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사상가(2) - 러시아의 인텔리겐치아
1. 19세기 러시아 지식인들을 가리키는 ‘인텔리겐치아’는 단순히 지식인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특정한 모습과 성향을 지닌 집단이라는 점을 표상하는 러시아의 독자적인 개념이다. 그것은 ‘인텔리겐치아’의 형성이 서구와는 다른 경로와 역사 그리고 사회적 배경 속에서 이루어졌고 그런 결과로 인해 매우 독특하고 개성있는 사상적 경향을 배태하고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인텔리겐치아는 러시아의 억압적 전제 정치, 러시아 정교회의 고루한 관습, 민족주의의 과도한 주장 속에서 새로운 러시아를 향한 젊은 지식인들의 열정을 형상화한 용어였다.
2. 러시아의 인텔리겐치아가 탄생하는데 가장 크게 기여한 역사적 요인은 표트르 대제의 서구적 개혁을 위한 유학생 파견과 그 후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성취한 승리의 기억이다. 서구의 지식과 과학적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파견된 유학생들 중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 관료로 이동했지만, 그와 별개로 또 다른 사람들은 러시아를 지배하는 억압적인 분위기에 저항하는 핵심세력으로 등장했다. 나폴레옹에 대한 1812년 전쟁에서의 승리는 러시아의 자부심을 강화시켰고, 이에 상응하여 확산된 민족주의의 부흥에 대하여 서구적 지식인들은 러시아 내의 혼돈, 비참함, 빈곤, 비효율, 폭력, 끔찍한 무질서 등에 대한 개인적 죄책감이 더 커지게 되었다.
3. 러시아의 개혁을 위해 젊은 서구 성향의 장교들이 일으킨 ‘데카브리스트 봉기’는 더욱 억압적이고 전제적인 니콜라이 1세의 반동적 통치를 통해 러시아를 억압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도 서구적 젊은 지식인들은 문학과 예술을 통해 자신들의 신념과 사고를 공유하기 시작하였고 변화를 위한 열정을 추구하였다. 전제적인 억압 속에서 그들이 찾은 저항의 방식은 일명 ‘사회비평’이었다. 이러한 사회비평은 예술과 문학에 대한 평론을 중심으로 그와 연관된 사회적 시각을 전달하였다.
4. 사회비평은 러시아의 독특한 사상적 특징이 그대로 재현된 영역이었다. 러시아적 정서는 서구 특히 프랑스에서 유행한 예술과 삶을 분리시키는 것과는 다른 철저하게 삶과 예술 그리고 사상의 총체성이었다. 벌린은 사회비평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사회비평은) 삶과 예술을 가르는 선을 고의적으로 뚜렷하게 긋지 않은 비평의 한 형태이다. (.....) 예술의 형식과, 그것을 통해 그려지는 인물 양면에 대해, 또 작가 개인의 성향과 소설 내용 양면에 대해 찬사와 욕설, 애정과 증오, 존경과 경멸을 자유로이 표현하며 그런 평가에 동원된 규준이 고의적이든 암묵적이든, 일상의 살아있는 인간을 판단하거나 묘사하는데 지침이 되는 규준과 일치하는 그런 비평을 말한다.”
5. ‘삶과 예술’의 일체, 이것은 인텔리겐치아의 전체적인 특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무엇을 하든 자신의 인격 전체를 던져서 몰두해야 하며 선한 일을 하고 진실을 말하고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은 인간의 의무인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작가에 대한 규정에서도 알 수 있다. “작가는 무엇보다 인간이라는 것이다. 또한 작가는 소설을 쓰이든 개인서신이나 공적인 발화나 일상회화에서 사용되든 자신의 모든 말에 대해 직접적으로 그리고 계속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진리에 대한 접근과 실천적 삶에 대한 특별한 신조를 만들었다. “(진리는) 진실을 발견하고 옹호하기 위해, 세계와 그 안에서의 의무에 관하여 인간을 눈을 가리는 환각과 관습과 자기기만으로부터 자아와 타자를 해방시키기 위해, 자신이 가진 전부를 희생할 각오가 돼 있는 자들을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인텔리겐치아의 사상적 태도는 러시아를 지배하는 전제정치, 정교회, 민족주의에 대한 도덕적, 정치적 저항의 표명이었다.
6. 러시아 인텔리겐치아는 1848년 유럽을 휩쓴 ‘혁명의 열기’가 실패한 후 휘몰아친 반동의 분위기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혁명의 실패로 인해 서구 유럽에는 급격한 무력감과 회의감 그리고 반동적인 정서가 지배하였다. 하지만 인텔리겐치아들은 서구의 혁명에 놀란 러시아 통치자들의 강압된 규율 속에서 오히려 물질적 힘이 뒷받침되지 않은 사상과 선동이라면 필연적으로 무위에 처해질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 교훈을 얻게 되었고,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그들은 치열한 러시아만의 독특한 사상적 체계와 실천적 저항의 방식을 구축하기 시작한 것이다.
7. 러시아 인텔리겐치아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상가는 ‘벨린스키’였다. 그는 서구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상가였다. 그는 주로 잡지와 신문에 문학과 예술 평론을 게재한 평론가였다. 비록 그에 대한 평가가 상충하였고 체계적인 사상적 정리가 되어있지 않았지만, 그가 보여준 치열한 문제제기와 과감하고 본격적인 이슈에 대한 논쟁은 젊은 지식인들에게 하나의 사상적 모범이 되었고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을 이끌어내었다. 그는 당시 러시아를 지배하는 두 개의 사상조류 중에서 ‘서구주의자’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벨린스키는 진보를 가능하게 하는 힘은 과학적, 철학적 진리의 비판적 정신과 생기에 있다고 주장하며, 러시아의 전통과 정교회의 정신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슬라브주의자’들은 현실에 대한 감각을 잃었다고 비판했다.
8. 그는 슬라브주의자들에게 내적인 정신수양과 정신적 갱생은 굶주린 배를 해결시키지 못하며 사회정의와 인권이 억압된 사회에서는 불가능하고 경고하였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긴 벨린스키의 글은 서구적 개혁을 추진했던 인텔리겐치아들에게는 신성한 경전과 같은 영향을 주었다. “러시아에는 설교도, 기도문도 전혀 필요하지 않다. 러시아에 필요한 것은 수세기동안 진창과 얼룩 속에 묻혔던 인간적 존엄의 감정을 사람들에게 일깨우는 것이다. 러시아에는 교회의 가르침이 아니라 상식과 정의의 가르침을 따르는 법과 권리가 필요하다.” 벨린스키는 ‘신학과 형이상학의 적’이었으며 급진적 민주주의자였다. 그는 열정적인 논쟁과 글을 통하여 문학논쟁을 사회적, 정치적 변혁운동의 출발점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9. 이사야 벌린이 <러시아 사상가>에서 설명하는 러시아 인텔리겐치아의 탄생과 특징에 대한 내용은 유독 19세기 중반 이후 러시아의 문학가와 사상가들이 자주 거론된 이유를 짐작하게 해준다. 비록 서구의 낭만주의와 사회주의를 수입했지만, 러시아적 풍토에서 새롭게 정립한 인텔리겐치아의 사상은 삶과 예술 그리고 사상을 분리하지 않는 총체성과 그것을 성취하기 위한 치열하면서도 절실한 신념에서 서구적 태도를 압도한 것이다. 이러한 열정과 헌신적인 자세가 거대한 사상적 토대를 만들어내었고 결국은 새로운 사회혁명을 가져온 원동력이 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역사의 전개는 수많은 요인들의 알 수 없는 충돌과 결합을 통해서 완성된다. 역사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어떤 역사적 성취를 가능하게 해 준 요인에 대한 분석은 가능하다. 러시아 사상은 러시아 혁명의 성취로 인해 더 주목받게 되었다. 하지만 러시아가 소비에트 공산주의 국가로 전환된 이후의 역사를 다시 살펴볼 때, 사상의 변화와 전환이 어느 시기에는 일정한 성취로 등장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질곡과 억압의 형태로 변환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10. 이러한 변화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역사의 변화를 결정짓게 해주는 수많은 요인을 추적하는 작업일 뿐이다. 인텔리겐치아는 분명 러시아 사회의 변혁을 가져왔다. 그것은 삶과 사상의 총합을 통한 인간들의 열정이 이룩한 결과였다. 또한 그것은 ‘총체성’에 몰입하여 개체를 희생시킨 전체성의 승리이기도 하였다. 하나의 전제정치를 새로운 ‘전체정치’로 바꾼 사건이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하고 개성있던 인텔리겐치아들의 사상은 잊혀지고 사라졌다. 어떤 세계이든 안정된 질서가 수립되기 전에 펼쳐졌던 치열한 경쟁과 투쟁은 어떤 현재적 상황에서든 흥미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분명 다른 대안이 선택될 수 있었음에도, 기존의 역사적 결정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며, 대안이 가져올 수 있는 새로운 사회의 가능성을 상상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역사의 숨겨진 투쟁의 기록은 현재보다 더나은 사회의 가능성에 대한 구체적인 감각을 키어준다. 중국의 진나라 통일 전 ‘춘추백가’처럼, 러시아 혁명 전 인테리겐치아의 투쟁이 흥미로운 이유이다.
첫댓글 - 이 세계는 수많은 선택 가운데 하나인 오늘날의 모습으로 존재한다. 만약에 ~ 했었더라면은 훗날 허구인 이야기로 나타날 뿐이다. 인류의 미래도 인간의 선택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