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상: 몇년 지난 글입니다.
월드컵 분위기가 뜰 때
축구에 대한 남자와 여자의 관점를 소개한 글이
있었는데,
여기에서 다시 읽어 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군요
꼬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신지요?
제 목: [잡담] 미국에서, 월드컵 그리고 5-0
올린이: 김정호(amdg77)
미국 시간으로 오후 3시에 시작된 네덜란드와의 경기… 축구의 축자도 모르는 나지만 역시 국가 대항전은 흥분되는 경기였다. 미국에서는 전혀 월드컵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 NBA 최종 결승전이 더 미국을 들끓게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도 오늘은 3대 방송 중의 하나인 ABC에서 중계를 해 주었다.
경기 내용이야 밤 설치면서 본 사람들이 더 잘 알테고. 뭐 나도 조선의 청년답게 혼자 방방 뛰면서 봤다. 5-0… 이거 뭐 동네 축구도 아니고… 김이 샌다는 것이 이때 가장 적절한 표현이겠지. 그래도 미국 해설자는 좋은 방향으로 얘기를 해 준다. 그러다가 후반들어서 대량 실점을 할 때는 "아! 네덜란드, 또 한 골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슛! 골인~~" 이런 식으로 내 속을 다 긁어 놓았다.
끝나고 나우에 접속을 해 보니 온갖 화풀이를 다 해놓은 글들이 1 시간에 수 백개 씩 올라오고 있었다. 자포자기 하는 듯한 글이 주류를 이루었고… 어쩌면 이것이 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오직 현실에 대한 냉정한 판단과 자신의 열악한 조건에서 최선을 다한 준비, 꼭 그 만큼의 결과만 우리에게 돌아온다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은 다시 확인한 경기였다.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축구에서의 승리를 원한다면 결국 그 승리를 위한 준비를 해야만 할 것이다. 말의 잔치 속에서 우리 손에 쥐어지는 것은 5-0이라는 참담한 현실 밖에 없다.
어느 기사처럼 월드컵은 19세기 세계의 축소판이다.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짜 놓은 세계라는 무대에서 식민지 전쟁이라는 게임이 벌어지는. 결국 월드컵에 참석해서 다크호스랍시고 성장한 국가들. 그 선수들 면면을 살펴보면 모두 유럽의 프로리그에서 성장해서 활약하고 있다. 어쩌면 그렇게 제국주의 국가에 유학온 식민지 청년의 비애를 느끼게하는지 모르겠다. 제국주의에게 세뇌당해서, 그것에 동화되는 것을 일생의 목표로 삼고 그들에게 아부하며, 자신을 낳아준 조국은 언제나 촌스럽고, 가서 관료나 교수 한 자리 할 때에만 금의환향할 곳 정도로만 치부되는… 나는 왜 유럽의 리그에서 뛰는 아시아나 아프리카 선수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까?
20세기의 마지막 월드컵은 그렇게 무르익어 간다. 19세기 제국주의의 식민지 운동의 축소판이라고나 할까? 더욱이 프랑스가 무대라는 것도 아주 적절하다. 유럽에서 벌어지는 유러피언들의 축제, 들러리를 서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들만의 리그에 죽을똥 살똥 다 싸며 뛰어다니는 우리 선수들을 보면서 어쩐지 서글픈 생각이 드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국가 간의 전면전이 사라진 시대에 어찌보면 그 대리전 성격을 띄는 98년 월드컵~! 5-0으로 전멸한 우리 선수들을 보면서 나는 왜 1 세기 전 강화도 앞바다에 출몰한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군함이 떠오르고 구식 무기로 구식 전술로 싸우다가 거의 전멸하다시피한 강화도 수비대가 떠오르는 것일까? 차범근 감독의 노트북 컴퓨터가 상징하는 '과학적인 축구'는 왜 마이크로 소프트와 여타 미국의 업체가 주도하는 이른바 정보화 시대에 침몰하는 아래 한글을 연상시키는 걸까?
결국 문제는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우리의 현주소를 정확히 보는 것, 5-0의 패배는 그것을 가리키는 가늠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진정한 여유, 그러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옹골찬 의지… 우리 늦지 않았다. 이제 다시 싸우면 된다. 다시 일어서서 싸우면 된다. 박노해의 [사람만의 희망이다]에 수록된 '새벽 슬픔' 중에서 마지막 연이 기억이 나서 옮겨본다.
어제 읽은 충무공의 난중일기 한 구절 감옥에서 풀려나 겨우 목숨 하나 건진 이순신이 멀리 파도 넘어 막강한 왜적의 대공세를 홀로 꿰뚫어보며 아무 권력도 병사도 없는 백의종군의 처지에서 적어놓은 그의 심정이 이 새벽, 홀로 벽 앞에 앉아 종이를 씹어 코피를 막고 있는 나의 심정 그대로 사무치게 울려옵니다.
"1587년 6월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말들의 편자를 덤덤히 박았다."
제목: [퍼옴] 한 페미니스트가 본 월드컵
축구신의 종말 [=전쟁의 종말]
오! 축구 신이여 !
축구는 남자의 종교이다.
월드컵 축구, 올림픽 축구! 남자는 축구 제전을 기다린다. 경건한 마음으로 혼연일체가 되어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축구라는 위대한 제사 의식을 통해 남자는 공동체 의식을 경험한다.
축구를 통해 남자는 패를 갈라 전쟁을 치른다. 마치 남자가 만든 종교를 통해 종교전쟁을 치렀듯이, 이제 전쟁이 악이라고 인류에게 판정받은 이상 남자는 그들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호전성을 발휘할 기회가 없어져서 끙끙대다가 축구라는 구세주를 발견한 것이다. 더 이상 남자는 종교 전쟁을 할 수가 없어. 전쟁은 나쁜거라고 하더군. 그들은 이렇게 말하고는 시무룩해져서 살맛을 잃어 버렸다. 그런데, 가느다란 희망이 구세주처럼 나타난 것이다. 남자의 구세주, 축구여! 오 탁월한 전쟁 대리인이여! 확실히 스포츠는 전쟁 대리 역할을 충실히 하여 왔다. 전쟁을 좋아하는 국가는 스포츠를 잘한다. 구 소련처럼.
축구를 발견하고 남자가 만든 종교의 오류로 끙끙대던 남자는 이제 새로운 종교를 만난듯이 기뻐한다. 만세! 오 축구 신이여! 남자의 위대함을 분출하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시는군요. 이들은 모두 열에 들떠 지구촌이 떠나갈듯이 혼연일체가 되어 축구 제전을 손꼽아 기다린다.
남자는 왜 축구에 미쳐 지구가 떠나갈듯이 너나없이 축구축구축구 해야 하는지 의심하지 않는다. 신에 대해 의심하면 이미 신앙이 아니다. 남자가 만든 종교는 절대 의심받거나 그 존재가치가 도마위에 올라 사람들 입으로 토막내어지면 안된다. 그것은 오로지 찬양받아야 하며 맹목적인 노예를 필요로 한다.
남자는 이제 맹목적이 되어 축구의 노예가 된다. 이들은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은 경건하게 목욕재배하고 하루종일 기도한다. 하루종일 가장 중요한 일은 축구를 보는 걸로 머리 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축구는 신이다. 중국에게 이기자 남자들은 모조리 "축구 이겼어" 하고 감격해 하며 떠들어댄다. 아마 자기 자식 낳았다고 이렇게 큰 소리로 떠들어 대는 남자는 없을 것이다. 축구는 찬송가도 만들어 낸다. "가자, 월드컵으로…" 라는 축구 찬송가도 있다. 그리고 찬송가를 부르는 가수가 정해지고, 또 축구를 종교로 부각시키는 월드컵 유치단이 정해지고 선교 활동을 벌이며 세계 각지를 쏘다닌다. 이들은 맹목적이다. 이들은 이미 축구라는 종교에 미쳐있다. 광신도보다 더욱 더 이들은 매일매일 기도한다. 축구는 이제 국가의 종교가 되어 방송에서 함께 예배를 본다. 모든 국민은 남자가 만든 축구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애국자가 아니다. 남자가 만든 신을 배반하면 종교 재판을 받았던 것이다.
축구는 국가의 부를 가져다 줄 것이다. 남자는 전쟁을 통해 상대를 지배하고 돈을 벌여 들이고 위신을 차릴 수가 있다. 또한 이름을 널리 알려 경제권을 확장시킬 수도 있다. 더군다나 남자가 만든 축구로 온 나라가 온 지구가 떠나갈듯이 공동체 의식을 발휘하면, 평소 개개인이 갈라져 갈등과 불화 속에서 고독했던 남자들은 축구신의 은혜를 입고 감격과 환상에 빠질 수가 있다.
온 국민이 성원하는 축구! 가장 호전적인 국가 일본은 역시 남자의 종교 축구에 맹목적으로 복종한다. 이들은 자기들의 평소의 호전성을 전쟁을 통해 드러낼 수가 없게 되자, 이제 축구로 풀려고 한다. 이에 질세라, 비교적 남자의 우월성이 그 막강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는 한국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하다. 일본과 한국처럼 남자의 종교 축구가 온 국민의 목소리를 사로잡아 버리는 국가는 참 드물 것이다.
어디까지나 축구는 남자의 종교 전쟁 대신이다. 한때는 야구가 그랬고, 이제 축구로 넘어 왔다. 올림픽을 치르면서 이름을 세계에 알린 경험이 있는 한국은 다시한번 그 기회를 잡고자 안간힘을 쏟는다. 경제적인 도약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하면서 남자의 종교 축구와 경제력과 연결을 지어 놓아야 국민의 호응을 얻고 그 만큼 선교 활동도 수월해지기 때문에 이들은 이런 방법을 쓴다. 스위스는 전쟁을 하지 않는 중립국인데도 잘만 살드만.
남자는 전쟁 좋아하는 습성을 절대 버리지 않을 것이다. 전쟁을 좋아하다 그 후유증으로 종교를 만들더니 종교 가지고도 종교전쟁을 하며 장난질 하더니, 희생이 너무 심한 전쟁을 포기하고 스포츠를 번성시키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스포츠 중에서 특히 남자의 스포츠는 종교 역할까지 이제 겸하게 되었다. 언제나 남자는 지구를 어떤 식으로든 지배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다. 특히 남성 천국인 일본과 한국은 그 극단을 달리고 있다. 그래서 여자들은 뒷구멍에서 소근대다 한숨쉬면서 손톱에 봉숭아 물이나 들이다가 일생을 마친다. <공자를 울린 여자, 7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