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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시/집결장소 : 2015년 3월 7일(토) / 광륜사 뒷편 (09시)
◈ 참석자 : 13명 <용우, 정남, 종화, 양주, 형채, 재홍, 윤환, 경식, 재웅, 삼환, 정한, 문형, 양기 ※ 형채는 사정상 산행은 함께 못 하였으며, 재홍은 뒤풀이에 합류>
◈ 산행코스 : 광륜사 뒷편-도봉서원-보문능선-천진사옆-우이암-원통사옆-우이동(뒤풀이)
◈ 동반시 : "네가 눈뜨는 새벽에" / 신달자
◈ 뒤풀이 : 양고기에 소,맥주, 막걸리 및 삼지구엽초술 / "조기천 양고기"(우이동) → 염재홍 산우 협찬
오늘 255회 시산회 산행은 '도봉산'을 오른다. 2015년도 재경 광주고 총산악회 시산제에 참석한 후 오른다고 한다. 시산제가 열리는 광륜사 뒤편의 넓은 빈터에 아침 9시까지 도착해야 해서 나는 아침을 간단히 챙겨먹고 서둘러 전철 1호선 안양역을 향해 집을 나섰다.
입춘이 지난지가 벌써 한 달이 넘었지만 아직도 귓가를 스치는 아침 바람이 차갑다. 전동차에 오르자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군데군데 빈자리가 눈에 들어오고 가장 편하다 싶은 가장자리에 앉아 비몽사몽을 오가며 졸다보니 도봉산역에 도착한다. 휴대폰을 열고 시간을 보니 이미 9시가 넘었다. 나는 늦었다 싶어 광륜사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누군가 등 뒤를 툭 치면서 "빨리오네" 한다. 뒤돌아보니 위윤환 총장이다.
위 총장과 반갑게 악수하고 광륜사 뒤편 빈터에 도착해 둘러보니 재경 광주고 총산악회 시산제를 알리는 프래카드가 중앙에 걸려 있고, 그 옆에 몇몇 친구들이 도착해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올해 재경 총산악회 시산제는 21회 후배기수가 회장을 맡아 진행되었다. 우리는 한해의 안전한 산행을 산신령에게 비는 시산제를 마치고 집행부에서 나눠 주는 홍어, 돼지머리편육, 떡, 막걸리, 고급등산양말을 받았다. 산우들의 의견을 모아 우이암능선(보문능선)을 타고 올라 우이암에서 우이동 방향으로 하산하기로 하고, 북한산국립공원도봉분소 앞을 지나 산행에 나선다. 구름 한점없는 맑은 하늘과 살랑대는 봄바람이 산행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
조금 올라가다 도봉자연관찰로에 접어드니 오른편에 정암 조광조 선생과 우람 송시열을 배향하는 도봉서원 재건 현장 옆에 김수영 시비가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김수영 시인의 「풀」 중의 일부 싯귀절이 새겨져 있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김수영 시인은 1960년대를 대표하는 참여 시인이라고 한다. 시인은 이 시에서 왜 바람보다도 빨리 눕고, 빨리 울고, 먼저 일어난다고 했을까? 아마도 부는 바람에 넘어지는 풀이 시인의 눈에는 그리 보였나 보다.
우리는 우이암과 자운봉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우이암 방향으로 발길을 돌려 올라간다. 오르는 길옆에 '침엽수 나이 셈하기'라는 표지판이 있어 보니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뚜렷한 곳에서는 여름철과 겨울철 줄기가 자라는 차이 때문에 나이테가 생기고 잘린 나무의 나이테로 그 나무의 나이를 알 수 있는데, 잣나무나 소나무는 나무를 베지 않고도 봄에 옆으로 뻗어 자라는 나뭇가지의 층수나 나뭇가지를 끊었던 옹이를 보면 그 나이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층수나 옹이 한 켠을 한 살로 친다.
보문능선을 타고 조금 더 오르니 옹달샘 하나가 나타난다. 표지판에 산정약수터라고 씌어있다. 플라스틱 용기에 약수 한 잔 가득 담아 갈증을 풀고 산정약수터 갈림길에서 우이암 방향으로 발길을 돌려 올라가 평탄한 능선길로 접어드니 누군가 배낭을 비워야 한다면서 막걸리 한 잔 걸치고 가자고 한다.
우리는 능선길 옆 널직한 바윗터에 자리를 잡고 김정남 친구가 시산제 후 받아온 홍어회와 돼지머리편육을 안주삼아 막걸리 한 잔씩을 비운다. 홍어회를 먹어보니 수입산 홍어라는데, 국산홍어 못지않게 제법 맛이 있었다. 요즘은 칠레산 홍어는 보기 힘들고 아르헨티나와 미국산이 수입된다고 한다.
90년대 중반부터 우리나라에 수입되기 시작하여 거의 100% 한국으로 수출되던 칠레산 홍어는 이제 현지에서도 씨가 마를 정도여서 어족 보호를 위해 칠레 정부가 조업제한에 나섰다고 하니 한국인들의 홍어사랑은 정말 대단하다.
막걸리 한잔에 한결 가벼워진 배낭을 메고 오르막 능선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니 도봉산 줄기의 정상을 바라보기 좋은 고인돌바위 쉼터에 도착하고 우리는 여기서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정한 산우가 보온병에 넣어온 구기자차 한 잔씩을 돌린다. 산행시마다 늘 여러 기능성 음료를 정성스레 준비해와 친구들의 산행에 지친 피로회복은 물론 건강까지 챙겨주니 말은 거칠어도 정감 있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친구다. 정한의 마음만큼이나 따뜻한 구기자차 한 잔에 피로가 싹 가시고 몸이 가뿐해진다.
이곳 보문능선 구간에서 바라보니 주봉인 자운봉, 바로 앞에 만장봉, 남측사면에 있는 수직암반의 선인봉, 자운봉 왼편으로 신선대, 뜀바위, 에덴바위, 주봉, 병풍바위, 칼바위 등 도봉산 줄기의 정상을 차지하는 여러 봉우리들이 갖가지 형상을 뽐내며 서있고 그 웅장하고 아름다운 자태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나는 이 절경을 놓치기가 아까워 휴대폰을 꺼내 도봉산 정상 줄기의 멋진 풍광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우리는 도봉산의 절경을 뒤로하고 우이암을 향해 가는데 양지바른 쪽엔 봄기운이 완연하지만 응달에는 아직도 얼어붙은 눈들이 하얗게 덮여 있다. 이곳 보문능선 위험구간은 지형이 험준하고 급경사 암벽(릉)지역으로 오르기가 무척 힘든 구간이어서 우회하라는 안내표지판이 있는데도 우리는 우회하지 않고 암벽 구간을 오르는데 이마와 등에는 땀이 흥건하고 숨이 턱밑까지 차오른다.
우리 나이가 어느새 60대 중반을 향해 가고 있으니 매일아침 헬스로 몸관리를 하고 있는 나로서도 예전과 다름을 새삼 느끼며 노년의 신체적 변화를 실감한다. 대낮에는 꾸벅꾸벅 졸음이 오고, 밤에는 잠이 오지 않으며 곡할 때에는 눈물이 없고, 웃을 때에는 눈물이 나며 30년 전 일은 모두 기억하면서, 눈앞의 일은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고기를 먹으면 뱃속에는 없고, 모두 이빨 사이에 끼어있고 흰 얼굴은 검어지고, 검은 머리는 희어진다.
'노인의 열 가지 좌절(老人十拗)'이라고, 이익(1681~1763)의 「성호사설」에 소개된 내용이다. 머지않아 은퇴시기에 몰린 8백만 베이비부머의 멀고 긴 노년시대가 열릴 것이다. 이미 우리 곁에 다가와 있는지도 모르지만 장수시대를 살아야 하는 우리들로서는 실로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반해 다산 정약용(1762~1836)은 노인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즐거움 여섯 가지를 꼽고 있다. 이른바 '노인의 여섯 가지 즐거움(老人六快)'이다. 대머리가 되어 감고 빗질하는 수고로움이 없어 좋고, 백발의 부끄러움 또한 면해서 좋다. 이빨이 없으니 치통이 없어 밤새도록 편안히 잘 수 있어 좋다.
이빨은 절반만 있느니 아예 다 빠지는 게 낫고, 또한 굳어진 잇몸으로 대강 고기를 씹을 수는 있다. 다만 턱이 위아래로 크게 움직여 씹는 모양이 약간 부끄러울 뿐이다.
눈이 어두워져 글이 안 보이니 공부할 필요가 없어 좋고 귀가 먹었으니 시비를 다투는 세상의 온갖 소리 들리지 않아 좋다. 붓 가는 대로 마구 쓰는 재미에 퇴고(推敲)할 필요 없어 좋다.
가장 하수를 골라 바둑을 두니 여유로워서 좋다. 즉 정진해야 할 이유가 없는 나이거늘 “뭐 하러 고통스레 강적을 마주하여 스스로 곤액을 당한단 말인가?”라고 한다. 물리적으로 어쩔 수 없는 증상이라면 사고의 전환을 통해 그 증상을 즐기면서 함께 노니는 것이다.
역시 다산이다. 제아무리 왕후장상이라도 피할 수 없는 것이 노인 증상이라면 그것과 마주하는 인식과 태도에 변화가 필요하다. 다산의 노인육쾌가 그 답이 아닐까 싶다. 다행히 우리에겐 시산회가 있어 상당기간은 외롭지 않고 건강하게 노년을 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위안이 되고 앞으로도 산행에 열심히 참석할 일이다.
보문능선의 험준하고 힘든 급경사 오르막 구간을 지나 우이암능선에 도착하니 이곳 능선에서도 보문능선 구간에서는 보이지 않던 다섯 개의 연속된 암봉인 오봉(五峰, 660m)을 비롯하여 자운봉, 만장봉 등이 거대한 산등성과 함께 기암 괴석들과 잘 어우러져 도봉산만의 또 다른 맛을 느끼게 해준다.
우이암능선에서의 절경을 뒤로하고 원통사 방향으로 발길을 돌려 조금 내려가니 우이암 아래 큰 바위 옆에 양지바른 널직한 터가 나온다. 좋은 자리는 먼저 온 산객들이 차지하고 있어서 가운데 빈자리에 등산매트를 펴고 각자 가져온 먹거리들을 배낭에서 꺼내 놓는다. 위 총장이 오늘 산행기자인 나더러 산행시('네가 눈뜨는 새벽에'/신달자)를 먼저 낭독하라고 한다.
"네가 눈뜨는 새벽에" / 신달자
네가 눈뜨는 새벽
숲은 밤새 품었던 새를 날려
내 이마에
빛을 물어다 놓는다
우리 꿈을 지키던
뜰에 나무들 바람과 속삭여
내 귀에 맑은 종소리 울리니
네가 눈뜨는 시각을 내가 안다
그리고 나에게 아침이 오지
어디서 우리가 잠들더라도
너는 내 꿈의 중심에
거리도 없이 다가와서
눈뜨는 새벽의 눈물겨움
다 어루만지니
모두 태양이 뜨기 전의 일이다
네가 잠들면
나의 천국은 꿈꾸는 풀로
드러눕고
푸른 초원에 내리는
어둠의 고른 숨결로
먼데 짐승도 고요히 발걸음 죽이니
네가 잠드는 시각을 내가 안다
그리고 나에게 밤이 오지
어디서 우리가 잠들더라도
너는 내 하루의 끝에 와
심지를 내리고
내 꿈의 빗장을 먼저 열고 들어서니
나의 잠은
또 하나의 시작
모두 자정이 넘는 그 시각의 일이다
시 낭송이 끝나고 조문형의 며느리가 만들어 줬다는 홍어무침과 한양기 마나님의 손맛이 만들어낸 매콤하면서도 상큼한 맛이 일품이었던 배추김치 등 오늘 산행에 나선 친구들이 꺼내놓은 먹거리를 안주삼아 막걸리 한 잔씩을 돌린다. 우리는 간단한 요기를 겸해 40여 분 즐거운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다시 산행에 나선다.
이제 부터는 하산길이다. 우리는 원통사로 우회하는 길을 마다하고 누군가 먼저 우이동입구 방향의 경사가 급한 내리막으로 앞서 내려가니 덩달아 모두 그 뒤를 따라 내려간다. 이곳 하산길은 급경사에 낙엽이 수북이 쌓여 길인지 분간하기 어렵고 미끄럽기까지 하여 발을 내디디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한 걸음 한 걸음 집중력을 더해가며 조심조심 내리막길을 내려가다 보니 어느 덧 우이동입구에 도착한다. 앞으로 하산길은 산행의 피로도 풀겸 힘들지 않고 편안하게 내려갈 수 있게 경사가 완만한 우회로를 택하여 하산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우이동입구에 도착하니 공사현장들로 어수선하다. 뒤풀이에 참석한다고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염재홍 친구와 연락이 되어 뒤풀이 장소를 물색하다가 길가에서 예쁜 아가씨가 숯불에 구워내 권하는 양꼬치구이의 구수한 냄새와 맛에 이끌려 양고기전문식당으로 들어갔다.
우이동 버스종점 근처에 있는 ‘조기천 양고기집’이다. 양고기는 칼로리와 콜레스테롤이 적고, 무기질 비타민 철분 등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어 보양음식으로도 좋다고 한다. 우리는 양고기 중에서도 맛이 최고로 친다는 양갈비구이에 임삼환 회장이 가져온 삼지구엽초술과 소주, 맥주로 한 잔 하면서 오늘 산행을 즐겁고 화기애애하게 마무리 하였다.
염재홍 산우는 늦게 참석하여, 장인상을 당하여 시산회에서 베풀어 준 후의에 보답하는 의미로 뒤풀이 비용을 부담했으니 서로 고마운 일이다. '시산회'의 활기찬 운영과 산우들의 건강을 빌면서...
2015년 03월 07일 나양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