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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자와 제사장
4주차 나눔은 이 책의 3장 '통치자와 제사장'을 함께 살핍니다. (p.130-174)
파이 미니스트리에서는 성경 통합입문으로 ’성경은 드라마다, 성경적 영성,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미덕,‘을 통하여 우리가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을 펼쳐나갑니다. 3권의 책은 각자 지은이가 다르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내용은 성경입니다.
그러면 이 책의 3장에 해당하는 ’통치자와 제사장‘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우리가 익혀 이미 잘 알고 있는 ’왕같은 제사장이다 이야기를 나눕니다. 믿음 소망 그리고 사랑이라는 모습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그것이 하나님이 자기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셨고 또 그 사람들을 전적인 주님의 은혜로 구속하신 중요한 핵심이라는 것을 얘기하였습니다. 그래서 Priests and Rulers라는 이 after you believe 내용의 중요한 3장의 내용을 신약 성경의 이야기를 통해서 미덕이 과연 왜 그리스도교의 영성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특별히 하나님 형상으로 회복되어 가는 그 사람에게 있어서 왜 그렇게도 중요한가는 이야기를 이제 세세하게 좀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통치자와 제사장 왕같은 제사장이라는 말은 우리가 보통 창세기에 있는 하나님이 첫 사람이었던 아담과 하와에게 주셨던 그 명령에서 비롯되어 파생한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즉 자기 형상으로 사람들을 창조하시고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에게 주어진 주님 명령이다 말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창조 명령으로 인해 환경 파괴가 일어났다?
그런데 많은 지금 환경 오염과 이 클라이 체인지 이유와 같은 것들에 대해서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이 명령 때문에 즉 창세기 1장에 나오는 땅을 정복하라는 명령이 모든 기후 위기를 불러일으켰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창조 명령은 창조 세계를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소비재로 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엔 티 라이트 목사님이 133페이지에서 이런 얘기를 합니다. 인간은 그 정원을 번성하게 하고 다체롭고 멋진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뚜렷한 당신의 말씀을 부여할 말을 선언하도록 되어 있었다. 라고 말합니다.
이 얘기는 창조 명령 가운데 있는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라는 말은 사실 세상으로 하나님의 성소 즉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확장하라 부름 받았다라는 것을 의미한다는 거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일들로 하나님은 계속해서 자기 형상으로 사람들을 회복하시면서 그와 같은 일들을 하라라고 자기 백성을 부르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펴야 할 것은 무엇이냐면, 하나님께서 즉 창조 세계를 창조하시고 그 세계에 안전과 번영과 아름다움을 주셨는데 하나님과 창조세계 중간에 하나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들이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봤을 때는 우리가 땅을 지배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존재다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일에는 남성만 부름받은 것이 아니라 실재로 성별에 여성도 부름받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강제로 부름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미 거기서부터 창조 세계가 파괴된 것이 하나님이 주신 창조 명령 때문이다는 것은 사실 조금 어폐가 있는 말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결국에는 우리가 창조 세계를 소비재로 경험 느끼는 것은 결국 깨어진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의 이야기를 가지고 얘기를 한다면 깨어진 인간이라고 하면, 타락한 인간을 말하며, 결국 타락한 인간이 싸우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신체적 성별의 남성과 신체적 성별의 여성과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더불어 진정한 하나님 형상 공동체 인간 공동체 사회를 형성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깨어짐으로 말미암아 신체적 성별의 남성과 여성 그 외에 수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하고 그래서 그것을 지배한 당하는 것을 어떻게든 깨부수려고 하는 저항과 봉기 이런 억압이라는 것이 타락한 인간 공동체 안에서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배라는 것은 단순히 그 지배하는 그 지배권을 모든 사람이 더불어서 가지려고 할 때 지배라는 것이 나타나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정말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신체적 성별의 남성과 신체적 성별의 여성이 한몸 이루어서 하나되어서 너희가 하나님의 형상이다고, 공동체 그 자체를 하나님 형상이다 말한 것은 지배란 그거에 대한 봉기라는 그런 식의 인간적인 모습을 전혀 의도하지 않으셨다는 거입니다. 그러니까 창조세계를 소비로 자연을 소비재로 대했던 것이 성경 말씀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뭐냐면 하나님은 어떤 누구 특정한 사람 몇몇을 지배하라 얘기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더불어서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라고 말씀하셨다는 거입니다. 그러니까 그 땅을 정복한다는 것은 나를 위하여 더불어 우리를 위하여 사용하라는 것이 아니라 너희는 하나님의 그 뜻을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참 생명을 주시는 창조세계 안전과 번영과 아름다움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누가 주셨습니까? 이미 하나님이 자기 형상인 사람들에게 주셨다는 거입니다. 너희가 이미 가진 안전과 번영과 아름다움을 창조세계에 뿌리내리게 하는 일을 위하여 너희는 공동으로 부름을 받았다, 공동으로 지배권을 받았다라고 얘기한다는 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세계를 소비재로 대하는 그런 식의 인간 군상을 하나님은 절대로 사람들에게 자기 형상 이라고 그런 일들을 부여하지 않았다라는 것입니다
9:03
그렇기 때문에 이미 창조 명령은 이 창조 세계가 타락하게 되고 망가지게 된 것과 긴밀하게 연관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이미 온 땅을 창조하시고 그곳에 에덴이라는 지역을 두셨고 그 에덴이라는 지역 안에 정원을 두셨다는 거입니다. 그런데 그 정원이 바로 거룩한 성전이다는 거입니다. 여기서부터 이미 성전 신학이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러냐면 하나님이 자신의 창조 세계 즉 땅이라고 하는 그곳에 계신 곳이 바로 거룩한 성전이다. 얘기를 했는데 그 하나님이 거기 계셨습니다. 에덴 동산에 이미 거주 임재에 계셨습니다. 거기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었다 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기 형상인 사람들이 자녀를 낳고 번성하여 또 다른 사람하고 결혼하고 그럼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모든 땅이 황무지(웨스트랜드)라고 얘기할 수 있는 그 땅이 하나님의 젖과 꿀이 흐르는 하나님의 생명이 흐르는 창조 세계가 번영하고 안전을 누리는 그 하나님이 거하시는 임재하시는 거룩한 성전 되게 하라라는 의미에서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명령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게로 에덴의 땅을 넘어서 온 흩어져라 그 말씀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하나님이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은 모든 것이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그 거룩한 집이 되게 하라라는 것을 얘기한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땅으로 확장되어 나가라는 거입니다. 그게 세상이라는 거입니다. 그 이야기를 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창조 명령과 연관된 그리스도교 미덕관
그렇기 때문에 창조 명령과 연관된 그리스도교 미덕과는 결국에는 무엇을 향한 것이냐, 원래 하나님이 주신 사람의 그 목적과 긴밀하게 연관되는 것이다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과 관련해서 우리는 미덕이라는 것을 이제 얘기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미덕이라는 것이 등장하게 된 것이 우리가 전에도 얘기하였지만,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우리가 이와 같은 생각들이 처음 형성되었다고 얘기했었습니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런 미덕을 얘기하는데 있어서 중요하게 다뤘던 것을 보면, 미덕이라는게 사람 안에 미덕이라는 것이 왜 중요한가 했었을 때, 사람이 달려가야 하는, 사람이 이루어야만 하는, 사람이 성취해야만 하는, 목적이 있고 목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골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법에서 그와 관련한 중요한 아이디어는 물질세계를 변화시키면서 변하지 않는 질서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질서를 이해함으로써 사람은 행동하고 존재하며 또한 어떤 그 존제 자체가 된다는 것입니다.
엔 티 라이트 교수님은 이런 미덕관이 신약 성경에 주후 1세기의 성도들과 긴밀하게 연관되는 어떤 연결점이 있다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그래서 뭐라고 얘기하냐면 이런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런 목표라는 것을 첫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반영하는 것으로 신약 성경의 사람들은 보았다고, 주후 1세기 교회는, 이야기합니다. 특별히 유대인 출신에 성도와 유대 출신의 사도들을 가르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이 목표 어떤 목표를 향하여 미덕이 필요하다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했는데 그 질서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미덕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 그 변하지 않는 무엇인가를 향하여 오늘 사람이, 그리스도교가 얘기하는 하나님 형상을 닮은 하나님의 자녀가, 살아가야 하는 삶의 모습은, 그 무엇을 위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살아가야 하는가,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목표를 얘기할 수 있고 또 미덕을 얘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가지는 탈로스는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타락 이전에 사람이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 안에서 하나님과 다른 사람 그리고 창조 세계를 위해 해야만 했던 청지기 일 즉 왕 같은 제사장 일입니다. 라고 얘기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더불어서 살아갈 것이다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 새 하늘과 새 땅을 구속을 완성하시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첫 창조 때 자기 형상의 사람들에게 원래 의도하셨던 그 일을 하게끔 하기 위하여 우리를 다시 구속하셨고 그 구속을 완성해 가신다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궁극적인 미래라고 하는 그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텔로스가 원래는 하나님이 타락 이전에 자기 형상으로 창조한 사람들에게 주셨던 그 인생의 목적과 그것을 하게끔 하기 위하여 완성을 향하여, 텔로스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것이 바로 청지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청지기의 일이 무엇이냐면 성경은 청지기로서 살아가는 것은 바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아가는 것으로 왕이면서 동시에 제사장으로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즉 그 일을 하는 것이라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텔로스 새 하늘과 새 땅은 바로 천직으로 부름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벗어나서 저 천국에 가서 공중 혼인 잔치라고 하는 영원히 슬픔과 아픔과 고통이 없는 곳에서 하나님과 함께 더불어서 행복하게 살아가겠습니다 그게 그리스도교가 얘기하는 끝에 대한, 종말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당신이 진짜 하나님 형상으로 일하게끔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우리를 구속하시고 완성으로 이끌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텔로스 – 청지기로 부르심
즉 청지기로 살아가게끔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이 구속을 예수님 재림하시는 그 순간으로 인도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엔 티 라이트 목사님은 채 135페이지에서 얘기합니다. 하나님은 그분이 만드신 새로운 세상의 형상을 반영하기 위하여 에덴 동산에 인간을 두셨다고 얘기합니다. 말하자면 인간들이 거기에 가시적으로 존재함으로 말미암아 정원과 동물을 돌보는 하나님 손길을 대행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이런 역할을 수행하려면, 하나님과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나님과 함께 더불어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타락 이후에도 폐기되지 않았던 청지기로서의 소명 1620
그렇기 때문에 타락 이후에도 우리가 이미 타락 이후에도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예수님의 재림때에 청지기로서 일하면서 살 것이라는 거입니다. 왕인 동시에 제사장으로 일하면서 살 것입니다. 라고 하는 얘기는 우리를 향하신 부르심이 청지기 즉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르셨고 그 소명은 우리가 타락하고 인간 공동체가 완전히 붕괴되고 난 이후에도 폐기된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청지기 = 왕같은 제사장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청지기는 왕같은 제사장으로 왕이요 동시에 제사장이라는 얘기입니다. 이를 잃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백성에게 있어 제사장, 그리고 왕
그러면 하나님에 백성에게 있어서 제사장 그리고 왕들이 무엇인가 하면,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제사장은 다리를 만드는 사람으로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세상에 하나님의 복을 전하는 사람, 하나님의 은혜를 창조세계에 가져오고 타인들에게 가져오는 존재가 제사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왕은 지배하고 계획하고 제공하고 해결하고 통합하고 판결 내리는 그런 일들을 하는 사람들이다 얘기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신약성경 이전에 우리가 첫 언약이라고 얘기하는 그 언약에서 하나님 백성중에 몇 명에게 특별히 예언자로 또는 몇 명만 제사장들로 또한 명 명만 왕으로 부름을 받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진정한 왕이시며 진정한 제사장이요 진정한 예언자이실 때, 특별히 우리가 주후 1세기 성도들이 중요하게 예수님의 모습을 형상화한 그 아름답게 표현했던 핵심이 바로 예수님이 예언자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진정한 예언자이며 진정한 제사장이며 진정한 왕 중에 왕이십니다. 그러니까 제사장 중에 예수님은 대제사장이시고 예수님은 왕 중에 왕이요 그리고 예수님은 예언자들 중에 최고의 예언자이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백성이 유대인 출신이든 비유대인 출신이든 모든 사람이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과 친밀한 인격적인 언약의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백성이 다 예언자들로 다 제사장들로 다 왕들로 살아라고 부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르쳐서 고대 그리스어인 라오스라는 말을 사용했다라는 것이 그게 바로 성도라는 것입니다.
제사장
제사장의 역할이 무엇인가 긴밀하게 살펴본다면, 사람들을 헤아리고, 또한 창조 세계를 헤아리고 하나님 앞에 두는 역할을 하는 존재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또한 더불어서 사람들과 장소를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서는 존재가 바로 제사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분명한 것은 첫 사람 이들은 제사장직을 가지고 있었어요 하지만 이들이 하나님과 함께 더불어서 살아가는 그 언약을 깨뜨리고 우리 마음대로 살 거야, 하나님이 없어도 괜찮다고 얘기했던 그 이후로부터 즉 타락이라는 것이 일어나고 난 이후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부르시고 그들을 구속해 내셨습니다. 노예로 살고 있었던 이집트에서 출애굽 시키시어 그들을 하나님의 자유로운 백성이 되게끔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의 자유로운 백성으로서 살아가게끔 하기 위하여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실 때 그들을 가르켜서 하나님은 제사장 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사장 민족이 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고대 이스라엘 민족이 그와 같은 일들을 실패했습니다. 무너졌다 잘하지 못했다 다른 말로 한다면 불완전했다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것에 하나님이 너희가 신바벨로니아 제국의 포로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신바벨로니아 제국에 포로로 끌려가고 있었던 초창기 유대인들에게 너희를 구속하는 존재가 올 것이다. 즉 그분이 야웨 하나님의 종 제사장이라고 두 번째 이사야가 53장 12절에서 이야기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성취하신 분이 바로 주후 1세기부터 교회는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다 이야기하고 믿음으로 선언했습니다.
그러므로 인해서 그리스도는 그분을 믿는 공동체를 통하여 그분의 제사장직을 작동한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 53장 12절에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나는 그가 존귀한 자들과 함께 자기 몫을 차지하게 하며 강한 자들과 함께 전리품은 나누게 하겠다. 그는 죽는 데까지 자기 영혼을 서슴없이 내맡기고 남들이 죄인처럼 여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많은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졌고 죄지은 사람들을 살리려고 종에 나선 것이다.“
그분이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 나사렛 출신의 예수님이라고 얘기했다는 거입니다. 그래서 그와 같은 고백 가운데서 사도 베드로는, 여러분은 그분을 믿기 때문에 그분 안에서 택함받은 족속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하나님께서 소유하신 백성이다고 얘기했습니다. 왜 우리가 유대인 출신이든 비유대인 출신의 모든 사람이 이와 같은 왕같은 제사장이 되었는가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가 되는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는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되었는가라고 얘기하는 목적이 되는 바로 그 텔로스는 여러분은 어둠으로부터 자신의 놀라운 빛으로 부르신 분에 고결한 위험을 증거하는 증인으로서 살아가게끔 하기 위함이었다 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이라고 얘기하는 이 요한은 밤모 섬에서 이와 같은 고백을 듣게 됩니다. 또 우리를 나라 곧 그분의 하나님과 아버지의 제사장으로 삼으신 분에게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영광과 권세가 그분에게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바로 이와 같은 제사장들이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모든 믿는 이의 제사장이라는 것은 두 가지 역할을 하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함께 더불어 하는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만 아니면 몇 명의 존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백성 된 모든 그리스도인들 모든 교회 공동체, 즉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을 감당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향하는 그 흠모하는 경외하는 숭배하는 예배를 드리는 존재이며 세상으로 하나님의 그 살아계심과 하나님의 사랑을 증 거하는 삶의 모든 현장에서 자신이 부름받은 그 각자의 땅끝에서 선교하는 존재가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제사장직을 얘기하는 중요한 핵심입니다
그럼 왕들, 또한 왕비들은 무엇입니까. 왜 왕들을 얘기하고 왕비들을 얘기한 것이 왕비라는 표현은 왜 하는 것이냐라고 했었을 때 사실 여왕들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름니다. 왕 그리고 여왕 이들은 무슨 일을 하는 사람들인가 청지기 직을 집행하고 그것이 잘 집행될 수 있도록 배열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하고 무엇을 집행하느냐면 하나님 나라 군주의 지배 즉 만 왕의 왕이시며 만 주에 주이신 영원하신 주님에 지배를 온 세상 가운데 퍼뜨리고 그리고 그것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고 그것이 펼쳐져 가고 실천되는 그와같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 왕들과 여왕들이 해야 하는 역할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지배한다 내가 오직 유일한 왕이다는 개념이 아니라 옛날 로마제국이 그 예수님만을 믿으라고 얘기하고 즉 그리스도교를 공인하고 난 이후에 스스로를 가르켜서, 나는 그리스도의 그 진정한 왕 되심을 선언하고 그것을 수호하는 왕일뿐 황제일 뿐이다 진정한 황제 중의 황제는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그리스도 되심을 그 주님 되심을 지키고 선언하고 가르키는데 내가 해야할 그 일을 하게끔 하기위해 보호하기 위하여 그것을 선언하게 하기 위하여 그것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구조를 짜게끔 하기 위하여 나는 황제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제국의 황제들이 얘기했던 것처럼 왕들과 여왕들은 바로 그리스도의 왕 되심을 그 주권이 온
땅에 온전히 퍼져 가도록 그 역할들을 감당해 내는 사람들이 응답하는 역할이 바로 왕들이며
여왕들이 즉 우리는 왕 같은 존재도 부르신 형상으로 창조하신 목적이고 이유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왕과 왕비들의 역할 –신명기 17:14-20
이와 같은 왕과 왕비들의 역할은 신명기 17장 14절부터 20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주시는 그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하고 살 때에, 주위에 다른 모든 민족같이 당신들도 왕을 세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거든, 당신들은 반드시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을 당신들 위에 왕으로 세워야 합니다. 당신들은 겨레 가운데서 한 사람을 왕으로 세우고, 같은 겨레가 아닌 외국 사람을 당신들의 왕으로 세워서는 안됩니다. 왕이라 해도 군마를 많이 가지려고 해서는 안 되며, 군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이집트로 보내서도 안됩니다. 이는 주님께서 다시는 당신들이 그 길로 돌아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왕은 또 많은 아내를 둠으로써 그의 마음이 다른 데로 쏠리게 하는 일이 없어야 하며, 자기 것으로 은과금을 너무 많이 모아서도 안됩니다. 왕위에 오른 사람은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 보관되어 있는 이 율법책을 두루마리에 옮겨 적어, 평생 자기 옆에 두고 읽으면서, 자기를 택하신 주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과 규례를 성심껏 어김없이 지켜야 합니다. 마음이 교만해져서 자기 계레를 업신여기는 일도 없고, 그 계명을 떠나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도 않으면, 그와 그의 자손이 오래도록 이스라엘의 왕위에 앉게 될 것입니다. <신명기 17장14절-20절>
여기서 모습에 핵심인 온전함에는 사회적 온전함, 재정적 온전함, 종말론적/마지막 때의 온전함 이렇게 다양한 온전함을 얘기합니다. 사회적인 온전함이란 너가 그 사람중에 한 사람, 하나님이 거룩하게 부르신 사람중에 한명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재정적인 온전함은 섬기는 사람들을 위해 강합하는 것을 만고불변에 존재다는 식에 잘못된 왕에 모습을 내세우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약속과 소망이 가져오는 존재가 왕에 역할이다는 것입니다. 성적 온전함, 양심의 온전함, 관계적 온전함 이같이 다양한 것들을 얘기합니다.
인간이 받은 소명에 대한 고대 유대인의 분명한 인식
고대 유대인은 인간이 받은 소명에 대해서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시편 8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 우리 하나님, 주님에 이름이 온 땅에서 어찌 그리 위엄이 넘치는지요? 저 하늘 높이까지 주님의 위엄 가득합니다. 어린이와 젖먹이들까지도 그 입술로 주님의 위엄을 찬양합니다. 주님께서는 원수와 복수하는 무리를 꺾으시고 주님께 맞서는 자들을 막아 낼 튼튼한 요새를 새우셨습니다. 주님께서 손수 만드신 저 큰 하늘과 주님께서 친히 달아 놓으신 저 달과 별들을 내가 봅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생각하여 주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돌보아 주십니까? 주님께서는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그에게 존귀하고 영화로운 왕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손수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게 하시고 모든 것을 그의 발 아래에 두셨습니다. 크고 작은 온갖 집짐승과 들짐승까지도, 하늘을 나는 새들과 바다에서 놀고 있는 물고기와 물길 따라 움직이는 모든 것을 사람이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주 우리의 하나님 주님의 이름이 온 땅에서 어찌 그리 위엄이 넘치는지요?“ 이같이 시편저자는 노래하였습니다.
인간이 받은 소명에 대한 고대 유대인의 분명한 인식
이것과 관련해서 엔 티 라이트 목사님은 이책에 136쪽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시편 8편은 분명히 창세기1장에 묘사된 진정한 인간의 역할을 경축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초창기 그리스도인들이 주후1세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복음에 비추어 인간의 소명을 새롭게 탐구할 때 그들 의식 구조의 일부를 형성했던 주요한 요소라고 말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의 목표라고 얘기하였습니다. 진정한 인간의 목표, 그래서 주님에 보좌로 부름받은 존재이니 어떻게 그 일을 해야 하는가, 이것을 다루는 것이 미덕의 문제입니다. 곧 그리스도교적 생활 방식의 문제라고 엔 티 라이트 목사님은 이야기 했습니다
하나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 - 로고스
이와같은 중요한 핵심은 사람이 하나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하나님 형상으로 창조한 존재가 로고스라는 것입니다. 주후 1세기 로마제국내에서 참된 세상인 그리스 철학의 중요한 핵심은 이데아를 발견한 것입니다. 그 이데아를 발견한 아리스토텔레스는 바로 목표인데 불변하는 진리로부터 오늘에 삶이 온전하게 회복되기 위하여 진정한 사람으로 훈련되어가는 것, 이와같은 것이 미덕에 있어서 중요한 핵심이다 그것이 바로 미덕이고 덕목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합니다.
그런데 이 이데아를 발견하게 해주는 지혜가 바로 로고스다 고대 그리스 철학이 말했는데 이 단어를, 고대 이스라엘 유대교 전통을 통하여 하나님 백성 즉 교회는 어떻게 했냐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지혜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엔 티 라이트 목사님은 사람이 창조주의 지혜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온 세상에 하나님의 통치 대리자 청지기 즉 왕 같은 제사장으로 그분의 지혜를 반향하는 존재로 창조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이라는 중재자와 함께 그 중재자를 통해 창조 세계가 풍성한 은혜를 누리며 번영하는 그런 천성을 사람들은 가졌다는 거입니다. 그래서 또한 그런 천성을 원형으로 가지고 계신 분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천성을 가지신 하나님이 홀로 모든 세상을 복되게 하지 않으신다는 거입니다 그런 일을 선택하지 않으신다는 거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을 기억하며 살아가게 하시는 분이 그리고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 구세주 메시아라고 고백하는 바로 지혜이신 성육신 하신 하나님 예수님이시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저자들은 한결같이 그런 지혜는 창조주의 지혜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왔고 지금도 해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왕같은 제사장의 원형이 바로 그리스도 로고스 이시다는 것을 우리가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해 드린다면 초대교회는이 땅에 오신 로고스 성육신하신 그 지혜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님 안에서 모든 사람과 온 창조 세계를 향한 본래 그 야웨 하나님의 비전이 재발견되었고 그대로 회복되고 있다라고 확신했습니다.
33:38
엔 티 라이트 목사님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예수님은 창조세계 찬송을 모아 드리고 구원을 가져오는 하나님의 주권을 실행하는 등 순종적인 인간의 대명사답게 진정한 인간 참된 인간 하나님 형상닮은 인간 답게 하셨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로고스 예수님을 따르는 그분 백성
그래서 우리는 그 로고스 예수님을 따르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그분의 백성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또한 예수님의 백성입니다. 왜냐하면 로고스 성육신하신 예수님이 바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지혜 즉 로구스 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참 사람 진정한 인간인 예수님이 행하신 참 즐거움과 공의로 넘쳐나는 세계가 모든 사람의 비전으로 궁극적인 비전 즉 텔로스 주어졌다고 초대교회는 이야기했습니다.
2024 그리스도인의 미덕 4주차 나눔 I 34:27
그분의 뒤를 따르는 모든 제자들은 그 세상에서, 즉 완벽한 텔로스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그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하며 살 것인지를 묻는 것이 당연하다고 엔 티 라이트 목사님은 얘기합니다.
그래서 이 궁금증을 가지고 사는 사람만이 참 사람의 성품을 형성하는 미덕을 이해할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즉 다른 말로 다시 짧게 정리한다면 이 궁금증이 뭐냐는 것입니다. 진정한 텔러스 왜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하여 나아가는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우리는 무슨 삶을 살아가겠다는 것인가, 그래서 그 일을 위하여,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신 예수님이 세상을 구속하시기 위하여 어떠한 일들을 행했는가는 것들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진실로 궁금해하고 그것을 알고자 하는 사람만이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만이 내가 그러면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하면 그와 같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라는 그것이 바로 미덕(덕목)인데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라고 얘기한다는 것입니다
첫 창조와 새 하늘과 새 땅의 연결
그래서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이야기하는 이것은 바로 첫 창조와 연결되는 것이다라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만 합니다.
제가 신앙생활을 배워가면서 즉 신학교를 들어가기 전부터 제가 종말에 대한 얘기 우리가 가야 할 궁극적인 땅에 대해서 얘기할 때는 그냥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가는 것이다. 우리는 죽어서 저 천국에 간다. 아니면 예수님 재림하시면 우리는 부활해서 그분과 함께 영원히 축제를 누리면서 살아갈 것이다는 정도밖에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새 하늘과 새 땅은 어쨌든 예수님 오신다는 거입니다. 그런데 왜 오시느냐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은 새 하늘과 새 땅 그 일들을 완성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시냐는 거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첫 창조 때 진정한 타락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그 사람들이 그와 같은 일들을 하게끔 하기 위한 장을 열기 위한 진정한 시작이 본격적으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일어나게 된다는 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있어서 진정한 사람의 이야기는 사람 인생의 그 아름다운 것들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라고 얘기할 수 있을 거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진짜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과 함께 더불어 하나님의 이 거룩한들을 창조세계 가운데 하는 일은 주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난 이후에 비로써 시작될 것이다라는 거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굉장히 긴 아직시작도 되지 않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야기를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프로로그(서론) 조차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진짜 서론의 시작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열릴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새 하늘과 새 땅과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던 그 첫 창조를 연결시키는 것은 매우매우,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아갈 것인가 왜 영성이 필요한가라는 것에서 중요한 키를 제공한다고, 열쇠와 그것을 증거한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 형상이 결국 하나님의 형상답게 살아하는 것이고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과 더불어서 살아가는 것인가요, 왜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아가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첫 창조의 그 일들을 감당하게끔 하기 위하여 청직이들의 일들을 왕들의 일들을 제사장들의 일들을 감당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를 그와 같은 일들로 회복해 가신다는 거입니다.
거기에 그리스도교 영성이 얘기해야 하는 중요한 핵심이 있다는 거입니다. 그런데 그 얘기를 오늘날 많은 영성 운동가들은 말하지 않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몰라서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어찌됐든 앞으로 열리게 될 하나님 나라는 태초에 하나님이 모든 사람과 온 창조 세계를 어떤 의도로 창조하셨는가 긴밀하게 연관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엔 티 라이트 목사님이 140쪽 이렇게 얘기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새로운 소명과 새로운 과업(TASK)들이 있을 텐데 이는 태초에 주어질 사명이 궁극적으로 성취된 모양일 것이다라고 얘기합니다. 저는 이것이 진실로 복음이며 우리가 아멘으로 화답해야 할 중요한 이야기다고 얘기합니다.
성도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게 될 두 가지
엔 티 라이트 목사님은 성도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게될 두 가지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배하고 또한 이 땅에서 그 진실한 증인이라는 것은 사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도 계속해서 하게 될 일입니다. 왜요 우리는 황무지라 얘기하는 그 땅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되겠으며, 물론 하나님이 다 창조하신 땅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이 머무시는 거룩한 성전이 되게끔 하기 위하여 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끝까지 계속해서 일하게 될 것입니다.
성도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게될 두 가지와 관련해서 계시록 22장에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주받은 것은 거기에 더 이상 없고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가 도성에 있어서 그분의 종들이 그분에게 경배합니다. 종들은 그분의 얼굴을 보겠고 그들의 이마에 그분의 이름이 있을 것입니다. 그곳에는 더 이상 밤이 없겠고 등불이나 햇빛이 그들에게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빛을 비추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영원 무궁히 다스릴 것입니다.“
왕같은 제사장으로서 살아가는 것 하나님을 예배하고 온 창조세계를 다스리는 일을 모든 성도가 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진정한 인간이 청지기로서 부름받은 것을 온전히 감당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얘기하자면 이 모든 것은 고대 이스라엘 민족이 받았던 소명 가운데 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 민족이 받았던 소명
출애굽기 19장에서 하나님이 그들을 향하여 너희는 나의 제사장 나라라고 분명히 얘기하셨습니다. 너희는 내가 이집트 사람에게 한 일을 보았고 또 어미 독수리가 그 나에게로 새끼를 업어 나듯이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내게로 데려온 것을 보았다. 이제 너희가 정말로 내 말을 듣고 내가 세워진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가운데서 내 보물이 될 것이다. 온 세상이 다 내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선택한 백성이 되고,
중요한 핵심은 뭐예요 너희가 선택한 백성이 된 것은 온 세상이 다 내 것이기 때문이다는 거입니다. 너희의 나라는 나를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되고 너희는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일러 주어라,
주님께서 출애굽기 19장 4절부터 6절을 통해서 말씀하신 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대 이스라엘 민족이 왕 같은 제사장이 되도록 그들을 전적인 은혜로 구원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출애굽, 탈이집트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고대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리고 그들을 통해 그들과 함께 세상에 전하실 구원이셨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이루는 고대 이스라엘 소명
그리고 이 고대 이스라엘 민족이 받았던 소명은 에브라함 즉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이룬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신실하신 그 구원의 신실하심입니다. 얼마나 신실하게 성실하게 그 일에 전심전력으로 전력투구 하셨는가 보여주는 놀라운 사랑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던 하나님의 약속 그 아브라함이 이걸 믿었습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그로 인해서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언약이 세워졌고 그 언약이 바로 고대 이스라엘 민족이 가진 그 소명과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왕 같은 제사장 통치자며 동시에 제사장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창조 명령과 연결된 왕같은 제사장 소명
그래서 창조 명령과 연결된 왕 같은 제사장 소명이 바로 아브라함 때부터 아담 때부터 계속해서 이어져 내려온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엔 티 라이트 목사님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창조 당시에 인간에게 주어진 역할은 창조 세계를 다스리는 왕의 직분에 그치지 않고 제사장, 이 직분이 포함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지혜로운 통치를 세상에 반영하는 존재인 동시에 창조 세계가 그 창조주에게 드리는 충성과 찬송을 사랑과 언어와 의식적인 순종으로 변모시키는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왕과 제사장의 소명입니다.
궁극적 아름다움을 가져올 왕같은 제사장들
그래서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궁극적인 아름다움을 가져오는 그리고 가져올 왕 같은 제사장들이다 얘기할 수 있습니다. 계시록 4 5장에서 천상의 무리가 하나님과 어린 양은 아까 그 계시록의 말씀을 잠깐 봉독했습니다. 이 어린 양은 예배하는 환상은 즉 사도 요한이 본이 환상은 로마 제국의 황제나 위대한 군주가 수행원들에게 둘러싸여 어전 회의를 집행하는 장소인 보호자가 있는 알현실과 매우 흡사하게 묘사되었다고 장로 요한을 얘기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성 요한이 일부러 하나님 알현실을 로마제국 황제의 알현실보다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 그런 장면을 묘사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황제의 통치다는 것입니다.
이거를 조금 다른 말로 적용한다면 이런 질문으로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다 창조하셨고 하나님이 땅을 다 창조하셨는데 그 땅에 하나님이 거하신 거룩한 성전이 되게끔 하기 위하여 사람들을 왕같은 제사장으로 청지기들로 창조하셨다는 것이 그리고 그와 같은 일들을 하게끔 하기 위하여 그들을 구속하고 계시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말이냐? 그러면 그 땅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땅이 아니고 하나님의 창조를 불완전하게 했다는 거냐?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셨는데 그 세상이 아름다움으로 가득하여 하나님이 그 아름다움으로 영광 받으시는 그 일을 위하여 그 일에 사람을 함께 하자고 그 목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땅을 다 창조하신게 맞습니다. 하나님이 온 창조세계를 다 창조하신게 맞습니다. 그것을 부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창조하신 땅이 아름다운 것들로 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을 그것이 꽃피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사람들을 창조하셨고 그들과 함께 그 일들을 황무지라 얘기하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황무지라 것이 거룩한 동산이 되고 거룩한 도시가 되게끔 하기 위하여 왕 같은 제사장들을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무슨 세상을 불안전하게 창조하셨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을 함께 더불어 그 일들을 하기 원하시고 그들을 하실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와 같은 일들을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임을 당한 어린 양과 그처럼 치욕과 고난의 길을 걷는 그의 제자들을 통해 행사되는
다스림이 일어나도록 하나님은 자기 사람들을 창조하셨고 그 사람들을 구속하시고 완성해 가시고 계시다는 거입니다.
또한 계시록 21장부터 22장에 나오는 새 예루살렘이라고 얘기하는 그곳이 성전과 같은 모습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도시 자체가 하나의 성전 아니 예루살렘 성전이 오랫동안 가리키고 있었던 그 실체 곧 진정한 성전인데 도시의 모든 규모가 장식과 더불어 거룩함에 관한 규율이 모두를 들어내고 있으며 그 하나님의 모든 땅이 그 창조 세계가 이와 같은 성전이 되는 아름다움으로 완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통 우리가 그렇게 얘기합니다. 동산으로부터 거룩한 도시 즉 성전으로 쭉 올라가는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 알파와 오메가 그와 같은 일들을 위하여 사람들을 창조하셨고 사람들을 구속하고 그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거입니다.
46:41
우리가 살아갈 곳, 그곳 살아계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소 치유의 강물이 흘러나와 온 세상을 맑고 깨끗하게 만들 곳, 그곳에 왕들과 제사장들이 그 알현실에 그 성전에 자리 잡는 다는 것입니다. 엔 티 라이트 목사님은 이것이 바로 인간의 최종 목표 탈로스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2024그리스도인의 미덕 4주차 I
그래서 이것과 관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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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도 베드로가 말한 왕 같은 제사장을 이해해야만 할 것입니다 아 사도 베드로가 모든 유대인 출신이든 비유대인 출신이든 모든 성도를 가입해서 모든 교회 공동체를 가입해서 왕같은 제사장이다 말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것을 의미하는구나 즉 하나님이 임하신 곳에 왜요 그들이 성령님의 충만함 가운데서 임재 가운데서 예수님을 구세주다 그리스도다 고백할 수 있었고 하나님과 한 백성이 되었기 하나님의 한 유일한 신 하나님의 한 단위 가족이 되었기 때문에 그곳에 통치자며 제사장들이 세워진다는게 당연한 거죠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성령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백성이 모인 곳이 바로 주님의 거룩하신 성전이 거기에 임했으며 거룩한 모인 가운데 있는 사람 모두가 왕 같은 제사장이다 이야기했어요지 뭐냐 성전이라는 거 하나님이 임재하셨다면 거기를 거룩한 성전 삼으셨다는 거 아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 되게 하셨다는 건 뭐예요 왕같은 제사장으로 살아가라 그 일을 하라라고 얘기했다는 거죠 그럼 왜 베드로 사도는 제사장과 왕의 직분이 함께 묶여 있다는 식으로 말한 것인가라고 했었을 때 그 일을 원래 하라고 창조되었고 그 일을 진정한 인간이신 예수님께서 그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더불어서 엔 티 라이트 목사님이 이렇게 얘기해요 성전 안에 안에서 제사장이 수행하던 업무는 온 창조 세계를 자신의 임재와 영광으로 가득 채우겠다고 약속하셨던 하나님이 창조 세계를 특정 장소와 건물 안에 가져오셔서 그것도 그분 인재와 영광으로 가득 채우고 계시다는 사실을 경축하고 공표하는 일이었다는 거 그런데 이 일에 깊게 관여하는 것이 제사장만이 아닌 성전을 실제로 짓고 헌당을 왕들이 했기 때문에 뭐예요 성전에서 실제로 제사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제사장이지만 그 성전이 성전 될 수 있게 한 사람이 누구예요 왕들이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사도 베드로가 얘기했다고 앤 티 라이트 목사님은 얘기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 그 성전과 땅 그리고 왕같은 제사장의 그 관계를 우리는 좀 기억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전을 완공하고 첫 봉헌했던 사람은 바로 다윗의 아들이었던 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의 그 기도가 열왕기상 8장에 기록되어 있는데 거기를 자세히 읽어보면 솔로몬은 하나님께이 작은 건물 성전에 머물기에는 너무나 크신 분이다 분명한 인식을 보여주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은 뭐라고 기도하면 그 성전을 자신의 처소 삼으시고 그 처소에 모인 주님의 백성들이 사는 땅을 복되게 하신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고대 이스라엘 민족이 혹시 잘못하더라도 그 성전을 바라보고 기도하면 그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뭐 이와 같은 기도를 솔로몬 왕이 했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고대 이스라엘 민족은 전적인 주님의 은혜로 구속받고 가나안 즉 팔레스타인 땅에 정착했는데 이게 그곳에서 너희는 성전을 중심으로 한 왕 제사장들의 삶 왕 같은 삶 즉 하나님 백성다운 삶 청지기적 삶을 살아야는데 솔로몬이 그런 기도를 했다는 거입니다. 만약 이 백성이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하나되어서 살아가지 못하고 죄를 저질러서 하나님의 진노를 삼아 처벌받게 되는 일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혹시 그들이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 성전을 중심으로 성전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기도하며 주여 우리를 용서하여 주옵시고 우리가 다시 한번 그들의 청지기 들로서 왕들로 제사장들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고 한다면 그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라고 솔로몬은 기도했다는 거예 근데 그와 같은 이들이 왜 거기에 성전을 세웠는가 왜 거기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세 그 살게끔 했는가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잘못하더라도 그 성전을 중심으로 기도할 때 그들을 다시 한번 회복하고 하나님 백성이 되게 해 달라고 왜 이와 같은 기도를 해야 하는가. 바로 그곳이 하나님의 거룩한 창조 세계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땅이 거룩한 땅으로서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땅이 되게끔 하기 위하여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나도 이 땅을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살 거룩한 하나님 백성 되기 원합니다, 라는 믿음의 고백이 일어나게끔 하기 위하여 증인 된 삶을 위하여 거기에 성전을 세웠고 그 땅에 살게끔 했다라는 것입니다.
성전이 존재하는 이유는 창조 세계가 있기 때문에 다른 말로 한다면, 왜 걸어다니는 성전 주님의 몸된 교회 공동체가 존재합니까 바로 창조 세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창조 세계 없이는 교회라는 존재는 존재할 이유도 없고 필요도 없다는 거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왜 구속 받았는가 왜 내가 왜 이 땅에서 일하면서 살아가는가 왜 내가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느냐 당신의 모든 사람은 창조 세계를 위한 것이다라는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면 결국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라는 것을 반영하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진정한 이스라엘 교회 그 이스라엘 교 그 진정한 이스라엘이 교회가 되었다라고 얘기하죠 교회공동체가 고대 이스라엘 민족이 가졌던 그 소명을 이어받았어요 그래서 진정한 이스라엘 우리는 그렇게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진정한 인간 진정한 하나님 백성 진정한 이스라엘은 오직 예수님이 예수님 안에 속한 모든 하나님 백성이 동일한 이스라엘이 되어 하나님의 소명을 받는다고 예수님이 모든 성도의 산돌이 되셨어요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 털을 기반 삼아 주님의 몸을 이룹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을 세상에 증거하는 선교를 인생을 통해 진행하며 하나님의 임재가 지금 모든 곳에 임하심을 선언합니다.
엔 티 라이트 목사님이 그렇게 얘기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의 진정한 주님이라는 메시지는 다름 아니라 교회가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일을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되어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오늘 왕 같은 이 통치자이면서 동시에 제사장이라는 이 이야기를 저희가 나누고 있는데 여기까지가 153쪽까지입니다.
아직도 20페이지 정도 더 진행해야 합니다. 다음 파트2에서는 특별히 왕같은 제사장 모든 성도가 왕같은 제사장이라를 명시적으로 얘기한 것은 사도 베드로가 얘기한 내요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