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미나의 추억
(제2회 / 정광희)
아침에 미나가 먼저 잠이 깨었습니다. 아직도 자고 있는 흰 구름을 보면서 미나는 자기보다 나이 어린 흰 구름이 가엾은 생각이 들면서 앞으로 잘 돌보아
주어야겠다는 마음을 굳혔습니다.
밖을 내다보니 어젯밤엔 비가 내렸습니다. 미나는 이 헛간이 참 고마웠습니다. 나무 밑에서 잤든지 그냥 아무데서 잠들었더라면 잠도 잘 수 없었을 텐데…, 하는 생각과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늘엔 아직도 구름이 끼었지만 구름이 조금씩 걷히고 있습니다. 미나는 이
생각 저 생각을 하고 있는데 흰 구름이 깨었습니다. 흰 구름이 크게 기지개를 켜는 것을 보니 잠을 잘
잔 모양입니다.
“흰 구름아 잘 잤니? 어젯밤엔 비가 왔단다.
이 헛간이 참 고맙구나.”
“정말이네, 자다가 비를 맞았다면 잠도 못 잤을 텐데. 또 나는 미나 언니가 옆에 있으니 무섭지도 않고 마음이 편안해서 더 잘 잤어.”
미나와 흰 구름은 절대로 헤어지지 말자고 약속을 했습니다. 먹을 것을 찾으면
똑같이 나누어 먹고 어디를 가도 항상 함께 다닙니다. 동네에 들어가서 쓰레기 봉지를 뜯어 보면 먹을
것이 많이 나옵니다. 언제나 미나와 흰 구름은 쓰레기 봉지도 함께 뜯고 음식도 같이 나누어 먹습니다.
오늘도 미나와 흰 구름은 신나게 쓰레기 봉지를 뜯고 있는데 갑자기 그물이 미나와 흰 구름의 머리 위로 덮였습니다. 미나와 흰 구름은 꼼짝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다리를 절뚝거리시는
할아버지가 오시 더니 미나와 흰 구름을 케이지 안에 넣고 케이지 문을 닫았습니다. 미나와 흰 구름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벌벌 떨고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케이지를 들고 절뚝거리며 걸어가시면서
“가엾은 고양이들아, 어쩌다 길고양이가 되어서 쓰레기 봉지를 찢고 동네를 더럽히고
다니니? 동네 사람들이 너희들을 잡으면 죽이겠다고 벼르고 있단다. 내가
너희들을 길 잃은 애완동물들을 모았다가 나누어 주는 곳으로 데려다 줄게. 그곳에서 마음씨 좋은 새 주인을
만나서 행복 하게 살아라.”
미나와 흰구름은 할아버지가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나왔습니다. 드디어 허술한
창고 같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신 할아버지는 그곳에서 일하는 다른 할아버지한테 미나와 흰 구름이 들어 있는 케이지를 주며
“불쌍한 고양이들아 앞으로 행복하게 살아라.”
하시면서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케이지를 받은 할아버지는 케이지를 선반 위에
올려놓고 물과 음식을 케이지 안에 넣어 주었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될까? 우리는 헤어져야 하나? 이런 생각이 미나와 흰 구름을 불안하게 합니다. 미나와 흰 구름은 주의를 둘러보니 수많은 케이지들이 선반을 채우고 있습니다.
미나와 흰 구름같이 고양이도 많고 강아지, 커다란 개, 여러
종류의 새들, 거북이도 있고 어제 누가 기르기 싫다고 가져온 금붕어도 보입니다.
이곳에서 일하시는 아저씨들은 매일 케이지들을 밖으로 내다 놓고 몇 시간씩 햇빛을 보게 해 주십니다. 미나와 흰 구름도 밖에 나가 있는 동안 햇볕도 쬐고 맑은 공기를 마시면 아주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런 생활을 며칠 하다 보니 미나와 흰 구름은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 이런저런 이야 기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나가 흰 구름에게 물었습니다.
“흰 구름아 너는 이때까지 어떻게 살아왔니? 너를 잊어버리고 가버린 주인은
좋은 사람들이니?”
“우리 아저씨 아줌마는 나를 정말로 예뻐해 주셨어. 아줌마
엄마가 몹시 편찮으신 데다가 자동차까지 고장이 났고 할머니한테는 빨리 가야 했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내 생각을 못 하셨겠지만 아마 지금쯤 내 걱정
많이 하고 계실 거야. 미나 언니 주인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해.”
“우리 아저씨랑 아줌마도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들이란다. 내가 집을 잃어버리던
날도 내가 잘못해서 아저씨 아줌마랑 헤어지게 되었어.
또
아줌마 큰딸 은혜는 나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 크리스마스 때 은혜 언니는 내 스웨터를 사 와서 내게
입혀 주었어. 나는 스웨터를 입으니 더워서 벗었으면 좋겠는데 아줌마랑 은혜 언니는 예쁘다며 스웨터를
벗겨 주지 않아서 나는 살그머니 지하실로 내려갔어.
지하실엔
아저씨 가 화장실을 만드신다고 필요한 나무들과 타일을 잔뜩 사다 쌓아 놓으셨어. 나는 그 복잡한 곳을
이리저리 막 뛰어다니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스웨터가 벗겨졌어. 나도 어디에서 벗겨졌는지 몰라. 얼마나 시원하던지. 다시 위층으로 올라오니 아줌마랑 언니는 미나
스웨터가 없다고 찾았지만 나는 모르는 척 가만히 있었어. 다시는 그 스웨터 입기 싫었으니까. 스웨터를 찾지 못하자 은혜 언니는 나를 데리고 보석상에 가서 내 귀에 구멍을 내고 예쁜 귀고리를 달아 주었어. 여태까지 잊고 있었는데 내 귀에 귀고리 달려 있니?”
너무 힘들게 살다 보니 미나는 집 잃은 뒤 한 번도 귀고리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언니 귀에 귀고리가 달려 있네. 지금 보니
정말 예쁜 귀고리네,
무얼 먹을까 어디서 자야 하나 하는 생각만 하다 보니 미나 언니 귀고리를 못 보았어.”
“이 귀고리 달고 오던 날 나는 아줌마의 화장대에 올라가서 거울에 비친 귀고리를 보았어, 가느다란 고리에 붙어 있는 빨간 보석이 내 짙은 회색 털과 잘 어울려서 내 마음에 꼭 들었단다. 나는 이 귀고리는 스웨터처럼 잃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해야지. 이렇게
마음먹었지.”
“언니 그 보석이 빨간색이야? 나는 검은색인 줄 알았는데”
“목욕한 지도 너무 오래되어서 몸도 더러워졌고 귀고리도 때가 잔뜩 묻었겠지.”
흰 구름도 몸이 더럽고 지저분한데도 미나는 자신의 더러운 몸이 흰 구름 앞에서 공연히 부끄러워졌습니다.
흰 구름이 다시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와서 미나 언니만 데려간다든지 나만 데려간다면 우리는 헤어져야만 하겠네.”
“누가 우리 케이지 문을 열면 우리는 꼭 붙어서 너는 나를 잡고 나는 너를 잡고 떨어지지 않도록 하자.”
며칠이 지나는 동안 창고 안으로 더 많은 동물들이 들어왔습니다. 우리를 데리고
오셨던 할아버지도 몇 번 창고를 다녀가셨습니다. 할아버지는 강아지도 안고 오셨고 케이지에 들어 있는
새도 들고 오셨습니다.
드디어 몇 개의 창고 문들이 열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들어옵니다. 사람들은 마음에 드는 동물을 고릅니다. 미나와 흰 구름은
헤어지게 될까 봐 마음 졸이며 겁먹은 눈으로 케이지 밖을 보고 있습니다. 이때 어떤 할머니께서 큰 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저 더러운 고양이는 귀고리를 하고 있네. 전에 부잣집에 살았었나 봐.”
이때 몇 걸음 저쪽에서 다른 고양이를 보고 있던 부인이 케이지 앞으로 급히 달려오시면서 얘기하셨습니다.
“너 미나 아니니? 어디를 돌아다녔니? 죽지
않고 살아 있었구나, 이젠 집으로 가자.”
아줌마는 케이지 문을 열고 미나를 잡고 꺼내려고 하십니다. 그런데 고양이
두 마리가 함께 아줌마 손에 잡힙니다. 아줌마는 흰 구름을 미나에게서 떼어놓으시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미나는 흰 구름을 잡고 있고 흰 구름은 미나를 잡고 있어서 두 고양이는 한 마리의 고양이 같았습니다. 아줌마는 미소를 지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동안 우리 미나가 친구를 사귀었구나. 미나야, 네 친구도 우리 집으로 함께 가자.”
아줌마는 케이지를 들고 나오시면서 케이지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동물들은 공짜로
데려가지만 케이지는 다음에 또 사용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줌마는 집에 오시자 미나와 흰 구름을
목욕시켜 주셨습니다.
미나와 흰 구름은 오래간만에 개운해져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때 미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미나 앞에 하늘에 있는 깨끗하고 하얀 한 조각의 흰 구름이 내려온 줄 알았습니다. 흰 구름의 털은 하얗고 반짝반짝 빛났으며 눈은 초록색으로 예쁘고 사랑스러운 고양이로 변했습니다. 미나는 식구들이 흰 구름을 쫓아내면 어쩌나… 걱정을 했었는데 이젠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아저씨 아줌마도 흰 구름을 예뻐하시고 미나가 돌아왔다는 전화를 받고 은혜 언니와 다혜 언니가 한달음에 달려왔습니다. 언니들도 미나를 반겨 주었고 흰 구름도 예뻐해 주었습니다. 은혜
언니는 미나와 흰구름 을 한 손에 하나씩 안고 덩실덩실 춤도 추었습니다. 갑자기 은혜 언니가 춤을 멈추더니
말했습니다.
“이 하얀 고양이의 이름을 지어 주어야 할 텐데 무슨 이름이 좋을까?”
아줌마가 말했습니다.
“하얀 구름 같이 깨끗하니 흰 구름이라고 지어 주자.”
아저씨도 은혜 언니도 다혜 언니도 모두들 좋다며 손뼉을 칩니다. 미나와 흰
구름은 깜짝 놀랐습니다. 특히 흰 구름은 다른 이름으로 불리면 어쩌나 걱정했습니다.
미나는 흰 구름과 함께 집을 잃어버리기 전의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저씨와 아줌마가 아침을 잡수시는 동안 밖에 나갔다가 한눈팔지 않고 곧바로 들어오고 아저씨와 아줌마가 출근을 하시면 미나와 흰 구름은
함께 놀면서 아저씨 아줌마를 기다립니다. 이젠 미나는 전과 같이 지루하지 않습니다. 흰구름과 함께 있기 때문이지요. 미나는 요즈음 너무 행복합니다. 미나는 흰 구름에게 집을 잃고 떠돌면서 힘들고 어려웠던 지난 이야기를 합니다.
“흰 구름아, 네가 혼자 되었을 때 많이 무섭고
외로웠었지? 나도 그랬었단다. 아줌마 무릎에 앉아 차를 타고
갈 때는 차가 그렇게 빠른 줄 몰랐어. 그런데 찻길에서 차를 만나면 어쩌면 그렇게 빠르던지…. 너무 무서웠어. 이런 일도 있었어. 집을 잃어버리기 전에 아줌마랑 은혜 언니랑 뒷마당에서 햇볕을 쬐고 있었는데 작은 쥐 한 마리가 내 옆으로 왔어.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쥐에게 놀자고 앞발로 쥐를 건드렸더니 놀란 이 쥐가 갑자기 내 얼굴로 뛰어오르는 거야. 나는 깜짝 놀라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어. 이것을 보시고 아줌마와
은혜 언니는 쥐를 잡아야 하는 고양이가 쥐한테 쫓겨 달아나면 되느냐며 깔깔 웃으셨어. 그랬는데 길 잃고
너무 배가 고파서 쥐를 잡아먹기도 했단다. 여름이었어. 사람들을 피해 산으로 갔다가 길고 혀를 날름거리는 뱀을 만나 죽을 뻔하기도 했었어. 애기들이 먹고 있는 과자를 빼앗아 먹다가 사람들한테 도둑고양이라고 몽둥이로 맞기도 했으며 돌팔매질도 당 했었어.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제일 무서웠단다.”
“미나 언니도 그랬었구나. 나도 전에는 항상 집 안에 먹을 것이 있어 서 배고픈
줄을 몰랐었는데 혼자 되고 보니 하루 종일 먹는 생각만 했었어.”
갑자기 미나는 웃음이 나왔습니다. 웃음을 참고 미나가 말을 시작합니다.
“하루는 말을 기르는 농장 근처를 지나가는데 땅 위에 무엇이 움직이고 있어서 잡아먹으려고 내려다보니 말똥구리라는 곤충이
자기 몸보다 훨씬 큰 말똥을 공처럼 둥글게 굴리면서 가고 있겠지.
말똥구리야, 넌 냄새 나는 말똥은 왜 굴리고 있니? 내가 묻자 이 말똥을 집으로
가져가서 이 말똥 속에 알을 낳으면 알에서 깨어난 새끼들이 이 말똥을 먹고 자란단다. 우리 말똥구리들에게는
이 말똥은 아주 귀한 것이야. 나는 더럽고 냄새 나는 이 말똥이 귀한 것이라는 말에 속으로 막 웃었어.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말똥구리 새끼가 말똥을 먹어야 살 수 있다니 말똥구리들에겐 귀한 음식일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보았어.”
흰 구름은 배고팠던 지난날들을 다 잊어버린 탓인지 말똥구리가 아주 더럽게 생각되었습니다.
미나는 다시 말을 이어갑니다.
“추수가 끝난 늦은 가을이었어. 그때도 먹을 것을 찾으며 동네 뒷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맛있는 냄새가 코를 자극하는 거야. 어느 집에서 고깃 국을 끓여서 식히느라고 밖에 내놓았어. 나는 뚜껑을 앞발로 밀고 뜨뜻한 국을 정신없이 먹고 있는데 그 집 아이가 집 안에서 나오다가 나를 보고, 엄마 도둑고양이가 국을 다 먹고 있어요, 라고 소리를 지르자 사람들이
우르르 밖으로 나왔어. 나는 깜짝 놀라서 도망간다는 것이 잘못되어 커다란 국 냄비 속으로 빠지고 말았지.”
이 말을 듣던 흰 구름이 더 놀라서
“미나 언니 어떻게….”
하며 더 이상 말을 못 하고 벌벌 떨기까지 합니다.
“사람들은 국 냄비를 서로 잡으려다가 국 냄비를 쓰러뜨렸어.
나는 이때 재빨리 그곳에서 달아났어. 내가 자던 목초 더미들 사이에 들어가서 온몸에 묻은
국을 핥아 먹었지만 그날 밤은 온몸이 젖어서 얼어 죽는 줄 알았어.”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미나는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은혜 언니가 사 준 스웨터를 미나 자신도 모르는 곳에서 잃어버린 일을 후회하면서 은혜 언니에게 미안했으며 은혜 언니가
달아준 귀고리 때문에 아줌마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을 감사하며 절뚝거리시면서도 미나와 흰 구름을 창고에 데려다 주신 할아버지에게도 감사하고 또 온
식구들도 전과 같이 미나만 아니라 흰 구름까지 사랑해 주시는 일도 감사하며 특히 흰 구름이 흰 구름이란 이름으로 다시 불리는 것도 감사하면서 미나는
매일 매일을 감사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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