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 nu kho, bhante, upādiyatī’’ti? ‘‘No kallo pañho’’ti bhagavā avoca – ‘‘‘upādiyatī’ti ahaṃ na vadāmi. ‘Upādiyatī’ti cāhaṃ vadeyyaṃ, tatrassa kallo pañho – ‘ko nu kho, bhante, upādiyatī’ti? Evaṃ cāhaṃ na vadāmi. Evaṃ maṃ avadantaṃ yo evaṃ puccheyya – ‘kiṃpaccayā nu kho, bhante, upādāna’nti, esa kallo pañho. Tatra kallaṃ veyyākaraṇaṃ – ‘taṇhāpaccayā upādānaṃ; upādānapaccayā bhavo’ti…pe… evam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samudayo hoti.
‘‘Ko nu kho, bhante, upādiyatī’’ti?
6.[팍구나]“세존이시여, 누가 집착합니까?”라고.
8.“세존이시여, 그러면 누가 취착합니까?”라고.
‘‘No kallo pañho’’ti bhagavā avoca –
[세존]“그러한 질문은 적당하지 않다.”라고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그것은 타당한 질문이 아니다.”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
‘‘‘upādiyatī’ti ahaṃ na vadāmi.
나는 ‘[사람이] 집착한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중생이나 사람이] 취착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Upādiyatī’ti cāhaṃ vadeyyaṃ, tatrassa kallo pañho –
만약 내가 ‘[사람이] 집착한다.’라고 말했다면, 그 질문은 옳은 것이다. –
만일 내가 ‘[중생이나 사람이] 취착한다.’고 한다면, 그대의 이 질문은 타당하다. –
‘ko nu kho, bhante, upādiyatī’ti?
‘세존이시여, 누가 집착합니까?’라는.
‘세존이시여, 그러면 누가 취착합니까?’라는.
Evaṃ cāhaṃ na vadāmi.
그러나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와 같이 말하지 않는다.
Evaṃ maṃ avadantaṃ yo evaṃ puccheyya –
그러므로 그와 같이 말하지 않은 나에게는 오로지 이와 같이 물어야 한다. –
내가 이렇게 말하지 않기 때문에 나에게 이와 같이 물어야 한다. –
‘kiṃpaccayā nu kho, bhante, upādāna’nti, esa kallo pañho.
‘세존이시여, 무엇 때문에 집착이 생겨납니까?’라고, 그것이 올바른 질문이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엇을 조건으로 하여 취착이 있습니까?’라고, 그것이 타당한 질문이다.
Tatra kallaṃ veyyākaraṇaṃ –
그것에 대한 올바른 대답은 이와 같다. –
[만일 그대가 이렇게 묻는다면] 여기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타당한 설명을 할 것이다. –
‘taṇhāpaccayā upādānaṃ; upādānapaccayā bhavo’ti…pe…
‘갈애를 조건으로 집착이 생겨나고, 집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생겨난다.”’라고.
‘갈애를 조건으로 하여 취착이 있고,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있다.’라고.”
*[팍구나]“세존이시여, 누가 존재합니까?”라고.
[세존]“그러한 질문은 적당하지 않다.”라고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나는 ‘[사람이] 존재한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만약 내가 ‘[사람이] 존재한다.’라고 말했다면, 그 질문은 옳은 것이다. –
‘세존이시여, 누가 존재합니까?’라는.
그러나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와 같이 말하지 않은 나에게는 오로지 이와 같이 물어야 한다. –
‘세존이시여, 무엇 때문에 존재가 생겨납니까?’라고, 그것이 올바른 질문이다.
그것에 대한 올바른 대답은 이와 같다. –
‘집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생겨나고,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생겨난다.”’라고.
‘취착을 조건으로 하여 존재가 있고,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있다.’라고.”
*[팍구나]“세존이시여, 누가 태어납니까?”라고.
[세존]“그러한 질문은 적당하지 않다.”라고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
나는 ‘[사람이] 태어난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만약 내가 ‘[사람이] 태어난다.’라고 말했다면, 그 질문은 옳은 것이다. –
‘세존이시여, 누가 태어납니까?’라는.
그러나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와 같이 말하지 않은 나에게는 오로지 이와 같이 물어야 한다. –
‘세존이시여, 무엇 때문에 태어남이 생겨납니까?’라고, 그것이 올바른 질문이다.
그것에 대한 올바른 대답은 이와 같다. –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생겨나고,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이 생겨난다.”’라고.
‘존재를 조건으로 하여 태어남이 있고,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있다.’라고.”
evam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samudayo hoti.
이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은 이와 같이 해서 생겨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발생한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