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과 놀다 / 이임순
누군가가 그랬다. ‘위대한 일은 열정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무슨 일이나 의지가 있어야 하며 정신도 한군데로 모아야 한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장맛비가 오락가락해도 흐트러지지 않고 오롯이 나만의 세계에 빠지고 싶었다.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욕심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다. 탁해지려는 마음을 더는 덧칠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순수하게 세상 사는 이치를 느낄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얽혀 있는데 지필묵으로 눈이 간다. 20여 년을 친구처럼 지내다 뜻하지 않은 일로 사이가 멀어졌다. 싫어서 그만둔 것이 아니어서 늘 아쉬웠는데 우연한 기회에 3년 전부터 다시 가까이 지내던 참이다.
책상에 널린 책을 한곳으로 모으고 깔판을 펼친다. 화선지를 꺼내 문진으로 고정시키고 붓에 먹물을 가득 묻혀 훑어 내린다. 굳은 붓을 깨운 다음 팔을 젓는다. ‘타고나야 하는 것은 재능이 아니라 노력과 간절한 마음이다’ 요즈음 내 마음에 새기는 말이 화선지 위에 춤을 추듯 굵고 가늘게 강약이 조절된다.
붓을 들고 화선지 앞에 서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오로지 나만의 세계로 폭 빠져 잡념 따위가 낄 틈이 없다. 남편이 말을 걸어도 듣지 못할 때가 있다. 내 손끝에서 글자가 춤을 춘다. 한두 장 쓰는 것으로 양이 차지 않는다. 정신을 집중하여 다섯 장쯤 쓰면 서툴고 미진한 데가 눈에 들어온다. 그러면 또 화선지를 펼치고 정신을 가다듬어 붓을 놀린다.
두세 시간은 금방 간다. 7월 한 달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붓을 잡았다. 8월도 중순에 3박 4일 여행을 간 날을 빼고는 매일 썼다. 덕분에 필체에 힘이 생기고 붓놀림이 유연해졌다. 졸졸졸 흐르는 개울물같이 가늘었다 소나기처럼 강한 힘이 실리기도 한다.
일주일 단위로 소재를 바꿔 가며 붓을 잡는다. 대략 60번쯤 쓴다. 다른 일도 그렇지만 서예나 캘리그라피도 노력한 만큼 필력이 생긴다. 책을 읽다 마음에 든 구절이 있으면 메모해 두었다 쓰기도 한다. 내 시가 소재가 되기도 하고 성현들의 말씀도 화선지를 메운다. 요즈음은 정채봉 작가의 〈해 질 무렵〉으로 내 마음의 등을 밝힌다. ‘바람에 몸을 씻는 풀잎처럼 이슬에 몸을 씻는 모래알처럼 당신의 눈동자 속에서 나를 헹구고 싶다. 지금은 해 질 무렵’
취미가 무엇이냐 물으면 전에는 ‘뜨개질’이라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서슴없이 ‘글쓰기’라 대답한다. 여기에는 서예나 캘리그라피, 필사도 포함된다. 필사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작가의 마음 언저리에서 놀고 싶어 밤새도록 시집 한 권을 다 쓰기도 했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니 뜻밖의 일도 있다. 작년에 대만에서 내가 속한 로타리클럽과 자매결연을 맺은 회원이 클럽을 방문했다. 마침 가방에 손수 써서 만든 부채가 있어 선물했다. 이튿날 환영 만찬을 하는데 그분이 대만 작가의 직인이 찍힌 부채를 선물로 주었다. 하잘것없는 것이었는데 되로 주고 말로 받은 격이 되었다. 그런데도 그분은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올해 방문할 때도 그 부채를 소지하고 있었다.
전에는 시화전을 하면 남의 손을 빌려 그림을 그렸는데 지금은 내가 손수 쓴 작품을 낸다. 요즈음 올해 시화전에 낼 작품을 연습하고 있다. 출품하려면 100번 이상 쓰고 골라 낸다. 내 혼이 거기에 새겨지도록 심혈을 기울여 쓰고 또 쓰는 것이다.
밤늦도록 화선지와 놀다 보면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기 보다 열정을 쏟아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이런 맛에 붓을 든다. 더위와 열대야로 아우성인 올여름을 어느 해보다 알차게 보냈다.
내 생이 이어지는 그날까지도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