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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연(因緣)으로
대지(大地)가 모두 장엄(莊嚴)하고 청정(淸淨)하였으며,
이 모든 세계(世界)에서
여섯 가지의 진동(震動)이 일어났다.1-38
이시인연 지개엄정 이차세계 육종진동
以是因緣 地皆嚴淨 而此世界 六種震動
1-이시인연(以是因緣)은 설법서(說法瑞)를 노래한 것이고, 지개엄정(地皆嚴淨)은 입정서(入定瑞)를 노래한 것이며, 육종진동(六種震動)은 지동서(地動瑞)를 노래한 것이다. 따라서 이 게송에서 육서 중에 세 가지를 노래한 것임을 알아야한다.
2-이시인연(以是因緣)은 석가모니부처님이 무량의경을 연설하게 된 인연은 설법서가 되고, 지개엄정(地皆嚴淨)은 대지가 모두 장엄하고 청정함은 석가모니부처님이 무량의처삼매에 들어간 모습을 말한 것이니 입정서(入定瑞)가 되고, 대지(大地)란! 불지(佛地) 즉 부처님의 몸을 말하는 것이다. 육종진동(六種震動)은 말 그대로 지동서(地動瑞)를 노래한 것이다.
3-이시인연(以是因緣)을 풀이하면, 석가모니부처님이 무량의경을 연설하심에 있어, 일월등명불과 대통지승불과 뇌음왕불과 아미타불이며, 시방의 모든 부처님은 석가모니부처님이 무량의경을 연설하신 것을 듣고 모두 법화경에 들어오는 인연이 되었다. (과거인연)
지금 법화경의 회상(會上)에 모인 모든 대중.... 사리불이며 미륵보살이며 관세음보살이며 이 모든 대중, 역시 이시인연으로 인해 석가모니부처님이 연설하시는 무량의경을 들어야 법화경에 들어오게 되는 인연이 되는 것이다. (현재인연)
미래세상에 모든 법화경의 권속, 즉 법화경을 지니거나 읽거나 외우거나 베껴 쓰거나 공양을 드리는 모든 사람들.... 역시 무량의경의 이시인연의 공덕에 의해 법화경에 들어와 불도(佛道)를 성취하는 인연이 되는 것이다. (미래인연)
4-사승석(四乘釋)의 입각해 이시인연을 풀이하면, 사승석이란! 지옥석과 아귀석과 축생석과 수라석과 인도석과 천상석이다. 즉 법화경을 읽고 외우는 중생의 관점에서 보면, 이미 미륵보살이 지금 노래한 게송을 통해 이미 8만4천의 경전이 모두 이 안에 있음을 알게 된다.
이 게송은 보처보살의 관점에서 시방세계를 미리 본 것을 노래한 것이다.(비유를 들면 석가모니부처님이 도솔천에 있음을 가리킴)
미간(眉間)의 광명(光明)이
동방(東方)으로
1만8천의 불국토(佛國土)를 비추시니
모두 황금(黃金)빛 같습니다.1-44
❖전체적으로 본 것을 노래했다.
이 게송은 모든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게 되는 인연을 노래한 것이다.(비유를 들면 석가모니부처님이 이곳 남염부주 어느 곳에 태어날 것인지를 살피는 것임 )
아비지옥(阿鼻地獄)에서
위로 유정천(有頂天-색구경천(色究竟天))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계(世界) 안에 살고 있는
육도(六道)의 중생(衆生-무리를 지어 태어나기 때문에 중생이라 함)이
나고 죽어 가는 곳과
선악(善惡)의 업보(業報)와 인연(因緣)으로
좋고 나쁜 과보(果報-지은 업보의 결과) 받는 것을
이곳에서 모두 볼 수 있었습니다.1-45
❖육도(六道)는 여섯 갈래의 길이라 번역하는데, 육취(六趣)와 같은 말이다. 첫째 지옥도(地獄道). 둘째 축생도(畜生道). 셋째 아귀도(餓鬼道). 넷째 수라도(修羅道). 다섯째 인간도(人間道). 여섯째 천상도(天上道)
이 게송은 제불이 불도를 이루고 최초로 화엄부의 화엄경 연설하는 것을 노래한 것이다.(비유를 들면 석가모니부처님이 출가해 도량에서 불도를 얻은 것을 말함)
또 모든 부처님..
성주(聖主)요! 사자(師子-스승)께서
제일(第一)로 미묘(微妙)한
경전(經典)을 연설(演說)하십니다.1-46
❖성주(聖主)요! 사자(師子)란, 불가(佛家)에는 생사를 벗어나 윤회(輪回)를 그치면 성현(聖賢)의 지위(地位)에 해당이 된다. 따라서 성문(聲聞)과 보살들이 모두 성인(聖人)에 해당이 된다. 따라서 부처님을 성주 즉 성인들 중에 주인이라는 것이다. 우리 석가모니(釋迦牟尼)부처님의 노사나신(盧舍那身)과 같다. ❖제일로 미묘한 경전이란, 화엄경을 가리킨다.
이 게송은 화엄경의 설법이 끝난 뒤에 우리 석가모니부처님처럼 제불(諸佛)이 소승의 녹원부 가르침을 노래한 것이다.
만약 사람이 괴로움을 만나
생로병사(生老病死)를 싫어하면
열반(涅槃-소승의 열반)을 설법(說法)해주어
모든 고제(苦際-괴로움의 경계)를 끝나게 해줍니다.1-50
❖소승(小乘)의 근기는 괴로움을 알아야 가르침을 받으려 한다. ❖우리 석가모니부처님이 화엄경(華嚴經)의 설법(說法)을 끝내고 녹야원(鹿野園)에서 소승(小乘)의 가르침을 펼치는 것과 같다.
이 게송은 방등부의 가르침을 노래한 것이다. (대승경전 중에서 가장 낮은 가르침. 유마경. 아미타경. 금강경. 능엄경 등의 경전)
만약 부처님의 제자(弟子)로써
가지가지의 보살행(菩薩行-육바라밀)을 닦아
무상지혜(無上智慧-위없는 지혜 즉 부처가 되는 것)를 구하면
청정도(淸淨道-맑고 깨끗한 가르침)를 연설(演說)해줍니다.1-52
이 게송은 반야부의 가르침을 노래한 것이다.(반야가 들어간 모든 반야 계통의 경전. 광찬반야경. 대반야경 등... 대승경전 중에서 화엄경보다는 낮고 방등부의 경전보다는 높다.)
내가 저쪽 불국토(佛國土)를 보니
항사(恒沙-항하강의 모래 수와 같이 많음) 같은 보살(菩薩)들이
가지가지의 인연(因緣)으로
불도(佛道)를 구합니다.1-54
❖보살들이 육바라밀 닦는 일을 전체적으로 노래했다.
이 게송은 타방의 모든 부처님이 지금의 우리 석가모니부처님처럼 무량의경을 연설하시고 광명을 놓는 일을 노래한 것이니, 법화부의 가르침을 나타낸 게송이다.
모든 부처님의 신력(神力-신통력(神通力))과
지혜(智慧)는 희유(希有-매우 드물다)하시고
한 줄기 청정(淸淨)한 광명(光明)을 놓아
헤아릴 수 없는 불국토(佛國土)를 비추십니다.1-87
5-무량의경은 등각의 보처보살의 경지를 논한 것으로, 1품의 무명(無明)을 남겨 놓고, 미륵보살이 “시방의 모든 중생과 보살과 부처님을 뵈었다.”하신 것이 그 증명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경전의 위치를 놓고 보면 무량의경은 반드시 화엄경보다 위에 있음을 알아야한다.
6-화엄경의 등각(等覺)과 법화경의 등각에는 반드시 차이가 있다. 화엄경은 선재동자가 수행의 계위를 찾아다니어야 깨달음을 얻지만, 무량의경은 광명을 통해 한 번에 모두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7-법화경을 통해 지금 소승의 무리와 연각의 무리와 보살의 무리가 모두 무량의광명을 통해 등각의 위치에 오게 되었으니, 이는 일체의 보살도 부처님의 가르침이 없이 스스로 계위에 오를 수 없음을 알 수가 있다.
8-육취중생이 만약 법화경을 지니거나 읽는다는 것은 이시인연의 공덕에 의해, 불도를 이루게 되는데, 이는 무량의광명을 비록 보지는 못했을지라도, 그 말씀을 알게 되었고, 그 말씀을 알게 된 바에야 어찌 무량의광명과 인연이 없을 것인가! 따라서 부처님의 입장에서는 법화회상에 참석한 제자든 참석하지 못한 현재 우리들이든 간에 차별이 없이 가르침의 혜택을 베푸심을 알 수가 있다.
9-무량의광명을 보거가 깨치려면, 부처님이 이르시길, “어제여래(於諸如來) 기자부상(起慈父想)”을 관(觀)하라고 하셨으니, 즉 상(想)은 관(觀)의 다른 명칭이다. “모든 여래에 대해 자비하신 아버지와 같다는 생각을 일으키라.”하셨으니, 평소에 이렇게 관을 하면 효과가 있다. “내가 여기 법화경을 지니고 읽는 경지에까지 오게 된 것은, 모두 석가모니부처님이 나를 가엾게 여겨 이끌어주신 것이다.”하면, 번뇌가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며 법화경의 글이 모두 생신(生身)의 부처님처럼 보이게 된다.
10-육취(六趣)란! 현재 비록 사람의 몸을 하였으나, 그 내면에는 이미 육취의 몸이 잠재되어 있다. 따라서 죄업에 따라 지옥이나 아귀나 축생이나 수라나 인도나 천상의 몸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법화경을 지니고 읽고 외우며 베껴 쓰고 공양을 드리면, 비록 사람의 몸을 했거나, 중생의 몸으로 태어날지라도 반드시 법화경의 인연을 만나 법화경을 닦게 된다.
11-이미 무량의경을 통해 방편의 8만4천의 가르침을 모두 알게 된 바에야, 그 공덕만 가지고도 비록 중생의 몸을 했지만 단순히 중생이라 하지 않는다. 열반경에서 부처님이 이르시길, “이 열반경을 지닌 사람은 이미 중생이기는 하나 중생이라 하지 않고 중생보살이라 하느니라.”하신 마당에 법화경을 지닌 사람에 있었으랴!
따라서 법화경에서 부처님이 “이 법화경을 지닌 사람에게 내가 지금 아뉵다라삼막삼보리의 수기를 주리라.”하심은, 이미 서품에서 8만4천 대장경의 가르침을 읽었기 때문임을 알아야한다.
이시인연(以是因緣)을 해석하자면 그 끝이 언제 끝날지 모르기 때문에 이만 줄입니다.
12-지개엄정(地皆嚴淨)을 풀이하매 있어 일승석(一乘釋)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지(地)란 몸을 말하니 천화(天華)가 비 내리듯 내려오면서 대중이 모두 청정신(淸淨身)을 얻게 된 것처럼, 지금 법화경을 읽고 외우며 베껴 쓰고 공양을 드리는 모든 사람들 역시 지개엄정의 청정신을 얻게 되나니 이를 일승지(一乘地)의 몸을 얻었다 한다.
개(皆)는 “모두”란! 뜻이나, 시방의 일체중생 중에 반드시 법화경을 읽고 외우는 사람만을 가리킨다. 시방세계에 중생을 셋으로 나누면 첫째 불도(佛道)를 모르는 중생과, 둘째 불도를 알지만 법화경에 들어오지 않은 중생과, 셋째 법화경을 아는 중생이다.
부처님 당시에 세 부류의 사람이 존재하였다. 첫째 부처님이 출현하셨으나 부처님이 출현한 사실을 몰라 부처님이라는 말조차 모르는 사람의 부류, 둘째 부처님이 출현한 사실을 알고 부처님이라는 말은 들었으나 부처님을 뵙지 못한 사람의 부류, 셋째 부처님이 출현한 사실을 알고 부처님을 직접 찾아가 뵌 사람의 부류다.
법화경을 만난 것 자체는 중생의 입장이나 부처님의 입장에서 이미 묘법의 인연이 된다. 따라서 부처님과 중생을 개라 하기 때문에 묘법개(妙法皆)가 되는 것이다.
엄(嚴)은 화엄경에서 이미 시방세계를 연화장 세계라 말씀하셨으니, 이미 화(華)는 연화(蓮華)를 뜻하고 엄(嚴)은 장엄(莊嚴)을 뜻하며 경(經)은 불심(佛心)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연화엄(蓮華嚴)이라 하는 것이다.
정(淨)은 중생이 법화경을 통해 청정도(淸淨道)를 닦아 청정심(淸淨心)을 일으켜 청정지(淸淨地)에 안주해 청정행(淸淨行)을 이루게 되니, 이 모두 비록 중생이기는 하나 등각지(等覺地)에 올라 가제(假諦)에서 법화경을 통해 중제(中諦)를 깨달아 경전정(經典淨)을 성취하게 되는 것이다.
13-이차세계(而此世界)를 풀이함에 있어, 이승석(二乘釋)의 관점에서 보면, 방등경의 세계는 인연에 따라 세계를 관찰하기 때문에 그 보는 경계가 소박하다.
반야경의 세계는 세계를 관찰함에 넓기는 하나 높고 깊음에 있어 보살의 근기에 따라 차이가 난다.
화엄경의 세계는 비록 삼세의 시방세계를 모두 보기는 하나 본지(本地)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물고기를 잡았으나 보기만 할 뿐 먹지는 못한 상태에 있다.
법화경의 세계는 이미 불부(佛父)와 불모(佛母)의 부모님을 통해 태어났기 때문에 비록 중생의 몸을 하였으나, 삼계를 노니는 일 자체가 객인(客人)과 같다. 따라서 법화경에서 부처님이 이르시길, “법화경의 법사는 청정한 곳에 태어날 수 있으나, 중생을 가엾게 여겨 이곳 사바세계에 태어나는 것이니라.”하시었다.
14-육종진동(六種震動)을 풀이하면, 부처님이 중생을 건짐에 있어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 중생을 직접 교화하는 일이시고, 둘째는 중생의 환경을 변화시켜 교화하는 일이다. 지금 육종진동은 이 둘을 모두 교화하시는 것이니, 첫째는 중생을 육근을 뒤 흔들어 청정하게 하심이고, 둘째는 대지를 뒤 흔들어 청정하게 하심이다.
15-법화경을 만나는 것을 이시인연이라 하니 이를 일승인연(一乘因緣)이라 한다.
어떤 중생이든 법화경에 오게 되면 그 몸과 마음이 함께 장엄하고 청정해지기 때문에 이를 묘법엄정(妙法嚴淨)이라 한다.
이미 시방의 모든 세계가 비록 연화장의 세계이기는 하나 법화경에 오지 않으면 생사가 반복하는 세계에 속한다. 하지만 이미 법화경을 읽고 외우며 베껴 쓰고 공양을 드린다면, 이는 이미 시방세계에다 공양을 드리는 것이 되니 이를 연화세계(蓮華世界)라 한다.
법화경의 가르침을 통해 중생이 부처님이 됨에 있어, 육근이 여섯 번의 진동을 일으키면 바로 중생의 육근이 부처님의 육근으로 뒤 바뀌게 된다. 이를 경전을 통해 얻게 되기 때문에 경전진동(經典震動)이라 하는 것이다.
-偈頌-
지금 우리들이 법화경을
읽고 외워 불도에 드는 것처럼,
시방의 제불 역시 우리와
같은 경력을 거쳐서 불도에 들었음을 안다면,
법화경을 읽고 외우는 일에 있어
어찌 게으름을 피울 수 있으랴!
-寶雲法師 嚴淨合掌-
一乘妙法蓮華經
一切諸佛神通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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