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한국문학과 광복작성자 심현섭 26-08-18
한국문학과 광복
한국문학은 '한글'이라는 붓으로 한국의 멋과 전통, 문화와 정신을 표현하는 문자 예술입니다. 한국문학과 한글은 마치 새의 두 날개와 같아서, 어느 하나라도 없이는 날아오를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글을 쓰는 이들은 가장 행복한 문인들입니다.
첫째, 한글이라는 훌륭하고 뛰어난 표현 수단을 가지고 있습니다.
둘째, 창작의 소재나 내용에 제약을 받지 않으며, 순수문학이 온전히 꽃필 수 있는 자유로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셋째, 문학 외적인 요인으로 생계를 위협받지 않는 경제적 자립 환경을 갖추었습니다.
이처럼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마음껏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세상이기에, 문인들은 자신만의 창의적인 작품을 마음껏 남길 수 있습니다.
오늘날 글을 쓰는 입장에서 한글이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란 불가능합니다. 한글이 없었다면 과연 지금의 한국문학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요? 더욱이 디지털과 인터넷 시대인 오늘날, 모든 데이터와 의사소통이 한글로 이루어지는 현실을 보면 한글의 가치는 더욱 절대적입니다.
조선 세종대왕께서는 글자와 말이 서로 달라 백성들이 겪는 고통을 안타깝게 여겨,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문자를 창제하셨습니다. 1443년 창제 이후 시범 적용 단계에서 《용비어천가》를 지어 문자의 실용성을 검증하셨고, 마침내 1446년 훈민정음을 세상에 반포하셨습니다. 이후 한글은 한동안 '언문'이라 비하되며 주로 궁중 여인들이나 서민들의 서간문으로 쓰였으나, 《홍길동전》, 《한중록》, 《계축일기》, 《구운몽》, 《춘향전》, 《심청전》 등 순한글 소설들이 나오며 한국문학의 든든한 싹을 피워냈습니다.
본격적인 한글 사용의 전환점은 갑오개혁(1894년)이었습니다. 고종은 칙령 제1호를 통해 *"법률과 칙령은 모두 국문(한글)을 본으로 삼고, 한문 번역을 붙이거나 국한문을 혼용한다"*고 규정했습니다. 훈민정음 반포 이후 약 450년 만에 한글이 국가 공문서의 공식 문자(국문) 지위를 획득한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2년 뒤인 1896년에는 서재필이 최초의 한글 신문인 《독립신문》을 창간하여 일반 대중이 한글을 통해 신문물과 언론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주시경 선생은 편집 및 교정을 맡으며 우리말 문법체계를 최초로 정리·체계화했고, '한글'이라는 이름을 부여했습니다. 나아가 나라 말을 지키고 널리 쓰는 것이 곧 나라와 민족을 지키는 길임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1906년에는 근대소설의 문을 연 이인직의 《혈의 누》가 발표되었고, 이후 수많은 시와 소설이 신문 매체를 통해 쏟아져 나왔습니다. 1910년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자, 국문으로 작품을 쓰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민족의 정신세계를 지키려는 자립과 독립 투쟁이 되었습니다. 이 시기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 이광수의 《무정》, 한용운의 《님의 침묵》, 홍명희의 《임꺽정》,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등 뛰어난 작품들이 배출되었고, 1930년대에는 염상섭의 《삼대》, 채만식의 《탁류》 등이 민족문학의 계보를 이었습니다.
당시 조선의 많은 인재들은 신학문을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졸업 후 일본에서 자리 잡기는 힘들었고, 국내로 돌아와도 고등교육을 받은 이들이 설 자리는 교사나 신문·잡지기자 정도로 매우 협소했습니다. 이처럼 궁핍한 시절, 지식인들은 생계를 위해 시나 소설을 써서 원고료를 벌고자 했습니다.
근대화의 개화 정신으로 충만했던 이들이었으나, 일제의 통치가 길어지고 조선어 말살 정책과 검열·감시가 극에 달하자 점차 극단적인 좌절감에 빠졌습니다. 안타깝게도 문학을 주도하던 수많은 문인들이 잇달아 '친일파'로 변절하여 일제를 찬양하고, 청년들에게 징용과 학병, 심지어 카미카제 출격을 선동하는 글과 연설을 남겼습니다. 해방 후 이들은 "일제가 이렇게 빨리 망할 줄 몰랐다", "시류에 순응하며 살려 했을 뿐"이라며 변명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굴복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육사, 한용운, 윤동주, 이상화, 심훈 등은 암흑기 속에서도 민족정신을 지키며 독립을 열망했습니다. 이상화 시인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고 절규하듯 노래했고, 심훈은 일제의 검열로 출간되지 못한 시집에서 다음과 같이 피를 토하듯 시를 썼습니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드리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애석하게도 이들은 모두 광복의 기쁨을 직접 누리지 못한 채 눈을 감아야 했습니다. 심훈 시인 역시 1936년, 35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항복으로 마침내 한반도에 환한 광복의 빛이 비추었습니다. 햇살 아래 안개가 걷히듯 친일문학은 일거에 자취를 감추었고, 자유롭고 새로운 문학의 장이 열렸습니다. 문학이 사상이나 정치, 종교에 종속되지 않을 때 비로소 진정한 순수문학이 피어납니다.
개화기에 싹을 틔운 한국문학은 일제강점기의 엄혹한 시련을 견뎌내고 광복과 함께 마침내 화려한 봄을 맞이했습니다. 이후 사상 대립과 전쟁, 독재와 민주화, 경제개발 등 파란만장한 역사적 난제 속에서도 한국문학은 굳건히 명맥을 이어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백여 년의 역사를 거쳐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결실을 맺으며, 오늘날 세계를 감동시키는 한류 문화의 든든한 토대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