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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츠의 왕(The Waltz King)
요한 슈트라우스2세
1825년 지금의 오스트리아 비엔나 근교에서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1세와 형제 모두 음악에 조예가 깊은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다
다른 직업을 가지라는 아버지 슈트라우스1세의 엄격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숨다시피하면서 음악을 계속 한다 19세에는 그의 악단을 조직하여 공연도 가진다
4년후 1848년 프랑스 왕국에서 일어난 2월혁명은 오스트리아 제국 비엔나까지 영향을 주어 반왕정 시위가 일어난다
이미 음악적인 라이벌이 된 아버지 슈트라우스1세는 친왕정파로 그 유명한 '라데츠키 행진곡'을 작곡하여 오스트리아의 전쟁영웅 라데츠키 장군에게 헌정한다
아들 슈트라우스2세는 아버지와 반대로 공화주의자로서 반왕정운동에 가담한다 (그러나 혁명 분위기가 가라앉은 수십년 후 그 역시 '프란츠황제 행진곡'을 헌정한다)
점점 팬들이 늘어나고 주변 여러 나라로 연주 여행을 다니면서 왕성한 작곡 활동도 한다
31세 때는 러시아 철도회사의 초청으로 10년 동안 매년 러시아 상테부르크에서 연주회를 가진다
37세에 결혼을 하나 부인과 사별하고 그 후 2번의 결혼을 더 한다
38세에는 오랫동안 염원하던 오스트리아 제국의 궁중무도 음악감독을 맡으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다
41세 때인 1866년 오스트리아-프로이센 전쟁에서 오스트리아 제국이 패배한다
실의에 빠진 비엔나 시민을 위하여 '황제(카이저) 월츠 Kaiser Walzer'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The Blue Danube' '빈의 숲 이야기 Tales from the Vienna Woods' 등의 밝고 씩씩한 월츠곡들을 잇달아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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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오스트리아-프로이센 전쟁을 살펴보자
1806년 신성로마제국(=독일)은 프랑스의 나폴레옹1세 황제에게 패배하면서 여러 작은 조각으로 해체된다 신성로마제국의 종말이다
그 후 60년이 지난 1866년 그동안 분열되어 있던 독일 지역의 작은 왕국들에 대한 지배권을 두고 계속 대립하던 오스트리아 제국과 프로이센 왕국은 결국 전쟁을 벌인다
유럽 대부분 왕실을 다스리는 합스부르크 왕조의 오스트리아 제국은 전통적으로 군사력의 규모가 월등하다 그러나
잉글랜드의 산업혁명을 먼저 받아들인 신흥 강국 프로이센 왕국은 비스마르크 재상의 노련한 외교력과 함께 병사와 물자를 보급하는 병참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고 철도를 이용한 신속한 수송 그리고 성능이 뛰어난 신형 소총을 앞세워 압도적으로 승리한다
연이어 불과 4년후 1870년 프랑스 왕국과의 전쟁(보불전쟁=Franco-Prussian War) 에서도 파죽지세로 이기면서 1871년 점령지인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통일독일제국을 선언한다 독일의 영광이자 프랑스의 치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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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요한 슈트라우스2세로 돌아가자
쟁쟁한 실력자들이 많은 파리 비엔나에서 가장 인기있는 월츠 음악가로 활약한다
미국 보스톤에서 열린 보스톤 음악축제에도 초청받아 참여하고 미국 순회공연도 가진다
바그너 리카르도-슈트라우스 등 특히 브람스와 깊은 친교를 나누면서 노년까지 지휘 작곡 등 활발한 음악 활동을 계속한다
1899년 74세에 폐렴이 악화되어 수많은 팬들의 애도와 함께 비엔나에서 별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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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와 함께 오스트리아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음악가인 요한 슈트라우스2세는
생전에 월츠 음악 168곡을 포함하여 500곡 이상의 월츠 폴카 오페레타 등을 발표하여 월츠라는 춤을 대중화시킨 공로자이다
그의 이름을 빌린 연주악단도 많이 생기고 영화나 애니메이션으로도 자주 소개된다
매년 1월1일에 공연되는 비엔나신년음악회 New Year's Concert in Vienna 는 애초에 슈트라우스2세의 월츠 음악만 연주하다가 이제는 슈트라우스 가족 모두의 경쾌한 음악들을 필수 레퍼토리로 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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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프랑스 파리에서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보다 10년 늦게 또다른 위대한 음악가 카미유 생상 Charles-Camille Saint -Saëns 이 태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