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의 미학 / 백봉기
주식시장에는 천 개가 넘는 종목이 있다. 투자자들은 그중에 몇 가지를 골라서 투자를 한다. 그것을 포트폴리오라고 한다. 포트폴리오를 잘 구성한 사람은 수익을 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손실을 본다. 그래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종목에 대해서 분석을 잘하고, 확신이 서면 장기투자를 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는 과감히 버리고 다른 종목을 선택해야 한다. 손해를 봤다고, 버리기가 아깝다고, 그 종목을 계속 들고 있으면 더 큰 손실이 나는 경우가 많다.
지금부터 15년 전의 이야기다. 내가 제작하는 프로그램에 1주일에 한 번씩 출연하는 증권사 차장이 있었다. 알고 보니 고등학교 후배였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려면 주식시장을 알아야 합니다. 특히 방송하시는 분들은 필수입니다. 여윳돈이 있으면 저한테 맡기십시오. 용돈은 챙겨드리겠습니다.”
후배의 말에 직원들 몇 명과 같이 주식에 투자를 했었다. 내가 맡긴 돈은 2천만 원, 얼마 뒤에 나는 강원도로 발령이 났고, 주식에 대해서는 거의 잊고 있었다. 반년쯤 지나서였을까?
증권사 후배한테서 전화가 왔다. 힘이 없고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선배님, 죄송합니다. 우리가 투자한 회사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주가조작이 포착돼 사장이 구속되고, 주가는 곤두박질을 쳤습니다. 제가 모두 회복시켜 놓겠습니다.“ 라며 엉엉 우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서울에 있는 증권사 선배의 말만 믿고 있다가 주가조작꾼들에게 넘어간 꼴이 됐다는 것이다. 소문이 났을 때 빨리 버렸어야 했는데, 결국 버리지 못한 것이 이렇게 됐다며 죄송해 했다. 속이 쓰리긴 했지만 이미 내 것이 아닌 것에 집착하다보면 사람까지 잃을 것 같아
“괜찮네, 다 나를 위해서 한 일인데 자네 탓이 아니지 않나?”
나는 오히려 그 후배를 위로해 주었다.
우리 주변에는 버려야할 것을 버리지 못하고 붙들고 있다가 손해를 보거나 애물단지로 남겨진 것들이 많다.
“설마 괜찮겠지!”
하면서 계속 사용하다 낭패를 본 일도 있다. 어떤 지인은 바꿔야할 타이어를 조금 더 탄다고 고집부리다가 큰 사고를 냈다는 말을 들었다. 오히려 버림으로써 얻는 지혜가 필요하다.
요즘 일본 도요타자동차가 리콜문제로 망신을 당하고 있다. 도요타는 170여 개 나라에 세계적인 유통망을 가지고 있으며, 2008년에는 미국의 GM사를 제치고 세계 자동차업계에서 1위를 차지했던 회사다. 그런데 도요타의 영광이 땅에 떨어지고, 사장은 눈물로 사죄하고 다닌다. 특히 리콜을 숨겼던 사실이 뒤늦게 보도되면서 도덕성까지 문제가 되고 있다. 솔직하게 결함을 인정하고 빨리 리콜을 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것도 알고 보면 회사의 자존심을 버리지 못해서 생긴 일이다.
방송국에는 편집을 하는 사람들이 따로 있다. 현장에서 직접 촬영한 사람이 편집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지만, 더 좋은 작품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편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직접 찍어온 사람은 그림이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고 끼워 넣기를 하다가 결국 좋은 작품을 망친다는 것이다. 그래서 편집은 객관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결혼할 나이가 차면 남녀 청춘들은 배필을 찾는다. 선도 보고, 데이트도 하고, 어떤 사람은 동시에 몇 명을 사귀기도 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쿨(Cool)한 것을 좋아해서, 몇 년을 사귀다가도 마음에 안 들면 헤어지고, 약혼을 한 사람도 문제가 발견되면 과감히 파혼을 한다. 최근에는 계약결혼이라는 것이 있어서 1~2년을 살아보고, 좋으면 결혼을 하고 마음에 안 들면 미련 없이 이별을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현명한 방법인지도 모른다. 평생을 후회하면서 사는 것보다는 일찍 알곡과 쭉정이를 가리는 것이 나을 것이다. 버림으로써 또 다른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도자기를 만드는 도공들은 마지막 단계에서 혼신을 다해 만든 도자기를 과감히 깨트려 버린다. 수개월동안 고민하면서 그린 역작을 찢어버리는 화가도 있다. 만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명품을 만들기 위해서다. 누가 봐도 인정하는 명품을 만들려고 찢고, 깨트리는 아픔을 참고 견디는 것이다. 버림으로써 최고의 명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도 그러지 않을까?
버려야할 것들이 있다. 쓸데없는 자존심, 독선과 아집, 끝없는 욕심과 허영심, 하물며 가족과 약속한 담배와 술을 끊지 못하고 고민하는 사람도 있다. 명품인생은 타고 나는 것이 아니다.
흙이 찬란한 도자기로 환생되기 위해서는 잡티를 고르고, 이물질을 빼내고, 천도가 넘는 열을 이겨내야 하듯, 자신의 허물과 결점을 버리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야 아름답고 고운, 청자와 같이 자태 나는 인생으로 다시 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