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에 빠진 당나귀
당나귀 한 마리가
빈 우물에 빠졌습니다.
농부는
당나귀를 구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마침 당나귀도 늙었고
쓸모없는 우물에 파묻으려고 했던 터라
농부는 당나귀를 단념하고
동네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우물을 파묻기 위해
제각기 삽을 가져와서는
흙을 파서 우물을 메워갔습니다.
당나귀는 더욱 더 울부짖었습니다.
그러나 조금 지나자
웬일인지 당나귀가 잠잠해 졌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궁금해
우물 속을 들여다 보니
놀라운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당나귀는 위에서 떨어지는
흙더미를 털고
떨어지는 흙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있었습니다.
당나귀는 위에서 떨어지는
흙더미를 털고 털어
떨어지는 흙을 바닥에 떨어뜨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당나귀는
자기를 묻으려는 흙을 이용해서
결국 무사히 그 우물에서
빠져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자신을 매장하기 위해 던져진
비방과 모함과 굴욕의 흙이
오히려 자신을 살릴 수 있습니다.
남이 나를 향해 진흙을 던질 때
모두 털어 버리고
자신이 더 상장하고 좋아질 수 있는
영혼의 발판을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삶의 뒷편에는
거꾸로 된 거울 뒤 같은 세상이 있습니다.
불행이 행이 되고 행이 불행이 되는
새옹지마의 변화가 있습니다.
우물 속 같은 절망의 공간 속에서
오히려 불행을 이용해서
행운으로 비꾸는
놀라운 기회가 있습니다.
우물에 빠진 당나귀 예화처럼
결코 두려워 해서는 안될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은 입은 자로써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니 성도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성령의 인도심을 따를 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요셉을 예로 들자면
야곱은 요셉에게 심부름을 시키고 요셉은 아비말에 순종합니다.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 보내리라 요셉이 아비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창 37:13)
그러나 그 형들은 요셉을 죽이려고 구덩이에 던졌다가 다시 꺼내어 요셉을 이스마엘 사람에게 은 이십 개에 팝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
그를 잡아 구덩에 던지니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창 37:232~24)
그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 개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고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창 37:28)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 팔렸고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셔서 보디발을 요셉을 통하여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됩니다.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그를 사니라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그가 요셉에게 자기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창 39:2~5)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하셔서 복을 주시나 유혹도 함께 오는 것을 봅니다.
그 유혹을 물리쳤으나 상은 고사하고 감옥으로 가는 것은 우리의 삶 속에서도 경험하는 일로 항상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간증도 하지만 형통 뒤에는 유혹과 고난이 와서 맨탈붕괴 현상이 나타나는 것도 요셉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주인이 그 아내가 자기에게 고하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하니라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넣으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요셉은 감옥에서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몽해주고 부탁을 드립니다.
당신이 득의 하거든 나를 이 감옥에서 꺼내달라고..
그러나 술 맡은 관원장은 자신이 회복하매 요셉을 잊어버리는 것은 세상 사람들은 다 그렇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필요할 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정하고 대우하나 자신의 유익이 없다고 생각할 때는 냉정한 것은 하나님의 교육입니다.
세상은 의지할 대상이 아니고 사랑의 대상이나 하나님은 쓰시면 술 장관도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은 성도에게 오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역사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는 요셉이 술 장관에게 부탁을 했지만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사 2:22) 인생을 의지하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의 교육인 것입니다.
당신이 득의하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고하여 이 집에서 나를 건져 내소서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매 그가 잔을 바로의 손에 받들어 드렸고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않고 잊었더라(창 40:14!23)
전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였더라(창 39:10~23)
하나님은 요셉에게 인생은 의지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교육하시고 요셉은 그것이 체득화 되었을 때 하나님은 드디어 하나님이 바로를 들어 요셉을 불러들이게 되는 것을 봅니다.
이로 인해 성도는 자신이 십자가에 죽고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따르기만 하면 열매가 풍성히 열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하나님은 요셉에게 보디발의 집에서 경제학을,
감옥에서는 죄수들을 섬기는 정치학을,
술장관을 통해서 "인생은 의지할 대상이 아니라는 교육하시고, 준비해놓으신 총리 자리에 앉히셨습니다.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로 애굽 온 땅을 총리하게 하노라 하고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목에 걸고(창 41:41~42)
요셉은 하나님의 시각으로 형들을 대합니다.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은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하나님의 뜻)을 이루느니라(롬 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