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죽음을 초월한 증인
다비다의 죽음이 끼친 영향력
최근 우리 가족은 누군가에게 사랑하는 할아버지이자 아버지이자 남편인 분에게 작별을 고했다. 우리는 그의 침대 곁에 앉아 울고 기도하고 소망의 노래를 불렀다. 그의 가슴이 펄떡거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우리는 그의 호흡수를 세고 있었다. 친절하고 참을성 있고 자상한 그의 추억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우리는 울고 웃었다. 그가 일평생 하나님을 섬기며 살았고 썩지 않을 몸으로 다시 일어날 것을 믿지만 이생에서 그와 작별하는 일은 여전히 고통스러웠다. 몇 시간, 며칠 동안 병상을 지키면서 우리는 이별 그리고 사랑하는 이의 생명이 꺼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인간에게는 자연스럽지 않은 일임을 깨달았다. 우리는 영생하도록 지어졌다.
우리 가족이 모였고 이웃들도 모였다. 엄청난 음식과 세계 곳곳에서 보내 온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접하면서 조부모님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섬기고 돌보고 사랑하셨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사도행전 9장에서는 그와 비슷한 사랑을 받았던 제자 다비다(도르가)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착한 일을 하는 여인
다비다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다. 그녀가 몇 살인지, 결혼했는지, 자녀가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단지 그녀가 제자였으며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은”(행 9:36) 사람이었다는 것만 알고 있다. 과부를 위한 옷을 만드는 일도 그중 하나였다(37, 39절). 욥바 여인들에게 이것은 매우 절실한 도움이었고 이런 점으로 미루어 다비다는 부유했고 의류 사업을 운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확실히 그에게는 갖가지 의복을 만들 수 있는 기술과 재정이 있었다. 제자라는 호칭에서 그녀가 신자 공동체의 지도자였음을 알 수 있다.
다비다의 병과 그로 인한 죽음은 욥바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참담한 충격이었다. 나의 할아버지는 길고 충만한 삶의 끝에 돌아가셨지만 다비다는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았다. 그녀의 시신이 다락방에 눕혀져 있었고 과부들은 그녀를 둘러싸고 울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은 그들과 지역 사회를 향한 다비다의 사랑과 보살핌에 대한 증거였다.
그리 멀지 않은 도시 룻다에서 베드로가 어느 중풍 병자를 고쳤고 그 소식이 온 지역에 퍼졌다. 욥바의 다른 제자들은 기적을 바라는 마음으로 베드로에게 사자를 보내어 속히 욥바로 오라고 재촉했다. 욥다에 도착한 베드로는 깊은 슬픔에 잠긴 성도들을 찾아갔다. 과부들은 자신들에게 다비다가 만들어 준 옷을 베드로에게 보여 주며 통곡했다. 다비다의 봉사 활동에 대한 그들의 간증에 베드로는 분명 가슴이 찡했을 것이다. 그는 모든 사람을 방 밖으로 내보낸 다음 그녀의 부활을 위해 기도했다. 믿음으로 그는 죽은 여자를 향해 말했다.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나님은 그녀의 몸에 생명을 다시 불어넣으셨다. 다비다는 베드로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베드로가 다시 살아난 그녀를 신자들 앞으로 인도했을 때 터져 나왔을 기쁨과 환희를 상상해 보라. 그녀의 부활로 욥바의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게 되었다. 끔찍하고 슬픈 일이었던 다비다의 죽음이 그녀의 부활 덕분에 승리로 바뀌었다. 그녀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니 얼마나 놀라운 증언인가!
죽음과 지연
그렇다면 숨이 끊어져 계속 죽은 채로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나님을 충실히 섬겼지만 한창때 세상을 떠난 남녀노소가 수두룩하지 않은가? 죽음을 이른 시기에 겪든 말년에 겪든지 간에 하나님과 사탄 사이의 전쟁은 사상자를 만든다. 이것이 이 전쟁의 본질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우리에게는 무덤 저편의 희망이 주어졌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일어나 그분과 함께 산다는 희망이다(롬 6:8). 그러나 우리는 아직 질병과 죽음에 대해 면역력을 갖추지 못했다. 지금 우리의 육신은 여전히 죽을 몸이다.
계속되는 죽음과 그 죽음에 다가가는 이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신실한 성도의 죽음은 그 자체로 하나의 간증이 된다는 사실에서 나는 큰 위안을 얻었다. 할아버지는 말년에 환자를 진찰하거나 성경 연구를 하거나 설교하거나 큰 소리로 기도할 수도 없으셨다. 증인의 삶이란 그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느냐가 아니라 그가 누구 안에 있느냐 다시 말해 그가 과연 하나님의 친구이냐 하는 것에 달렸다.
과부들이 다비다를 둘러쌌듯 할아버지는 그분의 친절과 신실함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할아버지가 죽어 가는 동안에도 우리는 많은 메시지를 받았다. 할아버지에게 사랑받았던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메시지들이었다. 의료진은 침대 곁에 모여 앉아서 노래를 부르거나 성경 구절을 읽어 주는 가족과 친구들의 헌신에 감동을 받았다.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사랑하는 법, 위로하는 방법을 알려 주셨고, 그가 수많은 사람을 보살폈듯 이제 그분의 임종 자리에서는 우리가 할아버지를 돌보았다.
한 증인의 죽음은 삶의 끝일 수 있으나 그것이 증인으로서의 끝은 아니다. 다비다처럼 부활이 죽음 직후에 일어나든 재림 때까지 지연되든 남은 자들은 진리와 소망과 사랑의 하나님에 관한 메시지를 계속 선포할 수 있다. 자신의 재능과 자원을 사용하여 주변 지역 사회에 축복을 전해 준 사람들의 유산을 이어 가도록 하자. 그리고 슬픔 속에서도 우리를 붙드시며 언젠가 함께 앉아 우리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그분께 영광을 돌리자.
* Teresa J. Calpino, Women, Work and Leadership in Acts(Tübingen: Mohr Siebeck, 2014), p. 141
묵상을 위한 질문들
1. 자신의 재능과 자원을 활용해 지역 사회에 어떤 유익을 끼칠 수 있을까?
2. 오늘 죽음을 맞이한다면 어떤 유산을 남겨 줄 것인가?
3. 성도의 죽음이 어떻게 증언이 될 수 있을까?
4.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했을 때 우리는 어떤 희망을 간직할 수 있는가?
발문
한 증인의 죽음은 삶의 끝일 수 있으나 그것이 증인으로서의 끝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