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희는 광주로 도착하게 되면 다시 공무원으로서 소임을 다하기 위해 광주시립 과학수사 연구소에 다시 복귀해야만 했다.
하지만 현재는 직업정신을 발휘하기 이전에 우선 가족의 안위를 지켜내야만 했다.
네이게이션용으로 거치해 놓은 스마트폰에서 진동과 동시에 발신자 표시로 김소장의 이름이 떠올랐다.
"네, 소장님."
"임실장, 무사한가?"
"예, 일단 위험지역은 벗어난 것 같습니다."
"일단 광주에 도착하면 바로 연락해."
"예, 소장님."
서희는 연구소에서는 일급 연구원이었다.
정체불명의 테러공격 소식을 들었을 당시 그녀는 때마침 휴가 차 목포시에 있는 엄마의 집에 와 있었다.
어머니의 집은 외곽 위치에 있는 임성리였고,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다.
사태 직후 뉴스에서 대통령은 모든 목포시와 외곽에 사는 생존자들에게 대피명령을 내렸었다.
서희는 김소장으로부터 더 빠르게 소식을 전해 듣고 곧장 어머니와 동생을 그녀의 차에 태워 간신히 목포를 벗어날 수 있었다.
서울에서 급파된 수많은 동료직원들의 실종소식에 간담이 서늘했다.
그들은 목포시 전역에 확산된 신경가스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사지로 들어갔지만,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갑작스런 신경가스의 확산으로 대한민국은 대혼돈의 회오리에 휘말려 있었다. 그것이 신경가스인지 무엇인지 아직 밝혀진 것도 없었다. 다만 확산속도를 감안해 추측한 이름이었다.
전세계 언론들의 시선이 대한민국에 닥친 사태에 집중되어 있었다.
*
G4 국가의 수뇌부들이 청와대를 방문한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수많은 기자들이 청와대 관저 앞에 몰려들었다.
미군 수송 헬기 한 대가 청와대 헬기 이착륙장에 강풍을 일으키며 착륙했다.
미국 로이스 차관과 수행요원, 그리고 통역사 한 명이 함께 헬기에서 내렸다.
그들은 바람에 날리는 머리를 붙들고 청와대 입구로 향했다.
검은 양복을 입은 세 명의 청와대 경호원들이 그들을 맞이하여 청와대 내부로 안내했다.
로이스 미차관은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던 한미연합군사령관과 CIA 제임스 블레이드 국장, 러시아 및 중국 외교사절단과 함께 청와대에서 준비한 접견장에 모여 현재까지 밝혀지지 않은 테러무기의 확산을 막기 위한 긴급회의를 열고 있었다.
로이스차관은 미국대통령의 결정에 따른 긴급 재난 조치사항에 대한 안을 내놓았다.
"스탠포드 연구소 연구원을 동반한 CIA 일급 요원들이 곧 목포로 파견될 것입니다. 신경가스가 초당 반경 100m범위로 확산되어 저 속도면 오늘 자정 안에 목포시내는 완전히 초토화될 것입니다."
오현우 대통령은 미국의 개입을 그다지 달갑게 여기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파견된 모든 조사단들이 현재 실종된 것으로 잠정적인 결론이 나있는 상태에서 다시 조사단을 파견하는 것이 여간 심려되는 것이 아니었다.
"VX신경가스라는 건 추정일 뿐 신경가스의 성분이 확인되지 않고 있어요. 문제는 조사단이 계속 실종되고 있다는 점인데, 그쪽에서 보낸다고 해서 달라질 상황은 아니라고 봅니다."
"현재 확산되고 있는 신경가스는 상식의 경계를 넘어선 수준입니다. 빠른 전염력이 사실상 기존 VX가스 이상이라고 봐야합니다. VX의 살상력을 갖추었지만, 확산범위 대비 VX의 양입니다. 제 아무리 테러범이 돈이 많아도 목포시를 초토화할 양의 VX를 살포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서 신경가스의 성분을 채취하여 차후 발생할 문제에 대한 대비책을 만들어야합니다."
러시아 및 중국 국방성 관계자들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미 차관의 의견에 동조했다.
오현우 대통령은 고개를 숙이며 한참 고민했다.
그는 다시 고개를 들어 모두에게 그의 결정을 전달했다.
"좋습니다. 우리도 요원들을 동행토록 하겠습니다."
청와대 대변인은 지상파 뉴스에 나와 비상사태에 대한 일시 조치를 발표했다.
전문은 생존자들은 목포시 지역을 신속히 빠져나갈 것을 종용하는 것과 전 국민들에게 모든 피난민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면 추후 반드시 보상을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
전라도 전지역의 일반 가정에는 온통 목포시에서 넘어온 피난민들로 북적댔다. 도로 위의 차량들은 아직도 끊어지지 않고 연이어 움직이고 있었다.
이동 중에 수많은 접촉사고가 빈발하곤 했다.
서희 일행역시 서울에 도착하자 곧 길한쪽에 차를 대고 민간인 집을 위주로 방문하며 피신할 공간을 찾아다녔다.
많은 사람들이 가가호호 집문을 두드리며 도움을 요청하여 사방이 북새통이었다.
"어서 들어오세요."
한 시간을 가정 문을 두드리며 돌아다니던 임서희와 그녀의 가족들은 겨우 임자를 만나 단독주택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집 안 현관을 들어서자 뉴스를 보던 할머니, 14살 짜리 여중생, 그리고 집주인의 아내는 낯선 이방인들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임서희와 엄마, 동생 영희는 양손에 여행가방을 든 채로 집주인과 가족들에게 인사를 했다. 서희 엄마는 무릎위에 두 손을 올리며 다소고니 인사했다.
"아이구 증말 고맙구 마니라. 지송해서 어쩐다요."
서희 엄마가 미안한 표정으로 허리 굽혀 인사하자 집주인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거실과 방두칸이 다여서 우는 방 한 칸과 거실을 사용하면 되니께 걱정 붙들어 매시고 건너 방을 쓰시면 되것소."
그때 서희 휴대폰의 벨 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휴대폰 액정에는 다시한번 김소장의 이름이 표시되어 있었다.
*
오후 3시 미수송 헬기에 탑승한 스탠포드 연구진과 미화학테러반으로 구성된 여덟 명의 요원들 사이에 임서희가 잔뜩 경직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도시는 아직까지 피난 차량들로 분주했으며, 미쳐 목포시내를 빠져나가지 못한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에 정신을 잃을 정도로 흥분하여 차도 짐도 모두 버린 채 맨몸으로 달리기도 했다. 차가 없는 사람들은 걸음을 채촉하다가 열쇠가 꽂힌 빈 차를 타고 가기도 했다. 사고로 차량이 폭발하는 일이 여러 곳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났다. 가정집에 불빛은 모두 꺼지거나 간혹 등이 켜진 집에는 사람이 없었다. 남창대교 위로 차량들이 줄을 이었다. 무작정 동북쪽으로 짐을 지고 피난하는 사람들도 간혹 눈에 띄었다. 때로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도 보였다.
상공아래에는 수많은 피난 차량들이 길게 뻗어 있었다. 간혹 몇 대의 차량이 고가도로 위를 달리다 전복되는 모습이 목격됐다.
서희는 아비규환과 같은 도로의 상황에 마음이 뒤숭숭했다.
육중한 프로펠러소리를 일으키는 헬기는 빠르게 목포시 안으로 진입했다.
헬기는 이미 피난 대열과 한참 동떨어진 지역 위를 날고 있었다.
잠시 후 그들은 바리케이드 차단 지역을 지나 인근 가장 높은 베아체 아파트 스위트 헬기장 위로 착륙했다.
착륙과 동시에 열린 문 앞으로 미국에서 파견된 연구원들이 아파트에 설치할 장비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서희는 그들과 함께 가벼운 장비를 들고 헬기에서 내렸다. 그녀 뒤로 단발에 얼굴이 까무잡잡한 동양인 여성요원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서희는 앞서 간 미국인들이 안 보이자 정신을 못차리고 한 자리에서 한 바퀴 빙글 돌고 있었다. 그러자 헬기에서는 한마디도 않았던 동양인 여성요원이 그녀에게 말했다.
"1층으로 이동해야합니다."
이미 주민들은 지역을 벗어나서 베아체 아파트에는 사람이 없었다.
먼저 출발한 일행을 쫓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탄 동양인 여성요원이 겁을 집어먹고 집중을 못하고 있는 임서희에게 일렀다.
"저는 인미정이라고 해요. 스탠포드에서 일하고 있어요. 우리가 설치할 탐지기는 곧바로 화학물질을 분석해서 중앙컴퓨터로 전송할거에요. 우리는 장치를 세팅하고 곧바로 철수할거요."
서희는 동양인 여성요원이 한국말을 하자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었다.
"한국인이셨군요. 반가워요."
"네. 반가워요. 저도."
미정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답례를 했다.
서희는 여러 바이러스를 탐지하는 기계에 대하여 궁금한 점이 있어 물어보았다.
"저 기계를 설치하면 바이러스의 확산범위를 중앙통제실에서 확인이 가능한 거죠."
"맞아요. 이 기기를 중심으로 확산속도와 범위, 시간 등에 대한 정보를 전송해줄 것입니다."
"신경가스 성분까지 분석이 가능한가요?"
"성분분석은 별도로 해야해요. 하지만 분석하기도 전에 사망할 것입니다."
"그렇군요."
아파트 1층 로비에 집결한 요원들은 곧바로 준비한 탐지장치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설치시간은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서희를 포함한 여덟 명의 현장요원들은 수신기가 설치된 로비에서 다섯 개의 화면을 통해 탐지침의 움직임을 검사했다. 팀장으로 보이는 미국인 연구원이 여러 사람들 소리쳤다.
"고 백 투 더 헬리콥터! 허리 업!"
해가 서산을 넘긴지 2시간이 지난 무렵 도시는 어둠의 장막을 드리우고 있었다.
베아체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탄 요원들은 긴장된 얼굴로 멍하니 빠르게 바뀌는 층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자동문이 열리자 미정과 서희가 먼저 헬기장으로 향하는 마지막 계단을 타고 신속하게 올라갔다.
후미를 따르던 장비를 들고 있던 미국인 남자 요원 한 사람이 갑자기 발이 미끄러지듯 엎어지며 맥없이 계단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앞서 가던 남자가 놀라서 고개를 돌린 순간 그 역시 의식을 잃고 계단 위를 굴렀다.
먼저 올라간 남자 요원이 놀란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돌아가서 그들을 구하려는 순간 '컥'하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의식을 잃은 채 바닥 위로 스르르 쓰러졌다.
서희는 그들과 함께 이것저것 소규모 물품들을 들고 헬기로 향해 달렸다.
조종사가 헬기시동을 걸고 임서희와 인미정이 챙긴 소품을 들고 화물칸에 올랐다. 인미정이 무거운 장비를 들고 오는 요원들을 향해 외쳤다.
"컴 온 허리 업!"
그때 옥탑 문간에서 뛰어오던 세 명의 남자요원이 차례로 넘어지기 시작했다.
놀란 미정이 헬기에서 뛰어내리다가 중심을 잃고 상체가 기울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임서희는 눈이 휘둥그래져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순간 맥이 풀린 듯 그 자리에서 풀썩 쓰러졌다.
헬기조종사 역시 시동을 걸어놓은 채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2번 국도 및 서해안 고속도로와 남해안 고속도로 진입하는 데 실패한 차들은 시내를 벗어나지 못하고 멈추거나 방향을 잃고 도로 위를 올라 상점 유리문을 뚫고 들어갔다. 사이렌과 차량 경고음이 사방에서 울려 퍼졌고, 동시 다발적으로 여러 곳에서 차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빗발쳤다. 걸음을 재촉하던 사람들은 모두 그 자리에서 엎어져 있었다. 뒤차들은 덜컹거리며 앞차를 밀고 있었다. 운전석의 사람들은 상체를 옆 좌석으로 기울어 엎어지거나 핸들 위에 머리를 박고 잠자듯 멈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