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지역 가면극(탈놀이)의 전승과 변용
1. 경상도 지역은 중부 지역과 함께 가면극이 가장 활발하게 공연되었고 전승된 지역이다. 같은 경상도이지만 가면극의 형태나 구성 및 등장인물의 성격을 분석하면 경북 지역의 농촌형인 굿탈놀이와 경남 지역의 도시형 탈놀이로 나눌 수 있다. 굿탈놀이는 각 지역에서 옛부터 벌어졌던 마을굿의 영향으로 탄생한 가면극(탈놀이)이다. 보통 마을굿은 마을의 풍요와 안녕을 위해 신을 맞고 축원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굿은 신을 섬기는 제의적인 특징뿐만 아니라 신과 인간이 어울리며 즐기는 오락적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굿탈놀이는 마을굿의 오락적 성격에서 파생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경남 지역의 탈놀이(야류, 오광대)는 굿탈놀이를 수용한 전문 예인집단에 의해 더 정교화되고 예능화된 성격을 보인다. 경남 지역 탈놀이는 상업적 활동이 증가한 시대적 상황에 의해 재구성되었고 성장한 하층계급의 의식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2. 경북 지역 가면극에는 하회별신굿탈놀이를 비롯해 병산, 수동 지역 탈놀이와 예천청단놀이 등이 있었다. 대부분 농촌에서 벌어졌던 굿탈놀이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현재 제대로 된 형태를 갖추고 계속적으로 공연되고 있는 것은 하회별신굿탈놀이이다. 이 가면극을 중심으로 경북 지역 가면극의 성격을 살펴보면 몇 가지 특징이 부각된다. 우선 마을굿을 할 때 병행하여 벌여졌던 탈놀이라는 점에서 풍요와 안녕 그리고 축귀와 같은 주술적인 성격이 강하게 잔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가면극 시작 장면에서 각시를 무동 태우고 등장하는 모습이나 상상의 동물 주지가 등장하여 춤을 추는 장면은 신을 맞고 부정한 것을 쫓아내는 굿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다. 하회별신굿탈놀이의 초기 형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말이 없거나 적었다. 부네와 중이 만나는 장면에서도 두 사람은 무언의 동작을 통해 결합이 이루어지는 데 이러한 장면은 남성신과 여성신의 결합을 통해 생산의 증가와 풍요를 기원했던 굿의 성격을 그대로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3. 하회는 풍산 류씨가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동족마을이다. 다른 성씨들은 류씨 가문의 토지를 경작하는 소작인들이 대부분이었다. 하회별신굿과 탈놀이는 보통 연말에서 시작하여 정월 보름까지 벌어졌던 단기간의 축제였다. 이 축제 기간동안 양반계층은 마을의 평민들에게 일종의 정서적 해방을 허용했던 것이다. 하지만 소작제라는 명백한 계급적 통제에서 살아가야 할 평민들에게 양반을 공격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그런 지역적인 상황이 하회별신굿탈놀이에서 양반에 대한 희롱이 직접적이거나 공격적으로 진행하는 것을 방해했을 것이다. 오히려 양반사회의 갈등은 하인(초랭이, 이매)에 의해 제기되는 것이 아니라 양반과 선비 같은 양반 사회의 내부적 대립형태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4. 하회별신굿탈놀이는 가장 오래된 형태의 가면극이라 할 수 있다. 전통적인 굿의 형식과 내용을 많이 담고 있고, 오래전에 만들어진 탈도 전승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가면극인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공연이 활발해짐에 따라 많은 변화를 겪은 가면극이기도 하다. 가장 큰 변화는 ‘무언’에서 ‘유언’으로 변화이다. 초기 형태에서는 등장인물 대부분의 말이 없었다. 하지만 관객과의 원활한 소통과 극의 흥미를 높인다는 취지에서 대사가 첨가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등장인물의 말없는 행동을 통해 표현되던 상상력의 세계를 축소시켰고 등장인물의 신성스런 성격을 약화시켰다. 분네의 방뇨장면은 과거 신화적 전통에 따르면 신분상승이나 생산력을 높이는 수단으로 표현되었던 것인데 말이 첨가되고 세속적인 형태로 변모되면서 남성을 유혹하는 성적 성격이나 세속적인 특징으로 변모하였다. 또한 오래전부터 생산신의 상징으로 등장했던 할미 또한 생산력을 잃어버린 탐욕스러운 존재로 타락시켜 조롱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오래전 마을굿의 신성했던 존재들의 타락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5. 경북 지역 가면극에서 마을굿의 특징과 양반과 평민들의 조심스런 공존을 살펴볼 수 있었다면, 경남 지역 가면극에서는 좀더 급격한 변화를 관찰하게 된다. 그것은 농촌적 환경에서 벗어난 상업적 세계에서의 가면극이라는 점이다. 낙동강은 원래부터 조운의 중심지였는데 상업적 발달이 이루어지고 장터가 활성화되자 곳곳에 커다란 장터가 열렸는데 그 중에서 합천 초계의 밤마리 장터는 대표적인 상업공간이었다. 이 지역에는 여러 상인들이 몰려들었고 자연스럽게 유랑 예인집단들의 활동도 활발하였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요인은 가면극의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내었다. 예인집단들은 굿탈놀이를 계승하여 좀 더 다듬고 세분화하였으며 높아진 민중들의 의식세계를 반영한 가면극을 만들어내었다. 경남 지역 가면극은 바로 초계 밤마리 장터에서 시작된 ‘밤마리 오광대’에서 출발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확산된 것이다.
6. 경북 지역 가면극과 가장 달라진 점은 양반에 대한 독설과 희롱이 더욱 강화되었고 평민을 대표하는 말뚝이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말뚝이는 양반의 명령에 수동적으로 추종하는 존재가 아니라 양반을 능멸하고 양반을 조롱하며 양반의 허세와 허위를 폭로하는 가면극의 중심인물인 것이다. 또한 경남지역 가면극에서 양반을 심판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영노라는 신성한 새나 담보와 같은 기묘한 동물들이 양반들을 심문하면서 양반계층의 심각한 도덕적 모순과 위선적 관념을 공격하는 것이다. 때론 양반들을 잡아먹거나 심판하면서 관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평민과 중인들의 정서적 쾌감을 만족시켰던 것이다. 영감과 할미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도 과거 신성시한 생산신과 남녀결합의 풍요라는 주술적 성격은 사라지고 현재 사회상황에서 벌어지는 가부장적 모순에 대한 공격으로 전환된 것이다.
7. 조선은 양반과 평민을 구분하고 차별하였던 철저한 신분사회였다. 경상도 지역 가면극을 분석하면 가면극의 구성과 등장인물의 성격에서 그 사회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양반과의 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지역에서의 가면극은 양반에 대한 조롱이 양반계급 자체에 대한 공격으로 연결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경남지역 가면극에서 볼 수 있는 양반에 대한 시원스런 독설과 희롱장면은 새롭게 부각되는 평민층의 독립적 의식의 향상을 짐작하게 해주는 모습이다. 말뚝이는 자신이 양반보다 더 높고 권위있다는 것을 밝히며 양반을 압도하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평민들의 계급적 전복에 대한 욕망은 명백하게 표현되어 있지만, 차별을 존속시킬 수밖에 없는 ‘계급구조’ 자체를 제거하려는 과감한 시도는 아직 발견할 수 없다. 그것 또한 시대적 제한 속에서 만들어진 변혁적 정신이다. ‘계급의 철폐’는 아직 그 시대에 등장할 수 없었다. 가장 개혁적이었던 동학운동 또한 ‘하늘과 사람’의 동일성을 이야기하면서도 왕이 통치하는 군주제를 파괴하려는 급진적 개혁은 주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첫댓글 - 지역적,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변화를 거듭하며 전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