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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0장> 18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19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능욕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하리니 제 삼 일에 살아나리라 |
예수는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게 되나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내용으로 예수가 예루살렘에 가기전에 이미 예수부활을 계획 했음을 알게하는 내용입니다. 그 계획이 신적 계획이든 인간적인 계획이든 예수는 예수 부활을 계획했다는 것이고 그 계획에는 유다와 공회의원 요셉이 있었습니다.
<유다와 대제사장의 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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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6장> 14 그 때에 열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15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16 저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
<유다에게 예수를 팔것을 명령하는 예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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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6장> 23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 25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가로되 랍비여 내니이까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
위의 내용은 예루살렘에 가서 일어난 이야기로 유다가 대제사장에게 예수를 넘기기 위해 협의를 합니다. 이는 예수부활을 위한 계획 중 하나 였습니다. 예수는 이미 알고 있었고 계획했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위에서 보듯이 예수를 팔 사람을 선택하게 되는데 마태복음 26장 23절에서 예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사람이 예수를 팔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유다가 그릇에 손을 넣을 때에 예수가 손을 넣으므로서 유다가 예수를 팔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유다는 예수에게 제가 예수님을 팝니까? 라고 확인하고 예수는 그렇다고 말을 합니다.
<유다에게 예수를 팔것을 명령하는 예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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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3장> 26 (예수를 팔사람에 대해서)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찍으셔다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주시니27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30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
요한복음은 더 명확하게 예수가 유다에게 명령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예수는 유다에게 나를 속히 팔아라고 하고 유다가 예수를 팔기 위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위의 내용들을 보면 예수의 예언 혹은 명령에 의해 유다가 예수를 파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예수 부활을 위한 계획의 시작이 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의 계획을 이해하지 못하고 유다가 죽었기 때문에 유다가 예수를 팔았다며 죄인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유다의 죽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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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7장> 3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4 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5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
이 내용은 유다가 예수의 정죄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쳤다고 하는 부분과 스스로 목을 메어 죽었다는 부분으로 나뉘어 지는데 먼저 예수의 정죄함을 보았다는 것은 예수가 죄가 없고 풀려날 가능성이 높음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다가 뉘우쳐 목을 메어 죽게 된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다가 정말 뉘우쳤다면 유다는 스스로 죽을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가 부활 할 것을 알고 있었고 그 부활을 기다리면 되는 것이였기 때문이며 또 하나는 유다는 예수의 예언, 명령에 의해 예수가 수없이 이야기한 예수부활을 증거하기 위한 행동이였으므로 결코 죽을 이유가 없었지만 마태복음에서는 스스로 뉘우쳐 목메었다고 적었습니다.
<유다의 죽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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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장> 18 (유다가)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온지라 |
<유다의 죽음 2>의 내용을 보면 유다가 배가 터져 창자가 흘러 나와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유다가 목메달아 죽었다기 보다는 타살을 의미하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목메 달아 죽는 것은 나무의 가지나 자신의 집에서 끈을 묶어 목을 메달아 죽게 되는데 그 끈이 끊어졌다고 해서 배가 터질리는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일반적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에 유다는 자살할 이유가 없었고 배가 터져 창자가 나온 것을 보면 유다는 다른 사람에 의해 무엇인가가 배를 찔러 그 이유로 창자가 나왔다고 봐야 하는 것이 정상적인 생각입니다.
참고로 교회가 인정하지 않는 성경 중 하나인 유다서에 따르면 유다는 예수의 예언이 아니라 명령에 의해 예수를 팔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다서는 유다의 자손이 작성한 것으로 생각 됩니다. 왜냐하면 유다의 후손들도 먹고 살기 위해 변명해야 했고 그래서 예수의 명령에 의해 팔게 되었다고 기록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사도들과 예수교도들에게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이유는 위와 같이 4대복음서에 유다에게 예수가 예언으로 팔 것을 명령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마지막으로 스스로 뉘우쳐 죽었다고 기록 했기 때문입니다.
위의 유다에 대한 설명을 하였지만 예수가 붙잡히는 장면은 이곳에서 설명 하도록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가 붙잡히는 장면에서 우리는 상당 부분들을 이해 할 수 있는 내용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예수의 하인들이 검을 지닌 백부장과 그 수하들임을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검을 가지고 예수를 잡는 대제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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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6장> 47 말씀하실 때에 열둘 중에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 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
유다에 의해 거처를 확인한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예수를 잡기 위해 오는데 대제사장과 장로는 큰 무리를 이끌고 검과 몽치를 가지고 왔다고 합니다. 대제사장은 헤롯의 군대가 아니였음에도 큰 무리와 더불어 검을 들게 했을까요? 그것은 예수를 따르고 섬기던 자들이 무기를 지녔기 때문에 쉽게 잡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 했던 것입니다.
<대제사장을 죽이려는 예수교도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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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6장> 51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에 하나가 손을 펴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52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
예수를 따르던 자 중에 하나가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귀를 떨어 뜨리는 만행을 저지르게 되는데 예수가 검을 집에 꽂으라고 태연하게 말 하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잠시 신중히 생각해서 아무리 검을 잘 다룬다 해도 검을 쳐서 귀만 떨어뜨릴 수 있을까요? 제가 보기에는 종의 목이 떨어졌지만 귀가 떨어졌다고 변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예수와 제자들을 따르는 사람들이 검을 들고 다녔다는 것을 의미하고 예수와 제자들은 이를 모를리 없다는 것입니다. 검을 든자들은 예수를 보호하기 위한 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두번째로 예수와 제자들은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검으로 자르는 범죄를 아무렇지 않게 자행 할 수 있을 정도로 범상치 않는 사람들이였던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에 대한 재판을 할 때에 대제사장의 종을 해하거나 죽인 죄가 있음에도 헤롯과 빌라도는 예수에게 어떠한 죄도 찾지 못했다고 말을 합니다. 이것은 명백한 거짓이지만 헤롯과 빌라도는 예수의 측근이였기에 예수를 살리려 한 것입니다.
<대제사장을 죽이려는 예수교도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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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8장> 10 이에 시몬 베드로가 검을 가졌는데 이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 편 귀를 베어 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
요한복음에서는 베드로가 검을 지니고 있었다고 하고 그가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베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 내용은 마태복음과 다른 복음서와 다른 것으로 베드로 역시 검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다른 복음서에서는 베드로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다는 것은 정확히 누가 검을 사용했는지 알지 못했다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검을 들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베드로의 해명입니다. 베드로는 예수교도들이 대제사장을 죽이려 한 것이 아니고 한 번 검을 휘둘렀는데 대제사장의 종의 귀가 베어졌다고 적었던 것이고 베드로가 그 검을 휘둘렀다고 한 것입니다.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검을 들고 싸웠지만 변명한 것이고 그 증거를 말하는 사람이 베드로와 말고라입니다. 베드로는 해명을 위해 말고라는 거짓 사람을 만들어 해명하게 한 것이고 그 내용이 후대에 작성된 요한복음에 기록 된 것입니다.
<검을 지닌 예수의 무리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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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1장> 46 (대제사장과 바리새인이 예수를) 잡고자 하나 (예수의)무리를 무서워하니 이는 저희가 예수를 선지자로 앎이었더라 |
위의 내용은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잡으려 했으나 예수의 무리를 무서워 하여 잡지 못했다는 내용인데 성경에서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선지자로 알아서 무서워 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는 거짓으로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선지자가 아닌 사탄으로 보았고 그 때 잡지 못한 것은 무리들이 검을 들고 예수를 보호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를 지키기 위한 검을 든자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그것은 가버나움에 있던 헤롯의 군대 백부장이 보냈을 것으로 추측이 가능 합니다.
<검을 지닌 예수의 무리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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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2장> 36 (예수가) 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주머니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 38 저희가 여짜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대답하시되 족하다 하시니라 ... 49 좌우가 그 될 일을 보고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검으로 치리이까 하고 50 그 중에 한 사람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오른편 귀를 떨어뜨린지라 |
누가복음에서는 정확히 예수가 검을 지닐 것을 명령하는 모습을 적고 있고 검 두개를 가진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49절에서는 검을 사용할까요? 하고 예수에게 묻고는 실제로 검을 사용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문제는 예수가 검을 지니게 할 때 앞서 사용한 내용입니다.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주머니도 그리하고' 이 말은 주머니가 가득할 것이라는 의미 입니다. 어떻게 주머니가 가득하게 되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예수의 70명의 종들이 군대를 모으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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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0장> 1 이 후에 주께서 달리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동 각처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2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17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
위의 성경내용은 예수가 예루살렘으로 떠나기 전에 추수 할 사람들을 모으는 장면입니다. 예수에게는 12명의 제자 이외에도 70명의 추수 할 사람들 곧 하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70명으로도 부족하다고 생각한 예수는 하인들에게 세리와 백부장들의 집을 돌아 다니며 사람을 보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70명의 하인들은 그 명을 따라 사람을 모았는데 약 50여명 이상으로 추정 됩니다. 대략 120여명을 모아서 예루살렘을 향해 갔던 것이며 출발 할 때에 사복을 입은 백부장의 수하들의 손에는 검이 들려 있었던 것입니다.
이 때 예루살렘에는 갈릴리왕 헤롯이 있었는데 예수와 함께 출발을 한 것인지 혹은 이미 도착해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검을 든 사람이 120여명을 모아 예루살렘으로 간다면 이는 반란 혹은 민란으로 보아야 하고 헤롯이 있는 예루살렘은 발콱 뒤집혀야 했을 터인데 헤롯왕은 예수에 대해서 어떠한 제재도 가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대제사장을 향해 검을 휘둘렀고 그 중에 한 명은 귀가 잘려 나가는 전투가 이루어 졌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사실상 반란이며 민란으로 봐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검을 지니고 심지어 예수를 보호하기 위해 예루살렘의 대제사장과 목숨을 버리며 싸우려는 사도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예수의 권력은 상당했던 것입니다.
<대제사장과 전투하는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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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2장> 49 좌우가 그 될 일을 보고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검으로 치리이까 하고 50 그 중에 한 사람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오른편 귀를 떨어뜨린지라 |
누가복음 22장 49절과 50절의 이야기를 다시 봅시다. 49절에서 우리가 검으로 칠까요?하고 묻습니다. 그리고 한 명이 칼을 들어 싸웠습니다. 그렇다면 49절과 50절 사이에 무엇이 생략된 것입니까? 이는 예수가 죽여라라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들과 무리들이 검을 들어 싸웠던 것입니다. 문제는 마태복음 26장 52절에서 예수가 도로 검에 넣어라고 한 부분입니다. 예수가 이 말을 한 때가 대제사장의 종의 귀가 떨어졌을 때 입니다. 따라서 종합해 보면 예수가 싸울것을 명령했고 싸우는 과정속에서 사람들이 다쳤으며 그리고 결국 예수가 붙잡혔고 살기 위해 검을 내려놓으라고 명령 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위에서 예수의 제자들과 예수의 무리들이 검을 들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 하였고 또한 예수는 갈릴리의 권세가들로부터 추가 병력을 받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따라서 누가복음 10장의 내용은 예수가 제자들과 무리에게 이야기 하는 내용이 곧 출정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가 그동안 갈릴리사람들에게 보여준 설교의 내용과 누가복음 10장의 내용이 완전히 다른 이유를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즉 갈릴리 백성과 유대인들에게 이야기 한 것은 그들을 쉽게 지배하기 위한 교육이였고 누가복음 10장의 설교는 출정식을 앞둔 예수의 제자와 무리들에게 예수의 강한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였습니다.
이제 예루살렘으로 출정을 앞둔 예수의 설교 내용들을 보도록 하겠는데 그 내용은 4대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고 누가복음을 선택한 것은 70명이라는 분명한 숫자가 적혀 있기 때문이였습니다.
<출정식을 준비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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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0장> 1 이 후에 주께서 달리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동 각처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2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3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
위의 내용은 예루살렘으로 가기전에 70여명으로는 불안해서 추가 병력을 모집하기 위해 일꾼을 모집하라는 분명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는 예수를 따르는 많은 세리들과 백부장들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누구에게서 추가 병력을 모집했는지는 충분히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추가병력 모집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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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0장> 4 전대나 주머니나 신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5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7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하니라 |
누가복음 10장 4절에서 예수가 종들에게 항상 가난한 척 하라고 합니다. 그래야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준다는 명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고 또한 주머니를 비워야 주머니를 가득 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누가복음 22장 36절에서 예루살렘에서 주머니가 가득 찰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재산을 빼앗아 가질 수 있음을 분명하게 선언 한 것입니다. 그래서 7절에서 너희가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하다고 한 것입니다. 재물을 빼앗아 예수에게 바치고 그에 따라 급여를 받는 것입니다.
<모든 유대인을 죽이겠다는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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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0장> 21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 데 내어 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22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
마태복음 10장 21절에서 예수는 출정식에서 참지 못하고 본색을 드려냅니다.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부모를 죽게 하겠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진심이였던 것이며 예수가 예루살렘에 가서 하려는 짓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예수의 진심이 보이지 않습니까? 마태복음 10장 21절에서 죽게 하리라며 분명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돌아온 칠십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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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0장> 17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
위의 내용들은 칠십인들의 수하들이 성공적으로 추가 병력을 모았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추가 인력을 보낸 사람들은 안봐도 뻔한 것으로 당시 권세가들로 이루어진 세리와 백부장 그리고 헤롯의 측근들이 보낸 일꾼 혹은 수하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출정하는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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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1장> 7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8 무리의 대부분은 그 겉옷을 길에 펴며 다른 이는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
위의 내용은 실제 예수가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위 내용의 진의는 알 수 없지만 이들이 예수의 출정하는 모습을 재미있게 종교적으로 표현 한 것에 불과 합니다.
우선 이해해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예수는 120여명으로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실제로는 120여명 보다는 더 많았을 것으로 생각 됩니다. 70명이 겨우 50명을 모집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70명에서 그 두배인 140여명은 모았을 것이고 따라서 200여명이 예루살렘으로 떠났을 것으로 추측 합니다. 성경에서는 대제사장의 종의 귀가 떨어 졌다고 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검을 휘둘러 귀만을 베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이죠. 이는 예수교도들이 대제사장 사람들의 얼굴을 향해 검을 들었고 목이 떨어졌는데 귀가 떨어졌다고 적은 것입니다. 따라서 그 종은 죽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 타당 합니다. 나아가 대제사장과 예수교도들은 서로 검을 휘둘렀다는 것이 맞고 그것은 전투였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이 전투에서 예수교도들이 패하였고 이 전투에서 예수교도들의 수가 200명으로 보았을 때에 80여명이 죽은 것으로 보아야하고 140여명일 경우 20여명이 죽은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 전투에서 예수교도들 진 이유는 대제사장의 기습공격이였고 그 자리에서 빠르게 예수는 체포되었습니다. 기습한 장소는 예수교도들이 천국이라고 부르는 신혼 잔치집이였습니다. 왜냐하면 신혼 잔치집은 로마에서는 합법인지 모르겠지만 유대인들에게 불법이기 때문이며 그곳의 여자들은 불법으로 팔려온 여자들이였기 때문에 구하기 위함이였습니다. 혹시 신혼 잔치집의 의미를 모르면 제8장과 제9장을 다시 읽기 바랍니다.
대제사장이 기습을 했기 때문에 예수교도들 사이에는 반역자가 있다고 판단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가 반역자로 몰렸고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진실은 2천년전의 사람들만이 알겠죠.
이러한 이유로 예수가 재판을 받는 것은 유대왕이라고 떠들고 다닌 것도 있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창기장사를 한 것이고 사채업을 통해 여자와 아이들을 사고팔았고 자신들의 죄를 유대인들에게 뒤집어 씌웠으며 마지막으로 대제사장을 향해 검을 휘둘러 유대에 대항한 유대민족의 반역죄 였습니다.
따라서 예수의 십자가형은 예수의 계획이 아니였고 예수의 부활을 꾸민것은 예수가 붙잡히고 헤롯과 빌로도에게 끌려갔을 때에 꾸민 이야기가 되는 것이고 배신자를 찾는 과정에서 예수교도들은 유다를 지목하게 된 것입니다. 아마도 유다가 예수를 배신하게 되는 내용이 성경에 있으니 그 설명을 간단히 제10장에 적어 놓았습니다. 여기서 잠시 추가설명을 하자면 유다는 마리아를 사랑했거나 마리아는 상징적인 의미이고 창기들을 구출하고자 하였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성경의 줄거리를 쭉 흩어 보았고 이제 예수가 어떻게 재판을 받고 십자가형을 받게 되는지 볼 것인데 이미 위에서 조금씩 설명을 했습니다만 예수의 입장에서 보겠습니다.
<빌라도의 재판 포기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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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8장> 31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저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이 없나이다 하니 32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
빌라도는 예수에 대해서 재판 할 것을 두려워 했는데 이는 빌라도가 유대인과 권세자들 사이에서 재판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이미 부활의 계획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예수를 죽일 권한이 없다며 빌라도가 확실히 재판 해 줄 것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이 내용은 거짓입니다. 유대인들은 빌라도에게 재판해 줄 것을 요구했을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후에 설명하지만 유대인들이 재판없이 스데반을 죽이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제사장에게 붙잡힌 예수를 빌라도가 재판해 주기를 주장하는 유대인들은 예수를 살리기 위한 세리들이거나 반역자들 입니다. 다시말해서 대제사장은 예수를 바로 죽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빌라도는 예수가 유대왕이라는 소리를 듣고 유대인에게 나아가 예수에게서 어떠한 죄도 찾지 못했다고 말을 합니다. 또한 빌라도는 예수가 갈릴리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고 갈릴리왕 헤롯에게 예수를 보냅니다. 물론 갈릴리왕 헤롯은 이 때 예루살렘에 있었으며 빌라도와 함께 있었습니다.
<헤롯의 이해 할 수 없는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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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3장> 6 빌라도가 듣고 묻되 저가 갈릴리 사람이냐 하여 7 헤롯의 관할에 속한 줄을 알고 헤롯에게 보내니 때에 헤롯이 예루살렘에 있더라 8 헤롯이 예수를 보고 심히 기뻐하니 이는 그의 소문을 들었으므로 보고자 한 지 오래였고 또한 무엇이나 이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연고러라 9 여러 말로 물으나 아무 말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10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서서 힘써 고소하더라 11 헤롯이 그 군병들과 함께 예수를 업신여기며 희롱하고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도로 보내니 |
헤롯은 당시 예루살렘에 있었다고 분명히 위에 적혀 있는데 베드로가 잡혀 있을 때에도 헤롯은 예루살렘에 있습니다. 다시 기억을 되돌려서 예수는 예루살렘에 갈 때에 약 120여명을 거느리고 갔으며 그 중에는 검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고 심지어 대제사장을 향해 검을 들었으니 그것을 들은 헤롯은 반역죄로 예수를 죽일수도 있었고 심지어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이기를 원했기 때문에 쉽게 민란을 걱정하지 않고 예수를 죽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헤롯은 예수를 보고 기뻐했다고 하는데 예수의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헤롯은 세례요한의 목을 벤적이 있는데 예수는 아무탈 없이 빛난 옷까지 입히고 군병들을 대동 하여 예수를 보호하면서 빌라도에게 보낸 것입니다.
<빌라도는 헤롯으로부터 예수가 죄가 없다는 것을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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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3장> 13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관원들과 백성을 불러 모으고 14 이르되 너희가 이 사람을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내게 끌어왔도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사실하였으되 너희의 고소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 15 헤롯이 또한 그렇게 하여 저를 우리에게 도로 보내었도다 보라 저의 행한 것은 죽일 일이 없느니라 16 그러므로 때려서 놓겠노라 |
다시 빌라도에게 돌아온 예수에 대해서 빌라도는 다시 한번 대제사장과 관원들 그리고 백성들을 모아서 그들에게 헤롯 또한 예수가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말을 했으며 빌라도 자신 역시 그가 죽을 만한 죄가 없다고 말을 합니다. 단지 성난 민심을 잠재우기 위해 때린 후에 놓아 주겠다고 말을 합니다. 이상하지 않나요? 예수에게는 세례요한과 달리 죽을 명분이 많았고 유대인도 원했습니다. 따라서 헤롯과 빌라도는 예수를 죽일 생각이 없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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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3장> 23 저희가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저희의 소리가 이긴지라 24 이에 빌라도가 저희의 구하는 대로 하기를 언도하고 <마태복음 27장> 24 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라고 요구를 하고 빌라도는 민란이 두려워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게 합니다. 이로서 예수를 죽이려는 사람들은 헤롯과 빌라도가 아니라 유대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약성경이 갈릴리인들 보다 유대인들을 싫어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진 이유를 우리는 충분히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은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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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5장> 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서 와서 지나가는데 저희가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22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에 이르러 <누가복음 23장> 26 저희가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로서 오는 것을 잡아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좇게 하더라 |
위의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결코 예수는 직접 십자가를 지고 가지 않았음을 알 수 있으며 또 다른 한 사람은 예수를 끌고 혹은 예수를 도와 십자가형이 있는 골고다라 하는 곳에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예수가 이미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었던 것으로 예수는 혼자 걸을 수 없었습니다.
<이해 할 수 없는 군병들의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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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9장> 32 군병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33 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34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35 이를 본 자가 증거하였으니 그 증거가 참이라 저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 |
예수는 어떻게 보면 편안하게 골고도라고 하는 십자가형이 있는 곳에 왔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 보면 군병들이 첫째, 둘째 사람은 다리를 꺾었지만 예수는 다리를 꺾지 않는데 그 이유가 예수가 이미 죽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적어 놓았지만 이해 하기에는 충분 하지 않습니다.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는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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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5장> 43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귀한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44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 지 오래냐 묻고 45 백부장에게 알아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어 주는지라 |
이제 여기서 더 이해 할 수 없는 내용들이 나오는데 요셉이라는 공회의원이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달라고 하는 부분인데 빌라도는 백부장에게 예수가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기는 부분 입니다. 즉 일반적인 십자가형에서는 다리를 꺾었다고 해도 벌써 죽을리 없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부장에게 물어 보고 요셉에게 예수의 시체를 내어주게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의 시체는 요셉이 어떻게든 처리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의 시체에 대한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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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7장> 62 그 이튿날은 예비일 다음 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가로되 64 그러므로 분부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적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유혹이 전보다 더 될까 하나이다 하니 65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에게 파수꾼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하라 하거늘 66 저희가 파수꾼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하니라 |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내어주지 말고 지키게 하라는 내용입니다. 이에 빌라도는 너희가 알아서 지키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62절을 보면 대제사장이 예수의 시체에 대해 요구하는 날이 요셉에게 예수의 시체를 주라고 한 다음 날 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미 예수의 시체는 없었던 것입니다.
<군병들이 돈을 받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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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8장> 11 여자들이 갈제 파수꾼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고하니 12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병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13 가로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 하라 14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되지 않게 하리라 하니 15 군병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
이 내용은 군병이 돈을 받고 예수의 시체를 내어 주었다는 이야기가 성경을 작성하던 시기에 유대인 사이에 퍼지게 되었는데 그 소문을 해명하기 위해서 작성한 내용입니다. 그 내용은 대제사장들이 파수꾼을 보내 예수무덤을 지키게 하였고 이후에 예수가 살아 났지만 대제사장들은 군병들에게 예수의 시체를 제자들이 가져 갔다고 이야기 하라고 시켰다고 예수의 제자들이 주장하는 내용 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의 제자들이 군병들에게 돈을 주고 예수의 시체를 가져 갔다는 이야기가 유대인 사이에 퍼졌던 것입니다. 이는 제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가져 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예수가 부활 한 것이 아니라 이미 죽어서 들고 간 것을 의미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의 제자들은 이를 해명하기 위해서 대제사장들이 군병들에게 돈을 주고 예수가 살아 났지만 예수의 시체를 제자들이 가져 간 것 처럼 꾸민 거짓 이야기라고 반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제사장이 그러한 거짓을 꾸미기 위해 군병에게 많은 돈을 주지는 않았을 것 입니다. 왜냐하면 군병들의 말 대로 예수가 살아 났다면 예수가 유대인들과 대제사장 앞에 나타난다면 곤란해 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제사장이 예수가 부활을 숨기기 위해 군병에게 돈을 주며 예수의 시체를 제자들이 가져가게 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군병들은 빌라도의 명령에 의해서 예수제자들로부터 돈을 받은 것이고 예수시체를 제자들에게 준 것이 맞는 것입니다.
어렵죠 이해가 쉽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도들이 스스로 신약성경에 적기를 십자가가 있던 그 날에 이미 예수의 시체를 요셉이 가져 갔다고 적은 것입니다. 당당히 적어 놓았으면서 이후에 대제사장이 시켜서 제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가져간 것 처럼 소문이 퍼졌다고 변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멍청한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멍청한것인지 이젠 헷갈리기까지 합니다.
여기서 헷갈리지 말고 꼭 기억해야 할 내용은 예수가 부활 했다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앞에 당당히 그 모습을 보여 예수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밝혀야 했지만 예수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핵심 입니다.
이제 부터는 제 추측을 이야기 합니다. 위 내용이 헷갈리는 이유는 이것 입니다. 예수의 제자들에게는 예수의 시체가 대제사장에게 있어서는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결론이 나기를 예수의 시체를 제자들이 가져 간것으로 만들려고 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는 정말 나타나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제사장이 예수가 부활 할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체를 지키려 했던 것 이지만 이미 시체는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대제사장의 선택은 무엇일까요? 가짜메시아 예수를 어떻게 처리 해야 했을까요? 대제사장의 선택은 예수와 같이 가짜 메시아 예수를 만드는 것이였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유대왕이라고 주장하는 예수가 나타났을 때에 대제사장은 이렇게 이야기 했을 것 입니다. '너는 누구냐? 죽은 예수의 시체는 우리가 지키고 있다. 봐라 여기 있지 않느냐?'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의 시체가 어떤 방식이든지 제자들이 가져 간것으로 만들기 위해 위와 같이 작성 된 것입니다.
재미 있으셨나요?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 입니다. 그리고 예수가 예루살렘에 가지 못한 또 하나의 이유는 예루살렘이 대제사장에 의해 매우 위험한 지역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또 다시 붙잡힐 것을 두려워 하여 갈릴리에 남아 있게 된 것으로 생각 합니다. 예수는 겁쟁이에 불과 했습니다.
이 부분은 저의 추측입니다. 골고다라는 형장에 간 예수는 처음 부터 가짜 예수 입니다. 왜냐하면 헤롯과 빌라도는 예수를 살리려 했습니다. 할 수 없이 이미 죽은 혹은 죽어가는 가짜 예수를 끌고 갔던 것이며 그래서 가는 도중에 구경꾼이던 한 명에게 십자가를 끌고 다른 한 명은 예수를 끌고 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형장에서 창에 찔려 확실하게 죽게 됩니다. 그리고 돌 무덤에 묻히게 되는데 가짜 예수였기 때문에 공회의원 요셉과 빌라도는 가짜 예수 시체를 내어 주게 되고 그리고 진짜 예수가 부활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예수는 어찌 된 일인지 바리새인들 앞에 요나의 표적을 보여 주지 못하고 황급히 갈릴리로 돌아 가게 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형이 있던 곳으로 간 예수가 가짜라는 소문이 예루살렘에 퍼졌고 혹은 예수의 시체가 대제사장에 있다는 소문이 퍼졌고 그리고 멍청한 군병이 가짜예수의 옆구리에 상처를 냈기 때문에 진짜 예수도 상처를 만들어야 했으며 안전하게 치료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무엇인가 잘못되어서 바리새인들 앞에 나타나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가짜 예수는 누구 일까요? 그것은 아래에서 자세히 설명 하겠지만 그가 바로 옆구리가 터져 창자가 흐른 유다 입니다.
<상처난 옆구리를 보여 주는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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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0장>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
이 부분은 저의 추측임을 먼저 밝힙니다. 예수 대신 유다가 죽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는데 그 근거를 이제부터 쓰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유다와 예수가 어떻게 죽었는지 보았습니다. 그런데 공통점을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유다가 예수 보다 먼저 죽었을 것이고 유다가 예수 대신 십자가형이 있는 골고다로 갈 때에 이미 유다는 죽어 있었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없었고 이로 인해 예수 대신하는 유다의 십자가를 다른 사람에게 지게 하고 또 다른 사람은 예수 대신하는 유다를 끌고 가는 것입니다.
정리를 하자면 유다는 강제 혹은 스스로 목을 메달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미 죽어 있었고 죽은 유다를 십자가형장으로 끌고 갔습니다. 이때 한 군병이 유다를 메달았고 죽어 있으므로 유다의 다리를 꺾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 군병은 유다의 시체에 어떠한 짓도 하지 않을 속셈이였습니다. 아마도 빌라도의 명령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군병이 아무것도 모르고 혹은 바리새인의 사주를 받아 창으로 유다의 허리를 찌르게 됩니다. 이에 창이 허리를 관통하여 배 밖으로 나오니 창자가 흘러 내리게 되고 피와 물이 나와 죽었음을 확인했다는 내용이 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유다임을 확인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요셉이 곧 바로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내어 달라고 말을 한 것이고 백부장으로부터 이미 죽었음을 이야기 듣고 빌라도가 예수의 시체 곧 유다의 시체를 내어 주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의 시체는 애시당초 무덤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정리가 되면 유다와 예수의 죽음 그리고 예수를 살리려고 하는 헤롯과 빌라도 그리고 예수의 부활의 계획이 모두 맞아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많은 논란이 있겠지만 이는 단지 저의 추측임을 다시 한번 알려 드립니다. 하지만 이 추측이 맞다면 유다는 정말 억울하게 죽은 것이 되는 것이고 이 비밀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지만 유다의 죽음은 분명 다른 누군가로부터 죽임을 당한것으로 봐야 하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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