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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열기: 아이스브레이크 & 간단한 퀴즈]
오성경 부장:은혜 씨, 한 주 동안 건강하게 잘 지내셨어요? 오늘 만나서 정말 반갑습니다! 시작하기 전에 재미있는 짧은 퀴즈 하나 풀어볼까요?
이은혜:네, 부장님! 반갑습니다. 퀴즈 좋아요!
오성경 부장:기차는 '기관차'와 '객차'가 연결되어 달리잖아요? 만약 기차를 움직이려면 기관차가 앞에 와서 끌어야 할까요, 아니면 승객이 탄 객차가 앞에서 끌어야 할까요?
이은혜:당연히 동력이 있는 기관차가 앞에서 끌고 가야 객차가 따라가죠!
오성경 부장:맞아요! 우리 신앙에서도 ‘은혜’가 바로 기차를 끌고 가는 기관차이고, ‘율법 순종의 삶’은 그 은혜를 따라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객차와 같아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객차로 기관차를 밀어보려는 것처럼, 내 행위와 노력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거나 반대로 은혜만 강조하며 율법을 무시하는 혼란에 빠지곤 해요. 오늘 우리가 배울 주제가 바로 ‘율법과 은혜’예요. 둘 사이의 관계를 성경을 통해 명쾌하게 풀어보겠습니다!
이은혜:율법과 은혜가 늘 어렵게 느껴졌는데, 오늘 확실하게 배우고 싶어요!
[말씀 나누기: 성경 본문 탐구]
오성경 부장:먼저 율법과 은혜가 각각 무엇을 말하는지 살펴볼까요?
외관상 율법과 은혜는 서로 적대적인 긴장관계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율법은 구원의 조건으로 순종을 요구하고(롬 10:5), 은혜는 행함이 아닌 거저 주시는 선물로 구원을 제공합니다(엡 2:8-9). 율법은 죄인을 정죄하고(갈 3:10), 은혜는 불경건한 자들을 의롭다고 합니다(롬 4:5). 그러나 신구약 성경은 율법에 조화되지 않는 은혜를 말하지 않습니다. 율법과 은혜 둘 다 하나님 안에 뿌리를 두며 하나님은 자기 모순적인 것을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이은혜:겉으로는 반대처럼 보이지만 둘 다 하나님에게서 나온 조화로운 진리군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근본 목적은 무엇인가요?
오성경 부장:로마서 3장 20절과 갈라디아서 3장 24절을 찾아 읽어주시겠어요?
이은혜:네,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갈 3:24)
오성경 부장:하나님은 율법을 구원 얻는 수단으로 주시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상은 왜곡된 사상입니다(롬 9:30-33). 율법은 거울처럼 우리 얼굴의 더러운 죄를 비추어 깨닫게 하고, 우리를 참된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몽학선생) 역할을 합니다.
이은혜:그렇다면 죄인 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유일한 길은 무엇인가요?
오성경 부장:로마서 3장 28절에 명확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 3:28)
본성적으로 우리는 자아 중심적이기 때문에 율법을 순종함으로 구원받는다는 율법주의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인간 자신의 선한 행실로 자신을 구원해야 한다는 사상이 이교 사상의 중심입니다. 율법주의란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모든 시도와 사상이며, 자신의 선행, 공덕, 의를 쌓아서 신의 인정을 받고 구원을 얻으려는 이교 사상에 불과합니다.
이은혜: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율법 아래' 있었나요, 아니면 '은혜 아래' 있었나요?
오성경 부장:창세기 2장 16절, 17절 말씀을 읽어볼까요?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6-17)
하나님은 그들을 완전하게 죄 없는 본성으로 율법 아래 창조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이 명령에 불순종하였을 때 그들은 사망의 정죄 아래로 들어갔고 생명을 상실했습니다.
이은혜:그렇다면 오늘날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율법 아래' 있나요, '은혜 아래' 있나요?
오성경 부장:로마서 6장 14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롬 6:14)
'율법 아래'라는 말의 의미는 율법의 지배를 받는 것을 의미하며, 하나님 앞에 서려면 하나님의 뜻의 표현이며 계시인 율법을 올바르게 지켜야 한다는 뜻입니다.
반면 '율법 아래 있지 않다'는 말의 의미는
율법을 순종함으로 의를 이루려는 모든 시도와 정신 아래 있지 않다는 것이며,
율법의 정죄와 저주 아래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이은혜:인간이 스스로 율법을 다 지키지 못하면 어떻게 되나요?
오성경 부장:갈라디아서 3장 10절을 보면 엄숙한 말씀이 나옵니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0)
율법 아래 있다는 것은 율법의 저주 또는 정죄 아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본성적으로 진노의 자식"(엡 2:3)이며 멸망당할 존재로 태어났습니다. 여기서 '율법 행위에 속한 사람'이란 율법을 지킴으로 스스로 의를 이루고 구원을 얻으려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은혜:율법의 정죄 아래 있는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다는 뜻이군요?
오성경 부장:맞습니다. 로마서 3장 20절 상단 말씀처럼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3장 6절에서 자신이 과거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였다고 자부했지만, 그것은 외형적 껍데기일 뿐이었습니다. 인간은 율법의 정죄 아래 있을 뿐 아니라 율법의 요구를 다 충족시킬 수도 없는 존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장 17절에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는데, 율법을 완전하게 하신다는 의미는 단순한 문자적 준수에서 율법의 내면적이고 거룩한 사랑의 의미를 온전히 드러내셨다는 뜻입니다.
이은혜: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율법 아래에서 멸망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무엇을 행하셨나요?
오성경 부장:갈라디아서 4장 4절, 5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 4:4-5)
예수님이 율법 아래에 나셨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율법의 완전한 순종을 요구받으셨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8장 46절에서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고 당당히 선언하셨듯, 참사람으로서 율법의 모든 요구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시키셨습니다. 그 결과 그리스도는 우리를 ‘율법 아래’로부터 속량하셔서 ‘은혜 아래’ 두셨고, 믿음으로 예수를 받아들이는 자들은 모두 은혜 아래 있게 되었습니다.
이은혜:그 은혜를 통해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오성경 부장:에베소서 2장 8절의 유명한 약속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은혜'란 그것을 누릴 만한 자격이나 가치가 없는 사람에게 값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호의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위하여 독생자를 주시어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본성입니다.
은혜: 하나님 편에서 거저 베푸시는 호의
믿음: 그 하나님의 호의를 감격으로 받아들이는 우리의 손
이은혜:로마서 10장 4절에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고 하셨는데, '율법의 마침'은 무슨 뜻인가요?
오성경 부장:율법의 마침은 율법을 없애버렸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율법의 모든 요구 조건을 온전히 성취하셨다는 뜻입니다. 은혜 아래에서는 더 이상 우리가 자신의 행함(율법을 행함)에 근거해서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삶과 죽으심과 부활로 그리스도가 이미 성취하신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그 근거에 의하여 우리가 이룬 것으로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대속자로서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가 우리를 의롭게 합니다.
이은혜:우리가 어떻게 율법 아래에서 은혜 아래로 옮겨지게 되었나요?
오성경 부장: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신앙고백을 보시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그리스도를 믿고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하나 된 자들은 더 이상 율법 아래에 있지 않고 은혜 아래에 있습니다. 십자가에서의 그리스도의 죽음은 한 사람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연대적인 죽음입니다(고후 5:14).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우리 자신을 이 죽음과 동일시할 때, 우리는 죄와 율법의 지배에 대해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 살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일 때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은 것이며, 율법의 정죄와 죄에 대해서 죽은 것이고, 율법을 지켜서 스스로 구원을 얻으려는 모든 헛된 시도와 노력에 대해서 죽는 것입니다.
이은혜:침례(세례)의 영적인 의미도 바로 이것과 연결되겠네요!
오성경 부장:그렇습니다! 로마서 6장 3절부터 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롬 6:3-7)
침례는 내가 예수님과 함께 옛 자아와 죄에 대해 완전히 죽었고,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음을 외형적으로 고백하고 나타내는 거룩한 예식입니다.
이은혜:골로새서 3장 3절에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고 하셨는데, '은혜 아래 있다'는 신학적 의미가 참 깊군요!
오성경 부장:요한복음 1장 17절에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하였고, 고린도전서 1장 30절은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라고 선언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은혜와 진리가 제공되었기에 우리는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이은혜:그렇다면 은혜 아래 있는 성도는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요?
오성경 부장:로마서 6장 15절, 16절과 갈라디아서 5장 13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 6:15-16)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갈 5:13)
성도는 ‘순종하여 구원을 얻으려고 했던 율법주의 삶’을 버리고, ‘이미 값없이 구원받았기에 감사함으로 순종하는 은혜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은혜:은혜 아래 사는 성도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근본 동기는 무엇인가요?
오성경 부장:요한복음 14장 15절과 요한일서 5장 3절 말씀이 그 해답입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 5:3)
은혜 아래 산다는 것은 보상을 받기 위해 율법을 준수하는 것도, 형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억지로 순종하는 것도 아닙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달았기 때문에 즐겁게 주님과 이웃을 섬기는 것입니다. 율법은 구원의 수단이 아니라, 구원받은 그리스도인 생활의 거룩한 표준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이은혜:은혜 아래 사는 그리스도인이 죄를 철저히 미워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오성경 부장:히브리서 6장 4절부터 6절을 보면 가슴 아픈 말씀이 나옵니다.
“4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히 6:4-6)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천국에 가지 못할까 봐 두려워서가 아니라, 우리의 죄가 나를 위해 목숨 버리신 그리스도께 큰 수치를 돌리고 사탄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기 때문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죄를 미워해야 합니다.
이은혜:그렇다면 율법 아래 있는 사람의 회개와 은혜 아래 있는 성도의 회개는 어떻게 다른가요?
오성경 부장:고린도후서 7장 10절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자의 회개 (죄의 결과를 슬퍼함): 에서, 가룟 유다, 사울 왕, 바로처럼 범죄했을 때 율법의 규칙을 어겨 받게 될 형벌과 손해가 두려워 회개합니다. 마치 과속하다 경찰관에게 걸렸을 때 벌금과 벌점이 두려워 미안하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은혜 아래 있는 자의 회개 (죄 자체를 슬퍼함): 다윗과 베드로처럼 범죄했을 때 단순한 법 조항 위반을 넘어 사랑하는 주님의 마음에 인격적으로 큰 상처를 드렸다는 아픔 때문에 눈물로 회개합니다. 마치 배우자에게 짜증을 낸 후 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기에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은혜:은혜 아래 있는 사람도 방심하고 타락하면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나요?
오성경 부장:네, 사도 바울조차 고린도전서 9장 27절에서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라고 경계했습니다. 마태복음 10장 22절도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두 가지 큰 위험이 있습니다.
핍박과 환난 (돌밭):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마 13:20-21; 딤후 3:12).
세상의 유혹과 염려 (가시떨기):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마 13:22). 요한일서 2장 15절, 16절 말씀처럼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등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세상의 가치관을 사랑하다가 데마처럼 주님을 떠날 수 있습니다(딤후 4:10).
이은혜:그렇다면 우리가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최종 구원에 이르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오성경 부장:히브리서 10장 38절, 39절의 약속을 굳게 붙잡는 것입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 10:38-39)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믿음의 전진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결심 확인하기: 믿음의 응답]
오성경 부장:은혜 씨, 오늘 나눈 성경 진리를 마음에 온전히 받아들이신다면, 아래의 고백들에 마음으로 체크(V)하며 함께 결심해 볼까요?
[V] a.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죄를 깨달아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도록 하기 위함이다.
[V] b. 죄인 된 인간이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믿음을 통하여서이다.
[V] c. 모든 그리스도인은 은혜 아래 있다.
[V] d. 인간이 율법을 지키지 않을 때에 저주 아래 있게 된다.
[V] e. 율법 아래 있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율법 아래 나셨다.
[V] f. 그리스도를 믿고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하나 된 자들은 은혜 아래에 있다.
[V] g. 은혜 아래 있다는 말의 신학적 의미는 그리스도 안에서 죄에 대하여 죽었고 우리의 삶은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V] h. 은혜 아래 사는 자들이 율법을 준수하는 동기는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다.
[V] i. 은혜 아래 사는 그리스도인은 죄를 짓는 것이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기 때문에 죄를 미워한다.
[V] j.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은 범죄했을 때 율법이나 도덕률의 규칙을 어겼다고 인식하고 형벌을 두려워한다.
[V] k. 은혜 아래 있는 자들은 범죄했을 때 그리스도에 대해 인격적으로 죄를 짓는 것으로 이해하고 아파한다.
[V] l. 은혜 아래 있는 자들도 방심하면 타락하여 구원을 상실할 수 있다.
[V] m. 그리스도인들을 넘어지게 하는 요소는 핍박과 세상적인 유혹이다.
[V] n.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최종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은 끝까지 주님을 붙드는 믿음이다.
[감동 예화 및 결심과 기도]
이은혜:부장님, 오늘 말씀을 배우면서 율법과 은혜가 어떻게 이렇게 아름답게 하나로 만나는지 마음 깊이 감동이 밀려와요.
오성경 부장:그래요, 은혜 씨. 마지막으로 은혜와 율법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감동적인 실화 하나를 들려드릴게요.
미국의 남북전쟁 직전, 남부의 한 노예 시장에서 아름다운 흑인 소녀가 경매에 부쳐졌습니다. 거칠고 험상궂은 노예 상인들이 음흉한 눈빛으로 값을 부르기 시작했고, 소녀는 공포와 절망 속에서 온몸을 떨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인자한 신사가 나타나 상인들이 감히 부를 수 없는 엄청난 거액을 제시하여 소녀를 샀습니다. 소녀는 '이제 내 인생은 끝났구나' 생각하며 절망했습니다.
그런데 경매가 끝난 후, 그 신사는 소녀에게 자유 신분 증서를 건네며 다정하게 말했습니다.
"아가야, 내가 너를 산 것은 내 종으로 부리려는 것이 아니라, 너를 자유롭게 놓아주기 위해서란다. 이제 너는 자유의 몸이니 네가 가고 싶은 곳 어디든지 가렴."
소녀는 충격과 감격 속에서 멍하니 서 있다가, 뒤돌아서 걸어가는 신사의 뒤로 달려가 그의 발앞에 엎드려 울며 말했습니다.
"주인님, 저를 사서 자유를 주신 주인님... 저는 평생 주인님 곁을 떠나지 않고 주인님만을 기쁨으로 섬기겠습니다!"
이 소녀는 노예 법률의 공포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값주고 사서 해방시켜 준 주인의 '값없는 은혜와 사랑'에 감격하여 스스로 영원한 사랑의 종이 되기를 선택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피로 율법의 무서운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자유를 주셨을 때, 구원받은 성도의 마음도 이와 같습니다. "나를 살리신 주님, 이제 주님의 뜻에 기쁨으로 순종하며 평생 주님만을 사랑하겠습니다!"
은혜 씨, 십자가의 은혜에 늘 감사하며 사랑으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겠어요?
이은혜:네! 아멘! 저를 살려주신 주님의 은혜를 늘 기억하며, 기쁨과 사랑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오성경 부장:참으로 아름다운 고백입니다. 함께 기도드리겠습니다.
[마무리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늘 아버지, 오늘 소중한 은혜 씨와 함께 율법과 은혜의 참된 복음을 나눌 수 있게 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스스로의 행위로는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는 죄인 된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율법 아래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온전한 의를 이루어 값없는 구원을 선물로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이제 율법의 무서운 정죄 아래 있지 않고 거룩한 은혜 아래 있음을 날마다 확신하게 하옵소서. 형벌의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생명을 버리신 주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기쁨으로 주의 계명을 순종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세상의 어떤 핍박과 달콤한 유혹 속에서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푯대 되신 예수님만을 굳게 붙잡아 마침내 영원한 구원에 이르는 은혜 씨와 우리 모두가 되게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죄에서 속량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핵심 요약 정리]
율법과 은혜의 조화: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여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거울이자 초등교사이며, 은혜는 자격 없는 죄인에게 믿음을 통해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입니다(롬 3:20, 갈 3:24, 엡 2:8).
율법 아래와 은혜 아래의 차이: '율법 아래'는 율법의 정죄와 저주 아래서 스스로 구원을 이루려는 율법주의 상태이며, '은혜 아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으로 죄의 지배에서 벗어나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은 상태입니다(롬 6:14, 갈 4:4-5).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 (성취):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신 것이 아니라 율법의 모든 요구를 완전한 순종과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다 이루셨으며, 그분을 믿는 자에게 주님의 완전한 의를 덧입혀 주십니다(롬 10:4).
순종의 새로운 동기 (사랑): 은혜 아래 있는 성도는 구원을 얻기 위해서나 형벌의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십자가 사랑에 감사하여 자원하는 마음으로 계명을 지키고 죄를 미워합니다(요 14:15, 요일 5:3).
참된 회개와 최종 구원: 은혜 아래 있는 자는 주님의 마음에 상처를 드린 죄 자체를 슬퍼하며 회개하고(고후 7:10), 세상의 유혹과 환난 속에서도 끝까지 믿음으로 인내하여 최종 구원에 이릅니다(히 10:3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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