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들에게 시사떡이 뭔지 물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시사떡은 가난하던 시절, 문중에서 제사를 지낸후 나누어 주던 떡을 말하기 때문이다. 먹을거리가 지천에 널린 요즘, 그런 떡은 아예 아이들의 군것질 대상에서 제외될 게 뻔하다. 넘쳐 나는 서구 음식에 혀끝이 동화된 지 이미 오래 된 탓이다.
그런데 그런 시사떡이 그 시절에는 인기만점 이었으니 생각만 해도 씁쓸한 일이다. 시사떡을 얻으러 갈 때는 천리 길도 마다하지 않았다. 산능선 몇 번 넘고 골짜기 몇 번을 타는 것이 무슨 대수랴,
고향에도 음력에 시사를 지내는 집들이 있었다.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를 시사라고 하는데 주로 안 씨 문중에서 많이 지냈다. 안 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마을 사람들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내 고향 안화리는 씨족 부락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시삿날이 돌아오면 무엇보다 아이들의 기분이 들떴다. 그날이 되면 떡을 푸짐하기 얻어오기 때문이었다. 시사는 주로 제실에서 지내지만 제실이 없는 탓에 산소까지 가서 제사를 지내야 했다.
어느 공휴일이었던가. 안 씨 문중에서 시사를 지내는 날이 돌아왔다. 나는 아침부터 시사떡을 얻으러 갈 준비를 서들렀다. 어머니는 큰 떡보자기를 내주었다. 남보다 더 많은 떡을 얻어올 욕심 때문이었다. 마을 골목에는 각자 보자기를 손에 든 아이들이 모여 왁자지껄 했다.
시사를 지낼 산소는 불가쟁이라고 부르는 산속에 있었다. 불가쟁이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산중이었다. 산 능선과 골짜기 몇번을 타고 가야 닿을수 있는 오지였다. 그레서 그 산에는 한번도 가지 않았다. 마을의 야산이야 숨바꼭질이나 진달래를 꺾으러 수시로 올라다녔지만 불가쟁이는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주로 마음속에만 묻어둔 산이었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깊은 산중이라 산짐승이나 들짐승이나 많을 거라고만 짐작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아이들이 아니었다. 웬만해서 먹어보지도 못하는 맛난 시사떡을 얻으러 간다는데 그까짓 거리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마을 골목에 나갔더니 아이들이 왁자지껄 모여 있었고 바지게에 시사떡을 한 짐 실은 지게 하나가 떡 버티고 있었다. 시간이 되어 지겟꾼이 앞장 서 걸어가고 그 뒤를 두루마기에 갓을 쓴 문중 어른들이 따랐다.
일렬횡대로 산길을 타는 행렬은 아름다웠다. 지게와 문중 어른들을 졸졸 따라가는 아이들의 행렬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산짐승 한 마리 정도 빠져 나갈 정도의 좁은 산길을 타고 가는 아이들의 눈동자는 오직 시사떡을 얻을 생각에 똘방거렸다.
깊은 산속이라 그런지 꽃들의 행렬이 계속되었다. 진달래들은 산길 따라 연분홍 꽃물을 퍼뜨렸고 꽃대를 쭉 뽑은 산나리꽃들은 수줍게 고개를 숙이고 하늘거렸다.
이 곳이 안씨 문중 산소인 모양이었다. 지겟군은 이곳에 지게를 세워놓고 지고 온 음식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어른들이 시사 준비를 하는 동안 아이들은 산소 주변에서 기다렸다. 상석위에는 전과 떡, 과일 등 기름진 음식들이 차려졌다. 꼴깍 침이 넘어갔다.
안 그래도 산길을 타고 오느라 허기가 져 있는데 음식을 보니 자꾸만 침이 고였다. 두루마기에 갓을 쓴 어른이 구성지게 축문을 읽어 내려갈 동안 몇 명의 아이들은 진달래를 꺾으며 지루한 시간을 달랬다. 축문이 끝나자 어른은 아이들을 불러모았다. 아이들은 한줄로 서서 집에서 가지고 온 떡 보자기를 폈다.
그러나 나눠주는 시사 음식은 누구나 똑같은 양이었다. 일부러 큰 보자기를 가져온 것도 소용없었다. 전이나 과일 한조각 더 얹어주길 바랬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었다. 음식을 받아든 보자기가 묵직했다. 오랫동안 산길을 탔는데도 음식에는 따스한 기운이 남아있었다. 그렇지만 그 자리에서 음식을 먹는 아이들은 드물었다. 산길을 타는 동안 배가 허리에 들어붙을 정도로 허기가 졌는데도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 집에 가지고 와서 가족들과 함께 나눠 먹는 재미였다.
집에 와서 보자기를 쭉 펴놓고 먹는 음식은 완전 꿀맛이었다. 시사떡 많이 얻어왔다고 툭툭 엉덩이를 두드려 주는 어머니의 손길 때문에 하루 종일 들떴다.
정말이지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날 만도 한데 그 때는 왜 그날이 기다렸는지 모를 일이다. 요즘의 아이들에게 시사 음식을 준다면 입에도 대지 않을 뿐더러 기분이 나쁘다고 되레 큰 소리를 칠지도 모른다. 눈만 돌리면 음식이 철철 넘치는 세월 때문이다. 음식이 남아돌아 쓰레기로 변하는 것을 보면서도 그 시절 그 때의 일이 생각나는 것은 웬일일까. 그러고 보면 기름지고 풍요로운 음식도 배고픈 추억을 잊게 하지는 못한다. 지나고 보면 배고픈 추억도 아름다운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