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명-수업을 왜 하지(며칠 전부터 읽은 책인데 오늘 정리하며 생각을 가다듬어 보았다.)
저-서근원
출-우리 교육
2016년 3월
<비 오는 날>
조록조록 조록조록 비가 내리에
나가 놀까 말까 하늘만 보네
쪼록쪼록 쪼록쪼록 비가 막 오네
창수네 집 갈래도 갈 수가 없네
주룩주룩 주룩주룩 비가 더 오네
찾아오는 친구가 하나도 없네
쭈룩쭈룩 쭈룩쭈룩 비가 오는데
누나 옆에 앉아서 공부나 하자.
시를 감상한다는 것은 독자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시의 정서를 공감하는 일이다. 하지만 폭우로 수해를 입은 학생들에게 이 시는 공허하다. 표준화된 프로그램은 학생의 다양한 수준과 관심, 각 학급이 처한 독특한 상황을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 학생의 수준, 속도, 관심이 서로 다른 아이들이 있으니 학급 여건과 상황을 고려한 수업을 찾아야 한다. 학교 수업 장면에서의 시감상이 단순히 각자가 시를 읽고 소감을 말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시 또는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형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학교의 업무는 정부가 새로운 교육정책을 시행함에 따라 점점 늘어나기만 한다. 과학 의 달 행사나 청소년 단체 운영 같이 과거 시행된 정책과 관련 업무는 그래도 있으면서 특기적성교육, 정보통신교육 같은 업무가 다시 부가된다. 고성능 컴퓨터와 인터넷이 등장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업무가 부여된다. 업무 과다들 호소하면 업무 줄이라는 공문을 내보내고 그 시행 결과를 공문으로 보고하라 한다. 또 공문 대신 업무 연락망을 이용하여 업무 처리 공문을 내보낸다. 사회에서 필요한 것, 학교 교육에 의해 해결하는 게 효율적이라 여기면 학교에 업무로 주어진다. 이런 정부 업무를 학교가 해야한다는 것이 통념이니 통념의 재고가 필요하다. 물 컵에 종이를 덮고 뒤집었을 때 물이 쏟아지지 않는 장면을 교사가 보임으로써 학생들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풍선실험으로 공기에도 무게가 있음을 확인하게 하는 경우도 국가 제공 교과서를 극본 삼아 연기하는 배우가 아닌, 스스로 극본을 써 나가는 작가이자 연출가로서 살아가야 한다.
환기하거나 다음 활동으로 넘어갈 때 종을 치거나 노래 부르는 방법은 부분적 효과를 거두나 서커스단의 조련사와 재주 부리는 곰의 관계처럼 만들어 놓을 위험이 있다. 마인드 맵을 그릴 경우 왜 마인드 맵을 만들어야 하는지. 이 수업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도 모르게 된다. 교과서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몇 가지 수업 방법과 학생 통제 방법만 익히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런 결롸물을 낳은 과정을 경험하게 하는 일은 교사 자신이 직접 해보지 않으면 가르칠 수 없다. 자저거 탈 줄 모르는 사람도 책보며 방법을 가르칠 수 있지만 실제 자전거 타는 방법을 가르치지는 못한는 것 처럼. 그런데 우리는 교수 방법에만 골몰하는 일이 있다.
엔진, 차대, 바퀴를 모아 놓았다고 자동차가 되지 않듯이 그것을 적절히 조립해야 하듯 그들 사이 관계를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이해는 내가 주체가 되어 하는 일이며 기억과는 다른 학습이다. 표면상 적극 활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상과 벌 보상 장치에 강화된 결과로 그 의미가 이해되지 않은 단어나 문장을 입으로 소리낼 뿐이라면 수동 객체로 학습은 단순한 문자를 기억해서 재생하는 것이 된다. 학생들은 토의를 하며 문자의 동일성과 관련된 질문을 하며 문자의 의미와 관련된 질문은 전혀 제가하지 않고 판에 박힌 방식으로 토의를 반복한다. 이 학생들에게 조사는 참고서에 적혀 있는 문자를 공책에 적는 것이고 발표는 발성 소리로 바꾸는 것, 학습은 그 문자나 소리를 뇌 신경망 속에 저장하는 것이다.
교사가 자신의 경험을 섞어 교과서 내용을 설명하면 학생은 교사의 이해 방식까지 함께 배운다. 즉 학습은 문자를 기억하는 일이 아니라 의미를 이해하는 일이며 능동적으로 배우게 된다.고로 교사는 학생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설명, 교사 자신이 교과서를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교과서를 배우는 것은 교사와 아이가 학교에서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고, 가장 중요한 삶이지만 교과서가 학생의 삶을 고려하지 못하면 배우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 교과서가 다루는 소재가 아이들 현재 삶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아이가 내 이해의 상대가 아니라 내가 정한 목표를 향하여 변화시켜야 하는 대상으로서만 보지 않으면 내 계획, 내 진도에 그렇게 얽매이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 소리 듣고 아이들 몸짓 읽고 아이들 말을 이해하려고 노력 할 것이다.
내가 맞닥뜨렸던 문제는 수업은 교사 자신이 이해한 바로서의 교과서를 가르치는 것 같다. 수업이라는 활동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하는 일로 교사와 학생 사이의 관계, 그들이 만나서 이루는 또 다른 현실이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수업을 통해 가르치려고 하는 것이 현제 수업에 참여하는 아이들 사이 관계에 적용되지 않으면 그 수업은 공허해진다.
- 1969년 빌리는 서베를린 외무장관직에서 4대 서독 총리가 되어 동독, 서독이 통일 되기 위한 동방정책을 위해 폴란드를 방문했다. 폴란드는 2차 세계 대전 중 독일인에 의해 전 인구의 20%가 희생되었다. 폴란드를 방문한 빌리가 유대인 추모비 앞에 무릎을 끓었다. 무릎을 끓은 것은 한 사람이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자체였다. 동방정책은 성과를 거둬 유럽 평화를 정착, 1971년 빌리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가 왜 무릎 꿇었나 묻는 사람에게 그는 ‘역사의 무게 아래서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행동을 했을 뿐이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