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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장 홍해에서 시내까지(1부)
안녕하십니까.오늘은 『부조와 선지자』 제26장 '홍해에서 시내산까지'라는 장면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출애굽기 15장 22절부터 출애굽기 18장에 해당합니다.『부조와 선지자』 26장은 다루는 내용이 방대하기 때문에 세 부분으로 나누어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26장 전체의 내용은 첫째,출애굽기 15장 후반부의 마라의 쓴 물 경험과 16장의 만나 사건,둘째,출애굽기 17장 전반부의 르비딤 므리바 반석 물 사건,셋째,출애굽기 17장 후반부의 아말렉과의 전투입니다.이번 시간에는 그 첫 번째 순서로 출애굽기 15장 22절부터 이어지는 마라의 쓴 물 경험과 16장의 만나 사건을 살펴보겠습니다.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광야 여정을 시작합니다.홍해를 떠나 삼 일 길을 걸어 수르 광야에 이르게 됩니다.그런데 사흘 동안 광야를 행진하면서 물을 얻지 못합니다.물이 없는 곳이 바로 사막과 광야입니다.사막(沙漠)은 모래가 끝없이 펼쳐진 곳이고,광야(曠野)는 모래펄이 아니라 거친 바위와 돌무더기가 깔린 황무지입니다.둘 다 물이 없다는 점은 같습니다.
물을 마시지 못해 겪는 탈수는 사람을 가장 극심한 고통으로 몰아넣습니다.음식을 먹지 못하는 것보다 물을 마시지 못할 때 인간은 생존하기가 훨씬 더 어렵습니다.어린아이들과 수많은 가축 떼를 이끌고 걸어야 했던 대군이었으니 그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겠습니까?준비해 온 물은 바닥이 났고,내리쬐는 뙤약볕 아래 지친 걸음으로 광야를 걸어갈 때 타는 듯한 갈증을 풀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 지역의 지리를 훤히 꿰뚫고 있던 모세는 백성들이 알지 못하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마라에 샘물이 있지만,그 물은 써서 마시기에 부적당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마침내 백성들이 오아시스를 발견하고 마라에 도착했습니다.모세는 알고 있었지만 백성들은 타는 듯한 갈증 속에서 본능적으로 물을 향해 달려들었을 것입니다.어린아이들을 포함한 거대한 무리가 물을 발견했을 때 터져 나온 환호와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입에 댄 물은 도저히 마실 수 없는 쓴 물이었습니다.목이 타들어 갔던 만큼,물을 보았을 때 환희가 컸던 만큼,그 물을 마실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밀려온 절망감은 갈증의 크기에 비례하여 몇 배로 증폭되었습니다.
이 절망의 순간,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역사하십니다."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출 15:25).
도저히 마실 수 없던 쓴 물에 나뭇가지를 던지자 단물이 되었습니다.절망이 극에 달했던 백성들에게 이는 배나 더 큰 기쁨과 안도로 다가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시하여 물에 던지게 하신 그 나무의 실체는 무엇일까요?영적으로 깊은 표상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찬송가 작시자 찰스 로빈슨(Charles S.Robinson)은 이를 찬양으로 노래했습니다.마라의 쓴 물과 같은 인생의 쓰라린 잔을 마주해 두려워 떨 때,그 쓴 물에 던져진 큰 가지는 바로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요,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십자가가 던져질 때 내 잔의 쓰라린 쓴맛은 사라지고 단 은혜로 변화됩니다.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 모두 목이 마릅니다.갈증을 채우기 위해 세상의 오아시스를 찾아 헤매지만,세상의 우물은 결국 우리에게 더 깊은 좌절과 쓰라린 쓴맛만을 안겨줍니다.인생의 가장 쓰디쓴 마라의 현장에 주님의 십자가 나무가 던져질 때 비로소 모든 쓴 경험이 단 은혜로 변화됩니다.인생의 쓴맛을 단맛으로 바꾸어 줄 수 있는 능력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 없습니다.
마라를 지나 백성들은 신 광야에 이릅니다.마라에서 물 갈증은 해결했지만,신 광야에 도착하자 이번에는 먹을 양식이 떨어졌습니다.인간이 겪는 원초적인 고통 중 하나가 배고픔의 고통입니다.신앙적인 금식 기도가 아니라,실제로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려 본 사람은 그 고통이 뼈에 사무친다는 것을 압니다.
오늘날 젊은 세대는 풍요 속에서 다이어트를 고민하지만,과거 어려운 시절을 지나온 세대는 끼니를 잇지 못해 겪었던 쓰라린 배고픔을 기억합니다.들이나 밭에 버려진 이삭과 부스러기 감자를 줍고,쉰 보리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굶주림을 견뎌야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수백만 군중이 광야 한가운데서 양식이 바닥났을 때 밀려온 공포는 대단했습니다.백성들은 다시 원망하기 시작합니다."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출 16:3).
목마르면 목마르다고 원망하고,배고프면 배고프다고 불평하는 것이 광야 백성들의 반복되는 모습이었습니다.준비해 온 곡식은 떨어졌고,광야에는 풀이 없어 가축도 줄어들었습니다.'이 수많은 군중을 어떻게 먹여 살릴 것인가?'라는 근심과 불신이 백성들의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약속하십니다."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출 16:4).
학자들은 만나의 정체에 대해 광야 식물의 분비물이라느니 곤충의 진액이라느니 온갖 자연적인 가설을 내놓습니다.그러나 성경이 증언하는 만나는 명백한 초자연적 기적의 선물입니다.하나님께서는 매일 한 사람당 한 오멜(약 2.2리터)씩 거두도록 하늘 문을 열어 먹이셨습니다.장정만 60만이요 전체 인구가 약 200만 명이라면 하루에 필요한 양은 200만 오멜,무게로는 약 4,500톤에 달합니다.이는 15톤 화물열차 300대 분량의 식량이 매일 광야 바닥에 쏟아져 내린 것과 같습니다.
만나가 내릴 때의 광경을 출애굽기 16장 7절과 10절은 "아침에는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니"라고 기록합니다.성경 역사에서 '영광(히브리어 카보드,하나님의 임재의 찬란한 광채)'이라는 단어가 공식적으로 백성들 앞에 장엄하게 등장하는 중요한 장면입니다.『부조와 선지자』 294쪽은 "그들이 결코 목격한 적이 없었던 영광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했다"라고 설명합니다.만나는 단순한 식량이 아니라 하나님의 살아계신 임재와 함께 주어진 선물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지면에 하얗게 내린 생소한 물질을 보았을 때 백성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외쳤습니다."만 후(Man hu)?"우리말로 "이것이 무엇이냐(What is it)?"라는 뜻입니다.너무 신기하고 놀라 감탄하며 내뱉은 "이게 뭐지?"라는 히브리어 감탄사가 그대로 고유명사가 되어 '만나(Manna)'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만나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출애굽기 16장 14절:"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세미한 것"
출애굽기 16장 31절:"모양은 깟씨 같고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
민수기 11장 9절:"밤에 이슬이 진영에 내릴 때에 만나도 함께 내렸더라"
이슬처럼 소리 없이 고요하게 하늘에서 내린 신선한 양식이었습니다.그러나 훗날 섞여 사는 무리들은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도다"(민 11:6)라며 불평했습니다.굶주릴 때는 감격하더니 배가 부르자 옛 애굽의 자극적인 음식을 그리워하며 하늘 양식을 홀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광야에서 만나를 먹이셨습니까?신명기 8장 3절에 명확히 기록되어 있고 예수님께서도 인용하셨듯이,"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만나의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의 성격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작고 세미함:주의 말씀은 세미하고 정미합니다.성경 66권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명료한 복음으로 요약되면서도,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지혜자라도 평생을 다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깊고 섬세하며 오묘합니다.
흰색:하나님의 말씀의 흠 없는 순결함을 상징합니다.
꿀 섞은 과자 같은 단맛:"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시 119:103).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순종하는 영혼은 말씀의 참된 단맛을 맛보게 됩니다.
밤이슬처럼 조용히 내림:말씀은 요란한 세상 소음 속이 아니라 고요히 열린 심령에 촉촉이 젖어 듭니다.
만나를 거두고 먹는 방법에도 중요한 영적 원칙이 담겨 있었습니다.첫째,각 사람의 식량대로거두었습니다.아무리 지면에 풍성히 내려도 내가 직접 거두어 먹지 않으면 내 양식이 되지 않습니다.은혜와 신앙은 다른 사람의 것으로 대신할 수 없으며 각자가 매일 말씀을 취해야 합니다.둘째,아침마다 매일거두었습니다.어제의 은혜로 오늘을 살 수 없습니다.영의 양식인 말씀은 매일 아침 새롭게 섭취해야 합니다.셋째,허리를 숙여거두었습니다.만나는 땅바닥에 내렸기 때문에 허리와 고개를 숙여 무릎을 꿇지 않고는 주울 수 없었습니다.교만한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둘 수 없습니다.지극히 낮아지고 겸손한 태도로 말씀 앞에 엎드릴 때 영의 양식을 얻습니다.넷째,맷돌에 갈고 절구에 찧고 삶아서가공해 먹었습니다.말씀을 삶의 현장에서 깊이 묵상하고 소화하여 자기 것으로 만드는 실천적 과정이 필요합니다.다섯째,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까지 40년 동안 지속적으로먹었습니다.성도는 하늘 본향에 도달하는 그날까지 평생 하나님의 말씀을 호흡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더 나아가 만나는 하나님께서 안식일의 신성성을 회복시키기 위해 주신 특별한 시험과 표징이었습니다."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출 16:4).
광야의 만나는 놀라운 3중의 기적으로 안식일을 증거했습니다.
엿새째(금요일)에는 평일의 두 배가 내렸습니다.
일곱째 날(안식일)에는 전혀 내리지 않았습니다.
평일에는 남겨두면 벌레가 생기고 악취가 났으나,금요일에 거두어 안식일을 위해 보관한 만나는 이튿날까지 전혀 상하지 않고 신선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란 나일강이 없는 곳입니다.애굽에서는 나일강의 물줄기를 끌어대며 인간의 수고로 농사를 지었지만,광야에서는 인간의 힘으로 양식을 낼 방법이 전무합니다.오직 고개를 들어 하늘만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비가 내려야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논을 '천수답(天水畓)'이라고 부릅니다.이와 마찬가지로 광야는 하늘에서 매일 빵을 내려주셔야만 먹고 살 수 있는 거대한 '천병전(天餠田,하늘 떡의 밭)'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먹이시는 훈련을 통해,인간이 자기 재주와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은혜로 사는 존재임을 가르치셨습니다."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신 8:16-17).
안식일을 성수한다는 것은 곧 '내 삶의 주권과 생업이 내 손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께 달려 있다'는 사실을 삶으로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부조와 선지자』 296쪽은 안식일의 준비에 대해 이렇게 권면합니다."안식일 전날은 예비일로서 거룩한 시간을 위하여 모든 것을 준비해 두어야 한다.안식일이 시작할 때까지 게을리한 일은 안식일이 지날 때까지 하지 말고 그대로 두어야 한다.이러한 방법이 부주의한 사람들의 기억력을 도와,일하는 육 일 동안에 저들의 일을 주의 깊이 행하도록 만들 것이다."
이 만나의 궁극적인 실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요 6:48-51).
광야에서 만나가 내릴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듯이,"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했습니다(요 1:14).흠 없이 순결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늘로부터 값없이 주시는 생명의 선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17절은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라고 약속하십니다.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늘 광야 같은 인생길을 걸어가는 성도들의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 되십니다.
오늘 우리도 광야를 지나고 있습니다.영혼의 갈증과 굶주림을 겪는 우리에게 참된 양식이 필요합니다.날마다 허리를 숙여 말씀 앞에 나아가고,만나의 참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매일 인격적으로 '만나' 교제함으로써 영생의 힘을 얻는 복된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감사합니다.
[핵심 요약 정리]
마라의 쓴 물과 십자가의 회복:출애굽 후 사흘 길을 걸어 도착한 마라에서 마주한 쓴 물은 갈증에 비례한 극심한 절망을 안겨주었습니다.그러나 모세가 던진 나무 한 가지를 통해 단물로 변화되었듯이,인생의 쓰디쓴 고통과 절망의 잔을 단 은혜로 바꾸는 유일한 해결책은 갈보리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신 광야의 굶주림과 초자연적 만나:애굽에서 가져온 양식이 떨어져 원망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매일 약 4,500톤에 달하는 초자연적인 하늘 양식인 만나를 내리셨습니다.이는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임재)과 함께 주어진 거저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었습니다.
만나와 하나님의 말씀:작고 세미함(말씀의 정미함),흰색(말씀의 순결함),꿀 섞은 과자 맛(말씀의 은혜로운 단맛),밤이슬 같은 조용함(심령에 임하는 감화)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겸손히 허리를 숙여 매일 아침 각자의 몫을 거두어 찧고 빻아 먹었듯이,성도는 매일 겸비한 마음으로 말씀을 개인적으로 묵상하고 소화해야 합니다.
천병전(天餠田)과 안식일 신앙:광야는 하늘에서 떡을 내려주셔야만 사는 거대한 밭이었습니다.금요일의 2배 공급,안식일의 공급 중단,보관 시 부패 방지라는 '3중의 기적'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생업과 생명이 인간의 재주가 아닌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알게 하시고 거룩한 안식일 준수 신앙을 회복시키셨습니다.
만나의 궁극적 실체이신 그리스도:광야의 만나는 모형일 뿐이며,그 참된 실체는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요 6장)입니다.광야 같은 세상을 지나는 성도는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를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영접하며 하늘 본향에 이르기까지 동행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