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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13(수)
3. 왜 스룹바벨 에스더 에스라 느헤미야는 동시대 동족들에게 존경받았는가? p.21
(1) 왜 스룹바벨은 동시대 동족들에게 존경 받았는가?
(2) 왜 에스더는 동시대 동족들에게 존경 받았는가?
(3) 왜 에스라는 동시대 동족들에게 존경 받았는가?
(4) 왜 느헤미야는 동시대 동족들에게 존경 받았는가?
(1) 왜 스룹바벨은 동시대 동족들에게 존경 받았는가?
우리 민족은 1910년에서 1945년까지 36년 동안 일제강점기를 경험했기 때문에 제국의 식민지 백성들이 당하는 고통을 세계 어느 민족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나라 잃은 설움을 아는 민족입니다 때문에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의 식민지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았던 이스라엘 민족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 민족이 성경 속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페르시아 제국이 유대 민족을 지배하던 시대에 페르시아가 유대에 파견한 유대 총독 스룹바벨 페르시아 왕후 에스더 페르시아 왕의 자문학사 에스라 그리고 페르시아가 유대에 파견한 유대 총독 느헤미야를 당시 유대인들이 미워하지 않고 오히려 존경했다는 부분입니다
우리가 일제감점기 당시는 물론이거니와 지금까지도 친일파를 미워하는 것과 달리 그 당시 유대인들은 페르시아파를 미워하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그들을 지지하고 따랐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스룹바벨 에스더 에스라 느헤미야가 페르시아의 왕을 감쪽 같이 속이고 페르시아 와의 신임만을 받아내 유대 민족을 위한 민족운동을 해서 그랬을까요?
아니면 당시의 유대인들이 계속되는 식민지 생활 가운데 스룹바벨 에스더 에스라 느헤미야에게 굴종의 자세로 그들에게 복종하는 척했던 것일까요? 우리의 상상력이나 우리의 경험 혹은 우리의 판단으로는 맞는 답을 찾아내가기 참 어렵습니다
그 답이 제사장 나라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남유다가 바벨론 의 포로로 잡혀가 있는 동안 바벨론 제국이 페르시아 제국에게 멸망했습니다 때문에 바벨론으로 끌려갓던 남유다 포로들은 갑자기 바벨론 제국의 포로에서 페르시아 제국으 포로들로 신분이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페르시아 제국의 정책은 바벨론 제국과 달랐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은 바벨론이 각국에서 끌어온 포로들을 귀환시키는 정책을 그들의 제국 정책으로 펼쳤습니다
그러며서 페르시아가 유대 민족 또한 다른 민족들처럼 자국으로 돌려보내는 과정에서 유대에 유대 출신 총독을 파견했던 것입니다
페르시아 제국이 유대에 파견한 총똑 스룹바벨은 페르시아 제국이 공식적으로 인정할 만한 인재였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은 스룹바벨의 탁월한 실력과 충성심에 대해 의심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만큼 스룹바벨을 신뢰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유대인들 또한 스룹바벨을 신뢰하는 데 있어 페르시아 제국 못지 않았습니다 페르시아 제국과 유대인들이 모두 스룹바벨을 신뢰했다는 것은 서로 상충되는 것 같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이 왕이 스룹바벨을 신뢰한 것은 그를 페르시아 제국의 정치인이자 행정가로 신뢰한 것이고 유대인들이 유대 총독 스룹바벨을 신뢰한 것은 성전을 재건하는 일을 중심으로 제사장 나라를 다시 세우는 일에 헌신할 사람으로 신뢰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바벨론 포로 기간 70년 동안 나라도 없고 왕도 없고 심지어 예루살렘 성전도 불터버려서 없는 상태에서 포로 생활을 했었
제사장 나라는 나라의 영토 없이 광야에서도 가능했던 나라였고 인간이 세운 왕 없이도 나라로서 전혀 부족함이 없는 나라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귀환한 유대 민족이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결심했을 때 다시 세울 수 있는 나라였습니다
그 소중한 일에 스룹바벨이 쓰임 받았고 귀환한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스룹바벨을 들어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바벨론에서의 제사장 나라 70년 재교육이 큰 성과가 있었던 것입니다
(2) 왜 에스더는 동시대 동족들에게 존경 받았는가? p.22
우리 민족이 일제강점기를 통해 기념할 만한 날로 정한 대한민국의 국경일은 3.1절과 8.15광복절입니다 그리고 유대 민족이 페르시아 제국의 식민지 백성으로 살아가면서 만든 명절은 부림절입니다
페르시아 제국 때 만들어진 이 부림절은 페르시아의 왕후 에스더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에스더가 페르시아 제국에서 페르시아 왕의 왕후가 된 것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총독 스룹바벨과 함께 1차로 이미 귀환을 하고 2차 귀환은 아직 하지 않은 상태 즉 1차 귀환과 2차 귀환 사이에 페르시아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당시 페르시아 왕의 허락으로 유대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예루살렘으로 귀환했습니다
그러나 한편 상당수의 유대인들은 패르시아 제국 전역에 남아서 장사에 종사하며 상당한 부를 누리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는 가운데 일찍이 예레미야의 편지와 에스겔의 가르침을 받으며 바벨론에서 좌절하지 않고 다른 민족에 비해 열심히 살아남았기 때문입니다
그 가운데 에스더가 페르시아의 왕후가 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만약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 여인이 일본 천왕의 부인이 되는 사건이 발생했다면 우리나라 백성들은 일본 왕의 부인이 된 그 여인의 말을 따랐을까요?
그것도 3일간이나 음식도 먹지 말고 심지어 물까지도 마시지 않으며 왕의 부인이 된 그 여인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하면 과연 몇 명이나 그 일에 동참해주었을까요?
그런데 놀랍게도 페르시아의 4개의 수도 가운데 하나인 수산궁에서 유대인들이 모르드개를 중심으로 하나같이 힘을 합해 에스더 왕후의 이 부탁을 다 들어주어 3일을 함께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에스더 왕후는 민족을 배반한 여인이 아닌 민족을 살리는 여인으로 인식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에 4장16-17절
4: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4:17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가 명령한 대로 다 행하니라
이때 유대인들이 페르시아 땅에서 만든 명절이 바로 부림절이었습니다 부림절은 페르시아 왕후 에스더의 명령으로 온 유대인들이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자신들과 자신들의 자손들이 살아남게 된 날을 기념하는 날이고 유대인들이 페르시아 제국 내에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는 날로 정한 명절이 되었습니다
에 9장21-22절
9:21 한 규례를 세워 해마다 아달월 십사일과 십오일을 지키라
9:22 이 달 이 날에 유다인들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 이 두 날을 지켜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 하매
아달월 : 바벨론 월력으로 열두 번째 달의 이름 바벨론 포로 이후 유대 종교력의 열두 번째 달이 되었다
에 9장31절 정한 기간에 이 부림일을 지키게 하였으니 이는 유다인 모르드개와 왕후 에스더가 명령한 바와 유다인이 금식하며 부르짖은 것으로 말미암아 자기와 자기 자손을 위하여 정한 바가 있음이더라
페르시아 왕후 에스더는 이처럼 페르시아 제국의 왕후였음에도 불구하고 동시대 유대인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았으며 유대 민족을 살린 여인으로 성경에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때 만약 유대인들이 페르시아 제국에서 하만의 계략대로 몰살을 당했다면 이후에 에스라와 느헤미야와 같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역사에 등장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3) 왜 에스라는 동시대 동족들에게 존경 받았는가? p. 24
페르시아에서 태어난 아론의 16대 자손 에스라는 유대의 3대 율법학자(에스라 힐렐 가말리엘)가운데 한 사람으로 유대 역사상 가장 월등하고 위해한 율법학자였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기 전까지 에스라는 페르시아 제국에서 왕에서 정치적 조언을 하는 왕의 학사였고 페르시아의 왕은 에스라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는 대단한 후견인이었습니다
에스라는 페르시아에서 뛰어나는 지식인으로 왕에게 중요한 정치적 조언과 법률 자문을 하는 사람으로 제국 내에서도 상당한 존중을 받고 있었으며 왕의 신임을 한몸에 받는 사람이엇습니다 그러한 에스라를 페르시아 왕에게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남유다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 생활 70년을 마치고 예루사렒으로 1차 귀환한 지 80년이 지난 그때에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의 귀환을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페르시아의 왕 아닥사스다는 에스라를 페르시아 제국 내의 유프라테스 강 서편 전 지역에서 사법권을 행사하는 총 책임자로 임명하고 예루살렘에 산헤드린 공회를 세우도록 허락했습니다 또한 왕의 조서를 통해 유프라테스 강 서쪽의 모든 나라들이 에스라가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이든 충분히 공급하게 했습니다
스 7장11-26절
7:11 여호와의 계명의 말씀과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례 학자요 학자 겸 제사장인 에스라에게 아닥사스다 왕이 내린 조서의 초본은 아래와 같으니라
7:12 모든 왕의 왕 아닥사스다는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학자 겸 제사장 에스라에게
7:13 조서를 내리노니 우리 나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중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뜻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너와 함께 갈지어다
7:14 너는 네 손에 있는 네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유다와 예루살렘의 형편을 살피기 위하여 왕과 일곱 자문관의 보냄을 받았으니
7:15 왕과 자문관들이 예루살렘에 거하시는 이스라엘 하나님께 성심으로 드리는 은금을 가져가고
7:16 또 네가 바벨론 온 도에서 얻을 모든 은금과 및 백성과 제사장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그들의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기쁘게 드릴 예물을 가져다가
7:17 그들의 돈으로 수송아지와 숫양과 어린 양과 그 소제와 그 전제의 물품을 신속히 사서 예루살렘 네 하나님의 성전 제단 위에 드리고
7:18 그 나머지 은금은 너와 너의 형제가 좋게 여기는 일에 너희 하나님의 뜻을 따라 쓸지며
7:19 네 하나님의 성전에서 섬기는 일을 위하여 네게 준 그릇은 예루살렘 하나님 앞에 드리고
7:20 그 외에도 네 하나님의 성전에 쓰일 것이 있어서 네가 드리고자 하거든 무엇이든지 궁중창고에서 내다가 드릴지니라
7:21 나 곧 아닥사스다 왕이 유브라데 강 건너편 모든 창고지기에게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 학자 겸 제사장 에스라가 무릇 너희에게 구하는 것을 신속히 시행하되
7:22 은은 백 달란트까지, 밀은 백 고르까지, 포도주는 백 밧까지, 기름도 백 밧까지 하고 소금은 정량 없이 하라
7:23 무릇 하늘의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하늘의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은 삼가 행하라 어찌하여 진노가 왕과 왕자의 나라에 임하게 하랴
7:2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제사장들이나 레위 사람들이나 노래하는 자들이나 문지기들이나 느디님 사람들이나 혹 하나님의 성전에서 일하는 자들에게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받는 것이 옳지 않으니라 하였노라
7:25 에스라여 너는 네 손에 있는 네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네 하나님의 율법을 아는 자를 법관과 재판관을 삼아 강 건너편 모든 백성을 재판하게 하고 그 중 알지 못하는 자는 너희가 가르치라
7:26 무릇 네 하나님의 명령과 왕의 명령을 준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속히 그 죄를 정하여 혹 죽이거나 귀양 보내거나 가산을 몰수하거나 옥에 가둘지니라 하였더라
페르시아 왕에게 이 정도의 무한 신뢰르 받고 경제적 지원까지 넘치도록 받는 사람이 당시 페르시아 제국 내에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그런데 에스라는 이것이 자신의 뛰어난 능력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았기에 가능했다고 고밸하고 있습니다
스 7:6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음으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이더니
에스라가 총독 스룹바벨니 이어 두 번째 예루살렘으로의 귀환의 지도자가 되어 예루살렘으로 귀환합니다 예루살렘 도착한 에스라는 뜻을 정하는 데 그 뜻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페르시아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에스라는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고 율법을 준행하고 율법을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에스라의 이 놀라운 결심으로 말미암아 이후 유대 땅에는 뛰어난 율법학자들이 계속 배출됩니다 그래서 이후 헬라 제국이 고대 근동을 통치할 때에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 성경으로 번역한 70인역이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에스라는 페르시아 왕에게 충셩했고 페르시아 왕은 에스라에게 깊은 신뢰와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그 당시 에스라의 동족 유대인들은 페르시아 왕이 에스라를 신뢰하는 것보다 더 많이 에스라를 믿고 따랐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도 해답은 제사장 나라입니다 에스라와 그 당시 유대인들의 뜻이 다시 시작하는 제사장 나라로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바벨롤 포로 생활 70년이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재앙이 아니고 희망이 되었습니다
다시 제사장 나라를 시작할 수 있는 재교육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유대인들은 에스라을 향해 친페르시아주의자라고 비난하거나 매도하지 않았습니다
에스라는 동족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며 그들이 다시 제사장 나라의 거룩한 시민으로 복귀하도록 도왔습니다 에스라가 앞장서 하나님의 전 앞에서 엎드려 울며 회개하자 온 백성들이 함께 하나님 앞에 나아와 회개하고 용서받음으로 다시 하나님과 함께할 수 있는 길을 연 것입니다
스 10장1-4절
10:1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크게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10:2 엘람 자손 중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아직도 소망이 있나니
10:3 곧 내 주의 교훈을 따르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가르침을 따라 이 모든 아내와 그들의 소생을 다 내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10:4 이는 당신이 주장할 일이니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 하니라
스 9:6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9:10 우리 하나님이여 이렇게 하신 후에도 우리가 주의 계명을 저버렸사오니 이제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에스라는 페르시아 제국의 높은 고위직 관료였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동족 유대인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동족들과 함께 다시 제사장 나라의 꿈을 키웠습니다
(4) 왜 느헤미야는 동시대 동족들에게 존경 받았는가? p. 27
에스라처럼 페르시아에서 출생한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으로의 2차 포로 귀환이 이루어지고 난 후 14년이 지났을 무렵에 예루살렘으로으 3차 포로 귀환의 지도자로 예루살렘에 귀환한 유대 출신 총독이었습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공통점은 페르시아 제국에서 매우 출세한 고위 공직자였다는 것과 그들이 탁월한 능력은 비교가 볼가능할 정도로 월등했다는 것입니다
학사이자 제사장이엇던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율법 연구와 유대인들의 회개 운동을 이끌었다면 총독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불타고 무너졌던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재건하고 에스라와 함께 초막절 절기를 지켰습니다
느 8장9-10절
8:9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8:10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1차 포로 귀환자들은 바벨론 군인들에 의해 불타버린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재건하면서 방해하는 세력에 의해 16년간이나 성전 건축을 중단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느헤미야가 3차 포로 귀환자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자 할 때 또 다시 방해하는세력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의 방해는 집요했고 심지어 그들은 느헤미야를 암살하려고까지 할 정요였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이에 굴하지 않고 유대 동족들과 힘을 합쳐 허리에 칼을 차고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 공사를 52일 만에 완성시켰습니다
150년 전 바벨론 제국에 의해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고 불타고 성전이 불타고 성벽이 파괴되고 온 집들이 불에 타 다 없어지고 시체들이 나뒹굴며 여인들과 아이들의 울음 소리가 가득했던 예루살렘이 느헤미야에 의해 완전히 달라진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성벽이 다시 세워짐으로 예루살렘은 무법천지에서 안전한 도시로 탈바꿈되었고 가장 약자들인 여인들과 아이들이 안전한 곳에 살게 된 기쁨에 웃음이 가득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느 12장43절 이 날에 무리가 큰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부녀와 어린 아이도 즐거워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이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
이러한 일이 가능하도록 느헤미야가 페르시아 왕의 신뢰를 충분히 받아온 것입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고위 공직자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제국에서 충분히 출세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동족 유대인들에게 신뢰와 존경을 받았습니다 이 또한 답은 제사장 나라에 있습니다 페르시아로부터 귀환한 유대 민족은 독립된 나라를 다시 세울 수도 없었고 왕을 세울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페르시아 제국을 통해 유대 민족에게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세울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고 그들이 제사장 나라의 거룩한 시민으로 회복할 수 있도록 에스라와 느헤미야 같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이끄셨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당시 유대인들이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시작하는 제사장 나라로서의 7년간의 교육이 놀라운 성과를 낸 것입니다 때문에 당시 유대인들은 스룹바벨 에스더 에스라 느헤미야가 페르시아 제국의 고위 공직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미워하거나 친 페르시아주의 자라고 매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다시 시작하는 제사장 나라의 꿈을 함께 꾸었습니다
느헤미야보다 150년 전 하나님의 사람이었던 예레미야 선지자의 눈물이 헛되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가 밤이 새도록 울다가 결국 새벽에 소망을 노래했던 것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과거 출애굽 세대가 광야에서 40년간 모세를 통해 제사장 나라를 교육받아 만나세대를 탄생시켰던 것처럼 바벨론 포로 70년간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제사장 나라의 재교육 시간이 되었습니다
바벨론 포로로 글려갔던 남유다 백성들이 70년간의 포로 생활을 마치고 페르시아로부터 귀환해서는 월등한 수준이 되어 하나님을 오해하지 않고 이해하는 거룩한 시민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스룹바벨 에스더 에스라 느헤미야를 오해하지 않고 이해하며 힘을 합해 제사장 나라를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Tip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애굽으로 내려가서 큰 민족을 이루며 애굽 사람들로부터 히브리 민족이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출애굽해 광야로 나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웠습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살게 되면서 사사 시대 350년 그리고 왕정 500년을 보내는 가운데 한 민족 두 국가가 되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뉘어 불립니다 그러는 가운데 북이스라엘은 앗수르 제국에 의해 멸망해 혼혈족 사마리아인이 되고 남유다는 바벨론 제국에게 멸망해 나라의 문을 70년간 닫고 바벨론 포로민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때 바벨론은 남유다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포로들을 끌어왔기 때문에 남유다 사람들을 유대인이라 불렀습니다 그래서 그때로부터 유대인이라는 말이 생겨나게 된것입니다
바벨론 포로로 끌려와 페르시아에서 살다가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유대인들이 그렇게 월등했습니다 그들은 스룹바벨 에스더 에스라 느헤미야를 오해하지 않고 이해하는 높은 수준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때로부터 그 유대인들은 유대인의 탈무드 유대인의 상술 유대인의 교육등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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