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 청한 잠이 새벽 5시녁에 달아나버렸습니다. 못내 아쉬워 뒤척이다 씻고 짐을 챙겼습니다. 강릉을 내려올때보다 더 무거워진 몸과 무거워진 케리어를 내리고 식탁에 앉아봅니다. 그간의 여정이 쉬 가시지가 않습니다. 오늘 일정이 한시에 종료합니다. 짧은 만남과 긴 이별이 있는 날이네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이란 녀석은 무섭게 사람의 마음을 파고드는 능력이 있나봅니다. 오늘 일정은 오죽헌과 선교장을 이원주 해설사님의 해설을 들으며 돌아보는것을 끝으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갑니다. 모든것이 아름답고 즐거운 추억이 되어 오래 기억속에 남을듯 합니다. 참여한 모든분들이 정말 좋았다는 말씀들을 하셨습니다. 이 모두가 진행하신 운영진의 노고가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생각됩니다.
감사함을 전하며.. 마지막 일정을 스케치 해 봅니다.
버스안에서 아침을 우럭미역국을 준비했다고 하셨는데 어느분께서 우럭을 우렁으로 들었나봅니다. '우렁이로 국을 끓이나' 하십니다. ㅎㅎ
해장국으로 미역국만한게 없다고 하지요? 오래 우려 끓인 미역국은 속을 든든히 채워줍니다.
허겁지겁 먹다보니 아차싶네요..
오죽헌에 도착하여 이원주해설사님을 만났습니다.
해설사님의 말씀을 다 정리하기 어려워 지식백과에서 빌려온 글을 짧게 올립니다.
오죽헌은 보물 제165호랍니다. 이 건물은 1452년(문종 2)에 등제하여 대사헌까지 지낸 최응현(崔應賢)의 고택에 딸린 별당으로,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 선생님께서 태어난 집입니다. 평면구조는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된 일자집이며 대청·온돌방·툇마루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이가 태어난 방은 몽룡실(夢龍室)이라고 합니다.
커다란 장대석으로 쌓은 단층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워 기둥 윗몸을 창방으로 결구했으며, 기둥 위에 주두를 놓고 익공으로 처리한 이익공집이며, 앞면에는 띠살창호를, 옆면에는 골판문을 달았으며 지붕은 팔작지붕의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건물은 현존하는 유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한국의 주택사에 매우 중요한 유산입니다.
오죽헌이라 현판이 붙어있습니다. 검은색 대나무가 많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합니다.
오랜 역사를 지켜보았을 배롱나무의 위용에 감탄하며...
해설사님의 말씀 하나하나를 놓치지않으려 열심히 들어봅니다. 어째서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던 말씀이 이리도 기억이 없을까요?
지폐에 나오는 오죽헌의 모습입니다. 부자될수 있다기에 포토존에서 두발을 딱 고정하고 찍어봅니다.
이제 선교장으로 이동을합니다.
선교장은 조선시대 상류층의 가옥을 대표하는 곳으로, 중요 민속자료 제5호로 지정되었다. 경포호가 지금보다 넓었을 때, '배타고 건넌다'고 하여 이 동네를 배다리 마을(船橋里)이라 불렀는데, 선교장이란 이름은 바로 여기서 유래한다. 선교장은 조선 영조때(1703년) 효령대군의 후손인 이내번이 족제비 떼를 쫓다가 우연히 발견한 명당 자리에 집을 지은 후, 그 후손이 지금도 살고있다. 총건평1,051.24m²(318평)으로, 긴행랑에 둘러싸인 안채, 사랑채, 동별당, 가묘 등이 정연하게 남아있고, 문 밖에는 수백평의 연못 위에 세워진 활래정이라는 정자가 있어, 정원까지 갖춘 완벽한 구조입니다.
선교장은 건물 뿐 아니라 조선 후기의 주거생활과 생활용구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주변경관과 어우러진 풍치가 아름답다. 선교장의 사랑은 열화당이라하며, 여기에는 용비어천가, 고려사 등 수천 권의 책, 글, 그림 등이 소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초입에서
紅葉山居... 단풍이든 산에 살고싶다는 뜻을 가진 추사 김정희선생님의 글씨입니다.
居자를 뒤집어 쓴것을 보면 다른 뜻이 있지않을까?
추사의 성격상 다른 뜻을 비유해적은것일수 있다고.. 전시관안에 진품이 있습니다.
* 활래정(活來亭)
활래정은 선교장 정원에 판 인공 연못 위에 세운 정자로 순조16년(1816) 열화당을 세운 다음해에 세웠다. 정자명은 주자의 시 (관서유감) 중 "爲有頭源活水來" 에서 땄다고 한다. 이 건물은 마루가 연못 안으로 들어가 돌기둥으로 받친 누각형식의 ㄱ자형 건물이다. 활래정은 벽면 전부가 분합문의 띠살문으로 되어 있으며 방과 마루를 연결하는 복도옆에 접객용 다실이 있다.
차경을 이용한 정자의 정취가 너무 아름답습니다.
본체로 이동하여 솟을대문에 대한 말씀을
신선이 머무는 그윽한 집 선교유거(仙橋幽居) 라는 글씨가 쓰여있는 솟을대문.. 이 글씨는 소남 이희수가 썼다고 합니다.
* 동별당(東別堂)
안채와 연결된 주인 전용의 별당건물로 이근우가 1920년에 지은 ㄱ자형 건물이다. 동쪽에 2개, 서쪽에 1 개의 온돌방을 만들고 앞면에는 넓은 툇마루를, 뒷면과 동쪽은 좁은 툇마루를 돌렸다.
* 안채
안채는 1700년 이전에 건립된 건물로 세종의 형인 효령 대군의 10대손인 이내번이 창건한 것으로 선교장 건물 중 가장 서민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며 안방과 건너방이 대청을 사이에 두고 있으며 부엌이 안방에 붙어 있다.
사랑채 쪽마루에서
초정(草庭) 사랑채 후원의 초가 정자로 소나무와 대나무 숲 자연속의 초가집에서 살던 소작인들의 삶을 느끼고자 지어졌다.
열화당이 있는 마당에서
* 열화당(悅話堂)
열화당은 남주인 전용의 사랑채로서 내번의 손자 후가 순조15년(1815)에 건립하였으며 당호인 열화당은 도연명의 귀거래사 중 (悅親戚之情話)에서 따왔다고 한다. 열화당은 3단의 장대석 위에 세워진 누각형식의 건물로 아주 운치있는 모습을 하고 있으며 차양을덧대어 햇볕과 바람을 막았다.
문고리와 장식..
나의 머리는 많은 이야기를 담기에는 한계가 있는것 같습니다.
가슴속에 담고 느낀것으로 해설사님의 명강의에 감사함을 전하고 싶습니다. 유서가 깊은 고택은 그윽한 향기가 있고
머물러 있을수록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해짐을 느껴보았습니다.
강릉교동 짬뽕으로 점심을 점심으로 먹었습니다. 잘차려진 음식은 기대치를 넘나봅니다. 강릉 교동 짬뽕의 시초라고 하셨지요? 국물이 진한데 깔끔하고 맛있었습니다.
모두에게 안녕을 말하고우린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이별을 하였습니다. 2박3일간의 정듬이 아쉬워 쉬 발이 떨어지지않아 전화번호도 나누었습니다. 가끔 안부를 전할수 있기를 기대하며..
해파랑길의 의미와 강릉바우길을 기억하며 수고하신 모든 분들께.. 그리고 함께한 모든 분들께 행복하고 감사하다 마음을 전합니다. 어느 분의 말씀처럼 잊을수 없는 소중한 추억을 담아갑니다. 고맙습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저는 몇시간 후에 서울로 돌아갈 예정이라 중앙시장투어를 하였습니다. 강릉에 대한 좋은 기억을 새기며..
첫댓글 오죽헌, 선교장을 모범답안처럼
정리를 잘 하셨네요.
2박 3일동안 풍요로운
가을 여행을 했네요.
반가웠고, 즐거웠습니다~~^~^
지난 서울 걸음~
얼굴을 못 뵈어 아쉬웠는데,,
강릉 걸음으로 이렇게 사진으로 뵙네요~
우분투님의 포스팅
반갑고 감사해요~
코리아둘레길 다함께걷기 프로그램으로
아주 알차게 강릉여행을 즐기신거같아
보기 아주 좋습니다~
우분투님
늘 밝고 건강하게 잘 지내시고
언제고 또 뵈옵기를요~^^
저두 많이 아쉬웠습니다~~^^
늘 좋은 사진 올려주셔서 즐감하고 있습니다.
건강히 잘 지내시구요~~
꼭 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