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의 참새】
제사해운동(除四害運動, 4가지 해로운 것을 없애는 운동)이라고 한다.
특별히 참새만을 때려잡는 걸 따로 타마작운동(打麻雀運動)이라고도 한다.
중국에 1949년 공산정부가 수립된 이후 여러 부분의 경제개발은 성공적으로 수행되었으나 인민이 먹을 식량은 획기적으로 증산되지 않았습니다.
식량증산을 북돋으려 지방을 순회하던 마오쩌뚱은 어느 날 쓰촨성의 한 마을을 순시하는데
마을 이곳 저곳을 둘러보던 마오쩌뚱은 벼이삭을 쪼고있던 참새를 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사람이 먹을 곡식을 새가 먹다니...참새는 해로운 새다" 이 한마디를 외칩니다.
(이전에 쓰촨성의 한 농부가 수확기에 참새떼를 없애달라는 진정서를 낸 적이 있었습니다)
이 한마디 말로 인해 후에 약 4000여만 명의 국민들이 굶어죽는 결과가 나타날 줄이야 물론 상상도 못했겠지요.
모택동의 이 말 이후 얼마되지 않아서 참새가 곡식에 미치는 해로운 영향에 대한 연구,조사가 실시되고
참새섬멸 총 지휘부가 만들어집니다.
1958년 쓰촨성 치옹라이현에서 시작된 참새섬멸운동의 성과는 전국으로 알려졌고 수도 북경에서도 참새섬멸운동이 시작됩니다
1958년 4월 19일 새벽 4시,
참새들이 많이 나타나는 북경지역 830여곳에 독극물을 묻힌 과자가 살포됐고 북경시민들은 빗자루,몽둥이 등을 들고 논,밭에 매복했으며
200여명의 명사수들은 작전개시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새벽 5시.참새를 박멸하자는 깃발이 올라가는 것을 신호로 300여 만명의 북경시민들은 참새를 박멸하자는 구호를 외치며 세숫대야나 꽹과리 같은 소리나는 도구들을 모두 챙겨나와 닥치는 대로 두들겨 댑니다.
사방에서 휘둘러대는 깃발과 시끄러운 소리에 앉을 곳을 찾지 못하는 참새들은 날다가 지쳐 추락하고 인적이 드문 곳에 무사히 착륙(?)한 참새들도 독이 묻은 과자를 먹고 죽어갔습니다.
밤낮으로 이렇게 참새를 들볶으니 이제 중국의 수도 북경에선 더 이상 참새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죠.
북경에서의 성공적인 작전수행 이후 참새섬멸작전은 전국에 걸쳐 수행됩니다.
상황보고를 받은 마오쩌뚱은 이제 곡식의 수확량이 대폭 증가해서 인민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죠.
중국 전체에서 약 2억 1천만 마리의 참새가 이때 죽었다는데 모두들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참새의 죽음이 먹이사슬 파괴로 이어진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었죠.
참새가 곡식도 먹지만 곡식에 해를 끼치는 해충도 잡아먹는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천적인 참새가 사라지자 해충들은 급속도로 번식해서 엄청난 곡식흉작사태가 시작되는데
참새섬멸작전이 시작된 1958년 178만명이 굶어죽은 것은 시작에 불과했고 1960년 까지 1019만 명이 굶어죽었다는데 비공식적인 것까지 합치면 대략 4000여만 명이 굶어죽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몇 년에 걸친 대기근을 마오쩌뚱이 모를리가 있겠습니까?
이를 막을 시간도 얼마든지 있었죠.
하지만 자신의 판단착오를 알면서도 참새섬멸작전을 계속 진행합니다.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면 정치적입지가 좁아질 것에 대한 두려움때문이었습니다.
어이없게도 참새섬멸작전은 계속 수행되면서 비밀리에 소련으로부터는 참새 20여만 마리를 수입하지만 이때까지도 마오쩌뚱은 자신의 과오를 절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참새섬멸작전의 여파는 1962년까지 이어졌고 그때까지 대략 5000여만 명이 굶어죽었을 것으로 추측됐습니다.
이것은 기네스북에 등재된 인류역사상 최악의 기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