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시인의 사회
허상문
그가 죽었다. 학창시절부터 문학공부합네 하고 함께 오울려 다니던 친구의 부음이 들려왔다. 장례식장에서 나를 맞은 것은 그의 아내와 어린 아들, 영정 곁에 놓인 두 권의 시집뿐이었다. 그는 일생 동안 오직 시밖에 몰랐다. 가족들은 안중에도 없었고 어떻게 사는지도 관심이 없는 듯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힘들게 일자리를 마련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실직 상태로 오로지 시를 위해서만 사는 듯했다. 어둠이 내려앉은 식탁에 따뜻한 밥 한 그릇은 없어도 시집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일 년에 몇 번 만날 때마다 얼굴이 유난히 검게 변해가고 있었지만 눈빛은 오히려 더 형형했다. 조용하면서도 강렬한 시선은 항상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딱히 무어라 꼬집어 말할 수 없었지만 그의 눈빛은 예사롭지 않았다. 그는 내 마음속 어딘가를 꿰뚫어 보는 듯했다. 중요한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방관자로서 그냥 사람을 구경하는 것 같기도 했다. 눈은 무언가에 굶주린 짐승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동공은 텅 비어 있는 듯했지만 수정체는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시인의 눈이라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삶에 흩어져 있는 일상의 파편들이 시인의 눈길과 마음에 닿으면 꽃이 피고 불길이 일어나게 된다, 시인의 눈에 비친 세계는 현실이며 동시에 꿈이다. 시인의 눈은 현재에 그냥 주저앉아 있지 못하고 과거와 미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시에는 죽음에서 생명을, 감옥에서 자유를 , 절망에서 희망을 찾고자 하는 불꽃이 일어나고 있었다. 시인의 눈앞에 버티고 있는 삶은 온통 절망과 어둠의 구덩이였는지 모른다.
그의 시에는 어둠과 절망이 넘실되고 있었다. 옛날에는 시인들이 하나 둘 별을 세고 있었으나, 이제는 삶을 위한 셈을 하고 있을 뿐이다. 시인의 불꽃은 어둠 속에서 꺼져가고 있었다.
시인은 스스로 만든 여백 속에서 몸부림친다. 그동안 세상과 시인의 영혼은 얼마나 더 상해버린 것일까. 절망한 시인이 골방에서 홀로 죽어가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시인은 절망하고 지치고 외로워 하면서도 이 세상과 우주에 대한 사랑을 버리지 못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정신적 장애자로 취급되거나 죽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시인이 탄 조각배는 이제는 돌아갈 수 없을 만치 먼 바다로 와버렸다. 표류하던 배가 돛을 내릴 수 있는 곳은 없었다. 포구는 멀리 있고 항구는 미쳐 있었다. 미친 세상을 바라보면서 갈등과 번민에 빠진 시인은 차라리 거친 바다에 뛰어내려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미치지 않고서는 진실에 다가설 수 없었다. 시가 진정한 삶에 다가서기 위한 언어가 되지 못한다면, 시가 인간의 고통과 슬픔을 잠재우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대체 시가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시인이 이 세상과 인간의 욕망과 타락을 회복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시인은 죽었다. 아니 시인은 살아 있되 시대정신은 치매 상태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에서 키팅 선생은 학생들에게 "시를 읽고 쓰는 이유는 자신들이 인류의 일원이고, 미와 낭만과 사랑을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이제 시인은 아름다움을 피워내기 위한 마지막 불꽃마저 거두어들이고 있다. 농약과 구제역으로 오염된 들판에서 시인들은 풀잎의 숨소리를 들을 수 없고, 한 송이 꽃이 이 세상을 향하여 열리는 신비로움을 볼 수 없다. 비 오는 날이면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방사능에 오염된 비를 맞아서는 안 된다고 당부해야 한다. 푸른 강과 꽃이 사라지고 눈과 비를 마음대로 맞을 수 없는 이 세상에서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시인은 죽어서도 시를 쓴다고 한다. 시인이 된다는 것은 끝장을 본다는 것이다. 절망의 끝, 열정의 끝, 언어의 끝에 도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인이 지상에 머물렀던 자취는 시로 남는다. 두 번째 시집을 건네주면 그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그 후 일 년도 채 못 되어 간암으로 생을 마감했다. 한 편의 시를 남기기 위해 피를 토하듯 정신을 불태우고, 한 조각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밤낮으로 술잔을 들이켰다. 어두운 그린자같이 드리워진 가난은 그를 더욱 힘들게 했을 것이다. 젊은 시절 찌든 가난 때문에 밥을 얻기 위해 피를 팔았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오직 좋은 시 한 편을 쓸 수 있다면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다. 그는 목숨을 걸고 시를 썼고 이 땅에 시를 심었다.
언제쯤이면 나으 ㅣ삶은 죽어도 여한이 없는 것이 될 수 있을까. 살아있는 모든 것은 결국 다 절멸하는데, 나는 이 세상에 아름다운 시 한 편 남기지 못하고 죽어야 하는 것인가. 이제와 생각하니 그의 시 전반에는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절박한 예감이 깔려 있었던 것 같다. 만날 때마다 내 마음 어딘가를 꿰뚫어 보는 듯한 그 강렬한 눈빛과 표정은 어쩌면 세상에 오염된 채 적당히 살아가는 내 모습에 대한 질책이나 동정은 아니었는지.
고인의 뜻에 따라 시신은 화장되었다. 시신이 타오르는 것을 보고 가족과 지인들은 오열한다. 시인의 주검은 날 것 그대로 살아있는 고통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화장 후에 남은 뼛조각을 보는 순간, 인생의 허무감이 가슴 속까지 사무쳐왔다. 이제 그의 육신은 한 줌 재로 남았지만 영혼은 질곡 속에 갇혀있던 새가 자유를 찾은 듯 훨훨 날아가고 있었다.
시인은 죽기 직전에도 병상에서 말했다. "산성비라도 좋으니 들판에서 눈과 비를 맞으며 걷고 싶다. 봄날에 새롭게 피어나는 한 송이 꽃을 바라보며 한 편의 시를 쓰고 싶다."
허상문|문학평론가 · 수필가 · 칼럼니스트 현재 영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문학평론집 《문학과 변증법적 상상력》《현대문학비평이론》《오디세우스의 귀환》《존재와 초월의 미학》《프로메테우스의 언어》
영화평론집《우리 시대 최고의 영화》산문집 《오디세우스의 유령》《시베리아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실크로드의 지평에 서서》《타클라마칸의 달》《바람의 풍경―제주의 속살》《지상의 풍경》 번역서《생명의 불꽃― D.H. 로렌스의 에세이》《문학이론》 등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