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나물:족보 있는 반찬

[미션]

□음식으로 읽는 한국 생활사□73

수박나물:족보 있는 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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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가정에서 다 먹고 난 수박 껍질은 그냥 버리고 만다. 당연하다는 듯 음식물 쓰레기로 처리하고 마는데 사실은 수박 껍질도 맛있는 반찬이 될 수 있다. 빨간 과육을 먹고 난 후 남은 껍질의 하얀 속살을 썰어 고추장과 식초로 양념해서 무치면 맛있는 수박나물이 된다.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식감도 좋고, 맛도 늙은 오이로 무친 오이나물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훌륭하다. 그래서 예전에는 많은 가정에서 수박 껍질로 나물을 무쳤는데 요즘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을 뿐만 아니라 값싸고 질 좋은 채소가 많아졌기 때문에 굳이 수박 껍질로까지 나물을 무쳐 먹을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일까?

보통 수박나물은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 껍질도 버리기가 아까워 반찬으로 만들어 먹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그런 측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먹고 난 수박의 껍질로 만든 수박나물은 역사가 깊은 음식이다.

우리나라에서만 수박 껍질을 먹은 것이 아니다. 중국에서도 명나라 때부터 과육을 다 먹고 난 수박의 껍질을 활용해 요리를 했고 지금도 수박 껍질로 음식을 만든다. 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수박 껍질로 반찬을 만들었다. 특히 미국의 남부 지방에서는 오이 피클처럼 수박 껍질로 피클을 담가 먹었다.

옛날부터 동서양에서 모두 껍질을 활용해 반찬으로 만들었으니 그냥 쓰레기로 버리기에 아까워 재활용한 것이 아니라 족보가 있는 음식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수박이 전해진 것은 13세기 말이다. 허균은 《도문대작(屠門大嚼)》에다 고려 충렬왕 때 홍다구가 개성에 처음 수박을 심었다고 적었다. 고려 말에 우리나라에 들어왔으니 전래 시기도 비교적 늦은 편이고 수박이 전국적으로 보급된 것도 한참 후의 일이다. 그러니 당연히 수박 값이 지금은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비쌌는데, 조선 초기인 세종 때는 수박 한 통의 값이 쌀 다섯 말 가격과 맞먹을 정도로 귀했다. 수박이 널리 퍼진 것도 조선 후기 무렵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조상님들도 수박나물을 흔하게 드시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수박이 워낙 귀한 탓에 활용도가 낮았던 것인지, 아니면 그 당시에도 수박을 먹고 남은 껍질은 당연히 버리는 것으로 알았던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수박나물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19세기 중반 실학자인 이규경은 수박 껍질로도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수박 껍질을 썰어 항아리에 장과 함께 담그면 무김치처럼 좋은 반찬이 된다 했으니 고추장 양념에 무치는 지금의 수박나물과는 또 다른 수박장아찌 담그는 법을 소개한 것이다.

수박 껍질은 몸에도 좋다고 했다. 명나라 때 의학서인 《본초강목》에도 수박 껍질인 서과피(西瓜皮)가 약재로 실려 있는데, 수박 껍질 역시 과육과 마찬가지로 열을 식혀주고 갈증을 멎게 하며 소변을 원활하게 보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입 안이 헐었을 때 수박 껍질을 갈아서 먹으면 좋다고 했으니 수박 껍질이 부족한 비타민을 보충하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다.

《본초강목》에 약효가 있다고 나왔기 때문인지 중국에는 수박 껍질을 이용해 만드는 음식이 적지 않다. 돼지고기 또는 버섯과 수박 껍질을 섞어 볶기도 하고, 우리처럼 무쳐서 먹기도 하며 무짠지처럼 절여서도 먹는다.

특이한 것은 《본초강목》을 비롯한 여러 의학서에는 수박 껍질의 효능이 적혀 있지만 명나라와 청나라 때 문인들의 문집이나 요리책에는 수박 껍질로 만든 요리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로 미루어보건대, 수박 껍질을 이용한 요리는 서민 음식에서 출발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서양에서는 오이를 식초에 절인 오이 피클처럼 수박 껍질로도 피클을 담갔는데 미국 남부의 흑인들이 만들어 퍼트렸다. 수박 껍질 피클은 19세기 초반에 발행된 미국 최초의 요리책에도 수록돼 있다고 한다. 원문을 직접 확인하지 못했기에 ‘하더라’라고 표현했는데, 이규경이 수박 껍질 장아찌를 소개한 것이 19세기 중반이니 미국의 수박 껍질 피클이 우리의 수박 껍질 장아찌보다 이른 셈이다. 미국에서 1881년에 발행된 《남부의 옛날 요리》라는 책에도 수박 껍질 피클 만드는 법이 나온다. 이 책은 노예 출신 요리사인 피셔 부인이 구술해 만든 책으로, 흑인이 쓴 최초의 요리책이다. 미국의 수박 껍질 피클이 남부 흑인 사회에서 발달했음을 뒷받침하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먹고 남은 수박 껍질로 만든 반찬이 19세기 이전부터 전해진 음식이라는 것도 의외지만 우리는 물론이고 중국, 심지어 미국에서도 수박 껍질로 반찬을 만들어 먹었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음식#역사일반
#음식으로읽는한국생활사


글 윤덕노

[루비호박]

수박껍질 나물이. 역사가있는 음식이군요!! 우리 어릴때는 과육이 지금보다 두꺼워서 식구들 많은 집에선 많이들 해먹었지요!! 미국과 중국서도 해먹었군요!! 좋은내용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