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마지막 문학기행은 <나비>의 시인 윤곤강을 만나러 충남 당진-서산-태안으로 갔습니다.
12월 4일 토요일 아침 8시, 고속토미널 8-2번 출구
온누리여행사 43인승 관광버스에 20명이 탑승하고 떠났습니다.
-윤곤강 묘소(당진군 순성면 갈산리)
-윤곤강 생가와 시비(서산시)
-바닷가 숲속산책 <솔향기 길>
-나우리 생태예술공원 방문(시낭독회)
-뒤풀이는 만대항
잊혀져가는 시인을 찾아서 윤곤강 묘소(당진군 순성면 갈산리)를 제일 먼저 찾아보고 서안시내의 시청 솔빛공원 뒤쪽으로 올라가다가 윤춘병 님의 <어머님 은혜> 시비도 만나고 서산문화원에 있는 윤곤강 시비를 찾아 보았다.
만대마을 나오리 염전을 돌아보고 솔향기 소금도 사고 만대항에서 양승호 도예가를 모시고 늦은 점심으로 우럭탕과 게찜탕을 먹었다.
하얗게 서리 내린 예수를 연상케하는 양승호 도예가, 나오리생태예술원 주인장이다.
마당에 들어서니 넓은 공간엔 손수 마을 사람들을 비롯해서 만들어낸 공예품으로 가득 전시되어 있었다.
젊은 시절 프랑스에서 도자기 표면을 자연스럽게 갈라지게 하는 트임기법을 만들어
유럽에서 대단한 인기를 얻고 귀국했다는 양승호 도예가의 가마터가 있는 학습장에서
윤곤강 시인의 시를 비롯한 시낭송회를 열었다
학습장 안으로 들어가 작품들을 감상하고 주인장이 직접 끓여내온 녹차를 마시면서 문학인들의 꽃인 시낭독과 낭송을 하면서
따뜻한 시향에 물들었다.
시인들은 각자 자작시 또는 명시를 낭독 낭송하면서 즐겁게 담소를 나누었다.
"예수님께서 술을 마시면 예술이 됩니다".란 예술가님의 우스갯소리에 미소 지으며 자작글 "나는 누구이며 무엇일까" 낭독을 들으면서 화기애애한 시간들을 보냈다.
나비/ 윤곤강(尹崑崗) 본명 : 윤명원(尹明遠)
비바람 험살궂게 거쳐 간 추녀 밑―
날개 찢어진 늙은 노랑나비가
맨드라미 대가리를 물고 가슴을 앓는다.
찢긴 나래에 맥이 풀려
그리운 꽃밭을 찾아갈 수 없는 슬픔에
물고 있는 맨드라미조차 소태 맛이다.
자랑스러울손 화려한 춤 재주도
한 옛날의 꿈조각처럼 흐리어
늙은 무녀(舞女)처럼 나비는 한숨진다.
([시문학] 3호, 1930.5)
꽃나비 _윤곤강
배나무 밑에 누워 나는 비인 생각을 엮고
임은 그 옆에서 길고 기인 실꾸리를 감았다
임의 잇속처럼 하아얀 꽃잎이 때로 그의 생각을 어지르면
나의 시름처럼 기인 눈썹이 그의 볼에 그림자를 수놓았다
채송화빛 노을이 꺼지어 흰 얼굴과 검은 눈동자만 남을 무렵
천상 그는 한 마리 고운 꽃나빌레라 꽃나빌레라
석류(石榴) _윤곤강
아가배나무 늙은 가쟁이에
누르게 익은 하눌타리는
구름처럼 손에 닿지 않고
지렁이 찍어 문 수평아리
암컷 쫓아 풍기는 곳 ─
부러져라 느러진 가지마다
붉게 고운 열매 열매…
스치면 우수수 쏟아질까
산호빛으로 삐어진 알알
먹지 않아도 이가 시리어…
푸른 잎의 푸른 빛
붉은 열매의 붉은 빛
그것을 가늠할 때 나는
먼 산 보는 버릇을 배웠노라
윤곤강(1911-1950) 약력
일제강점기 『대지』·『만가』·『동물시집』 등을 저술한 시인.
1911년 충청남도 서산 출생, 호는 곤강(崑崗) 본명은 윤붕원(尹朋遠)
1930년 일본 센슈대학[專修大學] 졸업.
귀국과 동시에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에 가담했다가
1934년 제2차 카프검거사건 때 체포되어 전주에서 옥고를 치렀다.
석방 후에는 당진으로 일시 낙향했으며, 1936년 무렵부터 활발한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1939년에는 『시학(詩學)』 동인, 징용 피해 낙향, 면서기로 근무하다가
해방 후 상경 1946년 보성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1948년 중앙대학교 및 성균관대학교 강사를 역임했다.
첫 시집 『대지(大地)』를 비롯해 『만가(輓歌)』·『동물시집(動物詩集)』·『빙화(氷華)』는 전기에,
『피리』·『살어리』는 후기에 속한다.
제3시집 『동물시집』은 나비·올빼미·원숭이·낙타 등 동물을 소재로 하고 있다.
제4시집 『빙화』에서는 대상과의 객관적인 거리를 통해 시적 결함을 극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