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침부터 부랴부랴 전화가 왔습니다.
내려 갈 수가 없으니 집까지 배달해달라는 마을 어르신의 전화였습니다. 어르신께서 요청하신 물품 챙기고 오전 출발합니다.
9시 15분,
"저번에 왜 계산을 잘못했어요~" 하시는 삼촌.
비빔면 가격을 깜박하고 천원을 더 받아서, 지난주에 천원을 다시 환불해드렸습니다. 이따금씩 가격을 잘못알고 판매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중하게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며 실수 번복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삼촌은 알겠다며 오늘도 주기적으로 사시는 물품 사시고 갑니다.
윗집 어르신은 돈을 맞춰 사시는것을 좋아하십니다. 지폐로 딱 떨어지게 구입하시려고 요구르트를 맞춰 사시곤하는데, 오늘은 진라면(3600원)을 사셔서 맞추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웃으시며 "에잇! 돈이 애매하게 남네! 그냥 더 사지 뭐!" 하시며 추가로 더 사십니다. 늘 유쾌하게 사주시는 윗집 어르신이 고맙습니다.
9시 30분,
오늘도 어르신들은 회관 위에서 풀을 메고 계십니다.
"여기서 뭐 하실려구요?" 여쭤보니, 잔디 이쁘게 갖꿔서 이뻐보이게 하실려고 한다고 하십니다.
노인 일자리 사업으로 마을분들이 다 같이 하고 있는 곳, 모두가 함께 하시는 일이고 그 일이 우리 마을을 갖꾸는 일로하니 더욱 좋으시겠다 싶었습니다.
어르신들께서 필요하신게 있으실지 가까이가니,
"나 돈 안갖고 왔는데~ 달아놔~~" 하시며 필요하신 물건들 이야기 하십니다.
"울집엔 울아저씨 있을랑가 모르겠네. 울집도 하나 갖다 놓게나~" 하시는 어르신.
"지난번 술값 줘야하는데" 하시며 미안해하시는 어르신.
"다음에 매장 한 번 들려주시면 되지요~" 하고 웃으며 말씀드립니다.
당장 돈 안받아도 괜찮습니다. 일단 주문받고 어르신들 집에 모두 다 갖다 놓고갑니다.
9시 45분,
회관에 가니 어르신 두분 계십니다.
"회관 물건을 사긴해야하는데, 총무한테 허락을 받아야하는지라, 내 총무한테 물어보고 담번에 살께" 하시는 어르신.
못사주시는것이 내심 미안해 하셨습니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하고 있기에, 말씀만, 생각만 해주시는 것만으르도 늘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10시,
제각으로 가던길, 담 넘어 어르신께서 손짓하십니다.
"여기서 사려고 기다렸어~~" 하시는 어르신.
"우리 아저씨 먹을거 바나나랑 두유 한개 주소" 하십니다.
"아저씨가 바나나를 좋아하거든~" 하시며 뒤에 계시던 어르신에게 건네십니다.
어르신께서는 바나나보고 바로 흐뭇한 미소 지으십니다.
오랜 세월 부부가 함께 살면서 서로를 챙겨주시는 모습을 보이는 어르신들 부부는 젊은 결혼 부부세대에게 늘 귀감이 되는 것 같습니다.
10시 10분,
오늘은 물건을 챙기지 않고 올라가보았습니다. 오늘도 누워만 계시는 어르신.
바나나가 머리맡에 있었고 누워서 바나나만 드시고 계셨습니다. 여러모로 걱정이 많이 되어 내부 복지 팀 채팅방에 현 상황을 공유하였습니다.
지금 당장 누군가가 바로 투입되거나 개선할 수 있는 상황의 여지가 있는 것이 아니기에, 꾸준한 모니터링만 해주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랫집 어르신께 이야기를 듣기로는
"원래 여 사람이 태어날 때 '소' 신이 들렸다고 했어~ 이 사람 태어날 때 소 잡는 장수가 왔다지 뭐야~" 하십니다.
예전에는 워낙 잘 걷고 다니셨던 어르신이셨는데, 누워만 계시는 모습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만 커져갑니다.
10시 30분,
모내기 준비가 한창입니다. 비료와 상토를 마을 회관앞에 쌓아두고 각 농업인들에게 배포하고 있습니다.
영농인들은 모내기를 다 끝나고나면 한 해 농사 중 가장 큰 일을 해냈다고도 합니다. 그만큼 중요한 일입니다.
올 한해도 풍년이 오길 기원하며 지나갑니다.
10시 35분,
오전에 전화하셨던 어르신 전화오십니다.
"울집 올란가?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아까 회관 앞에서 비료와 상토 나눔이있어 차를 세워둘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윗마을 먼저 갔다 내려간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르신 댁에 계란과 땅콩알사탕 하나씩 들고 갑니다. 그리고 어르신이 잔돈을 얼마 주실지 몰라 5만원권 결제할것으로 생각하고 맞춰 갖고갑니다.
요즘 어르신들은 오만원권 결제가 잦으십니다. 현금 보유를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분들이 많아 어르신들 지갑에는 생각보다 큰 돈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르신 댁에 가니 반갑게 맞이해주십니다. 그러곤 주시는 5만원권. 덕분에 잔돈 맞춰 한 번에 드릴 수 있었습니다.
10 45분,
학교 뒤를 가는 길, 요양보호사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매주 막걸리 한 병씩 사시는 어르신을 케어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요양보호사 선생님께 부탁드리며 막걸리 한 병 배달 부탁드렸습니다.
그러고 5분뒤, 지나가는 길 그 어르신을 길가에서 만났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줘!!!" 하시는 어르신.
"요양보호사 분께 드렸어요~~" 하니, 어르신께서도 좋아하십니다.
곳곳에 어느분이 어느 어르신댁에 가는 것을 알다보니 가끔 이렇게 배달도 요청드리게 됩니다.
11시,
요양보호사가 다시 안온다는 어르신 댁, 정말 필요한 집인데 어르신과 또 잘 안맞았나봅니다.
어르신들에게 새로운 사람을 들인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일입니다. 그것이 설령 병으로 인한 일일지라도.
주간호보센터를 오셨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말씀을 드려도 절대 움직이지 않는 어르신.
스스로가 약해졌고, 힘이 없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으로 받아들이는 그 인정의 순간이 너무나도 싫으셨겠지요.
"내가 아직까진 스스로 할 수 있으니꼐"
11시 15분,
"아니 망구를 이렇게 무시하는가?!?"
무슨일인가 싶었는데, 지난번 계란 샀을 때 제가 어르신께 계란이 8천원이라고 이야기 해놓고, 거스름돈을 1500원만 줬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설령 잘못말씀드려도, 계란 한 판 8500원에 제값으로 계산을 한 것인데, 어르신께서는 노발대발 이야기를 하십니다.
"내가 자네 생각해서 이렇게 따로 이야기하는거네! 어디서 망구를 무시하는가?!?!" 하시는 어르신.
더 이상의 대화가 이뤄질 수가 없어서 어르신께 잘못말씀드려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며 500원을 드렸습니다.
간혹 어르신들이 잘못된 인지가 확신이 되는 경우 이렇게 대화가 잘못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때는 대화가 아니라 그저 들어드려야합니다.
한 주간 어르신께서 계속 생각하고 안 좋은 마음을 쓰고 계셨을 것 생각해보면 죄송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11시 50분,
"아니 어찌 이렇게 금방 오는가?"
몇주째 회관이 텅텅비어있는 마을. 회관에서 주 운영하시는 어르신께서 오늘 퇴원하셨다는 소식을 전화해서 확인했습니다. 지난번 다리가 부러져서 수술을 크게 하신 후 한달 만에 퇴원했다는 어르신. 집에서도 당분간 쉬고 있어야한다고 하십니다. 한동안 더 조용할 것 같은 회관이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회관에 사람들이 없는지 몇주쨰 되다보니, 금방 지나쳐왔어요~" 하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르신께서는 커피를 말씀하시며, "파란거 말고...이 까나리색 있지? 이거 하나 갖다줘~" 하십니다.
레쓰비 캔커피 말고 조지아를 말씀하신거였습니다. 일하다바 시원한 커피 땡길 때 캔커피 만한 것이 없습니다.
점심에 갖다놓겠다고 말씀드리며 오전 장을 마칩니다.
13시 30분,
집앞 마당에서 모판 작업을 하고 계시는 어르신.
"아니 씨부럴 망할것들이 다 쪼아먹네" 하시는 어르신.
"허연것들이 날아오더니만, 부직포도 다 쫘먹어. 어이구 속터져!!"
오늘 건강체조 하는 날이었는데도 어르신께서는 회관에 있다가 여기에 오셨다고 합니다.
"아니 건강체조가 중요혀? 내 모판이 다 날라가게생겼는데. 이해해줘야지~! 안그려?"
어르신께서는 속상한 마음을 내비치며 모판을 다시 정리하십니다.
그런 와중 저 하늘 위로 날라가는 하얀 새떼 무리... 비둘기도 아니고 백로도 아닌것이 뭘까요.
13시 50분,
어르신 집이 문이 잠겨있었습니다.
오늘도 담 타넘고 우유배달하러 갑니다. 집에 들어가서 냉장고를 보니 저희가 취급하지 않은 우유 새것이 있었습니다.
냉장고를 그대로 닫고 우유를 갖고 옵니다.
파는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르신께서 드실 적정량을 공급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4시 10분,
회관에가니 마중나오시는 회장님.
"지난번 두부 8모 잘먹었어요." 하시는 회장님. 회관에서 쓰는 줄 알았는데, 회장님네 인부들 주려고 준비하셨다고 합니다.
"우리가 얻는 놉이 얼만디~ 그정도는 금방 먹어요~" 하시며 안에 들어와서 차 한 잔 하고 가라고 하십니다.
안에 들어가보니 어르신들꼐선 고스톱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모두 반갑게 맞이해주시는 어르신들.
그러곤 옆에 계시던 분이 "뭐 맛난거 쪼까 갖고 왔는가?" 하시길래
"가셔서 보셔야지유~" 했습니다.
"저기~ 5만원짜리 하나만 빌려줘보쇼~" 하시는 어머님.
지난번에도 회관에서 드실 주전부리를 사셨는데, 오늘도 그러하실려나봅니다. 그러곤 커피, 사탕, 바나나로 5만원을 꽉 채우시는 어머님.
"내가 회관에 뭐는 못해도 이런거 한 번씩 해드릴께유~" 하며 어르신께 말씀하시는 어머님.
그덕에 회관 어르신들 모두 좋아라하십니다.
14시 30분,
회관에 도착 후, 잠시 기다려봅니다. 지난주, 지지난주에도 얼굴이 보이지 않았던 어르신댁 내려가봅니다.
때마침 씻고 나올 준비하고 계셨다는 어르신. 커피 한 잔 타 먹고 가라고 하십니다.
옆에 누워있던 아드님.
"누교? 못 생겼구만" 하십니다.
풍이 와서 얼굴에 표정이 잘 안보이지만, 농담으로 던지신 말씀이셨습니다.
아드님도 한 잔 타드리고 저도 한 잔 먹고 함께 올라옵니다. 그 새 회관 앞은 난리가 나있었습니다.
아랫집에 사는 처자 한 명이 있는데, 밥도 잘 못먹고 다니고 아무도 관심을 안갖는다고 윗집 어르신이 난리였습니다.
마을에서는 이 사람이 거주하는지 안하는지, 있는지 없는지도 확인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활동 시간이 아침일찍 나갔다가 저녁 늦게 들어오는 일상을 보내고 있어서 어르신들과 마주칠 일이 드물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속사정을 들으니 더 안타까웠던 이 분. 누군가를 찾기 위해서 정류장에 계속 있는다는 말씀에 무슨 사연일지 더 궁금해집니다. 그래도 인사 안전 확보를 위해서 면사무소로 연락을 드려놓았습니다. 윗집 어르신은 삼양라면 번들 하나 사시더니 "이거나 쪼까 갖다 주시게" 하십니다. 밥도 못먹고 지낸다는 그 소식에 너무나도 가슴이 미어지셨나봅니다.
16시,
점빵차 소리 듣고 저 먼발치서 천천히 오시는 어르신. 그리고 그 아랫집에서 올라오시는 어르신.
"내가 점빵차 떠날까봐 돈을 안갖고 나와. 수술한 이후로 나오는 시간이 오래걸리다보니 천천히 나와"
지난번 인공관절 수술이후 걸음보조기로 천천히 걸으시는 어르신. 자신 몸 불편해도 장사꾼 배려하신다며 부랴부랴 오십니다.
아랫집 어르신도 부랴부랴 올라오셔서 안부 여쭙습니다. 밑반찬 잘 받으셨는지 여쭤보니 "맛나게 잘먹었수다." 하시며 다른 이야기를 하십니다.
"내가 사실... 냉장고에 있어도 뭘 잘 못해먹어요. 아니 뭘 해먹어야할지 생각이 안나. 그래서 지난번에 아들이 와서는 싹 다 버리고 갔어요. 다 유통기한 지나고 썩다보니... 이게 참 환장할 노릇이여. 주변에서 볼 땐 말짱한대 나는 안 그렇거든. 해먹을 방법을 모르겠다니깐. 그러니깐 치매 등급받지 뭐... "하시며 씁쓸해 하셨습니다.
인지가 조금씩 떨어진다는 것, 질병으로 자연스러운 일일수도 있지만 받아들이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를 위해서 일상에서 무엇에 변화를 주어야할지, 늘 글로쓰고 포스트잇을 붙여놓아야할지, 어르신 댁 내 주거환경에 어떤 변화를 주면 좋을지 고민해봅니다. 기억을 이겨내는 것은 기록이니 말입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 하루도 잘 마치고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왔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