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맞기/ 박혜숙
태현은 새로운 일이 터질 때마다 아 저런 일이 생길 걸 왜 몰랐지? 웬만한 일은 다 겪어서 이 세상에 이제 새로운 이야기가 없다고 생각하다 놀라곤 했다. 2019년 크리스마스를 스페인에서 보내고 돌아오니 12월 26일이었다. 그 때만해도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 19가 바이러스를 퍼뜨린다고 해서 가이드에게 스페인 독감에 대해 물어보고 페스트로 5천만 명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실감이 나지 않았었다.
해외여행을 잘 다녀왔다고 장모님을 뵙겠다고 하니, 가족들 다 모여. 내가 밥을 사겠다고 하여 4대가 18명이나 모여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서로 선물도 교환하며 다음 달에 또 여기서 밥을 먹자며 헤어졌다. 중국 우한 얘기는 상관없는 것으로 치고
매달 이렇게 식당에서 모여 밥 먹고 공원을 산책하자고 약속했다.
사람이 한 치 앞을 모른다더니 코로나 시대는 전염성이 강해, 당분간 해외여행도 못가는 것이고, 모여서 밥 먹는 것도 허용이 안 된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다만 인생을 오래 산 장모님은 반신불수가 되어 몸도 못 가누면서도 예지로 무언가 뚜벅뚜벅 다가오는 것을 느꼈던 것 같다. 병원 밖 외출을 하고 휠체어를 타고 요양병원으로 들어간 지 지금까지 2년 째 병원 밖을 나오지 못하고 있다.
태현은 마음이 울적해지면 여행 다닌 사진을 보며 기행문을 읽어본다. 지역명도 기억이 안 나다 글을 읽고 사진을 보면 이런 일도 있었구나 생각하며 빙긋이 웃는다. 그 때 정말 잘 갔다 왔다. 열흘이나 부부가 시간을 내기 힘들어 망설이다 자식들이 휴가를 내며 케어해 주어 간신히 갔던 것인데 답답한 시간 아름다웠던 추억이 마음에 위로를 주고 이제 언제 다시 떠날 수 있을까 상상해 본다.
그 동안 방역을 철저히 해주어 우리나라는 마스크 잘 쓰고 위생을 철저히 지키면 그런 대로 견딜 수 있었다. 그런데, 고령층이 코로나에 걸리면 사망률이 높아 가능하면 용평의 쉬는 집에서 칩거하고 대도시엔 중요한 볼일이 있을 때만 가곤 했다. 아내는 도시에 있는 것을 좋아하더니 마스크 쓰며 살기 힘들다고 반은 이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퇴직 후 시골에 집을 짓고 쉬겠다고 서울 집을 잡혀 융자를 뽑겠다고 하니 극성스럽게 반대하더니, 이젠 살만하게 집을 가꾸고 꽃나무 과일나무도 천 그루 이상을 심어놓으니 여기가 꽃대궐이라고 사진 찍어 SNS에 퍼 나르는 게 얄밉다. 그래도 세끼 밥을 따뜻하게 얻어먹을 수 있어, 길 들여 논 내 영역을 침범하여 정신 사납기는 하지만 답답하면 곧 가겠지 하며 참고 있다.
올해 들어서면서 백신이 시판되기 시작하고 코로나가 창궐하던 미국과 유럽서부터 백신을 맞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저렇게 임상시험을 빨리 끝내고 놓는 거라 신뢰가 가지 않았다. 그런 나라들은 확진자가 워낙 많아 빠르게 백신을 맞더니, 마스크를 벗기 시작하는 이스라엘을 보며 부러워하고, 백신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우리나라는 정부를 탓했다.
백신 생산을 많이 하는 미국도 면역력이 올라가고 확진자들이 나으면서 면역력도 높아져 뉴욕주는 일상을 회복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백신 수급이 늦어져 화이자로 의료진이 맞고 요양병원 환자들에게 아스트라제네카를 맞기 시작했다. 장모님도 백신 1차를 맞았는데, 밤에 열이 38도로 올라 해열제를 맞고 괜찮았다고 하고 간병인도 같이 아스트라제네카를 맞았는데 식은땀이 나고 추워 자꾸 잤더니 괜찮아졌다.
태현은 75세로 화이자에 턱걸이로 대상에 선정이 되었다. 4월 27일로 정해졌는데, 수급이 잘 안된다고 방송에서 시끄러워 시골구석이라 나중에 맞을 것이라 예측했다. 서초구에 사는 친구도 아직 일정이 안 잡혔다고 하여 느긋하게 있는데 잡힌 날짜에 관광버스가 와서 노인들을 싣고 평창 체육관에서 맞는다고 탑승을 하라고 했다.
주사를 맞고 이상이 없나 관공서에서 확인 전화를 매일 받고 아내가 쫓아와서 살펴주니, 별 어려움이 없었다. 타이레놀을 주사 맞고 와서 먹고 푹 자니 열도 안 오른다. 다만 손이나 몸이 조금씩 가렵다 금방 사라진다. 하룻밤 자고나니 주사 맞은 자리가 욱신거리다가 다음 날이 되니 가라앉아 다행이다.
아내가 경험자로서 백신 맞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해서 적극 권한다고 했다. 약간은 힘들지만 하루 빨리 집단 면역이 생겨야 함께 살 수 있지 않겠는가? 5월 11일 서울로 가더니 동사무소에서 신청을 했다. 동네 내과병원에서 맞기로 예약이 되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5월 29일 맞으면 11주 이후에 2차 접종을 하고 끝낸다. 그래서 장모님이나 간병인이 2차 접종이 5월 중에 맞게 되었다. 그런데 태현은 화이자이다보니, 3주 후에 2차 접종이 되어 18일 예약이 되었다. 화이자 수급이 원활하지 못하니 1차 접종 대상자들은 미뤄놓고, 우선 2차 접종을 먼저 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18일이 다가오니 화이자는 2차가 더 아프다는 말에 겁이 난다. 11시 반까지 마을 회관으로 모이라고 하여 이번에도 관광버스를 타고 가서 맞고 한참 쉬면서 이상이 없자 마을로 돌아와 각자 집으로 왔다. 아내도 손주 보는 일에 묶여 용평에 혼자 있게 되어 친구를 불렀다. 혹시 자다가 무슨 일이 있을까봐.
주사를 맞고 집에 와 타이레놀 6시간 간격으로 먹고 이른 저녁을 먹은 후 잤다. 온몸에 기운이 없다. 아침에 일어나니 으시시하고 몸살이 났는지 기운이 없다. 아침에 생식을 먹고 계속 쉬었다. 들은 대로 확실히 2차가 더 아프다.
2일째 아침이 되니, 80프로는 회복된 것 같은데 기운이 없어 저녁 일찍 먹고 잤다. 이틀을 헤매고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거뜬하다. 마을 사람들께 전화하니 약간씩 힘들지만 괜찮았다는데 태현의 몸살이 심한 듯 했다.
너무 입맛이 없어 한우를 사서 동네 할머니와 형님네 드리며 안부를 물으니 다들 웬만했다. 친구와 2차 백신 완료 기념 한우 파티를 했다. 친구는 아직 시작도 못했다. 서울이고 강원도고 지역별로 먼저 한 곳과 나중에 하는 곳으로 나뉘어 이제 백신이 들어왔다니까 곧 맞을 것 같다. 친구들 중엔 화이자를 제일 먼저 맞았다.
이제 장모님도 아내도 맞고 면역이 생긴다고 하니 전부터 하이야트 호텔 뷔페 티켓이 변호사 협회에서 나와 7월이면 종료되는 티켓이 있었다. 부부가 가려다 우리에게 양보하고 면역력 있는 분들이 식사하라고 한다.
이렇게 면역력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차이가 나는 것인가? 모처럼 서울 남산 하이야트 호텔에서 멋진 경치를 내려다보며 아내와 식사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