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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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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작품 1 | 하얀 숲 |
대표 작품 2 | |
수상연도 | 2006년 |
수상횟수 | 제25회 |
출생지 | |
[수상 작품]
하얀 숲 / 김진수
운전면허증을 재교부 받던 날이다. 다음 면허증 갱신날짜를 보니 2015년으로 되어 있다. 기록된 대로라면 앞으로 7년간은 든든한 내 발이 되어 줄 것이다. 새삼 운전면허증이 고맙고 소중하게 여겨진다.
이거 지니고 계시면 든든하신가 보죠?
운전면허증을 내주면서 담당경찰관이 하던 말이다. 나도 실없는 한 마디를 흘렸다.
든든하다마다요. 전 번에 갱신하고 나서 10만 킬로 뛰었는걸요. 앞으로 이 '증'을 가지고 한라에서 백두까지 백령도에서 독도까지 달려볼 요량이랍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앳된 경찰관은 자리에서 발딱 일어나 "선생님 존경합니다"하면서 힘찬 목소리로 경례를 붙인다. 할머니란 호칭 대신에 선생님이라 불러주고, 깍듯하게 거수경례까지 붙이니까 갑자기 붕 뜬 기분이었다. 내 손도 무의식적으로 눈썹꼬리에 올라가 있었다.
경찰서 민원실 밖에 나오니 하늘도 맑다. 맑은 하늘에 하얀 구름이 군데군데 숲을 이루었다. 30년 무사고를 자축하면서 랄랄랄라 랄랄랄라 발걸음도 가볍게 시장으로 향하였다. 나이와 관계치 않고 일하는 보람을 누리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이 '증' 덕분이지. 이거 지니고 계시면 든든하신가 보죠 하던 경찰관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지.
육거리 시장은 언제 가 보아도 분주하다. 특히 장날이나 대목인 때에는 분주하다 못해 흥성스럽기까지 한다. 그곳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나도 괜히 들떠서 흥얼거린다. 버스정류장 보도에서부터 시장 골목까지 내 집 마당처럼 깔고 앉아 있는 노점상들은 모두가 할머니들로 '하얀 숲'을 이루고 있다. 머리는 하얗고 피부는 빨래판 같이 주름투성이지만 사시사철 보도를 장악하고 있는 한 할머니들에겐 그곳이 곧 낙원이다.
버스주차장은 실로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시골버스가 저만치서 달려오면 우루루 몰려드는 건 중간상인들이다. 마치 참새가 방앗간을 만난 형국이다. 그들은 이고 진 아낙들의 짐보따리를 낚아채듯 받아 내린다. 흥정은 그 다음이다.
"아저씨 내 보따리 어디 있어유우-"
자신의 짐보따리를 누가 채어갔는지도 모른 채, 버스가 떠난 다음에야 자기 보따리 찾느라 부산하다. 중간상인들에게 좀 싸게 팔아도 빨리 파는 게 장땡이라는 시골 아낙들.
그날 나는 중간상인으로부터 겨울 저장용 농산물을 샀다. 양파 20킬로 두 자루. 감자 20킬로 두 상자. 당근 4킬로 한 상자. 단양 육쪽 마늘 열 접을 골랐다. 40대로 보이는 사내는 내가 물건을 챙기는 대로 덥석덥석 리어카에 실으면서 이거 어떻게 가져 갈 거냐고 묻는다. 그러면서 여기는 노점상이니 배달은 않는다는 것이다. 길 건너가면 내 구루마가 있으니 거기 까지만 끌어다 달라 하니 그래도 걱정되었던지 이 많은 짐 만만찮은데요, 하면서 그 장저도 힘겹게 리어카를 끌고 내 뒤를 따랐다. 길가에 세워둔 차 트렁크에 키를 꽂자 "할머니가 운전하세요" 하더니만 차렷 자세로 정중히 고개를 숙인다. "단양마늘 열 접이요" 하면서 신바람을 일으키던 그의 등 뒤에 대고 나도 '열심히 사는 모습 참 아름다워요' 하고 유리창 밖으로 한 마디 던지고는 '부웅' 엑셀레이터를 밟았다.
얼마 전 속도위반 딱지 두 장이 날아왔다. 찬찬히 살펴보니 같은 날 같은 길 왕복 주행에서 뗀 딱지였다. 가족들은 번번이 서행하라는 당부를 하였지만, 나는 가끔 가족들의 당부를 이처럼 이행치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영동 금강 상류에 위치한 심천 전원마을로 가는 길. 그 길만 들어서면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호수같이 잔잔한 물결 위로 물새들 날고, 길 이쪽엔 참꽃이 사태지고 강 저쪽엔 수양버들 휘늘어진 강변도로를 달리노라면 내 일상의 먼지가 깨끗이 날아가는 기분이다. 그렇게 기분 좋은 날. 어디서 나타났는지 경찰차가 내 차를 갓길로 유도한다. "왜 그러시나요" 창문을 열고 물어보았다니, "몰라서 묻습니까 하고 정색을 하며 성큼성큼 다가온다. 사태가 이쯤 되면 머리 숙이고 말없이 처분만 기다릴 수밖에. 핸들에 머리를 대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참을 있었다. "면허증 내세요" 하는 그 목소리가 좀 전과는 현저하게 눅진해졌다. 나는 피아노 건반을 치듯 덜덜 떨리는 손으로 운전면허증을 찾아 그에게 내보였다. 그는 다시 내 얼굴과 먼허증을 요모조모 살펴보더니만 "여기는 규정 속도가 육십킬로인 지점입니다. 할머니 연세대로 달리시지 말고 10킬로 줄이세요" 하더니 거수경례를 하고 되돌아갔다.
요즘 들어 남편의 머리가 하얘졌다. 검은 머리카락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불이 꺼졌을 때 희끗 눈 앞에 나타나는 남편의 머리모습은 마치 저 언덕 위 하얀 숲길같이 보인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해로하란 말을 엊그제 들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나의 머리에도 하얀 눈이 내렸다. 이제는 좀 천천히 달려야겠다. 나이대로 달리지 말자. 생이 이슥토록 달려왔으면 됐지 뭘 더 바라 죽을 둥 말 둥 달리겠는가. 쉬엄쉬엄 달리다 보면 푸른 강물도 만날 것이고 노을진 산마루도 만날 것이고 하얗게 언덕을 넘는 억새꽃도 만날 텐데.
[작가 프로필]
중등교사 역임. 「창조문학」 신인상
한국창조문학가협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클럽한국본부 회원. 한국수필가협회 운영위원
충북여성문인협회 회장
창조문학대상, 충북수필문학상, 청주문학상 수상
저서: 수필집 『숨은 나』, 『하얀 숲』
[작품 심사평]
수필의 존재가치를 입증한 글들
김진수의 작품들을 대하면 이 세상에 수필문학이라는 것이 생겨나길 잘했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많은 수필가들이 각기 나름대로의 작품솜씨들을 보여주고 있는 가운데 김진수의 작품을 읽으면서는 수필문장의 형식이 이분을 위해서 생긴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에 이르게 된다. 우선, 수필은 문학의 어느 장르보다도 나이가 지긋하게 든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인 문학형식이라고 흔히들 말해오고 있는데 그것이 이 작가에게도 적합하게 해당이 되는 것으로서 이작가가 나이 들어 수필문학에 입문했다는 계기만이 아니고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웬만큼 터득하고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조율한 의견들을 글을 통해 반영시키고 있는 것에 대면할 수 있는 탓에서다. 충분한 경험을 통하지 않고서는 펼쳐놓을 수 없는 언변이 토해지고 있는 것이다. 풍부한 견문과 폭넓은 체험이 뒷받침되고 있는 인생론이 아주 자연스럽게 개진되고 있는 묘미도 그러려니와 그런 활달한 견해들을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유창한 문장력이 따라주고 있는데서 오는 것 같다.
이 작가의 글들은 우선 꾸밈없이 전개시켜가는 자연스런 화술에서 읽는 이들을 사로잡아 이끌어가는 것이 특징이다. 거기에 연륜에 걸맞는 안목의 배열이 여유로운 인생관 내지 세계관으로 이어지고 있다. 흔히, 말해오기를 어릴 때는 어린애다워야 하고 청년시절에는 청년다워야 하며 중년에는 중년, 장년과 노년에는 각기 또 거기 걸맞는 연대다워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수필문학이야말로 지긋한 연륜다운 품계의 솜씨를 담아내야 하는 것이어서 거기 해당되는 작품이 바로 이 작가 김진수에게 돌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의 활달하고 적극적인 한 면을 닮은 문장의 활기차고 유창한 면모와 함께 세상살이를 공짜로 살아오지 않은 풍요로운 경험이 내포된 달관의 경지가 이제 자연속의 인생이라는 대목에 영글어진 것이다.
능력이 못 미쳐 단념하는 것이 아니고 원래 자연 삼라만상의 섭리가 인간이건, 모든 사물이건, 자연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것이기에 삶을 바둥댄다고 해서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며 죽음을 무시하려 한다 해서 넘어서게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익히게 되었을 때 차라리 무덤을 차려놓고 그 속에 안주하려는 집착보다는 깨끗이 재로 돌아가 강물에도 무덤가 잔디위에도 수목들의 뿌리 곁에도 섞여드는 일이 편한 자연속으로의 회기가 될 것이라는 그의 결의는 큰 귀결의 행위라 하겠으며 친구가 자동차 사고로 머리를 다쳐 정상이 아닌 상태로 살아가게 되었을 때 부군 되는 분이 모든 주변 일들을 정리하고 시골 자연속으로 귀의해 갔다는 작품<이름표>는 어느 소설보다 명편에 해당하는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심사위원장: 김양수
심사위원: 황금찬 이철호 구인환 유한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