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이곳에서
김 종 호
내 마음을 흔들어
아랫성남과 윗성남 길을 오가게 하고
맥없이 풀어져 하늘을 보며
상념을 더했던 이름들은
커다란 명패가 아니었더라.
가장 아래켠
낮고 낮은 자리 한 모퉁이
돌부리에 채여 넘어지면 코닿을 곳
초등학교 넓은 공터이더라.
학교에 가기 싫어서 도피를 일삼고
왕방울 사탕 두개의 유혹으로
엄마가 건네준 10원을 받아
의기양양 어깨를 거들먹거리며
지각마저 잊고 산
초등학교 6년의 매듭이더라.
우리가 심어놓은 측백나무 울타리는
수십 년의 다리를 건너
그때 그 사람의 얼굴과 이름
그때 그 발길을 가로막고 서 있지만
우리가 언제나 먼발치에서도
뒤돌아서서 뛰어오는 곳은
옹색하게 낡고 허름한
초등학교 운동장 운동회 만국기더라.
태어나 처음 입학식을 하고
6년간의 졸업장이 너무나 빛났기에
흐르는 물처럼 섞이고
부는 바람처럼 떠돌아도
우리들 가슴속 가장 밑바탕을 채색한 것은
왕자표 크레파스 물결이더라.
우리들이 간직한 켄버스 위에
하나도 온전치 못한 크레파스를 꺼내들고
손이 가는대로
새끼줄보다 굵은 오선지 위에
왕방울 사탕보다 커다란 음계를 만들면
천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시간의 노래는
계이름도 모르고 따라부른 음악시간의 풍금소리더라.
20여년전 폐교된 이곳에서 다시
사람과 사람들이 모여 앉아
사람들의 소리를 듣고 노래를 듣는 일
초등학교 5학년 때 <행복의 일기>1) 뒷장에 남겨놓은
끝나지 않은 마음의 일기장이더라.
지은이 약력 : 성남리에서 태어나 이곳이 좋아 이곳에서 42년을 살고 있다. 시인, 문학박사, 현재 상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2007.07.30.
1)은 필자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쓰던 '일기장' 표지 제목이다.
첫댓글 입가에 미소를 피어오르게 하는 따뜻한 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