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가만 쥐어 손가락 사이로 녹여 보낸다. 한 움큼의 눈 가만 쥐어 또 한 번 손가락 사이로 흘려 보낸다. 보면 반짝이고 쥐면 사라지어 다가가고 싶어도 다가가지 못하게 하는 가시 서린 고슴도치. 신발 벗어 눈 속에 밀어넣고 텅 빈 곳에서 춤을 춥니다.
아무도 밟지 않아 자국 없는 곳을 춤춘다. 마음을 스스로 가만 짓밟아 누른다. 내리는 하이얀 눈 사이에서 들리는 바이올린 소리. 그것이 귀를 간지럽히는 것을 가만 느끼며 제자리를 한 바퀴 돈다. 이 다음 동작은 어땠더라, 기억이 날듯 말듯한데... 잠깐 동안 한 그 생각을 다시 지워버린다. 인적 드문 곳에서 남 시선 신경쓸 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아닌지라. 귀에서 피아노 건반 눌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두 번째 스텝을 밟는다.
두 발짝, 한바퀴. 다섯 발짝 더 걷고는 몸을 뒤로 젖혀 허공 아닌 허공을 기댄다. 볼 수 없는 이가 잡아주면 존재할 수 없는 눈을 마주한다. 일어나서 반바퀴, 등을 기대고 손을 잡는다. 잔잔하고 또 평화로운 무도회 이야기. 긴 바지가 풍성한 드레스 되어 돌 때마다 천이 넓게 펴진다.
저 먼 어딘가에선 가면 쓴 사내와 노래 부른 여인 있겠지. 나는 몸 없고 목 없는 이와 춤을 즐긴다. 매고 있던 목도리가 저 먼 나뭇가지에 닿아 걸리면 오늘은 여기까지, 라는 뜻. 정중히 목례하고 고개 들면 애초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다시 사라지게 된다.
눈 밭에 남겨져 있는 발자국은 없다. 그렇게 많은 걸음 걸었음에도. 그걸 확인하고 나서는 물 가득한 발 장화에 넣고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 얼음 가만 쥐어 손가락 사이로 녹여 보내 오늘의 작별 고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