한 선생님다운 미소를 지으시며 말씀하신 것을 참을성 있게 되풀이해 주셔서, 내가 당신의 목소리를 듣고, 그것을 음미하고, 그 목소리의 음색과 아름다움을 연구하는 데에서 느끼는 더없는 기쁨 때문에 받아쓰기하는 데 단절이 생기는 것을 피하게 하신다. 그러나 2년이 지난 뒤에도 그 음색을 어떤 음역(音域)에 분류할지 정확히 말하지는 못하겠다. 베이스의 목소리는 절대로 아니고, 가벼운 테너의 목소리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예수님이 테너의 힘찬 목소리를 가지셨는지 성역(聲域)이 대단히 넓은 완전한 바리톤의 목소리를 가지셨는지 여전히 모르겠다. 내가 이렇다고 말하려는 것은 예수님의 목소리가 어떻게나 그윽한지 거의 은은한 청동의 음정을 가지게 되기 때문인데, 특히 죄인을 은총으로 도로 데려오시기 위하여 그와 단둘이서 말씀하실 때나 군중들에게 사람들의 탈선을 일러주실 때에 그렇다. 그러나 그 다음 금지된 일을 분명히 말씀하시고 위선의 탈을 벗겨야 하는 때에는 청동 소리가 더 맑아지고, 진리와 당신의 뜻을 받아들이기를 요구하실 때에는 그 청동 소리가 벼락치는 소리같이 날카롭게 된다. 그러나 자비를 찬미하는 노래를 부르거나 하느님의 업적을 찬양하기 위하여 목소리를 높이실 때에는 금으로 된 판을 수정 망치로 두드리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지기까지 하며, 어머니께나 어머니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에는 다정스러운 음색을 띠기도 한다. 그때에는 그 목소리에 정말 사랑이 배어 있는데. 그것은 아들의 공경을 곁들인 사랑이고, 당신의 작품 중에서 가장 완전한 작품을 찬양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이다. 그리고 이 음조는, 비록 덜 두드러진 정도이기는 하지만, 마음에 드는 사람들이나 회개한 사람들이나 어린이들에게 말씀하실 때에도 쓰신다. 그리고 아무리 긴 연설을 하실 때에도 절대로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지 않으시는데, 그것은 이 목소리가 필요에 따라서 생각과 말을 감싸서 그 강력함이나 부드러움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펜을 손에 든 채 듣기만 하고 있다가 생각의 진전이 너무 앞서갔다는 것을 알아차리지마는 그것을 되찾을 수가 없는 일이 어쩌다 있다.…그러면 친절하신 예수님이 되풀이해 주실 때까지 그대로 있다. 사람들이 내일을 중단시킬 때에도 귀찮은 일이나 귀찮은 사람을 참을성 있게 견디는 것을 내게 가르쳐 주시려고 이렇게 하신다. 일이나 사람이 내게서 예수의 말씀을 듣는 완전한 기쁨을 빼앗아 갈 때에 그 일과 사람이 얼마나 “귀찮은” 지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
이제는 가나에서 예수님이 수산나에게 아글라에를 환대한 데 대하여 고맙다는 인사를 하신다. 두 사람은 익기 시작하는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달린 잎이 우거진 정자에서 따로 있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넓은 부엌에서 음식을 들고 있다.
“그 여자는 대단히 착했습니다, 선생님 정말 부담이 되지 않았습니다. 과월절을 위해서 하는 모든 빨래와 집안 청소를 하는데 하녀처럼 저를 도와주려고 했고, 과월절 옷을 마무리 하는데 정말 노예처럼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조심성이 있어서 누가 오기만 하면 이내 자리를 피하고, 제 남편과도 같이 있지 않으려고 애를 쌨습니다. 가족이 있는 데에서 별로 말을 하지 않고, 음식도 별로 먹지 않았습니다. 남자들이 일어나기 전에 화장을 하려고 날이 밝기 전에 일어났고, 제가 일어났을 때는 언제나 불을 피워 놓고 집안을 쓴 뒤였습니다. 그러나 저와 단둘이만 있을 때에는 선생님께 대한 것을 묻고 우리 종교의 시편 노래들을 가르쳐 달라고 청했습니다. ‘선생님이 기도하시는 것처럼 기도할 줄 알기 위해서’ 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여자가 괴로워하지 않게 되었습니까? 괴로워하는 것으로 말하면 무척 괴로워했거든요 모든 것을 무서워하고, 한숨을 자주 쉬고 많이 울었습니다. 그 여자가 이제는 행복하게 되었습니까?”
“그렇다, 초자연적으로는 행복하게 되었다. 공포에서 벗어났고, 평화 중에 있다. 그 여자에게 좋은 일을 해준 것을 다시 한 번 감사한다.”
“아이고! 주님! 무슨 좋은 일을요? 저는 그저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을 주었을 뿐입니다. 다른 것은 할 줄 모르니까요. 그 여자는 불쌍한 자매였습니다. 저는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저를 당신 은총 안에 지켜 주신 지극히 높으신 분께 대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여자를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너는 벨 니드라스크에서 전도한 것보다도 더 많은 일을 했다. 이제는 또 한 사람이 여기 와 있다. 그 여자를 알아보았느냐?”
“이 지방에서 그 여자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아무도 없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너희와 이 읍내의 사람들은 제2의 마리아를 아직 모른다. 그의 사명에 항상 충실할 제2의 마리아를. 항상 충실할 제2의 마리아. 이 말을 믿기를 부탁한다.”
“주님이 말씀하시고, 주님이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저는 믿습니다.”
“‘사랑합니다’ 라고도 말해라. 어떤 사람이 우리의 동족일 때에는 이교도라는 구실이 있는 어떤 사람보다 동정하고 용서하기가 더 어렵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러나 집안에서 배교하는 것을 보는 고통이 더 컸다면, 동정과 용서도 더 커야 한다. 나는 이스라엘 전체를 위하여 용서하였다” 하고 예수께서는 말마다 하나하나를 떼어서 발음하시면서 말씀을 마치신다.
“그래서 저도 용서하겠습니다. 제자는 선생님이 하시는 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너는 진리를 터득하였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기뻐하신다. 다른 사람들 있는 곳으로 가자. 밤이 되어 간다. 저녁의 정적 속에서 쉬는 것은 아늑할 것이다.”
“선생님, 저희에게 아무 말씀도 안하시겠습니까?”
“아직 모르겠다.”
두 사람은 곧 하게 될 저녁식사를 위하여 음식과 마실 것이 준비되어 있는 부엌으로 들어간다.
수산나는 앞으로 나아가며 앳된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말한다.
“언니들 저와 같이 윗층 방으로 오시겠어요? 식사를 하게 빨리 식탁을 차려야 합니다. 그리고는 남자분들을 위해서 잠자리를 펴야 하니까요. 저 혼자서도 할 수는 있을 것이지만 시간이 더 걸릴 것입니다.”
“수산나야, 나도 가마” 하고 성모님이 말씀하신다.
“아닙니다. 저희들이면 넉넉합니다. 또 이렇게 하면 서로 알게 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일을 하면 형제같이 일치하게 되니까요.”
여자들은 함께 나간다. 그동안 예수께서는 무슨 시럽인지 모를 시럽을 탄 물을 드신 다음 하녀들과 나이 먹은 집주인 여자가 마음 놓고 식사 준비를 끝내게 하시려고 어머니와 사도들과 집안 남자들과 같이 정자에 가서 앉으신다.
윗층 방에서는 식탁을 준비하는 세 여자 제자의 목소리가 들려 온다. 수산나는 그의 결혼식에서 일어난 기적 이야기를 하고 막달라의 마리아가 이렇게 대답한다.
“물을 포도주가 되게 하는 것은 뛰어난 일이야. 그렇지만 죄녀를 제자로 바꾸어 놓는 것은 훨씬 더 뛰어난 일이야. 하느님께서 나를 그 포도주처럼 되게 하셔서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틀림없이 그렇게 될 거예요.선생님은 모든 것을 완전히 바꿔 놓으시니까요. 진정과 믿음으로 선생님에 의해서 회개한 여자 한사람이 여기 왔었어요. 게다가 그 여자는 이교도였어요. 그러니 벌써 이스라엘에 속해 있는 언니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는 걸 의심하실 수 있어요?”
“여자가? 젊은 여자였어?”
“젊고 매우 아름다웠어요.”
“그런데 지금 어디에 있어?" 하고 마르타가 묻는다.
“선생님만이 아셔요.”
“아! 그러면 내가 네게 말한 일이 있는 그 여자다. 오빠가 그날 저녁 예수님께 갔었는데, 그 여자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대. 그 방에 얼마나 좋은 향기가 있었는지 몰라! 오빠의 옷에 그 향기가 여러 날 동안 배어 있었어. 그렇지만 예수님은 회개한 그 여자의 마음이 그 뉘우침의 향기로 그 향수를 능가한다고 말씀하셨대. 그 여자가 어디 가 있는지 누가 알겠니? 내 생각에는 아마 광야로 갔을 것 같다….”
“그 여자는 광야에서 살고 있고, 게다가 외국 여자야. 그런데 나는 여기 있고, 또 알려져 있어. 그 여자의 속죄는 광야에서 사는 것이고, 내 속죄는 나를 아는 세상 사람들 가운데에서 사는 거야. 나는 선생님과 같이 있기 때문에 그 여자의 처지가 부럽지 않아. 그렇지만 내 관심을 선생님에게서 딴데로 돌리는 것이 아무 것도 없게 하기 위해 언젠가는 그 여자를 본받을 수 있기를 바래.”
“너 선생님을 떠날 거냐?”
“아니야. 그렇지만 선생님이 가신다고 말씀하셔, 그때에는 내 영이 선생님을 따라갈 거야. 선생님을 모시고 있으면 나는 세상에 대항할 수 있어, 선생님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 나는 세상이 무서울 거야. 나는 세상과 나 사이에 광야를 만들어 놓겠어.”
“그러면 오빠와 나는? 우린 어떡하니?”
“언니와 오빠가 고통 중에 한 것처럼 해. 서로 사랑하고, 또 나를 사랑하고 그것도 얼굴을 붉히지 않고 그때에는 언니와 오빠 단둘이겠지만 내가 주님과 같이 있다는 걸 알 거야. 그리고 주님을 통해서 언니와 오빠를 사랑한다는 걸.”
“마리아의 결심은 단단하고 분명하구먼” 하고 그 말을 들은 베드로가 말한다.
그러니까 열성당원이 대답한다.
“마리아는 아버지처럼 곧은 칼날과 같아, 얼굴모습은 어머니를 닮았지만, 불굴의 정신은 꼭 제 아버지야.” 그런데 불굴의 정신을 가진 그 여인이 이제는 식사 준비가 다 되었다고 일행에게 말하려고 빨리 내려온다.
…들판은 맑은 밤 속으로 사라진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달이 없다. 다만 별들에서 오는 희미한 빛으로 컴컴한 나무덩어리들과 흰 집덩어리들이 나타난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밤새들이 파리들을 찾아 수산나의 집 주위 소리없이 날아다니면서, 예수 둘레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 노르스름한 엷은 빛을 발산하는 등잔 둘레 옥상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스치고 지나긴다. 마르타는 박쥐를 몹시 무서워하는 모양이어서, 박쥐가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소리를 지른다. 한편 예수께서는 등잔 불빛에 끌려 오는 나방들에 마음을 쓰셔서 그 긴 손으로 그놈들을 불꽃에서 쫓아 보내려고 하신다.
“이놈들이나 저놈들이나 모두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짐승들이야” 토마가 말한다. “밤새들은 우리를 파리로 알고 나방들은 불꽃을 해로 생각하고 스스로 몸을 태운단 말이야. 지능이라곤 손톱만큼도 없어.”
“동물들인 걸. 자넨 동물들에게 이치를 따지자는 건가?” 하고 가리옷 사람이 말한다.
“아니야. 나는 이놈들이 본능만이라도 가졌으면 하는 거야.”
“이놈들은 본능을 얻을 시간도 없어. 나는 나방들 얘기를 하는 거야. 이놈들은 처음에 해보다가 완전히 죽어 버리니까 말이야. 본능은 처음에 고통스러운 뜻밖의 일을 겪고 나서야 생겨나고 발달하거든” 하고 알패오의 야고보가 해석을 한다.
“그럼 박쥐들은? 그놈들은 여러 해를 사니까 본능이 있을 텐데. 그놈들이 어리석단 말이야” 하고 토마가 대꾸한다.
“아니다, 토마야. 사람들보다 더 어리석지는 않다. 사람들도 어리석은 박쥐 같은 때가 자주 있다. 그들은 괴롭히는 일에나 소용되는 물건들 둘레로 술취한 사람처럼 날아 돌아다닌다. 아니 오히려 파닥파닥 하고 돌아 다닌다. 봐라, 내 사촌이 겉옷을 흔들어서 한 마리를 떨어뜨렸다. 그놈을 내게 다오” 하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박쥐가 제베대오의 야고보의 발 앞에 떨어져 이제는 얼이 빠져서 땅바닥 에서 무질서하게 움직이며 퍼덕거리고 있는데, 그가 그놈의 막질(膜質)의 날개를 두 손가락으로 집어서 더러운 걸레 모양으로 공중에 들어올려서 예수의 무릎에 갖다 놓는다.
“이 무모한 놈 보아라. 가만 내버려 두어라. 이놈이 몸의 균형을 되찾겠지만 하던 짓을 그만두지는 않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선생님, 거 이상한 구조로군요. 저 같으면 그놈을 죽였겠습니다” 하고 가리옷 사람이 말한다.
“아니다, 왜? 이놈도 생명이 있고, 살고 싶어한다” 하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혹은 생명을 가진 줄을 모르거나,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는 모양입니다.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니 말입니다!”
"오! 유다야! 유다야! 너는 죄인들과 사람들에 대해서 정말 엄격하겠구나! 사람들도 그들이 한 생명과 또 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면서도 그 생명을 둘 다 서슴지 않고 위태롭게 한다.“
“우리가 두 생명을 가졌습니까?”
“너도 알다시피 육체의 생명과 영의 생명을 가지고 있다.”
“아! 저는 선생님이 윤회(輪廻)를 암시하시는 줄 생각했습니다.”
“윤회는 없다. 그러나 두 가지 생명이 있다. 그런데도 사람은 그 두 가지 생명을 모두 위태롭게 한다. 만일 네가 하느님이라면, 본능 외에 이성을 타고난 사람들을 어떻게 심판하겠느냐?”
“엄하게 심판할 것입니다. 지적으로 쇠약해진 사람이 아니면 말입니다.”
“너는 사람을 정신적으로 미치게 만드는 상황들을 참작하지 않겠느냐?”
“그런 것은 고려에 넣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너는 하느님과 율법을 알면서도 죄를 짓는 사람에 대해서는 동정심을 느끼지 않겠다는 말이냐?”
“동정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은 처신을 잘할 줄 알아야 하니까요.”
“알아야 할 것이니까.”
“선생님, 알아야 합니다. 성인(成人)이 특히 어떤 죄에 떨어지는 것은 아무 힘도 그를 그리로 이끌어가지 않은 만큼 더 용서할 수 없는 수치입니다.”
“네 생각으로는 어떤 죄들이 그러냐?”
“우선 육욕의 죄가 그렇습니다.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타락입니다….”
막달라의 마리아가 고개를 숙인다.… 유다는 말을 계속한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게까지도 타락이 됩니다. 음란한 사람들의 몸에서는 가장 깨끗한 사람까지도 마음을 흔들어 놓아서 그들을 본받도록 이끌어 가는 병균 같은 것을 발산하기 때문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점점 더 고개를 숙이는데 베드로가 말한다. "저런, 저런! 그렇게까지 엄하게 굴지 말게. 그 용서할 수 없는 수치를 제일 먼저 저지른 사람은 하와였네. 그런데 자네는 하와가 어떤 음란한 사람에게서 발산한 병균으로 타락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겠지, 게다가 내게 관한 한, 음란한 사람 곁에 앉아 있어도 나는 조금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걸 알게. 그건 그 사람의 일이야….“
“가까이 있으면 언제나 더러워지는 거야. 육체적으로 그렇지 않으면 영혼으로 그렇게 되는데, 이건 한층 더 나쁜 거야.”
“자넨 꼭 바리사이파 사람같이 생각되네. 그러나 미안하지만, 그렇다면 수정탑(水晶塔) 속에 틀어박혀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있어야 할 걸세.”
“그렇지만 그것이 자네에게 소용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말게! 고독 속에 가장 무서운 유혹이 있는 거야” 하고 열성당원이 말한다.
“오! 그래! 꿈이 있겠구먼. 나쁠 거 하나 없어” 하고 베드로가 말한다.
“나쁠 거 하나 없다구? 아니, 유혹이 상상력에 영향을 미쳐서 상상력으로 하여금 본능의 요구를 어떻게든 만족시킬 방법을 찾도록 부추기고, 또 이 방법은 관능성이 생각과 합쳐지는 죄에 있어서의 세련으로 이끄는 길을 열어준다는 걸 자네는 모르나?” 하고 가리옷 사람이 묻는다.
“사랑하는 유다. 그런 건 하나도 모르겠네. 아마 자네가 말하는 것처럼, 나는 어떤 일들을 곰곰히 생각하는 버릇이 없어서 그런 것 같네. 내 생각에는 화제가 박쥐에서 멀리 떨어져 나갔고, 또 자네가 하느님이 아닌 게 나은 것 같네. 그렇지 않으면, 자네는 그 엄격을 가지고 천국에 혼자 남아 있을 거로구먼. 선생님 생각에는 어떻습니까?"
“내 말은 너무 절대적으로 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사실 주의 천사들이 사람들의 말을 듣고 그것을 영원한 책에 기입하는데, 어느 날 ‘네가 심판한 대로 너도 심판을 받아라’ 하는 말을 듣는 것은 기분 나쁠 수도 있을 것이다.
내 말은 이렇다. 하느님께서 나를 보내신 것은 사람이 사탄 때문에 얼마나 약한지를 아시고, 사람이 뉘우치는 모든 죄를 용서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유다야, 대답하여라. 사탄이 영혼에 강제권을 행사해서 하느님이 보시기에 그 죄를 가볍게 할 정도로 영혼을 차지할 수 있다고 인정하느냐?”
“아니, 저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사탄은 하등 부분밖에 공격하지 못합니다.”
“아니, 시몬의 유다, 자넨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구먼!” 하고 열성당원과 바르톨로메오가 거의 동시에 말한다.
“왜? 무엇이 그렇다는 거야?”
“하느님과 성경의 말씀을 거짓이라고 부인하니까 그렇네. 성경에는 루치페르(Lucifer, 사탄의 다른 이름)가 고등 부분도 공격한다는 말이 있고, 하느님께서는 당신 말씀의 입을 통해서 우리에게 그 말씀을 수없이 하셨어” 하고 바르톨로메오가 대답한다.
“사람은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말도 있어, 이것은 인간의 생각과 감정의 자유에는 사탄이 폭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뜻이야. 하느님께서도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하느님께서 질서 자체이시고 성실 자체이시니까 그렇게 하지 않으시지. 그러나 사탄은 그렇게 하네. 사탄은 무질서이고 증오이니까” 하고 열성당원이 말한다.
“증오는 성실성과 반대되는 감정은 아니야. 자네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네.”
“나는 제대로 말했어.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성실 자체이시고, 또 이 때문에 사람에게 행동을 주겠다고 하신 약속을 어기지 않으시지만, 마귀는 사람에게 자유를 약속하지 않았으니까 그 약속을 어길 수 없기 때문이야. 그렇지만 마귀는 증오이고, 또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과 사람에게 대든다는 것이 사실이야. 그리고 사람에게 공격을 가할 때에는 그의 육체 외에도 지적인 자유를 습격해서 그 생각의 자유를 예속과 마귀들림으로 몰아가서, 그 때문에 사람이 사탄에게서 해방되면 하지 않을 일들을 한단 말이야” 하고 열성당원이 주장한다.
“나는 그걸 인정하지 않아.”
“그럼 마귀들린 사람들은 어때? 자넨 명백한 일을 부인하는구먼” 하고 유다 타대오가 외친다.
“마귀들린 사람들은 귀머거리거나 벙어리거나 미친 사람들이지 음란한사람들은 아니야.”
“자넨 그 악습밖에 생각하지 않네 그려” 하고 토마가 빈정거리며 말한다.
“이 악습이 제일 많이 퍼져 있고 제일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이기 때문이야.”
“아! 나는 또 그것이 자네가 제일 잘 아는 것인 줄로 생각했었지” 하고 토마가 웃으면서 말한다.
그러나 유다는 반항하려는 것처럼 발을 박차고 펄쩍 뛴다. 그러다가 자제하고 충계를 내려가 밭 가운데로 멀어져 간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그 다음에 안드레아가 말한다. “그 사람의 생각은 완전히 틀렸어. 사실 사탄이 사람에게 붙을 때에 눈, 귀, 말, 뇌 같은 감각기능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 같구먼. 그렇지만 선생님, 그렇다면 어떤 퇴폐는 어떻게 설명합니까? 가령 도라 같은 사람이요?…”
“아무에게 대해서도 애덕을 어기지 않기 위해서 네가 말하는 것처럼, 그래서 하느님께서 거기 대한 상을 네게 주시기를 바란다마는, 도라 같은 사람, 또는 유다가 분명히 그리고 정말 이웃 사랑하는 마음없이 암시한 뒤에 우리 모두가 생각하는 것처럼 우선 마리아 같은 사람은 사람의 세 가지 능력에 대해 그의 능력을 떨치는 마귀에게 더 완전히 붙들려 있는 사람들이다. 이것이 가장 전제적이고 가장 교묘한 마귀들림이어서, 이런 마귀들림에서는 정신이 여전히 별로 타락하지 않아서 아직 빛의 권유를 이해할 줄 아는 사람들만이 해방된다. 도라는 음란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구세주에게로 올 줄을 몰랐다. 여기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마귀의 작용으로 머리가 돈 사람과 벙어리거나 귀머거리거나 눈 먼 사람들의 경우에는 친척들이 내게 데려오려고 애를 쓰고 그럴 생각을 하는데, 정신에 마귀들린 사람들의 경우에는 자유를 찾으려고 걱정하는 것은 그들의 정신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해방되는 외에 용서도 받는다. 그것은 그들의 의지가 우선 마귀들린 것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제는 쉬러 가자. 마리아야, 너는 붙잡혀 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지.
이따금씩 원수의 행동에 동의해서 죄를 짓고 다른 사람들을 괴롭게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라.”
“그러겠습니다, 선생님. 그리고 원한을 품지 않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모두에게 평화. 수많은 토론의 원인을 여기에 내버려두자. 어두움은 어두움과 더불어 밖에 밤 속에 내버려두자.”
그리고 박쥐를 걸상 위에 내려놓으시니 박쥐는 날아가려고 첫번 시도를 한다. 예수께서는 사도들과 같이 윗층의 방으로 물러가시고, 그 동안 여자들과 집주인들은 아랫층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