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김알지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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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알지(金閼智, 65년 ~ ?)는 정사가 아닌 전설로 전해지는 신라 김씨 왕조의 시조이다. 탈해 이사금 때 태어났으며 그의 7대손 미추 이사금이 김씨 최초로 왕에 즉위하였다. 정식 역사에서는 실존 인물로 파악하고 있지 않다.
65년 탈해왕이 밤에 금성(金城) 서쪽 시림(始林)의 수풀 속에서 닭 울음소리를 듣고서 신하 호공(瓠公)을 시켜 가보게 하였다. 금빛의 작은 함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흰 닭이 그 밑에서 울고 있다고 호공이 보고하자, 왕이 직접 가서 함을 열어보니 용모가 아름다운 사내아이가 나왔다. 이때부터 시림을 계림(鷄林)이라 하고 아이는 금함에서 나왔으므로 성을 김씨라 하였다.
《삼국사기》 <미추왕조>에는 알지가 세한(勢漢)을 낳고 세한이 아도(阿道), 아도가 수류(首留), 수류가 욱보(郁甫), 욱보가 구도(仇道)를 낳고, 구도는 미추를 낳았다고 함으로써, 알지를 시조로 하는 경주김씨의 세보(世譜)를 소개하고 있다. 알지의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분분하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알지라는 말은 어린아이, 즉 아기를 부를 때 쓰는 말이라고 하였으나 이는 후대에 부친 기록이므로 당대에도 그렇게 쓰였는지는 알 수는 없다.
또한 신라의 시조왕인 박혁거세 설화에서 혁거세거서간(居西干)이 알에서 나와 처음 입을 열 적에 스스로 알지거서간이라 했다는 기록도 있는데, 이로써 알지는 곡물 또는 곡물에 들어있는 신령(神靈)을 나타내는 말이고 특정의 인명이 아닌 농업의 신 또는 그 대리자로서의 기능을 가지는 신라 초기 왕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기도 하고 알지의 알은 금(金)을 나타내는 말이고 지는 존장자(尊長者)에 붙이는 존칭어이므로 알지는 김씨 부족의 족장을 뜻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 기록은 김씨 부족의 시조 출현을 나타내주는 것으로, 그가 석씨 시조인 탈해왕에 의해 발견되어 양육되었다는 것은 신라 왕위계승에서 김씨의 등장과 독점이 가장 늦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삼국유사》에도 거의 같은 전설이 기록되어 있으며, 탈해왕이 김알지를 태자로 책봉하였으나 후에 파사 이사금에게 양보했다고 한다.
이후의 생애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그의 7대손 미추 이사금이 김씨 최초로 왕에 즉위하였다. 알지에서 미추까지의 세보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세대수는 같다.
한편 《조선왕조실록》에는 그가 세조(世祖)로 추존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가족
양부 또는 장인: 탈해 이사금 (脫解尼師今)
양모 또는 장모: 아효부인 박씨(阿孝夫人 朴氏)
동생 또는 처남: 석구추(昔仇鄒)
성한과 동일인 설
경주 김씨의 족보에는 그의 아들을 세한, 열한, 성한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인물로 기록하고 있으나, 성한 (신라)과 그를 동일 인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조선시대 후기의 김정희는 경주 김씨의 족보상 그의 아들로 등재된 성한왕과 그를 동일 인물로 추정했다.
김알지 초기 세보
《삼국사기》 :
알지 → 세한(勢漢) → 아도(阿道) → 수류(首留) → 욱보(郁甫) → 구도(仇道) → 미추
《삼국유사》 :
알지 → 열한(熱漢) → 아도(阿都) → 수류(首留) → 욱부(郁部) → 구도(俱道 또는 仇刀) → 미추
신라김알지신화(新羅金閼智神話)
경주 김(金) 씨의 시조신화로 <<삼국유사(三國遺事)>>, <<삼국사기(三國史記)>>,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21권 경주부 고적조에 실려 있는 신화이다. “알지”는 “어린 아이”라는 의미라는 것과 “알지”의 “알(閼)”은 “알천(閼川)”의 “알”이고 “지(智)”는 “장상(長上)”의 뜻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줄거리
(1)
《삼국사기》에 의하면
탈해왕 9년 3월에 왕이 밤중에 금성(金城) 서쪽 시림(始林) 숲속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날이 밝자 호공(瓠公)을 보내어 이를 살펴보도록 한다. 호공이 시림에 다다라 보니 금빛의 작은 궤짝이 나뭇가지에 달려 있고 흰 닭이 그 아래서 울고 있었다.
이 사실을 듣고 왕은 궤짝을 가져오게 하여 열어보니 조그마한 사내아이가 그 속에 들어 있었는데 용모가 기이하게 뛰어났다. 왕은 기뻐하며 하늘이 그에게 아들을 내려보낸 것이라 하여 거두어 길렀다. 그 아이는 자라감에 따라 총명하고 지략이 뛰어나서 그 이름을 알지라 하였다. 또, 금빛 궤짝에서 나옴을 연유로 하여 성을 김씨라 부르고, 처음 발견되었던 장소인 시림을 고쳐 계림(鷄林)이라 이름하고, 이로써 국호를 삼았다.
(2)
《삼국유사》에는
이와는 상당히 다른 내용이 많이 담겨 있는데 왕이 직접 닭우는 소리를 들은 것이 아니라 영평(永平 : 後漢 明帝의 연호) 3년 경신(庚申) 8월 4일에 호공이 밤에 월성(月城) 서리(西里)를 지나다가 큰 빛〔大光明〕이 시림 속에 비침을 보았다. 붉은 구름〔紫雲〕이 하늘로부터 땅으로 뻗쳤는데 구름 한가운데 황금궤짝이 나무 끝에 걸려 있었고, 빛은 그 궤로부터 흘러나오고 있었다.
또한, 흰닭〔白鷄〕이 그 나무 밑에서 울고 있었다. 왕에게 이를 아뢰매 왕은 그 숲으로 가서 궤를 열어보니 남자아이(童男) 하나가 누워 있다가 곧 일어났다. 이는 마치 박혁거세의 옛일과 같으므로 그 말에 인하여 알지라 이름지으니 알지는 곧 우리말의 어린애를 뜻한다.
이 아이를 안고 대궐로 돌아오니 뭇새와 짐승들이 서로 따르고 기뻐하여 뛰어놀았다. 왕은 알지를 태자로 책봉하였으나 뒤에 파사(婆娑)에게 사양하여 왕위에 오르지 않았고 금궤에서 나왔다 하여 성을 김씨라 하였다. 알지는 열한(熱漢)을 낳고, 열한은 아도(阿都)를 낳고, 아도는 수류(首留)를 낳고, 수류는 욱부(郁部)를 낳고, 욱부는 구도(俱道)를 낳고, 구도는 미추(未鄒)를 낳았으며, 이 미추가 왕위에 오르니 신라의 김씨는 알지로부터 시작되었다.
(3)
탈해왕이 즉위한 지 4년째 되던 해인 영평(永平) 3년(60) 8월 어느 날 밤 호공(瓠公)이 월성 서쪽 마을을 가고 있는데, 시림(始林)에서 밝은 빛이 있었다. 그곳에는 보라색 구름이 자욱했는데, 구름 속을 살펴보니 나무 가지에 금궤짝 하나가 걸려 있었다. 밝은 빛은 궤짝에서부터 나왔고 흰 닭이 나무 아래서 울고 있었다.
이 같은 광경을 목격한 호공은 이 사실을 왕에게 알렸고, 왕은 친히 그 숲에 행차하였다. 궤짝을 열자 사내아이가 누워 있었는데, 곧바로 일어섰다. 옛날 혁거세가 태어나자마자 곧바로 일어서 “알지거서간”이라 하였기에 아이의 이름을 알지라고 짓고는 품에 안고 수레에 태워 궁궐로 돌아왔다. 이때 새와 짐승들이 함께 따라와 기뻐서 날뛰며 춤을 추었다고 한다. 아이가 금궤짝에서 나왔기 때문에 알지의 성을 “김(金)”으로 하였다.
의미
신라인으로 경주 김씨의 시조신화로 《삼국사기》 신라본기 탈해이사금조(脫解尼師今條)와 《삼국유사》 기이(紀異) 김알지 탈해왕대조(金閼智 脫解王代條)에 수록되어 있는데 신화에서 알지는 처음부터 인간으로 태어나지만, 하늘에서 비쳤던 서기(瑞氣)와 흰 닭의 울음 등에서 천손(天孫) 강림의 요소와 난생(卵生)의 요소가 결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김알지 신화를 천강신화와 난생신화라는 이분법적인 인식론의 입장에서 분석하기도 한다. 이에 따르면 금궤짝이 나뭇가지에 걸려있었는데, 이는 하늘에서 내려온 것으로 추정되므로 천강신화의 성격을 가지는 것이다. 아울러 알지가 궤짝에서 나왔으므로 난생신화의 성격도 지니고 있어 천강신화와 난생신화가 복합된 성격의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알지는 금궤짝에서 나왔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 알에서 태어났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이를 난생으로 파악한 것은 신화의 성격을 잘못 이해한 것이라는 반론도 제기되었다. 이에 따르면 알지의 탄생과정에서 중요한 점은 그가 태어난 곳이 금궤짝이라는 것이다. 즉, 알지 신화에서 중요한 의미는 발달한 철기와 제련기술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것은 북방세력의 진출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김알지 신화의 구조를 살펴보면 알지의 탄생을 알리는 데 닭의 울음소리가 난 것은 혁거세의 탄생을 알리는 말 울음소리와 그 구조가 같다. 금궤짝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고 한 것은 신이 나뭇가지를 통해서 내려왔다고 유추할 수 있다. 금으로 된 궤짝은 매우 귀중하다는 점을 말하므로 금궤짝 안에 아이가 있었다는 것으로 그가 귀하고 신성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
『삼국유사』 1권 기이1 김알지 탈해왕대(金閼智脫解王代)조에는 “알지란 곧 우리말로 어린 아이의 호칭이다”라고 하여 이름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즉, “알지”는 “어린 아이”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이같은 『삼국유사』의 해석을 수용해 “알지”를 “아기씨(阿只氏, akissi)”의 의미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편, “알지”의 “알(閼)”은 “알천(閼川)”의 “알”이고 “지(智)”는 “장상(長上)”의 뜻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신라 건국신화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알로부터 태어난 박혁거세와 우물 옆에서 계룡(鷄龍)의 옆구리로부터 태어난 알영이 서로 혼인하여 신라를 세우게 된다. 이는 천신족(天神族) 계통의 이주세력인 박부족(朴部族)과 지신족(地神族) 계통의 토착세력인 알부족(Ar部族) 간의 결합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알지”라는 이름은 “알(Ar)부족의 족장(族長)”, 또는 “알(Ar)부족의 남자”라는 의미로 이해한 것이다.
『삼국유사』에서는 알지의 가계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삼국유사』 1권 기이1 김알지 탈해왕대(金閼智脫解王代)조를 살펴보면 알지의 가계를 “알지는 열한을 낳았고, 열한은 아도를 낳았고, 아도는 수류를 낳았고, 수류는 욱부를 낳았고, 욱부는 구도를 낳았고, 구도는 미추를 낳았다”라고 정리하였다.
이와 관련된 기록이『삼국사기』 2권 신라본기2 미추이사금 즉위년조에 보인다. 이를 살펴보면, “알지는 세한(勢漢)을 낳았고, 세한은 아도(阿道)를 낳았고, 아도는 수류(首留)를 낳았고, 수류는 욱보(郁甫)를 낳았고, 욱보는 구도(仇道)를 낳았다. 구도는 곧 미추왕의 아버지이다”라고 하여 『삼국유사』의 가계와 유사함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는 신라 김씨 왕계의 계보를 알지에서부터 시작하여 열한(세한), 아도, 수류, 욱부(욱보), 구도, 미추로 이어진 것으로 정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조신화는 일반적으로 신화 주인공의 출생근원이 어디인가에 따라 두 갈래로 나눌 수 있다. 이는 인간생명의 강하(降下)로서의 천생관(天生觀)과 인간생명의 용출(湧出)로서의 지생관(地生觀)에 의거한다. 천생관에 의한 천강시조신화(天降始祖神話)는 다시 동명왕 · 단군신화와 같이 신성혼(神聖婚)에 의하여 의신화(擬神化)되는 것과 혁거세 · 수로신화와 같이 알의 형상으로 강천한다는 난생설화와 김알지 신화처럼 처음부터 인간의 모습으로 강천하는 두 부류로 나뉜다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신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金閼智)는 탈해왕대 시림(始林)의 나무에 걸려있던 금궤짝 속에서 나왔다고 한다. 금(金)으로 된 궤짝에서 나왔다고 하여 그 성을 “김(金)”이라 하였다. 후에 그의 7대손인 미추가 왕위에 올라 신라 김씨왕의 시대를 열자 신라 김씨 왕조의 시조가 되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