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기 「미상불(未嘗不)」,
존재의 여백에서 피어나는 역설의 시학
시평 이삭빛시인(본명 이미영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국립 노스웨스트 사마르대학교 문예창작 겸임교수
우병기 시인의 「미상불」은 제목부터 철학적이다. ‘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뜻의 이중 부정은, 곧 모든 것을 해보았다는 긍정이자, 아직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부정의 여운을 동시에 품는다. 시의 첫 연 ‘가난하여 버릴 것 없으니 / 마음 가벼운가’는 물질적 결핍이 정신적 자유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묻는다. 이는 노자의 ‘지족자부(知足者富)’— 만족을 아는 자가 진정한 부자라는 가르침과 맞닿아 있다. 시인은 소유의 부재를 통해 존재의 본질을 되묻는다. 가벼움은 자유일까, 혹은 무력함일까?
이어지는 ‘여려서 눈물 그토록 흘리니 / 맑은 영혼인가’는 감정의 투명성을 영혼의 맑음으로 연결 짓는다. 눈물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정화의 물이다. 이는 마치 ‘고통은 영혼을 씻는 비’라는 칼릴 지브란의 말처럼, 여림과 순수함이 고통을 통해 빛나는 순간을 포착한다. 시인은 감정을 과잉하지 않으면서도, 독자에게 내면의 진실을 직면하게 한다. 이 첫 두 연은 존재의 명암을 교차시키며, 시적 화자의 실존적 질문을 던지는 철학적 서문이다.
가난하여 버릴 것 없으니
마음 가벼운가
여려서 눈물 그토록 흘리니
맑은 영혼인가
가슴에 담을 게 너무도 많아
온누리 주마간산(走馬看山) 하는가
북극성처럼 반짝이는 스완송
꼭 부르고 싶은 그대인가 - 우병기의 「미상불(未嘗不)」 전문
고독한 순례자의 실존적 갈증
3연에 이르러 시인은 삶의 또 다른 모순을 마주한다. ‘가슴에 담을 게 너무도 많아 / 온누리 주마간산(走馬看山) 하는가’라는 구절은, 세상의 풍경을 온전히 품고자 하지만 결국 빠르게 스쳐 지나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유한성을 드러낸다. ‘주마간산’은 말을 타고 산을 본다는 뜻의 사자성어로, 삶을 깊이 음미하지 못하고 겉만 훑는 태도를 경계하는 표현이다. 그러나 시인은 이 표현을 단순한 경솔함이 아닌, 너무 많은 것을 담고자 하는 실존적 갈증의 은유로 사용한다.
이 대목에서 시적 화자는 마치 ‘세상의 모든 풍경을 품고 싶지만, 두 손은 너무 작다’는 자각 속에 서 있다. 이는 삶의 아름다움과 무게를 외면하지 않으려는 태도이며, 동시에 그 무게에 짓눌려 결국 아무것도 품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를 보여준다. 시인은 이 고독한 순례자의 모습을 통해, 독자에게 ‘무엇을 품고 무엇을 흘려보낼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는 존재의 선택과 집중, 그리고 그 선택이 남기는 상처에 대한 성찰이다.
영원한 이상향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그대’라는 존재를 향해 시적 여정을 마무리한다. ‘북극성처럼 반짝이는 스완송 / 꼭 부르고 싶은 그대인가’라는 구절은, ‘그대’가 현실 너머의 이상향이자 영원한 빛임을 암시한다. 북극성은 항해자에게 길을 알려주는 변치 않는 별이며, 스완송은 백조가 죽기 직전에 부른다는 가장 아름다운 노래다. 이 두 비유는 ‘그대’가 단순한 인물이나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시적 화자가 일생 동안 지향해 온 궁극적 가치, 혹은 내면의 완전성을 상징한다.
‘꼭 부르고 싶은’이라는 표현은 절박함을 담고 있다. 이는 아직 이루지 못한 염원이자, 시인의 전 생애를 건 소망이다. 이 ‘그대’는 현실에서 닿을 수 없는 존재이기에 더욱 빛나며, 시인은 그 빛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간다. 이는 마치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향해 영혼의 여정을 떠났듯, 시인은 ‘그대’를 향해 존재의 마지막 노래를 준비한다. ‘인간은 자신이 그리는 이상을 향해 걷는 존재다’라는 괴테의 말처럼, 이 시는 그 이상을 향한 고독한 행보를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