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의 시간 / 최미숙
시어머니 4주기 제사를 지내고 집에 오니 밤 열두 시가 넘는다. 다음 날 출근 때문에 씻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시댁은 아직도 제사 지내는 시간은 물론이고 ‘홍동백서(紅東白西)’와 ‘조율이시(棗栗梨枾)’ 같은 규칙을 그대로 따른다. 그렇지 않다가는 유교식 제사를 고집하는 아흔여덟인 시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시간이라도 앞당기려고 몇 번이나 건의했는데 씨도 먹히지 않았다. 남편이 2022년 성균관 의례 정립 위원회에서 내놓은 제사상 표준안을 보여 줘도 쓸데없는 소리라고 꿈쩍도 안 했고, 심지어 시누이들까지 가세했는데도 출가외인이라며 말도 꺼내지 못하게 했다.
오후 두 시에 학교를 조퇴하고 집에 들러 짙은 색 옷으로 갈아입고 시댁으로 갔다. 작년에 빨간색을 입었다가 아버님에게 지적받았다. 큰형님이 병원에 있어 둘째 형님 혼자 준비할 것이 뻔해 조금이라도 돕고 싶었는데, 이미 음식(나물, 전, 생선구이, 식혜, 탕국)은 다 해 할 일이 없었다. 밤 열한 시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엄마 제사라고 전날 경기도 광명에서 내려온 큰 시누이와 아이들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지나치게 격식에 얽매이고 자식들 의견에 조금도 귀 기울이지 않는 아버님이 답답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시간이 가까워오자 음식을 식탁으로 옮기고 제기도 꺼냈다. 거실에 병풍을 치고 중앙에 어머님 사진도 세웠다. 그 옆으로 가벼운 1인용 책상을 앞에 두고 제사 순서를 직접 써서 코팅한 종이를 놓고 아버님이 쇼파에 앉았다. 그동안 방에 있는 책상을 주로 사용했는데 어머님 돌아가시고 생활 공간이 거실로 바뀌면서 식탁 겸 찻상 또 신문과 책을 읽는, 없어서는 안 되는 물건이 되었다. 운동하러 잠깐 밖에 나가는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동무 삼아 지내는 아버님에게는 모든 일을 앉아서 해결할 수 있는 1인용 책상이 제격이었다.
집에 가면 아버님은 항상 책상에 앉아 책을 보고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다. 문중 사람에게 보내는 안내문이나 그 외 서류도 손글씨로 직접 써서 우편으로 보낸다. 100살 가까운 노인이 쓴 글씨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필체가 좋고 힘이 있어 놀랐다. 지난 구정에는 스물네 장이나 되는 편지지에 〈아버지 평생의 발자취〉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손글씨로 쓰고는 복사해 스테이플러로 찍은 묶음을 손자들에게 한 부씩 나눠줬다. 묻지는 않았지만 성격상 아마 제사 순서도 일일이 책을 찾아가며 손으로 적고는 코팅 가게를 찾아갔을 것이다.
제기에 음식을 담았다. 시숙님이 상 차리는 법을 적은 종이를 보고 음식 이름을 말하면 남편이 쟁반에 얹어 상으로 나른다. 아버님은 돋보기도 없이 제사 순서를 읽으며 하나하나 지휘한다. 모사기와 퇴주기를 상 앞에 두고 아들과 딸, 며느리 대표로 형님이 차례로 술을 따르고 절한다. 나는 뒤에 서서 기도로 대신했다. 귀신(어머님)이 찾아와 음식을 먹는 시간에는 불 끄고 방으로 들어갔다가 나왔다. “유세차…”로 시작하는 제문을 읽고 지방을 태웠다. 음복한다며 시누이가 깎은 밤 하나를 먹었다. 이번 제사는 아버님이 역정 내는 일 없이 무사히 끝났다. 부리나케 상을 치우고 제기도 정리해 넣었으며 가져갈 반찬도 몇 가지 쌌다.
수십 년 동안, 조상님을 잘 모셔야 자손에게 복이 돌아간다고 철저히 믿는 분에게 시대가 변했으니 따라야 한다고 말하면 생각이 쉽게 바뀌겠는가. 아마 이런 문화도 우리 대에서 끝나지 않을까 싶다. 아버님의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지만 이해해야겠다 마음먹는다. 모르지, 지금이야 불평하지만 노인네 돌아가시고 좀 더 나이 들면 불현듯 이런 날을 그리워하게 될지도.
늦은 밤, 책상을 지렛대 삼아 일어선 아버님과 시누이가 웃으며 배웅한다. 한때는 우리에게 서운하게 해 미웠던 적도 있었지만 권위적이고 강하기만 했던 모습은 어디 가고, 눈앞에 지팡이 짚은 늙고 힘없는 노인네가 있었다. 안 본 사이 더 늘어난 얼굴 검버섯이 유난히 더 검어 보였다.
첫댓글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10여년 전 99세를 일기로 다른 세상으로 가셨던 친정 아버지의 생전 모습을 그렸습니다. 자시를 기다려 제사를 모시던 우리집 풍경도 눈 앞에 펼쳐집니다. 결혼하면서 제일 좋았던 점이 무서운 아버지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왜 그 시절이 봄꽃처럼 아름답고 그리울까요? 선생님의 글 읽게 되어 기쁩니다. 고맙습니다.
대단한 어르신이네요. 요즈음은 제사를 너무 간소하게 지내버려 조상에게 민망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크게 부담이 안된다면 전통을 지키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제사는 집안 어른의 말을 따르면 몸은 고단해도 마음은 편합니다. 시어머님이 105세에 돌아가셨는데 제사만큼은 신식으로 지냈습니다. 평소에 시아버지가 저녁밥이 늦으면 역정을 내셨다고 제사를 일찍 지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고 맏며느리인 전 많이 배웠습니다. 그동안 너무 엉터리로 제사 지낸것 같아요. 한 수 배우고 갑니다.
세상의 흐름에 따르는 게 좋은데 애로가 많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제 모습을 상상했답니다. 친정 아버지의 권위가 워낙 강해 큰올케는 지금도 고생하고 있거든요. 다행히 시댁은 종가라도 간소하게 지냅니다. 느낌이 팍팍 왔어요.
제사는 격식을 차리지 않아도 힘든데... 모두에게 편안한 의식이면 좋을 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