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노동인권의식, 그때 기억과 오늘
1980년대 초 평화시장이 가까운 서울의 신당동, 나는 연탄 아궁이가 있는 단칸방에서 자취를 한 적이 있었다. 지하1층 지상2층의 작은 빌딩이었는데, 지하1층은 봉제공장이었다. 그곳은 10대, 20대 여성들 여러 명이 숙식을 해결하며 노동하는 현장이었다. 노동자 대부분은 사장과 연고가 있는 전라도 어느 동네에서 상경하여 서로 언니, 동생이 되는 사이였다. 10대의 한 아이는 언니 따라온 친동생이라 했다. 작업장 위에 다락을 만들어 잠자리를 대신한다고 했지만 그곳을 들여다볼 생각도 못했다.
그때 나는 사회의식이 별로 없고, 그들과는 다른 입장에서 약간의 동정심만 있었다. 2층에는 공동 화장실과 공용 수도가 있고, 주인도 한켠에 살고 있었다. 주인 아주머니는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더럽게 사용한다고 그들에게 욕을 했다. 아침 일찍 세면을 위해 2층으로 와서 종종 시끄럽기도 했다. 나는 연탄 뚜껑 위에 물 솥을 올려 두어 항상 더운물을 쓸 수 있었다. 그들은 꽁꽁 얼어붙은 찬물에 씻어야 하는 상황이라 더운물을 더러 같이 쓰라고 하였다. 나의 관심은 그 정도였다.
지금 생각하면, 아주머니의 갸름한 얼굴은 또렷하게 떠오르는데 여성 노동자들은 얼음 같은 찬물에 빨개진 손만 기억난다. 그때 봉제공장의 먼지 속에 생활한 그들의 노동환경에도 어떤 문제의식을 갖지 못했다. 1970년 전태일 열사의 분신은 한국 노동 운동사에 한 획을 긋고 노사 분규와 노학(勞學) 연대 투쟁은 1980년대로 이어졌지만, 평화시장이 그다지 멀지 않은 신당동에 얼마간 살면서도 나의 의식은 각성이 없이 지나갔다. 하지만 그때 가장 가까이서 본 어린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기억의 그림자가 지금도 남아있다.
학습 없이는 대안도 없다.
사단법인 조각보가 다룰 “피스테이블”의 주제로, 우리 스스로 노동인권의식의 현주소를 돌아보고, 차별 없는 인간적 삶을 향해 이주배경인구 5%사회의 평화와 공존과 상생의 문화를 어떻게 열어갈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쓰다. 2024년 10월 18일 (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