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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1. 11.
지난 10월 28일 일본 소니 그룹은 올해(2021년 4월~2022년3월)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9% 증가한 1조400억엔(약 10조8000억원)이 될 전망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실적이 확정된다면 창업 75년 역사상 처음으로 영업이익 1조엔을 넘어서게 됩니다. 주가도 21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 중입니다. 현재 소니의 시가총액은 17조5000억엔(약 182조원)으로, 어느덧 코스피 시총 1위 삼성전자(약 419조원)의 43% 수준까지 따라왔고요. 코스피 2위 SK하이닉스(약 79조원)보다는 2배 이상 높습니다. 참고로 소니 그룹의 작년 매출은 9조엔(약 94조원) 정도였습니다.
소니가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는 셈인데요. 최근 이 회사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분들이 보기엔 의아할 겁니다. 워크맨으로 대변되던 소니 제품의 전성기는 예전에 끝났으니까요. 그러니 “소니가 뭐로 돈을 벌고 있지? 혹시 플레이스테이션 5 덕분? 게임기 하나가 그렇게 대단한 거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 현재 소니의 시가총액은 17조5000억엔(약 182조원). 코스피 시총 1위 삼성전자(약 419조원)의 43% 수준까지 따라왔다. 코스피 2위 SK하이닉스(약 79조원)보다는 2배 이상 높다. / 소니 경영방침설명회 자료
게다가 소니는 10년 전만 해도 삼성전자·애플 등에 밀려 거의 망해가는 중이었거든요. 주력이었던 전자제품의 매출·수익이 급감하면서 회사 전체가 위기에 휩싸였죠. 2008년 이후 2011년까지 4년 연속 적자였고 특히 2011년엔 7조 원대라는 창사 이래 최대적자 늪에 빠졌습니다. 2012년에 잠시 흑자 반전했다가 다시 2013~2014년 연속 적자. 소니와 안 어울릴 것 같은 금융 사업부가 당시 유일한 돈줄이었습니다. 금융마저 없었더라면 정말 망했을지 모릅니다. 전자입국(電子立國)의 상징이었던 소니의 침몰에 일본인들이 입은 충격과 상처는 이루 말할 수 없었죠.
그랬던 소니가 이전보다 더 강력해진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 겁니다.
◇ 소니, 올해 영업이익 1조엔 사상 첫 돌파 예상... 시총 182조원으로 삼성전자의 절반에 근접
그렇다면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봅니다. 소니는 어떻게 사상 최대 영업이익 달성을 눈 앞에 두게 된 걸까요? ‘AV 가전의 제왕’이었던 소니의 영화(榮華)는 사라진 지 오래인데 말입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소니는 사업 축을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옮겨 양쪽의 융합에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올해 7~9월 기준으로 살펴보면, 콘솔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 5와 게임제작, 구독 서비스 등을 포함한 ‘게임·네트워크서비스’ 부문이 전체 매출의 27.2%를 차지해 부문별 매출 비중 1위였습니다. 미러리스카메라와 스마트폰 등을 포함한 ‘일렉트로닉스’는 전체 매출의 24.6%로 2위입니다. 3위는 금융으로 전체에서 15.6%를 차지했고요. 게임과 함께 소프트웨어 부문이라 할 수 있는 음악·영화 부문의 매출 비중은 각각 11.5%와 11.0%, 소니가 세계시장의 절반을 장악한 이미지센서 부문이 11.8%였습니다. 올해 7~9월 실적 기준으로 게임·음악·영화 등 소프트웨어 부문이 전체 매출의 49.7%를 차지했고요. 전체 영업이익에서도 소프트웨어 부문이 51.8%를 차지했습니다. 올해 전체, 그리고 내년 이후로 시야를 넓혀보면 소프트웨어 부문의 매출과 영업이익 비중은 더 커질 전망입니다.
▲ 올해 7~9월 기준으로,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 5와 게임제작, 구독 서비스 등을 포함한 ‘게임·네트워크서비스’ 부문이 전체 매출의 27.2%를 차지해 부문별 매출 비중 1위를 차지했다. 미러리스카메라와 스마트폰 등을 포함한 ‘일렉트로닉스’는 전체 매출의 24.6%로 2위. 3위는 금융으로 전체의 15.6%. 게임과 함께 소프트웨어 부문이라 할 수 있는 음악·영화 부문의 매출 비중은 각각 11.5%와 11.0%, 소니가 세계시장의 절반을 장악한 이미지센서 부문이 11.8%였다. 소프트웨어 부문이 전체 매출의 49.7%, 전체 영업이익의 51.8%를 차지했다. / 소니 경영방침설명회 자료
소니의 포트폴리오 변화와 그에 따른 성공이 한국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주는 이유는 소니를 제외한 한국·일본의 어떤 회사도 아직 하드·소프트 융합에 제대로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는 하드웨어, 네이버·카카오는 소프트웨어 중심이죠. 특히 삼성전자는 가전·스마트폰 등의 시장 지배력을 무기로 소프트웨어 쪽으로 영역 확대를 노려왔지만, 큰 성과를 내고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반도체·가전·스마트폰·전장 등의 안정적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지만, 대규모 투자나 사업현황 변화에 따른 위험이 꽤 크다고 할 수 있죠. 특히 메모리나 파운드리 분야의 경우 수십조원 단위의 투자를 반복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삼성전자뿐 아니라 한국의 상당수 제조업체가 비슷한 고민을 할 겁니다. 제품 경쟁력에만 기대는 게 점점 위험해지고 있기 때문에, 제품에 소프트웨어나 서비스를 접목하려는 기업이 적지 않죠. 하지만 딜레마입니다. 산업 고도화에 따라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사업의 축을 옮기거나 적어도 양쪽을 융합하는 쪽으로 가려 해도, 방향을 제대로 잡고 실행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칫 잘못하면 소프트웨어 경쟁력도 확보 못 한 상태에서 하드웨어 경쟁력마저 떨어질 수도 있고요.
따라서, 소니의 현재 상황을 외면할 게 아니라, 이들이 어떻게 부활했고 그 과정에서 어떤 고민과 결단이 있었고, 앞으로는 어떤 계획을 가졌는지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우리 기업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제품 기반으로 세계를 석권한 아시아 기업 중에서 소프트웨어 기반으로 변신에 성공한 유일한 기업이 소니이기 때문이죠. 우리 제조업체들도 안정적이고 장기적으로 수익을 더 키우려면 소프트웨어 파워를 더 높여야 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소니 사례는 깊이 연구해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 소니는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성장을 극대화하기 위해 뛰어난 IP와 D2C 채널 확보를 위한 전략적 투자와 기술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 소니 경영방침설명회 자료
◇ 아시아 제조기업 최초로 하드·소프트웨어 융합에 성공... 게임·영화·음악 등 엔터테인먼트 매출 비중이 전체의 절반
그럼 소니는 어떻게 10년 전 회사가 망할뻔한 위기를 딛고 하드·소프트 융합에 성공하게 된 것일까요?
이것을 알아보려면 우선 소니의 과거로 돌아갈 볼 필요가 있습니다. 소니는 1979년 휴대용 카세트플레이어 ‘워크맨’을 내놓은 이후 줄곧 독자 제품으로 소비자의 ‘라이프 스타일’을 완성하겠다는 열망을 드러냈었죠. 초기 워크맨엔 독자 규격의 헤드폰 잭을 사용했고, ‘베타’라는 고유의 비디오테이프 레코더 규격으로 승부를 걸기도 했습니다. 소니의 공동창업자 중 한 명으로 전후(戰後) 일본 기업가를 대표하는 모리타 아키오(盛田昭夫)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는 자동차의 양쪽 바퀴처럼 같은 빠르기로 달리는 것이다.”
즉 소니는 오래전부터 폐쇄적이면서도 완성도 높은 하드웨어 생태계를 꿈꿨고, 거기엔 필연적으로 하드·소프트 융합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았다는 것이죠. 소니가 1988년 미국 CBS레코드, 1989년 컬럼비아 픽처스를 인수한 것도 자사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융합을 염두에 둔 사전 포석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모리타의 하드·소프트 융합의 꿈을 실현한 사람은 소니 내부의 후계자가 아니라 애플의 스티브 잡스였습니다. 우리가 아는 애플 생태계가 바로 폐쇄적이면서도 사용자 경험의 완성도를 극대화하는, 그리고 하드와 소프트를 융합한 비즈니스모델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죠.
소니의 하드·소프트 융합 구상은 잡스가 2001년 1월 샌프란시스코 맥월드(신제품 출시 등에 초점을 맞춘 애플의 대표 행사)에서 내놓은 ‘디지털 허브 전략’의 밑바탕이 됐습니다. 잡스는 어릴 때부터 소니 애호가였으며 특히 소니의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 집착에 가까운 기술력에 매료됐지요.
실제로 잡스는 1999년, 모리타 별세 이틀 후에 아이맥 DV와 iMovie를 발표하면서, 발표에 앞서 모리타의 사진을 무대 뒤 대형 화면에 띄우고 그를 애도했습니다. 잡스는 “내게 가장 큰 영감을 준 사람 중 한 명이 모리타 아키오였다. 트랜지스터 라디오, 트리니트론 TV, 첫 컨슈머 VCR, 워크맨, 오디오CD 등을 세상에 내놓은 위대한 분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애플은 컴퓨터업계의 소니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오늘의 발표를 모리타씨가 반겨주었으면 기쁘겠다”고 말했을 만큼 모리타 아키오의 팬이었습니다.
▲ 1971년 5월 타임지 표지. 일본 가전제품 선두주자인 소니의 모리타 아키오 회장을 다뤘다.
◇ 창업자 모리타 아키오의 하드·소프트 양륜(兩輪) 구상, 스티브 잡스가 먼저 구현한 뒤 소니가 뒤늦게 실행
잡스의 비전은 2001년 애플이 디지털 음원 판매망 ‘아이튠’과 음악 플레이어 ‘아이팟’을 보급하면서 실현되기 시작합니다. 애플의 전매특허, 즉 자사의 모든 기기를 연결한 매끄럽고 고급스러운 사용자 경험의 시초이고요. 그 아이디어는 명백히 소니의 구상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구상은 먼저 했지만, 잡스에게 완벽하게 허를 찔린 소니도 대응에 나섭니다. 잡스의 디지털 허브 전략 발표 10개월 뒤인 2001년 10월 소니의 안도 구니다케 CEO는 라스베이거스 컴덱스(Comdex·2000년대 초반까지 미국을 대표했던 IT 전시회)에서 ‘유비쿼터스 밸류 네트워크’ 전략을 발표하죠. 소니의 기기·콘텐츠를 ‘언제 어디서나(ubiquitous)’ 연결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개념이었습니다. 당시 유명했던 소니 ‘바이오’ 컴퓨터와 ‘베가’ 홈시어터를 허브로 디지털 네트워크를 구축해 ‘소니 왕국’을 완성하겠다는, 회사의 명운을 건 승부처였죠.
당시 소니는 세계적 기업이었고 애플보다 규모가 훨씬 컸습니다. 따라서 소니가 가진 구슬을 꿰기만 하면 애플을 압도할 수 있을 것 같았죠. 음악·영화 콘텐츠회사와 TV·PC·게임기·휴대전화 등 필요한 모든 기기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과는 아시는 대로입니다. 소니는 경쟁사 제품보다 뛰어났던 자사 제품과 콘텐츠로만 구성된 폐쇄된 세계를 완성해 소비자에게 제공하려 했는데요. 문제는 이후 소니가 사용자 편의성보다는 자사 편의성 위주의 제품을 쏟아냈다는 겁니다. 게다가 소니 제품이 다른 범용품과의 차별성을 잃어버리면서 소비자가 굳이 소니의 폐쇄성을 감수해가며 소니가 꿈꾸는 세계에 동참할 이유를 찾지 못하게 됐죠. 제품의 차별성이 사라진 뒤의 폐쇄성은 소비자의 급속한 이탈을 가져올 수 있다는 교훈만 남긴 채 소니의 꿈은 사라져 갔습니다.
그렇게나 많은 자산을 갖고 있었으면서도 애플에 참패한 것은 소니 내부에 처절한 교훈으로 남았습니다. 이후로도 소니는 실적추락과 시행착오를 여러 차례 겪었고, 권력암투와 책임 떠넘기기도 있었고, 경영자도 바뀌고 했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이 회사가 망하지 않고 살아남아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됐다는 겁니다.
기업은 망하면 끝이죠. 망하지만 않으면 후일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소니는 살아남았고, 조직 슬림화와 사업 재편 등을 통해 소프트웨어·콘텐츠 중심의 하드·소프트 융합 기업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구독서비스 ‘PS플러스’. 2021년 3월말 현재 전 세계 회원 수는 4760만명. 최근 1년간 회원 수가 500만명이나 증가했다. / 소니 경영방침설명회 자료
◇ 그룹 매출 비중 1위인 게임사업 전체에서 하드웨어 비중 20%에 불과... 게임 소프트 다운로드와 구독경제가 핵심
일렉트로닉스·게임·음악·영화·이미지센서·금융 등 6개 사업 가운데 매출 비중 1위인 게임을 성공 사례로 들 수 있습니다. 게임사업 역시 하드에서 소프트웨어와 구독경제 쪽으로 축이 바뀌었습니다. 작년(2020년 4월~2021년3월) 게임부문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3% 증가한 3422억엔으로 과거 최고를 경신했는데요. 스테이홈 수요가 늘면서 게임 소프트의 다운로드 판매가 호조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목할 것은 작년이 7년 만의 신형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PS) 5 발매 연도였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신형 게임기 발매 연도마다 반드시 적자였거든요. 게임기 제조비용이 판매가격보다 높은 상태로 대량 판매한 이후, 게임 소프트 판매를 통해 몇 년에 걸쳐 적자를 만회하는 구조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엔 게임기 발매 첫해에 단숨에 과거 최고이익을 경신한 것이죠.
일단 기술지상주의를 포기하고 소비자에게 확실한 효용을 주는 것 위주로 사양·부품을 최적화해 제조단가를 낮춘 덕에, 게임기를 팔수록 적자가 늘어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었습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게임기 판매 이외 수익의 확대입니다. 2013년엔 게임부문 전체 매출에서 게임기 비중이 48%나 됐는데요. 작년에는 20%로 떨어졌습니다. 게임 소프트의 자체 제작 비중이 늘어나면서 관련 매출이 많이 늘어났고요. 이와 함께 구독경제 구축에 성공한 것이 컸습니다. 플레이스테이션에서는 일본기준 월 850엔을 내면 ‘PS플러스’ 회원이 되는데요. 네트워크 대전이 가능하고 그 외에도 과거 게임을 무료로 내려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 결과 2021년 3월말 현재 전 세계 회원 수는 북미·유럽·일본 중심으로 4760만명에 달합니다.
소니의 PS 플러스는 넷플릭스의 게임 버전과도 같은 개념이죠. 계속 과금할 수 있는 유료 회원의 증가는 소니 게임부문 수익의 안정적인 증가로 연결됩니다.
물론 스마트폰 게임이나 게이밍 PC 보급에 따른 위험이 남아 있긴 하지만, 유료회원 확대 여지는 아직 충분하다는 게 소니 입장입니다. 우선 최근 1년간 PS 플러스 회원 수가 500만명이나 증가했고요. 중국·인도 등의 거대 시장이 남아 있다는 것이죠.
소니는 지난 5월의 경영방침 설명회에서 자사의 게임·영화·음악 IP(지적재산)를 서로 연결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동시에, 콘텐츠 체험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소니의 반도체·영상·스마트폰·통신·AI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청사진을 제시했습니다.
또 하나 새로 내놓은 것이 D2C(Direct to Consumer) 즉 소비자와의 직접 유대 강화인데요. 게임의 네트워크 서비스인 ‘PS 네트워크’의 월간 액티브 유저 1억1000만명 등을 더하면, 지금도 1억6000만명의 소비자와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직접 연결돼 있다는 게 소니 설명입니다. 소니는 장기적으로 D2C 대상을 10억명으로 늘리겠다고 밝혔습니다.
▲ 소니 자체 IP의 콜라보레이션 사례. 플레이스테이션의 인기 게임 '언차티드'나 '라스트 오브 어스'를 영화나 TV 시리즈로 만들기도 하고, 자사 소속 아티스트를 자사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목소리로 출연시키기도 한다. / 소니 경영방침설명회 자료
◇ 소니 게임 유료구독자 4800만명, D2C 대상 1억6000만명을 10억명으로 늘리는 게 목표
10억명이라는 도전적인 숫자의 실현 여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이런 전략을 통해 소니가 지향하는 바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게임·영화·음악 등 소니의 모든 IP를 연결해 D2C고객 기반을 최대한 늘리겠다는 것이고, 소니의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기술도 이 목표에 초점을 맞춰 개발하고 활용해 나가겠다는 것이죠. 소니는 이러한 목표(purpose)에 정확히 초점을 맞춰 사업을 전개해 나가는 동시에 거기에 꼭 필요한 기업을 적극적으로 사들이겠다고 했고요. 반대로 목표에 맞지 않는 사업이나 기술은 과감히 정리해 나간다는 방침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이를테면 플레이스테이션의 인기게임 ‘언차티드’를 블록버스터 영화로도 만들고, 소니가 판권을 가진 영화 ‘스파이더맨’을 게임으로도 만드는 식으로 자사 IP의 시너지를 노린다는 것이죠. 한국에서도 히트한 극장판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도 소니에서 제작한 것인데요. 원작 만화에서부터 시작해 TV시리즈 애니메이션, 극장판 애니메이션, 자체 보유한 인기 아티스트의 삽입곡 등 하나의 콘텐츠로 다양한 수익을 창출하는 전략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소니는 최근에 단순한 재미를 추구하되 특별한 스토리가 존재하지 않는 모바일게임을 만들어온 사업부를 통째로 매각했는데요. 앞으로는 게임이라도 영화·드라마화할 수 있는 것의 개발에 집중키로 했기 때문입니다. 즉 어떤 콘텐츠를 만들 때에 그것이 다른 콘텐츠로 확대될 수 있는지, 또 소비자를 소니의 구독경제로 끌어들이는 데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염두에 두고 장기적으로 접근한다는 얘기입니다.
소니는 또 세계 80개국에서 방송사업을 하며 여러 유료채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해당 채널 가입자의 총수는 9억명에 달합니다. 특히 인도는 방송사업의 가장 큰 축으로 수익 대부분을 벌어들이는 효자시장입니다. 소니는 TV 프로그램 제작에도 적극적입니다. 미국 3대 네트워크인 ABC, NBC, CBS 외에 케이블 방송사, 최근에는 넷플릭스 등 인터넷 전송 사업자도 소니 고객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만으로는 D2C 기반 10억명 확보가 요원하겠죠. 소니가 밝힌 것은 목표 달성에 필요한 M&A를 빠르게 추진하는 것입니다. 2023년까지 2조엔 이상의 투자를 단행할 예정입니다.
소니가 게임에서는 자체 글로벌 플랫폼을 만들었지만, 영화에서는 아직 자체 플랫폼을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올 4월에는 미국 넷플릭스, 월트디즈니에 자사 콘텐츠를 제공한다는 계약을 맺었거든요. 타사의 각종 플랫폼을 통해 자사 콘텐츠를 실어 보내는 식으로 수익을 확보하는 것인데요. 장기적으로는 게임·영화·음악 등을 포함한 통합 플랫폼과 더 큰 그림의 구독경제를 구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소니는 6개 사업부끼리의 제휴를 통한 부가가치 극대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미러리스카메라 시장에서 압도적 쉐어를 자랑하는 α(알파) 시리즈의 성능에는 소니의 뛰어난 반도체 기술이 숨어 있죠. 소니손해보험에서는 AI(인공지능) 기술을 사용한 상품이 인기입니다.
이뿐 아니라 소니가 압도적 점유율을 자랑하는 방송장비·전송기술 분야와 영화·게임 제작 등을 연결해 시너지를 내고 있고요. 자사 게임기나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증강 현실 등을 통해 자사 콘텐츠를 더 다양한 방법으로 즐기는 기술도 차례로 상용화할 계획입니다.
▲ 소니는 원작만화 '귀멸의 칼날'을 활용해 TV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이후에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자사 아티스트를 동원해 삽입곡을 히트시키는 등의 방식으로 자사 영화,음악 부문 수익을 끌어올린다. / 소니 경영방침설명회 자료
◇ 소니, AI·반도체·소프트웨어 기술 활용해 자율주행 전기차 개발 중... 자사의 게임·영화·음악 IP 활용하는이동형 구독경제 플랫폼 될 수도
이는 신규 사업에서도 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2020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에서 발표된 전기차 VISION-S입니다. 2018년 1월에 강아지 로봇 아이보(aibo)를 12년 만에 부활시킨 AI 로보틱스 그룹이 진행하는 신규 프로젝트인데요. 이미지센서와 AI 기술 이외에 스마트폰 엑스페리아(Xperia)의 UI나 통신 기술, 축적된 오디오 기술을 활용한 실내 구성 등에 그룹 전체의 기술이 망라돼 있습니다.
소니의 전기차는 결국 소프트웨어 중심의 자동차, 궁극적으로는 자율주행차가 될 텐데요. 소니 전기차가 상용화됐을 때, 소니가 가진 게임·영화·음악 콘텐츠와 영상·센서·반도체·AI 기술이 어떤 시너지를 발휘할지 예측해 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2025년이 됐든 2030년이 됐든 소니의 자율주행 전기차는 소니의 콘텐츠 플랫폼 혹은 구독경제의 핵심 디바이스가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구현할 하드웨어 기술도 소니 내에 있다는 것이고요.
현재 소니는 과거처럼 ‘소니 하면 이것’이라 할만한 히트상품이 많이 눈에 띄지 않는데도 사상 최대 수익을 경신하고 있습니다. 좋게 보면, 통상 마찰이 심해지고 유통 비용은 올라가고, 현지의 사회·경제적 저항 등도 거세지는 상황에서, 소니가 큰 마찰·저항 없이 안정적으로 돈을 벌 시스템을 갖춰나가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할 수도 있지요.
▲ 2020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에서 발표된 소니 전기차 VISION-S. 이미지센서와 AI 기술 이외에 스마트폰 엑스페리아(Xperia)의 UI나 통신 기술, 축적된 오디오 기술을 활용한 실내 구성 등에 그룹 전체의 기술이 망라돼 있다. 소니의 자율주행 전기차는 소니의 콘텐츠 플랫폼 혹은 구독경제의 핵심 디바이스가 될 수 있다. / 소니 경영방침설명회 자료
◇ 한국 제조업도 소프트웨어·서비스 쪽으로 사업 축 옮겨야 할 수도... 소니 사례 깊이 연구해볼 만
제조업체 입장에서 하드웨어만으로 언제까지나 강력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방법이겠지만, 그게 어렵다면 하드웨어에 의존하지 않고도 꾸준히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을 취하는 게 더 스마트할 수도 있죠.
소니가 바로 그런 방법을 찾은 셈입니다. 소니의 현재 모델은 일본은 물론 아시아 제조업에 없었던 새로운 사업모델입니다. 창업자 모리타 아키오가 꿈꿨던 하드와 소프트 양륜의 성장을 구현해나가는 셈이죠.
앞으로 여러 변수는 있겠습니다만, 코로나로 인한 수급·물류 불안, 비대면 경제의 급성장, 각종 제조비용 상승 등으로 인해 선진국일수록 제조업 일변도의 성장전략이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소니처럼 더 많은 고객에게 콘텐츠와 구독경제 등으로 직접 연결하는 방식이 앞으로 더 진가를 발휘하게 될 수도 있지요.
이를 위해서는 소니처럼 자사의 모든 하드·소프트 사업부가 긴밀하게 연결될 필요가 있겠죠. 연결할만한 소프트 기반이 없다면, 소니의 그간의 사업전개 과정을 연구해 내게 가장 적절한 방법을 찾아볼 필요도 있을 겁니다.
소니가 다시 위기를 맞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지요. 하지만 현재 소니가 추진하는 계획이 앞으로도 잘 이행된다면 말입니다. 매출 100조원, 영업이익 10조원의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며 하드·소프트 융합기업으로 변신한 소니의 성장이 이제부터 시작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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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국제경제전문기자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