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 때 절친인 Y가 일산에 있는 자기네 집에서 만날지, E 대 전철역에서 만날지 선택하라고 했다. 나는 모처럼 모교도 구경할 겸 후자를 선택했다.
이민 오기 전, 졸업증명서를 떼러 방문한 뒤로 자그마치 이십여 년만인가 보다. 재학 시절, 학교에 정이 붙지 않았던 건 단지 여대여서만은 아니었다. 애당초 나와 맞지 않는 학교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인지 학교 다니는 내내 겉돌았고 졸업 후에도 찾아가고픈 마음이 딱히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선뜻 이 동네를 약속 장소로 정한 이유는, 과거의 공간에 잠시 머물고 싶은 강한 충동과 호기심 때문이었으리라.
학교는 놀랍게 변해 있었다. 교정을 둘러볼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많은 게 낯설어 보였다. 대강당과 그곳을 오르내리는 계단만이 학교의 상징처럼 옛 모습을 보존하고 있었다. 4년 동안 기거하던 기숙사가 진작에 허물어지고 새로 현대식 건물이 들어섰다는 소식은 바람결에 들었지만, 굳이 그 터에 찾아가고픈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나를 위해 교정 안에서의 만남을 배려해 준 친구를 억지로 끌고 추억 여행이랍시며 어설픈 감상에 사로잡힐 수는 없었다. 하필이면 봄비까지 내려 쌀쌀하고 을씨년스러웠다.
정문에서 기숙사로 오가던 길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그 길과 오른편에 있던 운동장 터에는 우주 공간에서나 볼 성싶은 초현대식 건물이 기하학적 형상을 하고 자리 잡고 있었다. 그곳에는 베이커리, 커피숍, 레스토랑이 입점해 있어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기엔 안성맞춤이었다. 풋풋한 여대생들이 테이블 이곳저곳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친구와 나는 블루베리 스콘과 카페라테를 먹으면서 어린 후배들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 속에 끼어든 내가 자연스럽게 그들과 동화된 듯한 기분은 신선했다. 아무도 눈치 주는 사람이 없어 방해받지 않고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안락함마저 느껴졌다. 드문드문 바닥에 앉아 공부하거나 음식을 먹는 학생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잠시 교정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여전히 비는 그치지 않고 가랑비처럼 내렸다. 친구와 우산 하나를 같이 쓰고 꼭 방문하고 싶었던 음식점으로 향했다. 주먹밥으로 유명했던 그 집은, 대학생인 내가 아르바이트해서 월급을 받으면 들어갈 수 있는 음식점이었다. 상호는 ㄱㅁ분식이지만 가격은 분식 수준이 아니었다. 찰진 밥 속에 참기름 냄새가 살짝 나는, 간 소고기볶음이 들어있는 삼각 주먹밥. 그 주먹밥이 나를 이쪽으로 약속 장소를 정하게 한 일등 공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ㄱㅁ분식은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공간 확장 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주먹밥만 먹으려 했는데 그건 더 이상 별도 음식으로 주문받지 않는다고 했다. 할 수 없이 각자 우동을 시키고 주먹밥 일 인분을 추가 주문했다. 아쉽게도 주먹밥은 예전에 먹던 크기의 절반으로 줄어있었고, 맛은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앞서 디저트부터 해서 배가 불러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키지 않는 우동을 먹는 순간, 갑자기 잊고 있었던 옛 맛이 나를 자극하며 탄성을 지르게 했다. 친구에게 연신 '이 맛이야.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라고 외치며 우동 한 그릇을 단숨에 비워냈다. 그 순간, 프루스트의 자전적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마들렌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입천장에 닿자마자 엄청난 기억의 문이 열리는 묘사가 내게도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기대했던 주먹밥 대신 전혀 기억에 없던 매콤한 우동 맛이 후각과 미각을 건드려 내 심장을 뛰게 할 줄이야. 그것만으로 내가 이곳을 약속 장소로 정한 의미를 찾은 것 같아 은근한 만족감이 밀려왔다.
최초의 기억이 시작된 P 시의 옛 집터에서 어린 시절 향수에 젖으려 애쓰던 몸부림도 아마 그 연장선상에 있었으리라. 아파트 건물이 들어서 옛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동네에서 어릴 적 오르내리던 근처 산을 발견한 순간, 무척이도 크게 보이던 산이 겨우 동산 수준에 불과했으나, 내 시각은 자극을 받고 내 가슴은 알지 못할 감정으로 쿵 하고 울렸다. 봄여름이면 소꿉놀이 산나물을 캐겠노라고 친구들과 수도 없이 오르내리며 깔깔대던 내가 기억의 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옛 집터에서 5학년 1학기까지 다녔던 초등학교를 찾아 나서는 길은 마치 순례자의 발걸음인 양 숭고하기까지 했다.
기억이 감각을 통해 살아나는 순간을 포착하고자 한 건 다소 의도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한국 방문에서 내가 굳이 옛 추억의 공간을 찾은 이유는, 지금이 아니고서는 다시 '나'라는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찾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조바심에서 비롯되었으니 말이다. 감각을 통해 새록새록 기억이 움트는 순간을 맞이할 때마다 비로소 이번 여행이 나에게 참 절실했구나, 하는 생각에 빠져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