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종일토록 기다렸으나, 아이는 깨어나지 않았다. 가끔 한 사람이 커피를 마시려고 아래층에 있는 카페테리아에 가기도 했으나, 이내 아이의 일이 떠올라 죄를 짓는 듯한 기분이 들어 테이블을 박차고 허겁지겁 병실로 돌아왔다. 그날 오후 다시 병실을 찾은 닥터 프랜시스는 아이의 상태를 다시 한번 살펴보더니 아이가 잘하고 있는 중이니 곧 깨어 날거리고 말하고는 병실을 떠났다. 전날 밤에 일하던 간호사들과는 다른 간호사들이 이따금 병실을 찾았다. 그리고 검사실에서 온 젊은 여성이 방문을 두드리고 병실로 들어왔다. 하얀 슬랙스에 하얀색 블라우스를 입은 그녀는 몇 가지 물건이 담긴 작은 쟁반을 들고 와 병상 옆 작은 탁자에 놓았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아이의 팔에서 피를 뽑았다. 그 여자가 아이의 팔에서 핏줄을 찾아 주삿바늘을 찌르자, 하워드는 눈을 감았다.
“이건 또 뭐예요?” 앤이 그 여자에게 물었다.
“담당의사의 지시예요.” 젊은 여자가 대답했다. “저는 시킨 대로 하는 것뿐이에요. 피를 뽑으라고 해서 피를 뽑는 거예요. 그런데 어디가 아픈 거예요? 이렇게 예쁜 애가”
“차에 치였답니다.” 하워드가 말했다. “뺑소니요.”
젊은 여자는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더니 다시 아이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쟁반을 들고 병실을 떠났다.
“애가 왜 깨어나지 않는 걸까?” 앤이 말했다. “이 사람들은 왜 얘기를 안 해주는 거야?”
하워드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는 다시 의자에 앉더니 다리를 꼬았다. 그러고는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그는 아들을 한 번 바라본 뒤,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대고 앉아 눈을 감고 잠들었다.
앤은 창가로 걸어가 주차장을 내다봤다. 밤이라 자동차들을 불을 켜고 주차장을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 창틀을 꽉 잡은 채 서 있었다. 그녀는 이제 자신들이 다른 어떤 곳, 어떤 어려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무서웠다. 입이 덜덜덜 떨리기 시작하자 그녀는 입을 앙다물었다. 병원 앞에 자동차 한 대가 서자, 긴코트를 입은 한 여인이 그 차에 올라탔다. 그녀는 그 광경을 지켜봤다. 자신이 그 여자였더라면, 그래서 그게 누구든 자기를 태우고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그러니까 스코티가 기다리고 있다가 자신이 차에서 내리면 “엄마!”하고 외치면서 품 안으로 뛰어들어오는 곳으로 데려갔으면 좋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워드가 깨어났다. 그는 다시 아이를 쳐다봤다. 그러더니 의자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켠 뒤, 창가로 걸어가 앤의 곁에 멈춰 섰다. 두 사람은 나란히 주차장을 응시했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이제 서로의 속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치 하도 걱정해서 온몸이 저절로 투명해진 것처럼.
문이 열리고 닥터 프랜시스가 들어왔다. 이번에 그는 다른 양복에 다른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잿빛 머리칼은 양옆으로 잘 빗었으며 막 면도를 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곧장 병상으로 걸어가 아이를 살펴봤다. “지금쯤은 의식이 돌아와야 하는데, 이 경우에는 뭐라고 설명할 방법이 없네요.” 그가 말했다. “어찌 되었건 위험한 고비는 넘겼다고 생각해도 좋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이가 정신을 차리면 좀더 나아지겠죠. 지금으로선 왜 깨어나지 않는지 설명할 방법이 정말 없습니다. 금방 깨어날 겁니다. 아, 깨어나게 되면 머리가 엄청나게 아프다고 말할 겁니다. 그건 염두에 두셔야겠어요. 하지만 다른 건 다 괜찮습니다. 아주 정상적이에요.”
“그럼 지금 혼수상태인 건가요?” 앤이 물었다.
의사는 매끄러운 뺨을 손으로 문질렀다. “당분간은 그렇다고 할 수 있겠죠. 곧 깨어나면 달라지겠지만, 어쨌든 지치실 겁니다. 힘든 일이에요. 힘든 일이라는 건 저도 알아요. 나가서 뭘 좀 드세요. 그래야 힘들 내죠. 병실을 지킬 간호사를 하나 부를 테니까 편안한 마음으로 다녀오세요. 가서 뭘 좀 드세요.”
“입맛이 전혀 없어요.” 앤이 말했다.
“그럼 편하신 대로 하세요.” 의사가 말했다. “어쨌든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모든 징후는 좋으며, 모든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왔다는 겁니다. 이상한 건 하나도 없으니까 이제 깨어나기만 하면 모든 고비를 넘긴 거예요.”
“고맙습니다, 선생님.” 하워드가 말했다. 그는 다시 의사와 악수했다. 의사는 하워드의 어깨를 두들기더니 밖으로 나갔다.
“둘 줄 한사람은 집에 가봐야 할 것 같은데.” 하워드가 말했다. “슬러그 녀석 밥도 줘야 하고 말이야.”
“옆집에 전화해요.” 앤이 말했다. “모건네에다. 부탁하면 강아지 밥쯤이야 주겠죠.”
“알았어.” 하워드가 말했다. 그러고는 조금 쉬었다가 말을 이었다. “여보, 당신이 밥을 주고 오면 어때? 가서 집도 좀 둘러보고 다시오면, 그게 당신에게도 좋을 것 같아. 여기는 내가 지키고 있을 테니까. 진지하게 생각해봐. 힘을 아껴둘 필요가 있는 거니까. 얘가 깨어난 뒤에도 계속 병실을 지켜야만 할 테니까 말이야.”
“당신이 가지 그래?” 앤이 말했다. “슬러그 밥도 주고. 당신도 좀 먹고.”
“나는 이미 갔다 왔잖아.” 그가 말했다. “정확하게 한 시간 십오 분 동안 집에 있다 왔지. 당신도 한 시간 정도 집에 다녀와서 기운을 좀 차리라구. 그런 다음 병원으로 다시 와.”
그녀는 그 말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노력했지만, 너무 지쳐 있었다. 그녀는 두 눈을 감고 한 번 더 생각해보려고 애썼다. 잠시 뒤 그녀가 말했다. “그래. 잠시 집에 다녀올 수도 있는 거야. 어쩌면 내가 여기 앉아서 눈도 떼지 않고 지켜보기 때문에 이애가 깨어나지 않는 건지도 몰라. 그럴지도 모르지. 내가 여기 없으면 스코티가 깨어날지도. 집에 가서 몸을 좀 씻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슬러그 밥도 주고, 그다음에 돌아오면 되는 거니까.”
“내가 여기 있을게.” 그가 말했다. “당신은 집에 다녀와. 내가 여기서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똑똑히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오랫동안 술을 마신 사람처럼 그의 눈은 작고 충혈돼 있었다. 그의 옷은 구겨져 있었다. 턱에는 다시 수염이 비어져나왔다. 그녀는 손으로 그의 얼굴을 한 번 만졌다. 그가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걱정하는 표정도 보이지 않고, 얼마간이라도 그저 혼자서 보내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그녀는 이해했다. 그녀는 침대 옆 탁자에 놓인 핸드백을 집었다. 그는 외투를 입는 그녀를 도왔다.
“금방 올게.” 그녀가 말했다.
“집에 가서 좀 쉬라구.” 그가 말했다. “배도 채우고. 샤워도 하고. 목욕탕에서 나온 뒤에는 가만히 앉아서 그냥 쉬어. 그렇게 하면 꽤 편해진다는 거 알지? 그런 다음에 돌아와.” 그가 말했다. “걱정은 이제 좀 그만 하기로 하자구. 닥터 프랜시스가 하는 말 들었잖아.”
그녀는 외투를 입고 선 채로 잠시 의사가 정확하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하려고 애썼다. 혹시 그가 한 말 중에 어떤 암시가 되는 말이 있었는지, 혹시 넌지시 알려준 것이 있지는 않았는지. 그녀는 의사가 몸을 수그리고 아이를 살펴볼 때 조금이라도 표현이 달라진 게 있었는지 기억하려고 애썼다. 그녀는 아이의 눈꺼풀을 들춰보고 심장 박동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의사가 어떤 표정이었는지 기억해냈다.
그녀는 문까지 걸어갔다가 몸을 돌려 다시 돌아봤다. 그녀는 아이를 바라본 뒤, 애 아빠를 바라봤다. 하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문밖으로 걸어나간 그녀는 문을 끌어당겨 닫았다.
그녀는 엘리베이터를 찾아 간호사실을 지나 복도 끝까지 쭉 걸었다. 복도 끝에서 그녀는 오른쪽으로 돌아 흑인 일가족이 고리버들 의자에 앉아 있는 작은 대기실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카키색 셔츠와 바지를 입고 야구모자를 뒤로 눌러쓴 중년 남자가 있었다. 실내 드레스와 슬리퍼 차림의 덩치 큰 여자는 구부정하게 의자에 앉아 있었다. 청바지 차림에 여러 갈래 꼬아 묶은 머리 모양의 십대 여자애는 발목을 교차시킨 채 의자에 거의 눕듯이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앤이 대기실로 들어서자, 그 가족들의 눈동자가 앤을 향했다. 작은 탁자 위에는 햄버거 포장지와 스티로폼 컵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프랭클린.” 덩치 큰 여자가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 “프랭클린 때문에 온 건가요?” 그녀의 눈동자가 커졌다. “무슨 일이에요? ” 그 여자가 말했다. “프랭클린 때문인가요?”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려고 하자 남자가 여자의 팔뚝으로 손을 가져갔다.
“침착해, 에벌린.” 그가 말했다.
“미안합니다.” 앤이 말했다. “저는 엘리베이터를 찾고 있어요. 제 아들이 병원에 있는데, 지금 엘리베이터를 찾을 수가 없어요.”
“엘리베이터는 그쪽으로 쭉 가서 왼쪽으로 돌면 나와요.”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키며 그 남자가 말했다.
여자에는 담배 연기를 빨아당기고 앤을 바라봤다. 그애의 눈이 찢어질 듯 가늘어지는가 싶더니 두툼한 입술이 천천히 벌어지며 연기가 빠져나왔다. 흑인 여자는 고개를 떨구고 더 이상 흥미가 없다는 듯 앤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제 아들은 차에 치였어요.”앤이 남자에게 말했다. 앤은 뭔가 설명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뇌진탕이 있어서 두개골이 조금 골절됐는데,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군요. 지금은 쇼크 상태에 빠졌는데요, 말하자면 혼수상태라고도 할 수 있죠. 우리가 걱정하는 건 그거예요. 혼수상태. 저는 지금 잠깐 나갔다 오려고 하구요. 남편이 애하고 같이 있어요. 제가 올 때쯤에는 아마 아들이 정신을 차리겠죠.”
“안됐습니다.”라고 말하며 그 남자는 앉은 자세를 조금 바꿨다.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탁자를 내려다보더니 다시 앤을 바라봤다. 그녀는 여젼히 거기에 서 있었다. 그가 말했다. “우리 프랭클린은 지금 수술대 위에 있어요. 어떤 사람이 칼로 찔렀습니다. 죽이려고 했죠. 싸움에 휘말렸어요. 파티에서 말이죠. 사람들 말로는 우리 애는 그냥 서서 구경만 하고 있었대요. 어느 한쪽을 괴롭힌 것도 아니고. 이런 말을 아무리 떠들어봐야 요새는 소용없어요. 그 녀석은 지금 수술대에 누워 있어요. 그저 기도하고 잘되기를 바라는 것 빼고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지요.” 그는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앤은 여자애를 다시 쳐다봤다. 그애는 여전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앤은 두 눈을 감고 머리를 뒤로 젖힌 채 앉아 있는 나이 든 여자를 바라봤다. 앤은 그 입술이 소리 없이 움직이며 말을 하는 것을 봤다. 앤은 그게 무슨 말인지 알고 싶은 강한 욕구를 느꼈다. 그녀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기다림이라는 상황에 처한 이 사람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녀도 두려웠고, 그들도 두려웠다. 모두 두려움 속에 있었다. 그녀는 그 사고에 대해 더 많은 얘기를 하고 싶었다. 스코티가 어떤 아이였는지 그들에게 더 얘기하고, 또 사고가 월요일, 그러니까 그애의 생일에 일어났다는 것을, 그런데 그애는 아직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그들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녀는 그 남자가 가리킨 복도를 따라 걸아가다 엘리베이터를 발견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이 하는 행동이 올바른 것인지 곱씹으면서 당힌 문 앞에서 일 분 정도 기다렸다. 그리고 손가락을 내밀어 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